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현대사를 꿰뚫고 있는 MC’ 노기환 후원회원을 만나다
인터뷰 : 김영환 대외협력실장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역사행동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드는 역사전문 팟캐스트 채널”
2017년 5월 15일, 촛불정권의 출발과 함께 역사적폐 청산을 주제로 한 민족문제연구소 팟캐스트가 역사적인 첫 전파를 내보냈다. 그로부터 5년 6개월, 연구소의 팟캐스트는 2021년 12월까지 6차례의 시즌을 거치며 여전히 우리 시대의 중요한 시대정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역사적폐 청산의 목소리를 발신해 왔다. 그동안 팟캐스트를 통해 방송된 에피소드만 무려 210개. 지난 5년 반의 시간 동안 팟캐스트 진행을 위해 강릉에서 서울까지 먼 걸음을 마다 않는 수고를 기꺼이 자청해 온 고마운 이가 있다. 전문 MC로 활약하고 있는 ‘MC노(노기환)’ 후원회원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팟캐스트뿐만 아니라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전국 순회 항일음악 토크콘서트,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식, 5분 친일인명사전, 항일음악회 등 굵직굵직한 연구소 행사의 사회를 도맡아 왔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연구소 창립 30주년 특별기획으로 제작, 방영되고 있는 “과거청산의 빌런들”의 진행을 맡아 명실공히 민족문제연구소의 ‘전속 MC’로 연구소 활동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연구소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그의 진솔한 목소리를 들었다. 대학에서 연극을 했고 연극 연출가의 꿈을 꾸었던 노기환은 스물아홉의 늦깎이로 대학을 졸업하고 어쩔 수 없이 일반 회사에 취직하여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에서 ‘아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회사원 생활 1주일 만에! 그 과감한 결단력이 놀라웠다.
그 후 후배로부터 2002년 월드컵도 앞두고 있으니 스포츠 중계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고 당시 경쟁률이 치열했던 지상파 방송아카데미의 문을 두드렸다. 6개월의 방송아카데미 과정을 마치고 서울에서 지역 케이블TV 방송국을 거쳐 2003년 강원교통방송, 강원지역 MBC에서 프리랜서로 전문MC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강원도에 둥지를 틀고 20년 가까이 꾸준히 활동해 온 그는 지금은 강원도의 지역 축제와 행사, 방송 프로그램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전문 MC로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 연구소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언제인지요?
● “사실 예전부터 민족문제연구소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또 역사에 관심이 많은 그런 시민이었죠. 2017년 초 봄인가 김세호 피디님으로부터 제의를 받았죠. 제가 대학시절부터 참 믿고 따르는 그런 형이에요.” 연구소의 팟캐스트를 비롯해 행사중계, 영상을 도맡아 제작하고 있는 영상팀의 김세호 피디와는 대학시절 문예활동을 함께 한 1년 선후배 절친 사이. 30년의 세월을 거쳐 선후배가 지난날의 열정을 되살리며 연구소 팟캐스트를 위해 다시 의기투합했다.
●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식 때 사회도 보셨죠?
● “우리 연구소 역사의 한 획으로 남을 만한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식 사회를 꼭 제가 보고 싶다. 그래서 제가 재능기부로 했죠.” 연구소가 촛불혁명 1년을 맞아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기금 마련과 항일음악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한 전국 순회 토크콘서트가 2017년 10월 27일부터 ‘촛불 1년, 다시 부르는 항일의 노래’라는 주제로 고양, 창원, 광주, 대구 등지에서 열렸다. 그는 이 행사의 진행을 맡아 이재명, 故 노회찬, 박주민, 김광진 등의 초대 손님과 우리 시대 적폐 청산의 과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전문 MC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 연구소와 작업하면서 느끼신 점이 있다면?
