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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민신문] 평화의 소녀상 10살! 결코 외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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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평화의 소녀상 10주년 전시회 열려

평화의 소녀상(평화비)은 외롭지 않았다. 평화의소녀상 작가인 김운성 김서경 작가 측은 14일(화) 낮 12시, 국회의원회관 1층 로비에서 평화의 소녀상 10살 맞이 전시회 ‘희망을 잡고 살아’를 열었다. 전시회 여는 행사가 열리는 제일 한 가운데에는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가 하얀 조각상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평화의소녀상 작가인 김운성 김서경 작가 측은 14일(화) 낮 12시, 국회의원회관 1층 로비에서 평화의 소녀상 10살 맞이 전시회 ‘희망을 잡고 살아’를 열었다. © 수원시민신문

전시회 행사에는 서울, 김포, 파주, 수원, 충주, 고창은 물론 호주 시드니에서도 연대 활동가들이 참여해 평화의 소녀상(평화비)의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평화의 소녀상(평화비)은 2011년 12월 14일 ‘전범국’ 일본의 주한일본대사관 앞 서울 평화로에 처음 세워졌다.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의 전쟁범죄이며 여성인권범죄인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을 기억함은 물론 긴 시간 국적, 성별, 연령을 넘어 생존자와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 온 투쟁의 역사와 희망을 새기는 상징물로 국내와 세계 각지로 확산되었다.

전시회 여는 행사가 열리는 제일 한 가운데에는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가 하얀 조각상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 수원시민신문

이번에 뜻깊게 평화의소녀상 10살, 김학순 할머니 증언 30년 그리고 세계인권선언기념일(12.10) 74주년을 맞아 국회에서 ‘김복동의 희망’이 공동주최하는 “희망을 잡고 살아” 평화의 소녀상 10주년 전시회가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열린다. 누구든지 언제든 관람하실 수 있다.

이 전시회를 준비해 온 평화의소녀상 작가인 김운성 김서경 두 작가는 물론, 박찬우, 윤승찬, 티파니슝 등 예술가들이 작품으로 참여하며, 물론 김복동 할머니의 유지를 받들며 재일조선학교 등을 연대 지원하고 있는 ‘김복동의 희망’은 “김복동 할머니의 희망으로, 평화를 만들어 가는 김복동의 희망 회원은 물론, 많은 국민들이 전시회에 깊은 관심과 많은 관람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김운성 김서경 두 작가는 평화의소녀상 10주년을 맞아 기념캐릭터도 만들었다.

연세 세브란스병원 노동조합 활동가들과 윤미향 의원 © 수원시민신문

전시회 여는 행사는 12시경, ‘윤미향TV’에서 유튜브로 생중계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정식 행사가 시작되기에 앞서 국회의원들이 자신이 호명될 때마다 자신의 메시지가 담긴 노란 나비 종이를 앞에 꽂는 행사로 1부의 문을 열었다.

국회에서는 열린민주당의 강민정 의원, 민주당의 우상호, 고민정, 윤영덕, 윤미향, 이수진, 조오섭 의원 등이 직접 참여했고, 시민평화노동단체에서는 평택의 기지촌 여성인권단체인 햇살사회복지회(회장 우순덕)에서도 활동가들,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 민주노총 대외협력실장,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노조활동가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이주현, 정연훈, 김향미 등 수원평화나비 활동가들, 김포평화나비, 충주평화나비, 전북고창평화나비, 파주평화나비, 강원대 관계자, 유봉여고 학생, 호주 시드니에서 등이 참여했다.

사회자로부터 김서경, 김운성, 박찬우 작가가 소개받아 박수를 받았다. 비록 참여는 못했지만, 영화 어폴로지를 만든 캐나다의 티파니슝의 소개도 있었다.

