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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천막 들추자 유골밭… 모습 드러낸 40m 학살구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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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골령골 유해발굴 현장취재기] 40여 일간 찾은 유해만 400여 구, 이번 주 1차발굴 마무리

▲ 주말에 비가 내렸지만, 다행히 유해 발굴지는 비 피해가 전혀 없었다. 비 피해에 대비해 유해발굴지 위에 천막과 비닐을 덮었다. ⓒ 심규상

2일 오전 7시. 일찌감치 골령골(대전 동구 낭월동)로 향했다. 유해발굴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발굴 현장 부근에 임시 사무실을 마련한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의 전미경 회장이 기자보다 먼저 도착했다. 이날 유해발굴을 위한 자원봉사자에게 점심을 제공하기 위해 멀리 부여에서 한달음에 달려왔다.

대전 골령골은 전쟁이 나던 1950년 6월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대전 형무소 재소자 등과 대전 충남·북 일원의 보도 연맹원 등 적게는 4천여 명에서 많게는 7천여 명의 민간인이 군인과 경찰에 의해 살해된 땅이다. 행정안전부와 대전 동구청 주도로 한국선사문화연구원 등이 지난 6월부터 유해를 발굴 중이다.

▲ 박선주 책임연구원이 아침 회의를 통해 작업 지시를 내렸다. 약 200여 구에 이르는 드러난 유해를 수습하는 일이 핵심 작업이다. ⓒ 심규상
▲ 주말에 비가 내렸지만, 다행히 유해 발굴지는 비 피해가 전혀 없었다. 발굴단원들이 유해수습을 위해 천막과 비닐을 걷어 내고 있다. ⓒ 심규상

오전 8시 30분. 유족회 사무실 옆 유해발굴 현장으로 향했다. 주말에 비가 내렸지만, 다행히 유해 발굴지는 비 피해가 없었다. 15여 명의 유해발굴단들이 작업 준비가 한창이다. 박선주 책임연구원이 아침 회의를 통해 작업 지시를 내렸다. 약 200여 구에 이르는 드러난 유해를 수습하는 일이 핵심 작업이다.

매장지를 덮고 있던 천막과 비닐을 펼쳤다. 순간 참혹한 현장이 그대로 드러났다. 가로 약 2미터, 세로 약 40여 미터에 가까운 긴 구덩이에 유골이 즐비했다. 두개골, 다리뼈, 치아, 탄피 등이 뒤엉켜 있다.

대략 눈 짐작만으로도 200여 구는 넘어 보였다. 그야말로 ‘유골밭’이다. 이 구덩이는 아직 발굴하지 않은 반대편까지 길게 이어져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발굴 지역을 합쳐 셈해보니 한 구덩이 길이가 대략 100여 미터는 돼 보였다.

뒤엉켜 드러난 유해… 눈 짐작만으로도 200여 구 이상

▲ 매장지를 덮였던 천막과 비닐을 펼쳤다. 순간 참혹한 현장이 그대로 드러났다. 가로 약 2미터, 세로 약 40여 미터 가까운 긴 구덩이가 온통 유골로 뒤덮여 있다. 박선주 책임연구원이 드러난 유해를 가르키고 있다. ⓒ 심규상
▲ 박선주 책임연구원(충북대 명예교수)이 발굴된 유해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 심규상

한 구덩이만이 아니다. 그 위로 길게 또는 불규칙하게 유해가 묻힌 여러 개의 구덩이가 드러났다. 또 다른 구덩이에서 수습한 유해만 200여 구 남짓이다. 이미 수습한 유해는 인근 건물 수십 평 바닥을 꽉 채우고 있다. 약 40여 일 동안 가로 40미터, 세로 1미터 공간에서 발굴한 유해만 모두 400여 구에 이르는 셈이다.

박선주 책임연구원(충북대 명예교수)은 “이번 발굴로 한 개의 구덩이가 100여 미터에 이르는 구간을 찾아냈다”며 “여성은 물론 10대에서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유해가 뒤섞여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산기슭 경계를 따라 수십여 명이 묻힌 여러 개의 구덩이도 드러났다”며 “대부분 대전형무소 수감자들의 유해로 보이지만 정확한 희생자 유형과 매장지별 특성을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전 10시. 유해를 본격 수습하기에 앞서 현장 촬영이 시작됐다. 드론이 날며 유해 매장지를 입체 촬영했다. 또 각 유해를 세분화해 구역별로 세부 촬영하기 시작했다. 이는 유해매장 상태는 물론 매장지 지형 특성을 분석하는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또 이후 골령골 현장에 들어설 한국전쟁 민간인집단희생자의 위령 시설인 ‘진실과 화해의 숲’ 설계용역에도 사용된다. 행정안전부와 대전시 동구청은 지난해 12월 진실과 화해의 숲 국제공모 당선작이 선정된 이후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설계용역을 진행 중이다.

갑자기 거세진 빗줄기, “한나절만 참아줬더라면…”

▲ 유해 매장지 내 유해를 덮은 비닐과 천막 위로 누런 흙탕물이 쏟아져 고이기 시작했다. 수중 펌프를 설치해 고인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 심규상
▲ 한 시간 남짓 퍼부은 비로 유해 매장지 내에 40센티미터 넘게 잠겼다. 수중 펌프도, 삽질도 역부족이었다. ⓒ 심규상

오전 10시 20분. 후두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갈수록 빗줄기가 거세졌다. 현장 촬영도 중단됐다. 다시 비밀과 천막으로 유해매장지가 서둘러 덮였다. ‘소나기처럼 한 줄기 쏟아지고 말겠지’ 하며 기다렸지만 쉬이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빗줄기가 굵어졌다. 거세졌다.

오전 11시. 골령골 전체가 쏟아지는 빗줄기 소리뿐이다. 사방이 흙물이다. 유해 매장지 내 유해를 덮은 비닐과 천막 위로 누런 흙탕물이 쏟아져 고이기 시작했다. 유해를 지키기 위해 발굴단원들이 뛰어들었다. 수중 펌프를 설치해 고인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유해 매장지 주변에 배수로를 내 물줄기를 돌리기 위한 쉼 없는 삽질이 시작했다. 발굴단원들은 흙탕물과 땀으로 속옷까지 흠뻑 젖었지만 빗속을 뛰어다닌다.

오전 11시 30분. 1시간 남짓 퍼부은 비로 유해 매장지 안이 40센티미터 넘게 잠겼다. 수중 펌프도, 삽질도 역부족이었다.

오전 11시 50분. 비가 그쳤다. 하지만 현장 촬영도, 유해수습도 당분간 어려울 만큼 피해를 입었다. 적어도 한나절 이상 현장을 말리고 또 비가 올 때를 대비해 배수로도 정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 책임연구원은 몇 번씩 “한나절만 참아줬더라면 드러난 유해수습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라며 “하늘이 야속하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유해발굴단은 이번 주 1차 발굴을 마무리한 후 내주에는 수습한 유해를 분석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이어 오는 9월부터 두 달 여 동안 2개 구역에 대한 추가 유해발굴을 시작할 예정이다.

대전 골령골에서는 지난 2007년 지난 해까지 모두 유해 288구(2007년 진실화해위원회 34구, 2015년 시민사회 공동조사단 20구, 2020년 행정안전부와 대전 동구청 234구)를 발굴했다.

올해 1차 발굴한 유해를 합할 경우 모두 700구 가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심규상 기자

<2021-08-02>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천막 들추자 유골밭… 모습 드러낸 40m 학살구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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