● “하여간 되게 재미있었어요. 시즌별로 나눠서 여러 가지 얘기들을 했는데 하면 할수록 아 내가 진짜 참 무식하구나, 너무 모르는구나. 그런 어떤 자각도 됐죠. 공부도 많이 되고 오히려 내가 좀 돈을 주고 배워야 될 것들을 이렇게 함께 작업을 하면서 즐겁게 배우는구나. 그런 어떤 진짜 즐거움이 있죠.” “일단 제 삶의 활력소죠. 아들 둘을 키우는 입장에서 강릉에 강원도에 2003년부터 노무현 정부 때부터 지금 살고 있는 거 아닙니까. 가끔씩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이런 게 변방의식인가. 세상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는 느낌. 그러니까 강원도에서 20년을 활동했지만 서울에 오면 아무도 모른다. 그런 느낌이 들 때 뭔가 자괴감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일하고 있는 그 분야의 중심은 아니구나. 그리고 강원도라는 지역 자체가 유일한 분단된 도가 아니겠습니까? 남강원도와 북강원도. 그리고 인구도 제일 적고요. 150만 밖에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진짜 어떻게 보면 변방 중에 변방인 거죠. 요새 대통령 선거 기간인데 캐스팅보트조차 될 수 없는 그런 숫자밖에 안 되는. 그래서 진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면 참좋은 곳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 현대사의 질곡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는 강원도의 도민으로서 더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연구소 작업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 삶의 한 축이 된 91학번 강경대의 죽음
● “그리고 사실은 김세호 피디님이 전화했을 때 참 고맙다고 느꼈던 건 사실은 제가 91학번이고 저는 감히 그런생각을 하거든요. 우리 91학번들에게 1980년 5월 같은 존재는 강경대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강경대가 죽은 1991년 4월 26일. 그날이 진짜 아직도 엊그제 같이 생각나고 그리고 강경대 열사가 희생된 그 담벼락하고 그 당시에 제가 살던 우리 엄마 아버지랑 제가 살던 집이 제가 남가좌동에서 태어나서 불과 한 150미터 그 정도밖에 안 떨어졌어요. 거기는 진짜 내가 어렸을 때 자라던 동네거든요. 그러니까 거기에서 죽었다. 대학교 1학년 청년이 공권력에 그것도 쇠파이프에 맞아죽었다. 그러면서 어찌됐건 내 삶의 한 축이 된 것이거든요.
그래서 군대 갔다 와서도 망월동에 가서 강경대 열사 묘지 앞에 담배도 하나 꽂고 오고 열심히 살겠다고 했는데. 결국에는 이제 서른 살부터 방송을 하게 되면서 결국에는 그냥 생업이고 내 앞가림하고 생활인으로서 살 수밖에 없었는데, 김세호 피디가 저에게 또 다시 세상에 대해서 발언할 수 있는 기회 같은 것, 물론 방송 자체가 세상에 대한 발언이죠.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결국은 방송을 하는 건데, 그런데 그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어찌되었던 제가 생활인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 좀 더 의미 있고 가치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거죠. 네 그 제안이 그래서 저는 연구소에 정말 고마움과 감사함을 느끼죠.”
“우리가 공교육에서 받았던 그 역사교육은 너무 잘못되어 있구나. 역사의 맥락을 짚어줘야 되는데 그런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구나. 이걸 하면서 절실하게 느꼈어요. 왜 한국 사회가 지금 이모양 이 꼴이 됐는지 역사에서 알고 그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게 교육이 되어야 되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너무 뭐라 그럴까 사건 위주로 그 사건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는 전혀 교육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내가 너무 무식하구나. 그리고 너무 공부를 안 하면서 책도 안 읽으면서 그렇게 살았구나. 그런 걸 많이 느꼈죠. 그래서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공부도 많이 되고 조금 더 올바른 어떤 역사관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거기에는 우리 팟캐스트에 출연했던 연구소의 연구원 분들이라든가 아니면 밖에 계신 어떤 전문가분들 이런 분들이 진짜 큰 도움이 됐죠.”
2020년 팟캐스트 시즌5는 임헌영 소장의 평론집 <한국 소설 정치를 통매하다> 출간을 맞아 남정현, 조정래 작가 등과 임헌영 소장의 대담을 방송했다. 그는 이 방송에서 임헌영 소장으로부터 ‘한국현대사를 꿰뚫고 있는 MC’라는 극찬을 받았는데 이를 가장 큰 자랑거리로 삼고 있다며 만면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저는 감히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우리 91학번들에게 80년 5월 같은 존재는 강경대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 대학교 1학년 청년이 공권력에 그것도 쇠파이프에 맞아죽었다. 그러면서 어찌됐건 내 삶의 한 축이 된 것이거든요.
● 유튜브, 개인미디어 등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지금 민족문제연구소의 팟캐스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우리가 팟캐스트가 맨 처음에 출발했을 때 1등 했던 거 아세요? 그때가 이제 촛불혁명 끝나고 박근혜가 탄핵되고 막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때 이제 역사적폐 청산 이런 걸로 방송했을 때요. 부동의 1위였던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2위로 제치고 우리가 한 3주 동안 1등을 했어요. 랭킹 1위! 그러니까 나름의 좀 영향력도 있고 뭔가 진짜 맥락을 딱딱 짚어주면서 대중적으로 쉽게 얘기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전문가들, 연구자들이 너무 이렇게 좀 몸을 사리는 경향이 있어요. 단어 선택에도 지나치게 신중하고 자기 전공분야에 세부 전공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 세부 전공 외에 다른 것에 대해서 하여간 말을 지나치게 아끼고 그런 것에 좀 답답함을 느꼈어요.”