국회의원들이 자신이 호명될 때마다 자신의 메시지가 담긴 노란 나비 종이를 앞에 꽂는 행사로 1부의 문을 열었다. © 수원시민신문

공동주최자의 한 사람인 우상호 국회의원은 인사말에서 “시드니에서도 행사에 참여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때로는 누군가의 옆에 서서 같이 비를 맞아주는 것만으로도 그게 큰 역사적 의미가 있는 일이 있습니다. 특히 그것이 역사의 피해자일 때 우리가 직접 체험하지 않은 일이지만 함께한다 우리가 함께 지켜드리겠다는 마음만으로도 세상이 바뀌는 경우가 꽤 있죠. 이 어느덧 21이 시작된 지 10 년이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좀 뭉클했습니다. 살아계실 때도 모진 삶을 살았는데 돌아가신 이후에도 끝없이 모욕의 대상이 되는 할머니들의 생각하면서 역사의 범죄 역사의 피해자의 운명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하는 그런 답답함이 있지요. 여기 모여서 함께 해주신 여러분들이 정말 소중하고 의로운 분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 이 10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그동안에 10주년 노고를 서로 취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우리 변치 말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함께 하자 이런 각오를 다지는 자리라고 생각을 하고 특히 그 과정에서 윤미향 의원님이 받았던 많은 고초에 대해서도는 마음 아프게 생각합니다. 내일 함께하고 역사가 바로 잡히고 일본의 사과를 제대로 받고 새로운 정의가 바로 설 때까지 내가 용기를 갖고 함께 해 주실 것을 당부드리고 저도 여러분 곁에 같이 섞여서 같이 비를 맞겠습니다. 축하드리고 고생하셨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소개된 강민정 의원은 “저는 열린민주당이 원내대표를 낳고 있는 강민정장입니다. 제가 사실은 국회에 들어오기전 15년 동안 중학교에서 아이들하고 수업을 했는데, 역사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가 남달리 좀 뜻깊은 자리인 것 같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잖아요. 그 독일과 똑같은 전범국가인데 오늘날 전쟁이 끝난지 70 년이 넘은 지금 독일하고 일본이 왜 이렇게 다른 지점에 서 있게 됐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됩니다. 사실 독일은 빌리 브란트 수상이 2차 대전 만행에 대해서 사과한 이후에도 76년 동안 내내 얼마 전에 그 수장직에서 물러난 메르켈 총리는 16년 집권하고 있는 동안 매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2차 대전동안 독일의 만행에 대해서 사과하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너무나 우리 가까이 있는 일본과 비교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오늘날 일본이 저렇게 국제적인 위상이 실추돼, 점점 수축돼 나가고 정체된 국가로 자리매김하게 된 데는 다른 여러 요인도 있겠지만 자신들이 범한 이 전쟁 범죄에 대해서 자신들의 역사를 왜곡하고 지우려고 하는 이런 흐름하고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여기 앞에 계신 우리 두 분의 조각상을 보면 웃고 계시잖아요. 아직은 우리가 진짜 웃을 수 있을 만큼 역사의 범죄에 일본의 만행과 역사 문제에 대해서 해결이 못한 같습니다. 그래서 평화의 소녀상은 더 많이 더 세계 곳곳에 만들어져서 자리를 잡아야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입니다. 이분들이 웃고 있는 것처럼 진짜 우리 모두가 다 같이 세계에 우리나라와 일본 간의 어떤 평화의 문제 역사 범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걸 넘어서 전 세계의 평화를 획득하는 실현시키는 그날을 만드는 데 함께 해나가는 동지들이 다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 길에 함께 열심히 역할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참가자와 김운성 조각가 © 수원시민신문

고민정 의원은 인사말에서 “말보다 실천하는 국회의원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들과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희망에서는 끝까지 놓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굵고 짧게 인사했다.

