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난항중의 임시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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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소개]

난항중의 임시국회

주효민(朱孝敏)

 

『신천지』 1949년 7월호에 실린 「난항중의 임시국회」는 소위 국회프락치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인 1949년 5월에 열린 임시국회 현장을 취재한 글이다. 구속된 3명의 소장파 의원 석방 요청 결의안을 놓고 정부 여당과 소장파 의원들 간에 치열한 논전이 벌어졌다. 당시 서울신문 기자였던 주효민(1921~2008)은 이후 조선일보, 경향신문, 한국일보 등에서 편집국장, 논설위원, 부주필을 역임했다. – 편집자주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원식 광경

 

국회가 제1회 정기회의를 끝마치고 지난 20일까지 휴회하는 동안 외신은 미군이 약 500명의 군사고문단을 잔류시키고 남한으로부터 단시일 내에 완전 철수할 것이라는 미 관변측의 소식을 전하였고 또 UN한위(韓委)의 북한접촉 문제가 공표되었으며 한편 파리 4상회의에서도 “UN한위가 북한정세의 현지조사를 실행하기 위하여 북한정권과 공연한 토의를 행하려고 하는 데 비추어 금반 회의에서도 북한문제가 토의될지 모른다”는 통신보도에 접하였다.
이와 같이 착잡하게 요동하는 국제정세의 추이와 함께 국내적으로 국회가 장시간을 두고 최대의 노력을 경주하여 입법한 지방자치법을 폐기한다는 정부측의 통고를 비롯하여 농지개혁법안 수정요청문제, 최초의 국회의원 체포사건 등이 발생하여 전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집중하였다. 이러한 점으로 해서 지난달에 발생한 여러 가지 사태야말로 우리 민족의 장래를 크게 좌우할 중대사라 할 것인데 과연 인민의 대변자인 국회의원들은 이러한 중대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전인민의 시선이 총집중한 가운데 5월 21일 임시국회의 개회를 엄숙히 선언하고 동 23일에는 긴장감이 떠도는 국회의사당에서 제1차 회의를 개의(開議)하였다

체포의원 석방에 관한 동의안 부결

임시국회 제1일인 23일에는 정부로부터 폐기 통고가 있은 지방자치법과 농지개혁법에 관한 문제가 토의될 예정이었으나 특히 이날은 정부수립 후 처음으로 발생한 국회의원 체포사건이 문제의 초점이 되어 김용현 의원 외 49 의원으로부터 제기된 ‘체포의원 석방에 관한 긴급동의안’을 의사일정에 올리고 개회 벽두부터 이문원 최태규 이구수 등 체포된 세 의원의 석방요청결의안에 관한 토론에 들어갔다.
토의에 앞서 먼저 정준 의원으로부터 국회의원 체포사건이 발생한 지 상당한 시일이 경과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정식 보고가 없음은 부당한 의사진행이라는 발언이 있은 후 뒤이어 노일환 김옥주 서용길 등 제 의원으로부터 산적한 중요문제를 급속히 심의하기 위하여 임시의회를 16일부터 개회하자고 여러 의원이 제의하였는데 의장은 무슨 이유로 21일에야 개회하였는가라고 그 이유를 규명하자는 발언이 있었고, 계속하여 이재영 의원이 등단하여 세 의원 석방을 요청하자는 긴급동의안의 제안 이유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본격적 토론으로 들어가 소장파 의원들은 “건국대업 완수의 중책을 부하한 국회의원을 구금함은 전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당해 선거구민의 정치활동을 봉쇄하는 비민주적 처사이나 헌법 제49조(국회의원은 현행범을 제외한 외에는 회기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하며 회기 전에 구금되었을 때에는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회기중 석방된다)의 정신에 의거하여 이들을 석방하여 불구속으로 취조하는 방도를 강구하자고 열렬히 주장하였으며, 또 민주국민당계 의원들은 검찰총장의 보고를 들어 사건의 내용을 자세히 안 후가 아니라면 석방 여부에 관하여 토의할 수 없다고 완강한 태도를 표시함으로써 장시간 동안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 끝에 곽상훈 의원의 동의 채택으로 권승렬 검찰총장의 출석을 요청하여 진상보고를 청취하였다. 그런데 이날 권 검찰총장이 국회에서 보고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가보안법 시행 후 좌익계열은 지하운동으로 전환하는 한편 관공서 등 중요 기관에 손을 뻗쳐 책동하게 되어 관계 당국은 이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던 차 2월 중순경 남로당이 국회에 대한 공작을 개시하였다는 보고에 접하는 동시에 3월 20일에는 국회의원 4명이 모 요정에서 남로당원과 회합하였다는 보고를 접하여 4월 초순부터 수사를 개시한 결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지난 18일 재판소에 체포영장 발부를 신청하여 3명의 의원은 구속하고 1명은 구속하지 못하였다. 네 의원이 남로당 7원칙을 시인하고 협의하였다는 것은 사실인데 물적 증거는 완전한 것이 없다. 그러나 물적 증거로만 판결할 수 있는 사건임에 부득이 구속하게 된 것이다. 이 외에 범죄의 성질이 국가보안법 몇 조에 해당하며 관계 인원이 몇 명인지는 수사상 아직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네 의원이 협의하였다는 남로당 7원칙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외군을 완전히 철퇴시킬 것
2. 남북 정치범 석방
3. 남북 정당 사회단체 대표로서 남북정치회의를 소집할 것
4. 남북정치회의는 일반 평등 비밀 직접의 4원칙에 의한 선거를 실시하여 최고입법기관을 설치할 것
5. 최고입법기관은 헌법을 제정할 것
6. 반민자를 처단할 것
7. 조국방위군을 재조직할 것

