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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현 정부와 코드 맞추려 한다던 육군 장군의 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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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김완태 전 육사 교장 “국군은 신흥무관학교 계승해야”

국군의 기원을 독립군에서 찾는 학술대회를 개최한 육사 교장이 있었다. 1983년에 육사 39기로 임관한 뒤 제32보병사단장과 수도군단장 등을 거쳐 2017년 9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제54대 육사 교장을 역임한 김완태 장군(현 예비역 중장, 서울과기대 석좌교수)이 바로 그다.

김완태 전 육사 교장은 취임 3개월 뒤인 2017년 12월 11일 육사 교내의 충무관 강당에서 ‘독립군·광복군의 독립전쟁과 육군의 역사’라는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에서는 ‘신흥무관학교와 무장독립투쟁’이란 주제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김주용 박사, ‘독립군·광복군과 육군의 기원’이란 주제로 한시준 단국대 교수, ‘육사의 효시에 대한 연구’라는 주제로 박일송 육사 교수가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 8일 오후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과 항일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 등의 흉상에 신흥무관학교 107주년을 맞아 꽃목걸이가 걸려 있다. 2018.6.8 ⓒ 이희훈

지금도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에서는 육사의 기원을 일제강점기 직후인 미군정기에 둔다. 1946년 5월 1일 미군정 하의 ‘국방경비대사관학교 개교’를 육사의 출발점으로 잡는다.

이는 육사의 문제점이기보다는 국군 일각의 문제점이다. 헌법 전문이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선언했으므로, 국군의 정통성 역시 3·1운동을 비롯한 독립운동에서 찾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도 국군 일각에서는 3·1운동 정신을 정면으로 거역한 백선엽을 군의 사표로 삼고자 한다. 이로 인한 문제점이 육사 홈페이지의 설명에도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완태 당시 교장이 육사 교정에서 신흥무관학교 학술대회를 열었기 때문에 작으나마 반발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2018년 5월 20일 자 <주간조선> 인터넷판 기사는 ‘육사 총동창회 감사단, 육사에 출동한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완태 육군사관학교 교장이 최근 육사총동창회와 갈등을 빚었다”고 보도했다.

<주간조선>은 ‘김완태 교장이 이명박·박근혜 기념비를 철거하고 백선엽 기념관을 철거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육사 동창회가 감사단을 파견했지만, 실제 확인해 보니 사실과 달랐더라는 내용을 보도했다. 그러면서도 <주간조선>은 김완태 교장에게 뭔가 문제점이 있는 듯한 뉘앙스로 보도했다. “현 정부에 코드를 맞추려는 듯한 그의 행보”라는 표현을 쓰면서 그런 이유로 “일부 육사 동문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라고 보도했다.

직접 발표자로 나서

하지만, 그가 문재인 정부에 코드를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군과 육사를 바로 세우려는 소신에서 그렇게 했다는 점이 9일 분명해졌다. 국가보훈처가 후원하고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상임대표 윤경로 한성대 명예교수)가 주최한 신흥무관학교 설립 11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 직접 발표자로 나서 ‘국군은 신흥무관학교를 계승해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했기 때문이다.

유튜브로 생중계된 심포지엄의 제1발표자로 나선 그는 ‘신흥무관학교와 국군의 독립정신 계승’이라는 주제로 대한제국 군대, 의병부대, 독립군 부대들과 한국광복군, 대한민국 국군으로 면면히 이어지는 한국군의 정통성 계보를 설명하면서, 국군이 ‘독립군 부대들과 한국광복군’을 배출한 신흥무관학교를 계승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국외에서 독립전쟁을 준비하고 수행한 핵심 주체는 누구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그런 위대한 역사를 써나갔다는 사실”이라고 답했다.

1919년에 이회영·이상룡 등에 의해 설립된 신흥무관학교는 약 3500명의 독립군 전사들을 길러냈다. 그런 신흥무관학교를 비롯한 각종 독립군 양성소에서 배출된 전사들이 곳곳으로 퍼져나가 대일 독립전쟁을 수행했고 그것이 미국의 원폭 투하와 더불어 한국 해방을 이끌어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군대가 신흥무관학교를 정신적 기원으로 삼아야 한다는 김완태 전 교장의 발표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김완태는 굵직굵직한 독립전쟁 성과의 배후에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좌진은 신흥무관학교 교관 이범석과 졸업생 오상세 등 다수의 인원을 교관으로 초빙하여 교재 지원과 함께 십리평 지역에 사관연성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홍범도가 직접 지휘하는 대한의용군에도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이 편성되어 청산리 대첩에 참전하였다”고도 말했다. 김좌진·홍범도 부대의 주축이 신흥 출신들이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 9일 국가보훈처가 후원하고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신흥무관학교 설립 11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 김완태 전 육사 교장이 직접 발표자로 나서 ‘국군은 신흥무관학교를 계승해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2021.12.9 ⓒ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김완태는 1920년에 이 학교가 폐교된 뒤에도 이곳 출신들의 애국심이 시들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신흥무관학교 폐교 이후 교관 및 졸업생들은 중국에서 크고 작은 교육기관과 독립군 부대를 재건하고자 노력하였다”고 한 뒤에 그 일례를 소개했다.