이어서 윤미향 의원은 “2011년 12월 14일 일본 대사관 앞 평화로에 첫 번째 소녀상이 세워졌습니다. 그것은 1992년 1월 8일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추우나 더우나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비를 맞으면서 할머니들과 함께 외쳤던 일본 정부는 사죄하고 배상하라 그 외침을 기억하고 또 다른 한편 나와 같은 피해자를 다시는 만들지 말라 하셨던 할머니들의 평화를 향한 염원 그것을 담아서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습니다. 그것이 시작이 되어서 전국 각지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확산되어 갔고 미국으로, 호주로, 뉴질랜드로, 독일 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으로 그렇게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확산되어 갔습니다. 아직 평화의 소녀상을 완전히 세우지 못한 곳도 있지만 그 곳에서도 끊임없이 할머니들의 평화를 어떻게 내가 살고 있는 이 지역에 담아낼 수 있을까? 그런 뜻을 펼쳐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옆에는 비문이 제거된 채 서 있는 독일의 소녀상도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불안한 채 일본 정부의 로비 때문에, 압력 때문에 언제 자리가 없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두려워하며 서 있는 소녀상도 있습니다. 다른 한편 첫 번째 세워진 소녀상 옆에는 위안부는 가짜다, 돈벌러 갔다, 왜 일본 정부가 사죄해야 되느냐 등의 목소리를 높이며 폭력적인 언행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 그게 바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주소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피해자들의 고통의 일그러졌던 모습을 이렇게 웃게 만들었던 지난 30여 년간의 수요시위 여정들, 다시 우리 할머니들의 희망을 되찾아줄 수 있도록, ‘여기 다시 희망이 올 건가?’라고 죽음 앞에서 말씀하셨던 김복동 할머니의 그 메시지에 ‘네, 할머니 우리가 희망을 만들겠습니다. 우리가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는 세상, 그 어떤 전쟁도 폭력도 권력도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을 자행하지 않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되겠습니다. 우리가 희망이 되겠습니다.’ 라는 다짐, 그것이 바로 오늘 10주년에 우리가 이 소녀상을 기리면서 또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기리면서 해야 될 우리의 응답이 아닐까, 우리의 평화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함께 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오늘 함께하시지 못하셨지만 일본에서 유투브를 보면 함께 하실 희망씨앗 기금도 전국행동 여러분들께도 연대와 뜨거운 응원을 보내드립니다. 고맙습니다”라고 긴 인사말을 남겼다.

윤영덕 의원은 “윤영덕입니다. 오늘 전시회 주제 ‘희망을 갖고 살아’를 보면서 잡을 희망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여러 가지 희망이 있겠지만 저는 그게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들 평범한 일상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시고 그 한을 풀지 못하고 먼저 가시는 분들도 계시는데요. 평범한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연대의 손길이 평화의 소녀상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또 지난 20년 동안 단순한 상징물이 아니라 정말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런 의미로서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왔던 거 같습니다. 어제 그제가 광주에서 70대 노구를 이끌고 이렇게 태평양 전쟁 피해자들을 위해서 일본과 한국을 넘나들면서 싸우셨던 이금주 태평양전쟁 유족회 회장님 조문을 하고 오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희망 저는 할머니들이 생각했던 희망과 다르지 않을 거라고 보고요. 그 평범한 일상을 우리 함께 만들어가는 길에서 오늘 공동전시회 공동주최 힘써주신 윤미향 의원님과 의원실 가족들 그리고 공동주최 의원님들 또 전국 방방곡곡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들 그리고 해외 여러 단체들과 함께 연대해서 할머니들이 꿈꿨던 희망을 계속 이어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전시회 축하드립니다”라고 연대했다.

이수진 의원은 “오늘 ‘희망을 잡고 살아’라는 평화의 소녀상이 벌써 10년이 됐다라는 게 놀랐습니다. 제가 세브란스 병원 노동조합 위원장 일 때, 윤미향 대표님 만나서 그때 소녀상을 처음 만났었는데요. 사실 왜 이렇게 제가 감개가 무량한지, 김복동 할머니 얼굴을 보니까, 그리고 길원옥 할머니 조각상을 보니까, 예전에 그냥 우리 옆집 할머니처럼 만났던 그 시절들이 계속 떠오릅니다. 우리 김복동 할머니가 살아계셨으면 윤미향 의원님을 정말 많이 격려하고 위로하고 더 많이 용기를 주셨을 거다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너무나 훌륭하게 우리 여성 노동자들한테 귀감이 되고 또 희망을 주는 그런 역할들을 정말 많이 하셨거든요. 오늘 이렇게 멋진 동상이라든지 작품들을 만들어주신 작가분들한테도 너무 감사하고요. 저희가 국회에서 뛰다 보니까,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자주 놓칩니다. 그러지 않도록 더 열심히 챙겨보겠다는 말씀 그리고 언제나 평화를 위해서 전쟁과 폭력을 전 세계에서 몰아내는 그날까지 함께 연대하고 열심히 또 국회 안에서 또 국회 밖에서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윤미향 의원님 파이팅. 예 고맙습니다”라고 격려의 말을 남겼다.