“민족문제연구소가 누군가의 역사적인 것에 대한 발언이 이슈가 될 때가 있잖아요. 얼마 전의 멸공 논란 같은 거요. 사실은 저는 대한민국 사회에 가장 큰 문제가 레드 콤플렉스라고 생각하거든요. 레드 콤플렉스 때문에 진짜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이 줄어들어 있고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결국엔 다 어떻게 보면 또 민족문제에서 불거졌다고 생각하거든요. 민족문제연구소라고 하면 좀 고루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니까 그런 이미지를 깨트릴 수 있게 지금 우리의 현안에 대해서 좀 발 빠르게 어떤 코멘트를 해주고 좀 입장도 내고 그런 역할을 해 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연구소가 팟캐스트나 유튜브 같은 미디어를 통해 현안에 대한 발 빠른 대응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다음 팟캐스트에서는 우리의 민족문제를 넘어서서 다른 지역의 민족문제 이런 것도 한번 좀 다뤄보는 기획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예를 들면 우리가 프랑스의 나치 청산 그 예를 정말 많이 들지만 제대로 모르니까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이 됐고 그리고 그 진행과정에서 구성원들 사이에 어떤 논쟁이 있었고 어떤 합의를 이끌어냈는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들어본 적이 별로 없거든요. 그리고 또 프랑스가 좋은 짓만 한 건 아니잖아요. 프랑스도 식민지에서 어마어마하게 나쁜 짓을 많이 했고 그런 것에 대해서 프랑스는 또 사죄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들은 것 같고. 그러니까 다양한 얘기들을 통해서 연구소가 일제에 관한 문제에만 천착하고 있는 게 아니다. 조금 이렇게 확장되는 그런 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 대선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의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첫 번째는 개혁입니다. 조금 더 진짜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선한 스트롱맨이 필요하다. 대통령은 도덕군자를 뽑는 게 아니잖아요. 근데 그렇다고 터무니없이 너무 악당을 뽑을 수는 없잖아요.
두 번째는 평화죠. 한반도에 평화가 없으면 아파트값이 무슨 의미가 있고, 아이들 키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막말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요. 사실 미국이 이상한 생각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는 것이고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은 우리 사회에 얼마나 기득권 세력이 진짜 강고하고 단단한지 그것만 느낀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해방 이후에 반공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시작된 지금의 이 기득권이라는 것들이 얼마나 튼튼하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해지면서 굳어졌는지를 느꼈어요. 노무현 정부 때부터도 느꼈지만요. 그 후 10년이 지나고 문재인 정부가 다시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이후에도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적폐청산과 개혁을 해나가야 된다. 그럴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아까 말했다시피 평화가 없으면 우리의 삶은 지속될 수가 없는 거니까 평화가 또 중요한 게 아닌가 생각해요.”
● 앞으로 연구소나 회원들에게 바라는 점, 활동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 “우리 회원들에게는 연구소가 만드는 콘텐츠에 조금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주십사하는 그런 마음이 있고요. 저희가 ‘과거청산의 빌런들’ 유튜브를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직까지도 조회 수가 제일 많은 게 3,800회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사실 열악한 환경에서 그 정도로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밖에서 막연히 참 힘들었겠구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도 어쨌건 저 정도의 유튜브를 만들어냈다는 것에 좀 더 응원을 많이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아직까지도 제일 많이 조회 수가 나온 게 첫 번째 에피소드인데 3,800회밖에 안 나왔거든요. 그런데 이게 공개되고 며칠 지나서 영화배우 정우성 씨가 나오는 연구소 설립 30주년 축하메시지가 공개되었거든요. 한 이틀 만인가 조회 수가 1만 회를 넘더라고요. 근데 사실 이런 표현 쓰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배신감’을 느꼈습니다(웃음). 앞으로 구독자와 회원 여러분들이 좀 더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공교육에서 받았던 그 역사교육은 너무 잘못되어 있구나. 역사의 맥락을 짚어줘야 되는데 그런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구나. 이걸 하면서 절실하게 느꼈어요. 왜 한국 사회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됐는지 역사에서 알고 그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게 교육이 되어야 되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너무 뭐라 그럴까 사건 위주로 그 사건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는 전혀 교육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내가 너무 무식하구나. 그리고 너무 공부를 안 하면서 책도 안 읽으면서 그렇게 살았구나. 그런 걸 많이 느꼈죠.
“우리 연구소가 갖고 있는 뭐라 그럴까 약한 점, 특히나 좀 젊은 층에게 확장될 수 있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연구소는 매번 그 얘기냐 이런 이미지가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좀 그런 것을 깨뜨릴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봅니다.”
● MC노에게 민족문제연구소란?
● “내 조직이죠. 지금은 후원회원의 지위입니다만 전속 MC로서 어떤 조직원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많이 애용해 주십시오.” ‘한국현대사를 꿰뚫고 있는 MC’ 노기환 회원.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그와의 만남에서 ‘내 조직’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한 애정의 크기와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오늘도 30년 전 강경대의 죽음을 삶의 축으로 삼아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진 공동체의 한 시민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그가 연구소의 전속 MC를 넘어 좀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유쾌한 발걸음을 계속하기를 기대해 본다. 만면에 웃음 띤 얼굴로 강릉역에서 서울로 향하는 열차에 기꺼이 몸을 싣는 그를 앞으로도 오래도록 만날 수 있으리라는 바람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