 

이리하여 체포의원 석방에 관한 긴급동의안은 24일의 제2차 본회의에서도 개회 벽두부터 진지하게 토의되어 국회 성립 후 처음으로 보는 치열한 논전이 전개되었었는데 이날 토의에 앞서 김인식 의원(同成會)이 등단하여 “검찰총장의 일방적인 보고를 듣고서 사건의 진상을 판단하기에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동 사건에 관련되었다고 하여 체포영장이 발부된 네 의원 중의 한 사람인 황윤호 의원이 다행히도 체포되지 않아 이 자리에 출석하고 있으니 황의원의 설명을 들을 것을 요청하는 바이다”라고 발언하였다.
이에 대하여 이정래 의원(민주국민당)은 “이곳은 국회의사당이지 재판정이 아님으로 황윤호의원의 설명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으나 김병회 의원(동성회)으로부터 “검찰총장의 말을 부인한다는 것이 아니라 황의원의 말도 참고로 듣자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라는 반박 발언이었다. 황윤호 의원은 체포영장 발부의 경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보고를 하였다.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는 어떠한 사람을 몇 번인가 만난 일이 있었다. 나는 그자가 어떠한 자인지도 잘 몰랐으며 만날 시간을 달라고 여러 차례 간청을 받았으나 만날 기회가 없었다. 어느 날 노일환 의원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나갔는데 국회 현관에서 또 그 사람을 만났다. 자동차를 타고 아서원으로 가려니까 그자가 차에 동승하려고 들어왔는데 인정상 타지 말라고 떠밀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아서원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자가 할 말이 있다 하여 그 부근에 있는 진주친목회 사무소로 나를 끌고 들어갔었다. 그때 말하기를 남북통일의 구체적 방안이 있다고 하면서 소위 남로당의 7원칙을 제시하기에 나는 불쾌한 감을 금치 못하여 그런 어리석은 말을 하지 말라고 꾸짖으면서 나와버린 사실이 있다.”
이와 같은 황의원의 사건 전말에 관한 발언이 있은 후 석방요청 결의문제에 관한 찬부 양측의 교차발언이 있었는데 이날 석방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곽상훈 주기용(민주국민당) 양 의원으로부터 “검찰총장의 설명을 들어본 결과 체포된 의원들은 남로당의 7원칙을 시인한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우리는 강력한 정부를 육성하여 나가기에 전력을 기우리고 있는 이 마당에 있어서 5·10선거를 부인하고 국회를 부인하는 국회의원이 국회 내에 있다면 그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체포된 국회의원 자신을 위하여서도 그렇고 정부가 죽느냐 국회가 죽느냐 하는 기로에 선 이때에 구속 취조함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였다.
또 석방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이원홍(민국당) 김수선 등 제 의원으로부터 “검찰총장의 체포 이유는 모호하다 아니 할 수 없다. 체포영장이라는 것은 검사가 신청하면 판사가 발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영장 내용만으로 구속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며 내가 사법계에 있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법치국가에 있어서 국회의원이라 할지라도 법을 범하면 당연히 처벌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은 세력이 있는 자는 과오가 있어도 처벌당하지 않고 정부와 민족의 복리를 위하여 정부에 어떠한 반대적 언사를 하는 약한 국회의원만을 체포하려고 하는 것은 너무나 과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검찰총장의 말을 들어본 결과, 확실한 증거는 없으나 남로당의 7원칙을 시인한 듯 함으로 수사상 구속하였다는 것이다. 인민의 대표를 구속한다는 것은 헌법정신으로 보아 원칙상 부당한 조치이며 본 의원 등은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점을 생각하여서 석방을 주장하는 것이다. 즉 첫째로 지금 인텔리층의 여론을 들어보면 세 의원의 체포는 정치적 모략으로 보고 있으니 석방을 결의하여 그러한 풍설을 일소하자는 것, 둘째로는 국민의 대변자인 그들의 입을 열어주고, 셋째로는 국회의원 간에 인화(人和)를 얻도록 하여야 할 것이며, 넷째로는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점, 그리고 다섯째로는 인권옹호의 민주정신에 부합되는 점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석방을 결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사상 구속이 좋을 것이라 하지만 국회의 위신문제와도 전연 관계없는 일이라고는 볼 수없다”고 석방요청 긴급동의안에 동의할 것을 역설하였다.
이와 같이 찬부 양측의 발언이 있어 동 문제에 관한 토론을 종결시키려는 무렵에 김준연 의원(민주국민당)이 등단하여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여 장내를 소란케 하였다.