김운성 조각와 우순덕 햇살사회복지회 대표 © 수원시민신문

조오섭 의원은 “오늘 행사를 주최해주신 윤미향 의원님과 다른 의원님께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 먼저 드리겠습니다. 할머니 상이라고 해야 되나, 소녀상이라고 해야되나 잘 모르겠지만 이 작품을 보면서 작가의 의도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얼굴은 웃고 계시는데 앉아 계시는 할머니의 발이 땅을 밟고 있지 못하고 있어서 많은 불편한 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땅을 밟을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 우리들의 역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이어 사회자는 중간에 참가자를 추가 소개했다. 사회자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입니다. 미래 역사 교사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인데요. 박준석 군과 어머니 추순영님 오셨습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라고 정중히 소개했다.

이어 시민노동평화단체 참가자들의 연대사가 이어졌다.

허권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은 격정적인 목소리로 “우리 국회의원님들의 희망에 찬 말씀 잘 들었습니다. 우리 강민정 의원님께서 또 말씀하셨다시피 단재 신채호 선생님께서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조지 산타야나 시인께서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은 과거를 반복하게 마련이라고 외쳤습니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는 살아있는 역사의 외침 왜곡과 반동의 역사를 정면거부하신 할머님의 용기 있는 증언, 은폐된 반역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싸우셨습니다. 1992년 1월 8일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역사의 외침 우리 수요시위는 1521회 회차를 지난 12월 8일 진행하고, 이번 주 12월 15일은 제1522차 수요시위를 이어갈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김서경 김운성 작가님, 박찬우 작가님, 윤승찬작가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평화의 소녀상은 열 살 생일을 오늘 맞이했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상식과 상식을 뒤엎는 왜곡과 망언, 망언의 세력들은 여전히 과거에 반역의 역사를 지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전쟁 범죄자인 일본 정부는 세계 곳곳에서 세워지는 평화 소녀상 설치를 반대하며 철거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일본의 정의이고 평화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 시민 여러분 더 이상 평화의 소녀상이 고통을 받게 해서는 안됩니다. 평화의 소녀상은 우리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평화와 인권의 상징입니다. 반일 종족주의가 극우파 논리가 평화의 소녀상을 짓밟게 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끝나지 않은 역사의 전쟁. 평화와 인권의 인권과 정의가 살아있는 역사를 반드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동안 윤미향 의원님께서 참혹한 암흑의 세월을 할머니들과 함께 살아온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 동참하는 길입니다. 힘찬 정의의 흐름을 한국노총은 140만 조합원과 함께 응원하고 함께 하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단순한 평화의 소녀상 10주년 전시회 자리가 아닙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끝나지 않은 역사의 전쟁을 다시 다시 바로 세우는 날입니다. 역사의 반동세력들에게 경고하는 자리입니다. 식민지 친일파 청산을 왜 해야 하는지 한 번 더 생각하고 추동하는 날입니다. 그리하여 과거를 기억 못하는 세력들에게 철저한 반성과 진실을 규명하라고 우리 모두가 외치는 날입니다. 그들에게는 정의가 없고 기억이 사라지고 연대가 먼 거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정의와 기억과 연대가 살아숨쉬는 날이라고 우리 모두 우리 모두 선포합시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햇살사회복지회 소속의 평택기지촌 여성인권활동가이신 권복희 할머니는 “햇살사회복지회에서 왔습니다. 참 많은 세월을 조금 보냈는데 가시고 아직 이분은 살아계신다고 가끔 봤는데 윤미향 대표님 국회의원 인사처음 하게 됩니다. 환영합니다. 네 우리는 참 평택에도 또 이 언니들은 일본에서 그랬다지만, 우리는 또 평택에서 이런 비슷한 다 똑같은 일입니다. 참 여기와서 오늘 소녀상이 함에 10년이 됐다니 축하합니다. 이미 윤미향 대표님 그리고 우리 사회 복지도 우리 평택도 국회의원들이 좀 많이 도와주세요. 그리고 우리는 지금 우리도 많이 죽었습니다. 얼마 안 됩니다. 지금 한 50~60명 살아있고 다 죽고, 해마다 죽는데 죽기 전에 국회의원 아저씨 의원들 의원님들 도와주세요. 많이 많이 퍼지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글은 우리가 잘 못하는데 그래도 이거 써가지고 왔는 데 마음의 말로 다 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도와주실 줄로 믿고 그냥 이걸로 연설 그치겠습니다.“라고 감동적인 연대사를 마쳤다.

