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임종국상 학술부문 수상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 정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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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부문 수상자 정연태
수상저서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

임종국상 학술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는 순간 당황스러운 나머지 너무 부담스럽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일제 침략사와 친일 배족사와 사투를 벌이며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삶 전체를 바치신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고, 지금까지 저의 삶이나 역사연구는 말할 것도 없고 수상의 계기가 된 이번의 졸저 또한 선생님의 그 치열한 삶과 실천적연구를 흉내조차 내지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얼떨결에 받은 통보에 심정은 복잡했습니다만, 그동안의 나태하고 부족한 자세와 성과를 성찰하고 ‘한국 근현대사의 진실 규명과 역사정의 실현’에 더욱 정진하라는 격려 차원에서 저를 수상자로 선정하셨으리라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는 한국 근대의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고 역사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 19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의 한국 근대는 근대 세계가 경험할 수 있었던 온갖 역사과정, 다시 말해 종교전쟁 이외의 각종 야만성과 문명성이 뒤섞여 회오리 친 세계 근대의 전시장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근대는 한편으로는 피침략과 피식민 지배, 분단과 전쟁과 학살, 독재와 종속으로 점철됐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하고 평화를 지키고 통일을 모색해온 다채롭고 역동적인, 역사적 시간대였습니다.

한국 근대의 역동성은 현재도 진행 중이라고 봅니다. 한편으로는 촛불시민혁명, K-컬쳐의 세계적 유행, K-방역의 잠정적 성공 등에서 보듯, 이제 한국사회는 외부로부터 근대적 제도·시스템·문화 등을 수용하는 단계에서 새로운 제도, 시스템, 문화 등을 외부로 발신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듯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한 평화, 심각한 사회 양극화,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산재사망률·비정규직 비율, 그리고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등에서 드러나듯, 한국사회의 안전과 안정, 그리고 미래는 위협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극적인 역사과정을 걸어왔고 지금도 목도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근대역사의 진실과 정의를 제대로 밝히고 실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봅니다.

그리고 국내외의 현실도 한국 근대역사의 진실 규명과 역사정의 실현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국내외의 각종 세력이 자신의 특권과 입지를 강화하고 미래를 장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과거의 역사와 기억을 통제하고 멋대로 해석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근래 더해지고 있는 세대·지역·성·종교·계층·집단의 분열과 갈등은 현실 진단과 미래전망은 물론 역사인식에도 균열을 심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역사 왜곡과 사회 분열은 한국 근대 역사인식의 갈등을 야기하고 있고, 역사인식의 갈등은 역으로 현재의 분열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분열과 갈등이 역사연구에 투영된 대표적 사례가 식민지 근대화 논쟁이었고, 역사 교육에 강타한 그것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파동이었음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다채롭고 역동적인 한국 근대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그리고 식민지 근대화 논쟁의 말석에 끼어들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운동에 작은 힘을 보태면서 생각하고 자각한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민족적 시각과 시민적 시각을 통합한, 복안의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때 비로소 한국 근대역사의 진실을 직시, 성찰하고 근대의 새로운 미래를 기획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역사 왜곡과 갈등을 야기하는 진앙지 중 하나인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체계적인 비판에 한국 역사학계가 다소 소홀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일제 식민지성의 4대 지표 중 하나인 민족수탈의 실상은 이론적 차원이나 실증적 차원에서 반박할 여지가 없을 만큼 체계적으로 규명된 것 같지 않고, 다른 하나인 민족차별의 실상에 대해서는 연구 시도조차 별로 없었다는 점입니다. 특히 민족차별의 문제를 본격적, 체계적으로 밝히려 한 연구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수상에 힘입어 용기 내어 감히 말씀드린다면, 졸저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는 이상과 같은 경험과 자각의 산물로 기획되고 시도된 작은 결과물입니다. 비록 개인정보 보호법의 제약으로 통계 위주의 무미건조한 분석에 치중하고 말았지만, 저는 이 졸저를 통해 식민지 민족차별의 양상, 구조, 특성을 체계적, 실증적으로 밝힘으로써 일제 식민지배의 반문명성의 일면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객관적으로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독자들이 이 결과물을 민족 차별성과 민족 정체성의 틀 내에서만 이해하여 식민지 피차별의 쓰라린 경험을 기억하고 타자를 비판하는 데 머물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피차별의 경험과 기억이 오늘날 한국사회 구성원인 조선족 동포, 탈북민, 이주 노동자, 결혼 이민자,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문제를 직시, 성찰, 극복하는 역사적 자산으로 승화되는 데 이 결과물이 조금이라도 기여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의 이 졸저는 많은 분들께 빚진 결과이기도 합니다. 특히, 한국사연구의 열정과 시대적 고민을 함께 해온 한국역사연구회의 회원들과 가톨릭대 국사학과의 동료 교수들, 수년간에 걸쳐 학적부를 포함한, 귀중한 각종 자료의 이용을 허용해주고 소중한 정보를 제공해주신, 충남 강경상업학교의 관계자들과 졸업생들, 도서출판 푸른역사의 박혜숙 대표님을 비롯해 졸저의 집필과 출판에 도움을 주신 다른 모든 분들, 그리고 힘든 고비마다 격려해주고 지원해준 사랑하는 가족과 수상의 영예를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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