 

우리는 헌법을 제정하고 대통령을 선출하여 대한민국정부를 수립한 것이다. 우리의 지위라는 것은 세계만방이 주시하고 있으며 신성한 임무가 부하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신탁통치를 반대하고 북한정권체제를 부인하고 미소공위(美蘇共委)를 배격하여 남로당과 중간파를 피를 흘려서 타도함으로써 오늘의 정부를 수립한 것이다. 검찰총장이 설명한 남로당의 7원칙 중 제4조는 5·10선거를 부인하고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태도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죄를 범한 세 국회의원의 석방을 요구하는 의원 자신도 대한민국을 부인하는 것이다.

 

동아일보 1949년 5월 9일자 의정 단상의 1년 회고

 

이상과 같이 김준연 의원은 석방의 부당성을 강조하던 도중 “석방을 요구하는 의원들은 대한민국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실언하자 소장파를 중심으로 한 다수 의원들은 김의원의 그러한 발언은 헌법 제49조의 정신을 망각한 폭언이니 즉시로 실언을 취소하고 사과하라고 고함성을 올리어 장내는 순간 싸움판으로 화하여 자못 긴장하였던 것이다. 더욱이 소장파측의 김옥주 이진수 의원과 민주국민당의 정도영 최창섭 의원 간에는 명패를 휘두르며 큰소리로 외쳤으며 또 이곳저곳에서 논쟁이 벌어져 의사당 내는 잠시 동안 일대 소란을 면치 못하였다. 이렇게 공기가 악화되자 신익희 의장은 5분간 휴회를 선언하였다가 장내가 정돈된 후에 다시 속개하였는데 이때 김준연 의원은 단상에 나타나 실언을 취소하는 동시에사과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도의 사과로 그칠 문제가 아니라고 소장파의 강욱중 의원은 김준연 의원의 태도를 다음과 같이 비난하였다. 즉 김의원의 실언은 금번뿐만 아니며 또한 무의식적인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김의원은 지난 5월 9일 동아일보 지상에 게재된 「의정 단상의 1년 회고」라는 글 가운데 국회 내 소장파 의원들은 남로당 지시에 움직인다는 등등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며 자기 혼자만이 가장 애국자연하는 비양심적인 행동이라고 힐난한 바있었다. 이러한 치열한 논전 끝에 석방을 요청하자는 긴급동의안의 표결로 들어갔는데 표결방법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로 논란되었다.
즉 박순석 의원은 방청석이나 기타의 압력을 피하기 위하여 표결방법은 감표(監票)의원 2명을 의장이 지명하고 무기명투표로 하자고 동의하여 민주국민당계 의원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소장파의 서용길 의원은 우리들은 국민의 대변자라는 양심을 가지고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행동하고 있는 만큼 방청석이나 기타 모든 면의 구애를 받을 필요는 조금도 없으므로 감표위원은 3인을 선정하되 정정당당히 기립 표결을 하자고 개의(改議)하여 소장파의 의견을 대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표결방법은 박의원의 동의가 가결되어 결국 무기명투표가 시행되었는데 개표 결과 재석의원 184인 중 찬성 88표, 반대 95표, 기권 1표로 연 이틀간 백열적 논전이 전개되었던 체포의원 석방요청 긴급동의안은 부결되고 말았다.

