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대사관 앞서 한달 간 1인시위… 첫날 한국YMCA전국연맹사무총장·천도교청년회장 참여
1923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의 진상공개와 공식사과를 요구하는 일본대사관 앞 1인시위가 2일부터 진행됐다.
시민모임 독립(이사장 이만열 상지대이사장·전 국사편찬위원장)은 앞으로 한 달간 1인 시위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한 달간 진행되는 1인 시위는 코로나19 방역 수칙에 따라 1인씩 피켓을 들고 이어 나간다.
학생, 직장인, 자영업자 등 일반 시민들이 자원 참가하는 이번 1인 시위는 1923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이 일본 정부가 촉발하고, 조선인에 대한 혐오가 투영된 명백한 제노사이드 범죄임에도 일본정부가 진상공개와 공식사과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역사 부정의 현실에서 출발했다.
특히 첫날인 2일 1인 시위에 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과 이재선 천도교청년회장이 나선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이라는 참상을 목격하고 이재동포위문반(罹災同胞慰問班)을 조직해 실태 파악에 나선 것이 천도교 동경지부와 YMCA동경지부였기 때문이다. YMCA동경지부는 매해 추모제를 진행해왔으며 국내에서는 일제의 삼엄한 감시와 탄압 속에서 1924년 1주기 추모식을 거행한 바 있는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지난 2020년 추모식과 추모문화제를 거행한 바 있다.
시민모임 독립은 일본대사관에 공문을 보내 일본 정부의 진상 공개와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1인시위 진행을 통지했다.
이날 격려차 현장을 찾은 이만열 이사장은 사건 발생 이후 98년이 되었는데도 사건의 희생자, 특히 조선인 희생자 숫자나 참혹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 국민들과 일본인, 세계가 간토대지진 사건에 대해 희생자들에 대해서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대한민국 정부가 서고 국회가 있음에도 아직도 이 문제에 대해 진상조사와 희생자 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국회와 정부로 하여금 100주년이 되는 2023년까지 특별법 제정과 희생자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국회와 정부가 되기를 촉구했다.
끝으로 이만열 이사장은 “우리가 이런 시위를 하려는 것은 보복과 비난이 아닌 우리는 이 시위를 통해 100년간 쌓여온 원한과 원망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진상규명을 통해 용서하고 화해하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한다. 이 1인 시위가 하나의 역사적인 화해와 용서의 단서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재선 천도교 청년회장과 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사무총장은 이날 현장에서 공동으로 1인 시위를 시작하며 “1923년 간토대지진 때 일본은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학살하고 진상규명이 100년이 다 되도록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해방된 국가를 가지고 있는 한국시민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98년 전 희생된 희생자들의 영령을 추모하면서 해원할 수 있도록, 한일 간 화해의 공감을 만들어낼 수 있고 과거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으로 한일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갈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100년 전 일제에 맞서 심장부인 도쿄에서 희생자 조사를 한 유학생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는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와 차별에 대해 지적하며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과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책임이라고 밝혔다.
또 현장에서 1인 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은 “일본정부에 대해 책임있는 진상규명과 진심 어린 사죄를 요구하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야 하며 이것만이 과거청산을 통한 상호 호혜평등한 평화 공존 번영의 미래지향적인 동반자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편 시민모임 독립은 현재 전국적으로 진행 중인 ‘전봉준 최시형 서훈운동’을 이끌어낸 바 있다. 박용규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의 문제 제기로 전봉준, 최시형 등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독립유공 서훈의 정당성을 주제로 성일종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민형배, 이성만 의원,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이 공동주최로 국회에서 ‘전봉준‧최시형 등 제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에 대한 독립운동 서훈의 당위’ 학술토론회를 개최하였고 현재 이는 전국적 ‘서훈운동’으로 확산되어 지난 6월부터 국가보훈처, 전국 각지로 퍼져나가고 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은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지방에서 매그니튜드 7.9의 강진이 일어난 직후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 ‘조선인이 방화하였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등의 유언비어로 인해 군대와 경찰, 민중이 조선인 6천여 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지진으로 인해 파괴된 도시에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참혹하게 학살당한 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 고향이 있었고 이름이 있었다.
1923년 9월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의 진실은 98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민족차별이 불러온 학살의 기억은 돌아오지 못한 그들에게 참혹한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1960년대부터 재일 역사학자 강덕상, 금병동 등에 의해 일본에서 연구가 시작된 이후 한국에서도 소수의 역사학자에 의해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현재까지도 이 사건에 대한 인식의 틀은 확장되지 않은 채 98년의 시간이 흘러왔다.
재일교포 영화감독 오충공에 의해 1980년대 사건 당시의 증언을 담은 다큐멘터리 <감춰진 손톱자국>(1983), <불하된 조선인>(1986)이 제작되어 국내에서 상영된 바 있다. 오 감독은 현재까지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일본 정부가 은폐하고 있는 진실을 찾고자 희생자들의 유족을 찾는 등 진상규명을 위해 39년간 노력해왔다.
또 1980년대부터 민속학자 고 심우성, 극단 현대극장 대표 고 김의경, 전 서울신문사장 고 신우식 등에 의해 진상규명 운동을 진행해왔고 시민 모금운동을 통해 학살이 있었던 치바현 관음사에 위령의 종 ‘보화종루’를 세운 바 있다. 운동에 앞장섰던 사람들 모두 고인이 되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밝혀야 할 과제가 많은 사건이다.
이번 1인 시위 운동으로 인해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을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슬픈 역사를 쓰지 않기 위해 용서와 화해로 과거를 딛고 미래를 열어가기를 기대한다.
신채원 기자
<2021-08-03>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