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비망록 74]
조선 전역의 신사(神社) 및 신사(神祠) 총목록(1)
이순우 책임연구원 정리
지난달에 이곳 지면에 소개한 「식민지비망록 일흔 세 번째」 “식민통치기간에 이 땅에는 얼마나 많은 일제 신사가 만들어졌을까?”라는 글을 통해 일제 때 무수하게 존재했던 일제 신사(神社, 진쟈)와 신사(神祠, 신시)의 조성배경과 허가추이, 그리고 지역적 분포에서 나타난 특징을 두루 살펴본 바 있다. 이때 신사조성 연혁의 기초자료로 삼기 위해 조선 전역의 신사목록을 함께 정리하였는데, 이번에 다시 그 내용을 두 차례에 걸쳐 일괄 공개하고자 한다.
일제강점기에 이 땅에 존재했던 신사의 총 숫자에 대해서는 보통 모리타 요시오(森田芳夫, 1910~1992)가 지은 <조선종전의 기록 ― 미소양군의 진주와 일본인의 인양(朝鮮終戰の 記錄 ―
米ソ兩軍の 進駐と 日本人の 引揚)>(1964), 108쪽에 수록된 것이 가장 유용한 근거자료로 사용된
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쉽게도 세부 목록 없이 조선신궁(朝鮮神宮)과 부여신궁(扶餘神宮)을 포함하여 조선 전체의 각종 신사(神社)와 신사(神祠)를 합쳐 모두 1,141개소(1945년 6월말 현재)가 존재했다는 집계표만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총독부관보>의 「휘보(彙報)」에 수록되는 ‘신사 창립 허가’와 ‘신사 설립 허가’의 내역을 전부 취합하더라도 그 숫자는 949개소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다 대륙신도연맹(大陸神道聯盟)의 <대륙신사대관(大陸神社大觀)>(1941)에 정리된 신사 목록을 대조하여 누락분(49-3=46개소)을 가려내고 또한 <경기도보(京畿道報)>에서 확인한 사례(14개소)를 모두 합하더라도 1,009개소를 넘지 못한다.
요컨대 일제가 패망하던 바로 그 순간에 이 땅에는 모두 1,141개의 신사관련시설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지만 조선신궁과 부여신궁을 포함하여 모두 1,011개소만 그 구체적인 위치가 확인될 따름이고, 나머지 130개소는 어디에 있는 신사를 가리키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이처럼 집계결과에 현격한 편차가 나는 것은 신사 창립과 신사 설립에 관한 허가사항이 <조선총독부관보>에 100퍼센트 다 게재되는 것이 아니라 누락된 사례들도 제법 존재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일제패망기에 각 지역마다 ‘1면 1신사(一面 一神祠)’의 건립이 독려되면서 다수의 신사가 만들어지긴 하였으나 그 내역들 가운데 상당수가 관보에 누락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빚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가령 우리 고장에도 옛 일제 신사가 있었다고 분명히 전해 들었지만, 정작 아래의 신사목록에는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따라서 여기에 제시하는 조선 전역의 신사 목록은 현재까지 취합이 가능한 자료의 최대치이지 결코 최종결과물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