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지역에 산재한 친일 잔재 청산 작업이 더디다. 전북도는 민선7기 들어 친일 잔재 청산을 역점사업으로 추진해 왔으나 진척율은 40%를 밑돌았다.
30일 전북도에 따르면 지난해말까지 추진된 친일 잔재 청산은 전체 대상 133건 중 47건에 그쳐 35.3%의 성과를 보였다.
전북도는 지난 2020년 12월 14명의 연구진이 참여한‘전라북도 친일 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 결과보고서’를 발간하고, 친일 잔재 청산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이 용역결과 전북 출신 친일 인사는 118명, 친일 잔재는 133건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친일 잔재 133건 중 청산이 완료된 것은 고작 47건에 불과하고 장·단기 검토 대상 75건, 추진 중인 대상 11건으로 나타났다. 절반이 넘는 56.4%(75건)는 계속 검토 대상이어서 조만간 청산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친일 잔재 청산작업이 더딘 것은 일선 시·군의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다 청산대상이 개인이나 후손 소유여서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곳이 상당수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북 지역 대표적인 친일 잔재로는 전주지역에서 덕진공원 내 취향정을 비롯해 동학군을 살해하고 명성황후를 시해한 기린봉 내 이두황의 묘, 다가공원 내 일제 신사참배지 등이 있다. 군산지역에서는 채만식 생가와 문학비·묘지, 일본인 농장, 창고, 세관, 사찰 등이 대상이다.
고창에는 미당 서정주와 인촌 김성수, 수당 김연수 등 대표적 친일 인물들이 태어났다. 이들의 생가와 문학관, 송덕비 등이 친일 잔재 청산대상이다. 전북도는 당초 시·군 협조를 얻어 시설물 철거와 명칭 변경 등의 청산작업을 시작했으나 걸림돌이 많아 터덕대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시·군의 친일 잔재중에는 이미 많은 예산이 투입돼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곳이 적지 않고, 지역주민들의 정서 또한 철거에 부정적이다.
그나마 군산지역의 경우 친일 인사로 분류된 소설가 채만식의 문학비·문학관·도서관에 대해 청산 의견이 엇갈리자 단체 의견을 들어 명칭 변경을 검토중이다. 옛 대야합동주조장은 농촌 중심지 활성화 사업에 따른 농어민 소득증대 시설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채만식 묘소와 옛 전주지방법원, 신흥동 유곽 등 개인이나 공공기관 소유 시설에 대해선 안내문 설치 등을 협의할 계획이다.
나머지 시·군 지역 친일 청산 대상들은 아직도 대부분 협의가 필요한 상태로 남아 있다.
전북도는 잔재 청산작업의 박차를 가하기 위해 올 상반기 중 ‘친일 청산 자문위원회(가칭)’를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전북도는 친일 잔재 청산계획을 재정비하고 예산도 확보한다는 구상이나 시민단체 시선은 곱지 않다. 지난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친일 청산 TF’를 가동하고 친일 청산에 속도를 내는 듯 해놓고 또 자문위원회를 다시 꾸린다는데 대한 회의적 시각이다.
김재호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은 “친일 청산을 추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관점과 철학, 의지가 확고해야 하다는 것”이라면서 “친일 청산에 관련된 도 조례와 시·군 조례를 제정하는 데 집중해야 하며, 청산대상을 발굴하는 것보다 실행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박용근 기자
<2022-01-30>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