이어 참가자들은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어 평화의 소녀상 10년의 의미를 담은 영상을 참께 시청했다.

전시회 관람객들 © 수원시민신문

영상에는 10년 전 서울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는 역사적인 장면이 펼쳐졌고 김복동 할머니가 일본대사를 규탄하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그대로 담겼다.

영상에 이어 전시회에 연대하러 온 활동가들의 감동적이고 살가운 연대사가 계속 이어졌다.

이주현 수원 평화나비 상임대표는 “오늘 이렇게 뜻깊은 ‘희망을 잡고 살아’라는 제목으로 평화의 소녀상 10주년 전시회를 여는 것을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저희 수원에서는 2014 년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을 했고요. 그때 그 수원시민들이 모금을 시작을 할 때 우리 김복동 할머니 그리고 길원옥 할머니께서 오셔서 첫 번째로 이렇게 뭐 그런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나네요. 예 소녀상이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됨으로 인해서 저희 수원에서는 본격적인 평화와 인권을 위한 시민운동이 본격적으로 이렇게 일어나게 되었다라고 저는 감히 단언을 합니다.

이 평화의 소녀상의 의미는 정말 적어도 저에게 수원에서는 남다르다라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예 그런데 얼마 전에 저희 그 이 수원에서 살다가 돌아가신 안점순 할머니가 계셨는데요. 그 할머니가 3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을 때 그 할머니의 삶을 그냥 우리가 잊어버리면 안되겠다라는 생각을 해서 기억의 방을 좀 만들자고 제안을 했어요. 그래 가지고, 얼마 전에 기억의 방을 방을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극우단체라고 할까요? 이 그 단체에서 와가지고 그 할머니들을 갖다가 능욕하는 그런 시위를 한다고 미리 연락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너무너무 화가 나가지고 그 사람들은 지금 무슨 주장을 하나 이런 것들을 가만히 이렇게 살펴봤더니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은 다 가짜다 다 돈 받고 돈 벌러 간 사람들이다 뭐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이 잇단 놈들이 다 있나 싶어가지고 너무 화가 나가지고 우리가 대응을 해야 되겠다 그랬더니 대응할 필요가 없대요. 나는 나 혼자라도 하겠다. 해가지고, 이제 피켓을 들고 이제 같이 제가 시위를 그들 앞에서 했습니다만은 그랬더니 더욱 기고만장을 해서 아주 난리를 피더라구요. 그러더니 할머니 기억의 방 앞에서 한번 하더니 다음에는 수원 평화의 소녀상은 앞에서도 그런 시위들을 하더라구요. 여러분들 말이 됩니까 할머니들이 돈 받고 그렇게 그런 일을 했다라는 말이 말이 됩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주장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두 번째까지는 저희들이 맞불 집회를 했는데, 세 번째 올 때는 안 했어요. 안 했더니, 그 다음에는 안 오더라고요. 그래서 이 다음부터는 아예 그냥 대응을 하지 말아야 되겠다. 라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편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역사적으로 검증된 그런 내용들에 대해서 저렇게 막말을 해되고 지금 살아 계신 우리 할머니들한테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런 폭력을 행사하는 저들 저들에게는 어떤 그런 자유라고 하겠지만은 저런 자유는 안 되지 않습니까? 그건 자만이라고 해야 되나요? 그런 것들을 갖다가 좀 이렇게 막을 수 있는 그런 법이 제정돼야 되지 않겠는가 뭐 이를 테면 반민족행위처벌법이라고 해야 되나요? 독일 같은 데서는 그 나치에 대한 그런 어떤 깃발이나 이런 문양을 사용하는 것도 처벌된다고 하잖아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법이 없나 저렇게 분명히 검증된 그런 역사 세계적으로도 검증된 역사에 대해서 저렇게 말을 해야 되는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 더 해야 되나 그런 좀 아쉬운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국회에 왔으니까 우리 국회에서 그런 법을 좀 이렇게 하루빨리 제정을 했으면 좋겠다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전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이제 내일 저의 수요시위를 민족문제연구소가 주관하게 되겠는데요. 그 우리도 이제 소녀상 10주년인데 왜 소녀상 옆에서 우리가 시위를 못하고 있을까? 돌아가신 저희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님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님이 이런 말씀하셨거든요. 해방은 독립운동가가 맞은 게 아니라 친일파가 맞았다 그런 걸 비교해서 이야기한다면 민주주의를 구가하는 것은 독재자들이구나 민주주의를 이렇게 만들어놨더니 표현의 자유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이렇게 만들어놨더니 그 자유를 누리는 것은 결국 그들이구나라고 하는 약간의 그 화남과 그렇지만 역사의 반동은 있지만 진보한다는 것을 믿고 다시 한 번 10년을 기억하면서 더 새로운 미래를. 우리가 또 더 힘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 민족문제연구소와 김서경 김운성 작가가 요즘에 뭐 하고 있나면 광복 80주년이 되면 2025년인데 그때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살아있을까? 아마 안 계실 것 같아요. 지금 14분 살아계시다고 하는데 대화가 되는 분이 7명. 제가 대여섯 명을 다 찾아다니면서 손도장 발도장 찍고 있거든요. 그럼 광복 80주년이면 독립운동가뿐만이 아니라 할머님들 징용 징병 피해자들 그 시대를 살았던 모두가 없어지거든요. 지구상에서. 살아있는데도 이 모양인데. 그 시대가 돌아가면 그 시대를 얼마나 분탕질 칠까라는 거 지금 준비해야 되겠다. 우리끼리 말하면 독립운동가 부재시대가 다가온다 그때 어떻게 준비할 건가요? 위안부 할머님 부재시대가 다가오는데 어떻게 할 건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모두가 돌아가신다 그 시대를 어떻게 이대남들에게 설명할 것인가? 어떻게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감성으로 소녀상보다 더 좋은 감성, 좋은 무기를 만들어서 이대남들을 설득하고 준비해야 되겠다. 라고 하는 결의의 자리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참가자 전체 사진 © 수원시민신문