김준연 의원, 징계위원회로 회부

김준연 의원의 제2차 회의에서 행한 실언문제와 동아일보 지상에 게재된 동 의원의 논문에 관하여 철저히 책임을 규명하는 의미에서 김의원을 제명 처분하자는 동의안이 이진수 의원 외 23명으로부터 제기되어 28일의 본회의에서는 동 문제를 토의하였다. 동 문제의 토의는 먼저 제안자인 이진수 의원으로부터 남북통일의 중대 과업을 앞두고 민족적 단결이 지상명령으로 되어있는 차제에 인화를 파괴하는 모략중상을 김준연 의원이 감행하였으므로 우리는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눈물을 먹으면서 김의원의 제명처분을 제안하였다는 이유 설명이 있은 후 가부(可否)에 관한 토론으로 들어갔는데 이날 민주국민당계의 정광호 조영규 서우석 박해극 등 제 의원들은 김의원의 실언은 일단 취소하였으므로 상정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완강히 주장하였다. 그러나 소장파측의 김옥주 유성갑 윤재욱 등 제 의원은 김준연 의원이야말로 과거의 공산당원이었으며 민족적 단결을 파괴하고 좌익에게 유리한 이적행위를 하고 있다고 역설하였다. 특히 유성갑 의원은 남북협상에 참가하였던 김구 씨를 크렘린의 신자라고 몰아서 민족단결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도 김준연 의원이었다고 신랄한 어조로 논란하였으며, 또 윤재욱 의원은 만약 이 제명동의안을 각하할 것 같으면 60여 명의 소장파를 공산당정책의 실천자로 시인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또 자당 자파가 아니면 공산당으로 몰아넣고 있는 자를 그대로 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강경히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각 의원의 발언이 있은 후 박윤원 의원의 징계자격위원회에 회부하여 심사 보고케 하자는 제의가 채택되어 무기명 투표한 재석 153인 중 찬성 81표 반대 69표 기권 3표로 가결 통과되었다. 이리하여 민주국민당 출신 의원의 맹장 김준연 씨는 징계자격위원회에 회부된 것이다.

