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톺아보기 39
국치國恥 식민지조선 방방곡곡에 펄럭이는 일장기
• 강동민 자료팀장
조선군사령부 정문에 걸려 있는 일장기, <사단대항연습사진첩>, 1931
제19사단사령부 정문, <조선사진화보>, 1916
1880년 일본공사관이 개설되자 공사관 수비를 위해 한국에 첫발을 들여놓은 일본군은 1904년 러일전쟁을 계기로 한국주차군사령부를 설치했다. 1910 년 강제병합 후 조선주차군으로 재편한 후 독립운동을 집중적으로 탄압하였으며 1918년 한반도에 상주하는 병력을 배치하여 제19, 20사단을 통할 하는 조선군사령부가 만들어졌다.
기원 2600년 기념일에 겸이포에서 열린 축하행사에 동원되어 일장기를 흔들고 있는 수많은 조선인들, <광영록>, 1941
조선총독부에서 진행된 기원 2600년 기념식에 걸린 일장기, <광영록>, 1941
일장기가 새겨진 국기함
전라남도 함평남공립소학교에서 교내에 봉안전 (奉安殿)을 건립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 작한 것이다.
장기를 내건 삼척수비대 앞에서 양반유생에 대한 은사금 수여식이 이뤄 지고 있는 광경, <애뉴얼리포트>, 1911
일제는 한국을 강제 병합한 직후, 원활한 식민통치를 위한 회유책의 하나로 친일귀족들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은사금을 광범위하게 살포하였다.
경복궁 근정전에 걸린 일장기, <역사사진> 33호, 1915
경술국치의 상징처럼 사용되는 ‘근정전 일장기’ 사진은 1915년 물산공진회 당시 촬영된 것이다.
유난히도 뜨거웠던 2021년 8월, 도쿄 상공에 태극기가 펄럭였다. 우여곡절 끝에 치러진 2020 도쿄올림픽에서 선전한 우리 선수들이 구슬땀을 흘린 보상이었다. 100여 년 전 일본의 힘에 짓눌려 굴욕적인 강제조약을 맺고 대한제국의 하늘에 나부끼는 일장기를 떠올리면 믿기 어려운 광경이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은 순종의 칙유를 통해 ‘한국병합에 관한 조약’을 공포하였다. 이로써 ‘대한제국’은 국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식민지 조선’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온갖 시련에도 꿋꿋하게 버텨낸 우리 민족이 마침내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35년간의 뼈아픈 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일장기’다. 이 나라에 가장 먼저 온갖 살육을 저지른 일본군사령부를 시작으로, 조선의 궁궐, 행정기관인 관공서, 일본어를 ‘국어’로 가르치는 학교, ‘천황의 신민’이 된 가정 등 주변 어디에서든 일장기가 펄럭이게 되었다.
온갖 행사에 동원되어 수많은 일장기를 흔드는 조선 민중들의 모습과 집집마다 일장기를 내걸고 ‘천황’에 예를 올리는 장면은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식민지기 동안 계속된 치욕적인 이 광경은 1945년 8월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나라를 뺏긴 지 111년이 되는 해이자 해방을 맞은 지 76년, 기나긴 시간이 주어졌건만 반성과 화해의 길은 아직도 멀어 보인다.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모진 상흔은 계속 남아 있다. 일본정부는 피해 당사자가 빠진 잘못된 ‘위안부’ 합의와 일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거부, 유네스코 산업유산 등재 시설물에서 ‘강제동원은 없었다’고 주장하며 관련 내용을 기록하지 않는 등 우리와의 관계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망명 독립지사와 동포들이 끼니를 거르면서 가슴에 새기고자 했던 치욕의 망국일인 ‘8월 29일’을 모든 달력에 ‘국치일’로 새겨야 한다. 그리고 조기(弔旗)를 게양하여 잊지 말아야 한다.
기억하자, 피눈물을 흘리던 1910년의 8월을,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1945년의 8월을, 가슴 벅찬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2021년 8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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