전라북도 고창에서 올라 온 은희강 활동가는 “일찍이 공직을 마치고 그동안 사익을 위해서 그동안 살아왔구나 퇴직 후에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고민 중에 있어서 저희 사는 곳이 이 할머니들의 삶이 먼 옛날 얘기구나 하고는 관계없는 얘기 이런 얘기로만 들려왔는데 관심을 갖고 주변을 살펴보니까, 친구 어머님 또 우리 마을에 살던 분이 실제 위안부로 가셨고 또 근로정신대에서 또 했던 결국 우리 어머니들이 이야기고 우리 아버지의 이야기더라구요. 그래서 뜻을 모아가지고 지역주민의 정성과 함께 연대하면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10주년이라고 마련해주신 관계자들 그리고 윤미향 의원님 축하드리고 감사드립니다. 이걸로 갈음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짧게 밝혔다.

김포에서 오신 황순현 선생님은 “먼저 평화의 소녀상이 10 주년 기념으로 전 세대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러면서 축하하는 마음과 함께 마음이 무거운 건 사실입니다. 평화의 소녀상이 갖는 역사적인 무게와 무거운 상징적인 의미 때문입니다. 이것은 일본의 전쟁범죄를 세계에 알리고 진정한 사과를 하게 만들어 다시는 지구상의 이러한 만행을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10년의 세월이 흘러도 일본이 꼼짝않고 있습니다. 도리어 자신의 만행을 은폐미화하며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반역사적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김학순 할머니께서 1991년 8월 14일 ‘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살아있는 증거’라는 용기 있는 외침으로 은폐된 역사를 일깨우셨습니다. 또한 1992년 부터 할머님들과 정대협은 일본 정부에 진상 규명과 범죄 인정 공식적인 사죄 등을 요구하는 수요 시위를 열어온 지 30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은 이제 여성 인권 범죄인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을 기억함은 물론 국적 성별 연령을 넘어 전 세계 시민들 가슴 속에 평화와 인권 상징물로 확산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정대협은 수많은 관계자와 시민들의 눈물어린 헌신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가시밭들소 아픈 과거를 드러내며 역사의 진실을 향유해 나간 할머님들께 깊은 감사를 표현합니다. 반면에 국익 명분을 앞세워 이 모든 일을 지나가버린 과거의 일로 단순 치부하려는 안팎의 친일 수구세력에게 강한 유감을 표합니다. 모쪼록 이 자리가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큰 발걸음이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이만 축하의 말씀을 갈음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미래세대인 윤민재 유봉여고 학생은 “2016년 11월 12일 광화문에서 처음 촛불을 들어봤던 날 저는 그날 그곳에서 처음 소녀상을 보았습니다. 집에 가기 전 부모님 잠깐 봤었던 소녀상은 중학교 1학년이었던 저에게는 그저 단발머리 소녀의 동상이었습니다. 소녀상의 의미도 모르고 찍었던 그날에 노란 털모자를 쓴 소녀상의 사진이 6년이 지난 지금 새롭게 느껴집니다. 지금은 저에게 소녀상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의 의지.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 저희 동아리의 방향이 중심입니다. 