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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친일이냐 항일이냐…최재형 조상의 100년 전까지 검증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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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_오연서의 러브레터

국민의힘 대권 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15일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 내 독립관을 방문, 참배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등록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할아버지·증조할아버지 등이 과거 친일행적을 했다는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논란의 발단은 최 전 원장의 아버지 최영섭 대령이 자신의 회고록에 아버지 최병규씨의 독립운동 활동을 묘사한 것을 놓고 <오마이뉴스>가 이를 검증하는 보도를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최 전 원장의 가족들은 모임 때마다 애국가를 4절까지 함께 부를 정도로 애국심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그래선지 일제시기 조상의 활동을 둘러싼 논란을 최 전 원장은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최재형 캠프는 해당 보도를 한 언론사에 정정보도도 청구한다고 하는데요. 왜 100년 전 증조할아버지의 삶까지 검증대에 오르게 됐을까요? 진실은 무엇일까요?

일제 치하에서 ‘유력 가문’ 의혹의 실체는?

6일 보도된 <오마이뉴스>의 검증 기사는 최 전 원장의 아버지인 최영섭 전 해군대령(1928∼2021)이 지난 5월 펴낸 책 <바다를 품은 백두산>의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우선 최 전 대령이 자신의 아버지이자 최 전 원장의 할아버지인 최병규(1909∼2008년)씨를 회고하며 “2002년 10월 13일 항일독립운동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지만 감옥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훈장은 받지 못했다”고 쓴 부분이 첫번째 검증 대상이 됐습니다. 지난 2008년 최병규씨 사망 기사를 쓴 <강원도민일보>는 기사 제목을 ‘춘천고 항일운동 주도 최병규옹 별세’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마이뉴스>의 보도를 보면, 최 전 대령의 주장과 달리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공훈록’에는 최병규씨가 없었습니다. 국가보훈처에 정보공개청구를 한 결과, 최씨는 2002년 10월13일에 보훈처가 독립유공자 서훈이나 표창을 한 사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같은 해 광복절을 앞두고 표창한 208명의 독립유공자 중에도 최씨는 없었다고 <오마이뉴스>는 보도했습니다. 보도 직후 최 전 원장 캠프는 최씨가 당시 표창을 받은 것이 맞다고 반박하면서도 다만 “대통령 표창 사유에 대해 최 전 대령의 착오가 있었다”며 독립유공자 표창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두번째는, 최 전 대령의 책과 정반대로, 최 전 원장의 할아버지가 ‘항일’ 아니라 ‘친일’을 했다는 의혹입니다. <오마이뉴스>는 같은 보도에서 최병규씨가 평강군 유진면에서 유진면 면협의원에 이름을 올렸고, 그의 형 최병렬씨도 고삽면 민협의원에 당선됐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아버지이자 최 전 원장의 증조할아버지인 최승현(1887~1953) 씨는 당시 유진면장으로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최병규씨는 1937년에는 평강군에서 1명을 뽑는 강원도회 의원 선거에 도전하기도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최병규씨가 비록 낙선했지만, 3·1운동을 경험한 일제가 조선인의 독립요구를 무마하고자 ‘자치’를 앞세워 1920년부터 만들었던 강원도회 의원에 도전한 것 자체가 친일 행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삼부자가 평강군의 유력 인사로 자리매김한 것이 친일행적의 근거라는 겁니다.

<오마이뉴스>는 또한 최 전 원장의 조상들이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최 전 대령의 주장을 오히려 친일행적의 근거라며 뒤집어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최 전 대령은 책에서 “1938년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 목단강성 해림가로 건너갔고, 1940년에 어머니를 비롯한 우리 가족들을 해림으로 불러들였다. 아버지는 7년간 해림에서 살면서 해림가 부가장과 조선거류민단장을 맡아 독립자금 확보와 전달 역할을 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고 썼습니다. 최병규씨의 독립운동 사례로 소개한 이 대목에 대해 <오마이뉴스>는 “해림가 가장이나 부가장이라는 자리는 만주국 행정체계의 말단 조직을 의미한다. 조선거류민단장 역시 일제가 조선인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만든 관제 민간조직답게 특별한 조선인만이 맡을 수 있는 자리였다”며 오히려 최병규씨가 일제의 신임을 받고 있던 인물이라는 의혹을 거듭 제기했습니다. <오마이뉴스> 보도를 보면,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는 1938년 6월30일 기사에서 “(최병규씨가) 아버지 회갑 축연비를 절약해 일금 20원을 국방헌금에 헌납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만주로 떠나기 전 이미 친일에 가담한 행적들을 일제로부터 인정받았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최재형 대선 캠프가 마련된 대하빌딩 앞에서 ‘가짜 독립유공자 친일행적 최재형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민족문제연구소 “최 전원장 조부의 독립운동은 ‘설’에 불과”

<오마이뉴스>의 보도 뒤 최 전 원장 쪽은 “최 전 원장의 조부와 증조부가 독립유공자는 아니었지만 독립운동은 했다”는 취지로 반박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친일파 청산 문제를 연구하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나섰습니다. 최 전 원장 할아버지의 이런 친일 의혹 근거들에 견줘, 독립운동 이력이 빈약하다는 겁니다. 연구소는 지난 13일 성명에서 “(면협의회원 재선과 도의원 출마, 국방헌금 납부 등과 만주 목단강성 해림촌 부촌장, 조선인거류민단장 재임 등) 이런 행적은 국가보훈처의 독립운동가 서훈에서 재고의 여지없는 결격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습니다. 최병규씨가 만주에서 살면서 독립자금을 조달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1940년대 만주는 일제에 완전히 장악됐으며 조선총독부에 의해 조선인 이주가 장려되고 있었다. 괴뢰 만주국의 관공리로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주장이야말로 궤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최 전 대령은 책에 최병규씨가 1926년 4월 춘천고등보통학교 3학년 때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서거하자 ‘순종 서거에도 상장(喪章) 달기’ 운동을 주도했다가 불온학생으로 찍히고, 이어 10월에는 학생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일삼은 일본인 교사 배척을 위해 전교생 동맹휴학을 주도했다가 퇴학 처분을 받았다고 썼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도 이 사실은 확인했습니다. 다만 이 한 가지 사건을 근거로 최병규씨를 ‘독립운동가’라고 볼 순 없다는 것이 연구소의 의견입니다.

