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톺아보기32]
총후봉공은 채권으로부터
• 강동민 자료팀장
1. 금1원, 2. 금5원 애국채권 1943 / 1944
가난한 조선노동자들과 농민들의 쌈짓돈마저 끌어모으기 위해 1엔이 나 5엔짜리 소액채권을 발매했다. 1엔짜리 애국채권은 할증금이 많 고 당첨률도 매우 높았다고 한다. 이러한 사행심을 이용한 채권 판매 가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 데에는 저명한 친일파들의 대대적인 가두 판매도 일조했다.
3. 할증금부 전시보국채권, 1942
채권 하단에 ‘부표 25조 087813’이라고 써있는 부분을 추첨 할증금을 지불할 때 잘라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전시보국채권은 추첨, 할증금 이 10엔권 1등에 1만 엔이나 된다. 이러한 방식은 정기예금에도 도입 되어 강제저축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4. 필승국민저축표, 1944
애국반 반장에게 저축을 했다는 확인도장을 받아야 했다.
5. 채권 판매를 벌이는 친일파들, <매일신보>, 1941년 9월 8일자
1941년 9월 7일 친일파들이 모여 총후보국을 통한 ‘성전완수’를 위해 ‘채권가두유격대’ 를 조직하여 경성 시내 여러 곳에서 채권 판매에 앞장섰다.
6. 채권가두유격대, <신시대>, 1941년 10월 현재덕이 그린 이 그림은 종로 화신백화점 앞에서 윤치호, 이숙종 등이 전시애국채권 을 가두판매하는 장면이다.
일본은 만주 침략을 시작으로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전쟁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막대한 물자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행위다. 따라서 침략전쟁의 지속적인 수행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전쟁 비용을 조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계속된 전쟁으로 자금의 여력이 없던 일본은 결국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한 많은 자금을 식민지 조선에서 동원하였다.
각종 명목의 세금으로 시름을 앓고 있던 조선인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한편 전시채권, 강제보험 판매에 혈안이 되었다. 아예 강제저축 목표액을 할당하고 채권 구매를 독려하는 등 가난한 조선인들의 주머니를 쥐어짰다. 또한 채권 판매를 활성화하기 위해 조선인 지도층 인사를 출동시켜 길거리에서 채권을 판매하게 했다. 1941년 9월 7일, 70여 명의 거물 친일파들이 종로부대, 광화문부대, 황금정부대, 본정여인부대 등 조를 짜서 경성 시내에서 어깨띠를 두르고 선전에 나섰는데 이들이 바로 ‘채권가두유격대(債券街頭遊擊隊)’이다. 자신들이 거액의 채권을 사들임으로써 전쟁협력에 앞장서는 것도 모자라 일반인들에게 “총후봉공銃後奉公은 채권으로부터”라고 외치며 거리 곳곳에서 전시채권을 파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그러나 일제가 패망하면서 채권을 구입한 조선인에게는 이자는 고사하고 원금조차 돌려받지 못해 한낱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