지방자치법 재기초 가결

국회에서는 전 국민이 다 같이 요망하고 있는 지방자치제도를 조속히 실시하고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된 대한민국헌법 제1장 총칙 제2조에 의거하여 행정기관에 의한 감독에 중점을 두는 중앙집권주의를 부인하고 입법기관(지방의회)에 의한 감독을 중요시하는 인민자치제도를 확립할 것을 지표로 하는 지방자치법을 지난 3월 9일에 통과시키고 수일 후 정부에 이송하자 정부측에서는 3월 31일 동법 부칙 제1조 “본법은 공포 후 10일이 경과한 후에 시행한다”를 “본법의 시행기일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로 수정할 것을 정식으로 국회에 요청하였다. 정부에서는 이와 같은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때에 서면으로 “ 치안을 확보하고 인심이 안정되어 민국정부의 토대가 확고한 기반 위에 설 때까지는 지방자치법을 실시함으로써 오히려 남북통일공작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단정적인 이유서를 첨부하였으며 또 추후에 김효석 내무장관은 국회에 출석하여 구두로 설명할 때 국회가 통과시킨 지방자치법의 근본정신과 그 내용에 있어서는 추호도 이의가 없으나 단지 그 실시기일만을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하면 적당한 시기에 실시하겠다고 말하였으며, 또한 그 적당한 시기는 정부로서도 전혀 예견할 수 없다고 답변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지방자치법에 관한 정부측의 태도 표명이 있자 국회 내 일부 의원들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표시하였던 것이다. 즉 국회 내 일부 특히 소장파에서는 오랫동안 불안에 쌓여있던 제주도의 선거도 얼마 전에 시행되었고, 또 과반(過般) 이대통령도 남도 지방을 시찰하고 돌아와서 반란지대의 치안은 호전되었다고 언명한 바 있는데 이러한 사실 등을 부인하고 전반적인 지방자치제에 의한 선거를 지연시키려는 것은 무성의한 데서 나온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으며 또한 치안의 확보는 민의를 집결한 진정한 민주적 정치를 통하여서만 기할 수 있는 문제이므로 민의에 부합하여 시정할 수 있는 지방자치제를 급속히 실천하는 것만이 정부육성의 유일한 길이라는 점 등을 지적하였다. 이와 같이 지방자치법안은 국회를 통과한 후에도 정부와 국회 간의 견해의 차이로 수정안을 토의하는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지난 5월 11일에는 정부측으로부터 국회에 폐기통고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휴회중 폐기통고를 받은 국회에서는 금반의 임시국회가 소집되자 지난 16일의 본회의에 “지방자치법 폐기의 건을 상정하고 정부측의 출석을 요청하여 동 법안 폐기통고에 관한 이유를 질문하였다. 즉 이날은 박해정 서용길 이원홍 배중혁 유성갑 윤병구 황호현 등 제 의원의 순차로 질문이 있었는데 먼저 박해정 의원은 ”정부는 지방자치법을 시행하려는 성의가 있으며 90일 이내에 치안을 확보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였으며 또 서용길 의원은 어느 때가 되면 실시하겠느냐고 추궁하였다. 이에 대하여 장경근 내무차관은 1년 이내이면 치안을 확보하고 시행할 수 있으므로 1년 이내에 대통령령으로 실시하겠다는 것이라고 답변하고 또 장(張)차관은 여러 의원들로부터 정부가 지방자치법을 실시할 의도의 유무를 규명한 데 대하여 어디까지나 헌법 조문에 저촉하는 법은 실시할 수 없으며 현실에 부합되지 않으므로 거부한 것이라고 언명하였다.
이리하여 26일에는 정부측과의 질의응답 정도로 그치고 다음날의 27일 회의에서는 대체(大體)토론으로 들어갔는데 토론함에 있어서 김병회 의원(동성회)은 “앞서 대통령은 지방시찰에서 돌아온 후 치안은 확보되었다고 언명하였으므로 치안문제로 시행기일을 지연시킨다는 것은 이유에 적합하지 않는 것이다. 요는 지방자치법을 국회가 재상정하여 제독회(諸讀會)를 생략하고 재통과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조치일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국회와 타협하는 견지에서 이를 공포 실시한 후 다시 개정안을 제출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하였고, 또 강욱중 의원은 “정부는 처음부터 자치법을 실시할 의도가 없었던 것이며 자치법 폐기는 삼권분립의 정신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려는 것이라고 말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방자치법의 폐기에 대한 통고를 반환하는 결의를 할 것을 제의한다.
만약 또 다시 정부가 이 법을 무시한다고 하면 우리는 최후의 수단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며 입법정신과 헌법을 파괴하려는 정부를 불신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자치법의 폐기문제가 아니라 국회가 행정부에 예속되느냐 않느냐의 중대 기로에 서게 되는 문제이다. 행정부에 제약되어 입법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국회라면 마땅히 해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강경히 주장하여 주목을 끌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2일간이나 계속하여 토의하였으나 해결을 짓지 못하고 지방자치법의 폐기 여부에 관한 문제는 30일의 국회 본회의에서도 또 다시 진지하게 토의되었다. 이날은 전일에 이어 정부에 반환하자는 동의 제독회를 생략하고 그대로 재통과하자는 개의, 다시 제정하자는 재개의를 둘러싸고 이에 대한 찬부 논전이 계속되었었는데 특히 신익희 의장은 사회를 부의장에게 위임한 후 의원의 자격으로 등단하여 장시간에 걸쳐서 다음과 같은 중대 발언을 하여 대다수 의원으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이다.

 

