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부문 수상자 김종성
시월의 마지막 금요일인 지난달 29일, 임종국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오마이뉴스 편집국의 전언을 받은 뒤, 또 민족문제연구소와 전화통화를 한 뒤,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는 느낌에 한동안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그날이 도적같이 오리라’는 말처럼 임종국 선생이 홀연히 제 옆으로 다가와 곁에 계시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친일문제 전문가인 정운현의 <임종국 평전>은 선생을 잉태한 어머니가 설중매를 목격하는 꿈을 태몽으로 꾸었다는 일화를 전합니다. 눈이 하얗게 덮인 벌판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하얀 매화꽃을 본 뒤 선생을 낳았다는 일화입니다. 눈 덮인 겨울과도 같았던 박정희·전두환 치하에서 친일청산을 위해 힘겨운 분투를 했던 선생의 일생과 상당히 잘 어울리는 태몽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임종국 선생을 기리는 상을 받게 된다고 하니, 너무도 뜻밖이라 깊은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친일파·위안부·강제징용 등에 관한 그간의 글 속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결함이라도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없이 부족한 글을 좋게 보아 주시고 임종국상을 주신 민족문제연구소와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에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더불어, 죄송스러운 마음도 함께 올립니다. 더 깊고 더 나은 글을 쓰지 못한 아쉬움이 뒤늦게 가슴을 누릅니다. 그리고 민족문제에 관한 기사를 많이 쓰도록 격려해주고 글의 문제점을 냉정하게 비판해준 오마이뉴스 기자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 글쓰기의 주요 참고자료인 <친일인명사전>을 집필하신 분들께도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이 사전이 발간될 거라는 말을 2001년에 처음 들었던 일이 떠오릅니다. 이 사전이 훗날 제 글쓰기의 핵심 자료가 될 줄은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방대한 내용들이 잘 요약되고 참고문헌도 잘 정리돼있어,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동안 역사청산에 관한 글을 집중적으로 쓰면서 확신을 갖게 된 것이 있습니다. 이런 글쓰기가 해묵은 과거지사를 새삼스레 들춰내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를 훨씬 건강하게 만들어나가는 길이 되리라는 확신입니다. 1990년대 탈냉전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일본 사회를 보면서 그런 확신을 강하게 품게 됐습니다. 과거사를 청산하려는 기운이 탈냉전 이후 지속적으로 고조돼온 한국과 달리, 그 이후의 일본에서는 극우파와 역사수정주의자들이 주도권을 잡게 되면서 퇴행적인 측면들이 여기저기서 돌출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일본은 한층 더 과거사를 감추고 왜곡하는 나라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일본 사회를 정체 시켜온 요인이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역사를 감추려는 불온한 세력이 사회를 이끌어가고 집권 자민당을 이끌고 있으니, 일본이 퇴행의 길을 걷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됩니다. 역사를 왜곡하는 세력이 민중을 편드는 일은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의 노동자 임금이 지난 30년 동안 정체 상태에 머물렀던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본이 외형상으로는 군사대국의 길로 나아가는 듯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정체 상태에 머물게 된 것은 그 지도자들이 역사 앞에서 겸허한 자세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일본을 보면서, 친일 및 식민지배문제 등에 관한 글쓰기가 우리 사회의 전진에 얼마나 크게 기여하는 일인가 하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확신을 갖고 친일과 식민지배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임종국 선생이 ‘도적 같이’ 제 곁에 오셔서 격려를 해주시니 앞으로 더욱 신명을 내어 공부하고 글을 쓸 수 있게 됐습니다. 임종국상 수상이 부족한 저의 글쓰기에 커다란 격려가 되고 있습니다. 큰 행운이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