“1930년대 만주 지역에서 활약한 대표적인 두 개의 독립군 부대 중 남만주 지역의 조선혁명군은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김학규가 참모장을 하는 등 졸업생들이 가담하였다. 또한 북만주 지역의 한국독립군은 신흥무관학교 교관이었던 지청천이 총사령관을 수행하면서 한·중 연합작전을 실시하였다.”

그는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의열단 김원봉 역시 신흥 동문이었음을 언급했다. “뿐만 아니라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김원봉은 1919년 의열단을 조직하여 일제 총독부와 지역별 경찰서 등에 폭탄을 투척하면서 무정부주의 투쟁을 벌였다”고 설명했다.

또 항일전쟁 및 제1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미·영 연합군과 함께하고 김원봉·김구의 좌우합작으로 결성된 한국광복군에도 그 흔적이 배어 있다고 언급했다. “광복을 맞이하기 5년 전에는 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노력과 윤봉길 의거에 고무되었던 장개석의 배려로 중앙군관학교 뤄양 분교에 한인 특별반을 설치하였고, 중국 정부와의 관계가 돈독해지면서 한국광복군 창설을 지원해주었다”면서 “이때 신흥무관학교에서 교관 임무를 수행했던 지청천과 이범석이 각각 총사령과 참모장을 맡았고,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김원봉과 김학규는 지대장을 맡았다”는 사실을 거론했다.

이처럼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일본제국주의에 용감히 맞섰고 그들의 희생이 밑바탕이 되어 우리가 해방을 맞이했으니 대한민국 국군이 당연히 이들을 계승해야 한다는 게 김완태 전 교장의 역설이다. “우리 대한민국 국군이 신흥무관학교와 독립군들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층 더 단단한 모습으로 성장해가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라며 “그것이 우리 대한민국을 영원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그는 당부했다.

국군이 독립군을 숭상한다면

한국군이 박정희·백선엽 같은 친일파들과 연을 끊고 독립군 전사들을 계승해야 할 필요성은 신흥무관학교 교가에서도 절절히 실감할 수 있다. 교가 제1절은 “서북으로 흑룡대원 남의 영절의/ 여러 면면 헌원자손 업어 기르고/ 동해 섬 중 어린 것들 품에다 품고/ 젖 먹여 기른 이 뉘뇨”로 시작한다.

중국인들은 삼황오제의 하나인 황제(黃帝) 헌원씨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려 하지만, 교가 제1절은 그것을 우리 역사에 포섭하면서 헌원씨 자손들을 누가 업어서 길렀느냐고 묻는다. 그런 뒤 후렴구에서 “우리 우리 배달 나라의/ 우리 우리 조상들이라”고 답한다.

▲ 8일 오후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열린 독립군과 광복군의 전신인 신흥무관학교의 107주년 기념식에서 생도들이 분열을 하고 있다. 2018.6.8 ⓒ 이희훈

제2절은 우리 민족이 일본의 노예가 되어 있는 현실을 개탄한다. “장백산 밑 비단 같은 만리 낙원은/ 반만년래 피로 지킨 옛집이어늘/ 남의 자식 놀이터로 내어 맡기고/ 종 설움 받는 이 뉘뇨”라고 한탄한다. 그런 뒤 “우리 우리 배달 나라의/ 우리 우리 자손들이라”면서 “가슴 치고 눈물 뿌려 통곡하여라”고 울부짖는다.

제3절은 민족의 분발을 촉구한다. “칼춤 추고 말을 달려 몸을 연단코/ 새론 지식 높은 인격 정신을 길러/ 썩어지는 우리 민족 이끌어 내어/ 새 나라 세울 이 뉘뇨”라고 묻는다. 썩어지는 우리 민족을 누가 구할 것이냐고 물은 것이다. 그런 뒤 “우리 우리 배달 나라의/ 우리 우리 청년들이라/ 두 팔 들고 고함 쳐서 노래하여라/ 자유의 깃발이 떴다”라고 끝맺는다.

이런 노래를 목청껏 부르며 이런 정신을 가슴에 품고 제국주의와 싸운 독립군 전사들을 우리 국군이 공식적으로 숭상하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것이 우리 대한민국을 영원하게 만드는 길”이라는 전 육사 교장의 당부를 떠올리게 된다.

<2021-12-10>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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