저는 작년부터 ‘날갯짓’이라는 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날갯짓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의 인권 회복과 학생들의 역사의식 함양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기행 수요집회 참석 캠페인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동아리를 하며 일본군‘위안부’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고 역사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하는 활동이 단순히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중요성을 알고 우리나라 국민으로 어떻게 역사를 대해야 하는지 배우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소녀상의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동아리 기장으로 활동을 하며 여러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다툼이 있기도 했고 학교 선생님과 문제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무조건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랄 때 지쳐서 동아리를 그만두고 싶을 때 소녀상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제가 왜 이런 행동을 할까요? 소녀상을 보고 물으면 할머니들께서 제가 처음 동아리를 시작했을 때의 마음과 의미를 다시 알려주시고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저에게 ‘날갯짓’은 제 가슴속에서 모든 사람들의 인권과 평화를 향해 영원히 날갯짓한 나비를 한 마리 새기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소녀상은 역사와 사회에 관심을 갖게 하고 저를 좋은 사람이 되게 해주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제가 날갯짓과 소녀상을 알고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도와주신 여기 계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라며 자신의 파릇파릇한 경험담을 알렸다.

이날 전시회 공동주최는 국회의원 김상희, 인재근, 송옥주, 이재정, 정춘숙, 강민정, 고민정, 김용민, 민형배, 양이원영, 윤미향, 윤영덕, 이수진(비례대표), 최강욱 의원이고, 단체로는 한국의 김복동의희망, 평화나비네트워크, 세브란스병원노동조합, 거제시일본군‘위안부’피해자기림사업회, 경기평화나비연대, 고창평화의소녀상, 구리시평화의소녀상, 김포평화나비, 논산평화의소녀상, 예산평화나비. 담양평화나비, 동해평화의소녀상, 산청‘함께평화’, 상주평화의소녀상, 서산평화의소녀상보존회, 안양평화나비, 제주평화나비, 용인평화의소녀상관리위원회, 성동구소녀상기념사업회, 수원평화나비, 안산평화의소녀상, 오산평화의소녀상, 의정부평화의소녀상, 익산평화의소녀상, 천안평화의소녀상, 천안평화나비시민연대, 충남대평화의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 충주평화의소녀상, 부산평화의소녀상, 속초평화의소녀상, 파주통일로가는평화의소녀상, 평화나비대전행동, 횡성평화의소녀상위원회, 광복회, 단재신채호기념사업회, 도서출판 말, 장성평화의소녀상, 민족문제연구소, 사회적협동조합 울림, 예술행동두럭,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일본의 희망씨앗기금,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전국행동, ‘한국합병100년’도카이행동실행위원회, ‘표현의자유전, 그후’를 잇는 아이치의모임, 독일의 코리아협의회, 유럽Arts예술협회, 미국의 LA나비, 워싱턴희망나비, 워싱턴소녀상지킴이, 샌프란시스코사회정의교육재단, 호주의 시드니평화의소녀상실천추진위원회, 뉴질랜드의 더좋은세상뉴질랜드한인모임

문의는 윤미향의원실 02-784-0790, 김복동의희망 010-5669-6457로 하면 된다.

김영아 기자

<2021-12-14> 수원시민신문

☞기사원문: 평화의 소녀상 10살! 결코 외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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