대한민국이 건립된 후 헌법보다 못지않게 중대한 것이 지방자치법이다. 지방자치법이 실시되면 민주주의국가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며 만약 이것이 실시되지 못한다고 하면 그것은 형식상의 민주국가에 불과할 뿐만이 아니라 전제국가가 되고 말 것이다. 이 자치법의 실시는 3천만의 전 국민이 다 같이 요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회는 지방자치법을 실시함으로써 치안이 확보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데 반하여 정부는 치안이 확보된 연후에야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고찰하여볼 때 국회와 정부 간에는 천리만리의 거리가 먼 견해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민주주의 지방자치법을 급속히 제정 통과하였던 것인데 정부는 시행기일과 각 도지사를 자기들이 임명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해서 소위 재의(再議)를 요청한 것이다. 시행기일을 대통령령으로 한다면 2년이 될지 몇 년이 될지 모르는 것이며 치안이 언제 확보될지도 막연한 것이다. 우리가 10만의 민의를 청탁 받아가지고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이상 민의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라는 것은 다른 나라의 예를 보더라도 행사하는 일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없는 것이다. 민생이 도탄에 빠지고 치안이 문란된 중대한 차제에 있어서 긴급한 문제가 산적하고 있는데 법을 이와 같이 두 번 세 번 거부한다고 하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다시 제정한다고 하여도 별로 신통한 안은 나오지 않을 것이나 적의(適宜) 해결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와 같은 정부의 태도를 변박(辨駁)하는 신익희 의장의 발언이 있은 후 김수선 의원으로부터 자치법 중 제98조 1항 “도지사는 각기 지방의 도 시 읍 면의회 의원이 선거한 다음 각기 도의회에서 선거한다”로 부칙 제1조 “공포 후 90일을 경과한 후에 시행한다”를 “본법은 공포한 날로부터 시행한다. 단 대통령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지방별로 순차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 그러나 늦어도 단기 4282년 12월 21일 내로 전 지역의 선거를 완료하여야 한다”로 각각 수정을 가하고 기타는 앞서 통과한 자치법대로 제독회를 생략, 재통과하자는 대안이 제출되어 이에 대한 토론이 있었으나 동 자치법 폐기 여부에 관하여 표결한 결과 다시 기초하여 상정하자는 재개의(박순석 의원 제의)가 재석 157인 중 찬성 82표 반대 25표로 가결되었다. 이로써 국회가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서 입법하였던 지방자치법안은 재차(再次) 제정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기타 논의된 문제와 앞으로 토의될 문제

체포의원 석방에 관한 문제와 지방자치법 폐기에 관한 건 외에도 25일의 제3차 본회의에서는 이 국무총리와 이 농림장관의 출석을 요청하고 “정부가 수입비료는 금련(金聯)에서 배급을 취급하도록 지령한 때문에 금련과 농회 간에 알력이 생기어 비료는 창고에 사장되어 배급사무가 지체되고 있는데 어떠한 이유로 정부는 배급기구와 조직이 확립되어 있는 농회 대신에 아무런 기구도 없는 금련에게 취급하도록 하였는가”라고 이에 대한 정부측의 답변을 요청한 후 농민에게 비료를 급속히 배급하기 위하여 외비(外肥)의 취급은 법령이 실시될 때까지 농회에서 취급하게 하는 건의안을 결의하였으며 또 26일의 본회의에서는 반민특별재판관 홍순옥 김장렬 양 의원으로부터 반민법 운영에 있어서 입법정신에 위배되는 일이 있는 동시에 보조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표를 제출한 바 있어 동 사표의 수리 여부에 관하여 장시간 논의한 후 결국 양 재판관의 사표를 수리키로 가결하였다.
그리고 또 31일의 제8차 본회의에서는 내무치안위원회에서 제출한 ‘기부금 징수 방지에 관한 건’을 의사일정에 올리고 각 의원은 전라북도 일대에 불법적으로 공공연히 실시되는 기부금 징수를 공격하여 전북지사의 처사를 비난한 바 있는데 이에 대하여 장 내무차관은 이러한 사태를 발생시킨 행정적 과오를 판명한 후 즉시 관계 도에는 경고를 발하는 한편 불법행위를 중지할 것을 엄달하였다고 언명하였다.
이와 같이 재개된 임시국회에서는 개회 초부터 난문제의 토의만을 거듭하고 있는데 금후 토의 될 것으로 예상되는 몇 가지의 안건을 들어보면 첫째로 미군 철퇴문제와 UN한위의 북한접촉문제에 관한 국회로서의 대비책이 있어야 할 것이고, 둘째로는 최후 38선에서 대규모의 무력전이 빈발하고 있는 실정에 비추어 이에 대한 경비문제와 아울러 남북통일에 관한 문제가 시급히 논의 될 것으로 예상되며, 또 지난 28일에 기소된 임영신 상공장관 비행사건의 조사처리문제 등이 상정되어 국회는 앞으로 상당한 파란을 일으킬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리고 국회는 중요 문제 심의에 부딪칠 때마다 민주국민당계와 소장파 간에 당파적 색채가 너무나도 농후한 듯한 인상을 주어온 만큼 금후 민족운명을 좌우할 이상의 중대 문제를 어떠한 방법으로 합심 협력하여 처리하여 나아갈 것인지 극히 주시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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