연구소는 오히려 최병규씨가 만주지역의 대표적인 친일신문이었던 <만선일보> 해림지국 개소에 축하광고를 띄우는 등의 일로 여러 차례 이름이 거론됐다는 새로운 사실을 꺼내 들어 최병규씨가 만주에서 독립자금을 모았다는 최 전 대령의 주장에 대해서 “전혀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최재형 쪽 “친일 아니다…독립운동 했다” 주장

최 전 원장 쪽은 이런 의혹 제기에 대해 “과장과 허위에 가득 찬 것”이라며 최 전 원장의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한 것은 맞다는 주장을 거듭 이어갔습니다. 최 전 원장 캠프의 김종혁 언론미디어 본부장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열어 우선 가족들이 면장 등을 지낸 것은 그 자체만으로 친일 이력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면장이 친일이라면 흥남에서 농업계장을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부친은 뭐라고 불러야 하냐”는 겁니다. 국방헌금을 낸 것도 “당시 일제는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조선인들에게 무자비하게 헌금을 강요했고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한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만선일보>에 이름이 등장한 것도 당시 부촌장직을 맡았기 때문에 가끔 이름이 나온 것일 뿐, 부촌장직을 맡은 것도 “친일파여서가 아니라 당시 평균적인 교육수준을 볼 때 최 후보의 조부가 고등교육을 받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고 했습니다. 대부분 일제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던 것일 뿐, 자발적으로 일제에 동조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김 본부장은 “최 후보의 조부와 증조부는 해방 이후 고향으로 돌아갔다. 당시 지주계급이었지만 항일행적을 평가받아 토지를 전면 몰수당하지 않았다”며 거듭 항일운동을 했던 점을 밝혔습니다. 이밖에도 최병규씨의 아버지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장독대에 독립신문을 숨겨 읽는 등 일제 치하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지난 1989년 출간된 최병규씨의 자서전에 자세히 나와 있다는 게 최 전 원장 쪽의 주장입니다.

“친일 적극 가담은 아니나 일제 협력 의심은 있다”

언론과 민족문제연구소, 최 전 원장 쪽의 공방을 종합해보면, 최 전 원장의 할아버지는 국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적이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언론이 제기한 친일 의심 행적의 경우에는 친일인명사전에 오를 정도로 친일에 적극 가담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일제에 협력한 행위로 의심될 만한 부분이 있어 최 전 대령이 주장하는 독립운동 사례만으로는 향후에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반병률 한국외대 교수(사학과)는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일반적으로 독립운동가라고 하면 삶 전체가 전반적으로 흠이 없고 존경할 만해야 한다”며 “그런데 이분의 1930년대 행적은 상당 부분 식민통치 말단에서 식민 체제에 동의했다고 볼 수 있는 행적이 있다. 독립운동가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건 난센스다”라고 말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박수현 사무처장도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최 전 원장의 조부와 증조부가) 1급 친일파처럼 적극 협력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일제에 협력했다고 볼 수 있는 이른바 부일 협력행위를 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박 사무처장은 또 “이런 상황에서 자꾸 최 전 원장 쪽에서 독립운동가 후손이라고 내세우고, 그걸 홍보 자료로 쓰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100년 전 조상의 행적까지 대선주자의 검증대에 올라온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최 전 원장 캠프에 합류한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최 전 원장의 할아버지 최병규 선생은 강원도 평강 출신 독립운동가”라며 최 전 원장이 독립운동가 집안임을 강조했습니다. 최 전 원장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최병규씨가 독립운동가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한 지지자의 영상이 링크되기도 했습니다. 최 전 원장 스스로 “어떤 분들은 저더러 미담제조기라 하십니다”(3일 출마 기자회견)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미담의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아버지 최영섭 전 대령은 해군 최초의 한국전쟁 당시 해군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함(PC-701)의 갑판사관으로 북한 인민군의 무장수송함을 격침시킨 대한해협해전에 참전한 ‘전쟁 영웅’이기도 합니다. 애국심이 강한 환경에서 자라나 자신의 집안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계승했다는 자부심이 강했고, 그러다보니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란 믿음을 확고히 하면서 이를 강조하게 된 듯합니다.

최 전 원장 캠프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최 전 원장의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의 독립운동 행적이 과도하게 부각됐다가 생긴 문제라는 주장에 대해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지지자가, 또 정경희 의원이 그렇게 얘기하셨다. 그런데 그 시대 우리 조상이 살아남기 위해 애쓰며, 한편으론 장독대에 독립신문 숨겨서 자식들에게 읽혔던 것들을 어떻게 단죄할 수 있겠나. 다만 저희 스스로 (독립운동가 집안이라는 점을) 내세워 선거운동을 해보려고 시도하지는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조상들이) 독립운동가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독립운동을 나름대로는 했었고, 조선에 사는 식민지배의 백성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충실히 하며 살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오연서 김윤주 기자 loveletter@hani.co.kr

<2021-08-15> 한겨레

☞기사원문: 친일이냐 항일이냐…최재형 조상의 100년 전까지 검증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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