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출신 및 공주 관련 친일반민족행위자
전병철(작가, 전 역사교사)
세상천지에서 우리나라는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거나 일제에 협력하면서 반민족행위를 한 자인 매국노, 부일협력자, 친일반민족행위자, 친일민족반역자, 보통 친일파라 하는 자들을 심판하지 못하였다.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심판받기는커녕 오히려 대접받으며 지금까지도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그런 탓으로 오늘날까지 우리는 왜곡된 역사 속에서 많은 문제를 안은 채 굴절된 삶을 살고 있다. 비록 잘 살곤 있지만 뭔가 부족하고 한편으론 떳떳하지 못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해방된 지 3년이 지나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고 제헌국회에서 <반민족행위처벌법>이 통과되어 9월 22일 공포됨으로써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구성되어 활동하였으나 이승만과 친일파의 방해로 반민특위가 무력화되는 가운데 <반민족행위처벌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1949년 10월 반민특위가 해체되는 바람에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처벌은 좌절되고 친일 청산, 일제 청산이 흐지부지되었다.
민족을 저버리고 동포에게 피해를 준 자들이 여전히 거리를 활보하는 가운데 ‘을사늑약 전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의 국권침탈·식민통치·침략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함으로써 우리 민족 또는 타민족에게 신체적․물리적․정신적으로 직·간접적 피해를 준 자’에 해당하는 4,389명의 주요 친일행각과 광복 이후의 행적 등을 기록한 친일인명사전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2009년 11월 갖은 우여곡절과 어려움을 딛고 마침내 출간하였다. 2012년 8월에는 모바일(Mobile) 『친일인명사전』인 ‘『친일인명사전』 앱(App: Application)’을 출시하여 친일반민족행위자 파악이 쉬워지고, 친일 청산에 관한 관심과 노력 또한 한층 높아지고 커졌다.
『친일인명사전』 앱에 수록된 친일반민족행위자는 출신 지역으로는 총 4,563명(출신 미상 포함), 분야별로는 총 4,571명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4,389명과 다른 까닭은 이름은 다르나 같은 사람[이명동인(異名同人)]이 중복으로 계산되었기 때문이라고 짐작되는데, 이들 모두를 정리해 보면,
출신 지역 4,563명은 서울 480명, 경기도 321명, 강원도 127명, 충청북도 113명, 충청남도 216명, 전라북도 123명, 전라남도 162명, 경상북도 221명, 경상남도 308명, 황해도 111명, 평안북도 259명, 함경남도 191명, 함경북도 149명, 평안남도 254명, 중국(만주) 19명, 일본 3명, 러시아 2명, 그리고 미상 1,504명이다.
그리고 분야별 4,571명은 매국수작(賣國受爵) 144명, 중추원 303명, 제국의회 11명, 관료 1,137명, 사법 194명, 경찰 799명, 밀정 22명, 군(軍) 227명, 친일단체 413명, 지역유력자 48명, 경제 27명, 언론 44명, 교육학술 54명, 문학 52명, 음악무용 58명, 미술 23명, 연극 43명, 영화 43명, 유림 43명, 불교 56명, 개신교 52명, 천도교 30명, 천주교 7명, 러시아 5명, 만주(경찰) 31명, 만주(관료) 68명, 만주(군인) 231명, 만주(단체) 307명, 만주(사법) 4명, 일본 37명, 중국 58명이다.
충청남도 출신으로 분류된 216명에서 대전(7명에 대덕 4명, 회덕 1명) 12명과 세종(전의) 1명 이렇게 총 13명을 제외하면 203명이 현재의 충청남도 출신에 해당하는데, 이들을 다시 시·군별 많은 순으로 정리하면 공주 34명, 천안(16명에 목천 2명, 직산 2명) 20명, 아산(18명에 온양 2명) 20명, 논산(13명에 강경 1명, 노성 1명) 15명, 부여 10명, 홍성(9명에 홍주 3명, 결성 1명) 13명, 예산 9명, 서산 8명, 당진(7명에 면천 1명) 8명, 보령 6명, 청양(5명에 정산 1명) 6명, 서천 5명, 태안 1명, 그리고 미상 38명이다.
『친일인명사전』 앱에 소개된 공주 출신 친일반민족행위자 34명 가운데 민영기와 민영린, 이철과 이억길은 이름은 다르나 같은 사람인 이명동인(異名同人)이라 중복으로 소개되어 『친일인명사전』 앱에 수록된 실제 공주 출신 친일반민족행위자는 전체 4,389명 가운데 32명이다. 권익채(權益采), 김갑순(金甲淳), 김기홍(金基泓), 김성한(金星漢), 김수철(金洙喆), 김용래(金用來), 김용성(金容晟), 김종석(金鍾錫), 민영기(閔泳琦=민영린閔泳燐, 민영언閔泳彦), 박영준(朴永俊), 박철희(朴喆熙), 성기운(成岐運), 성일용(成一鏞), 성주경(成周絅), 신상철(申尙澈), 신정언(申鼎言), 심종석(沈宗錫), 안수병(安洙丙), 오긍선(吳兢善), 오세기(吳世基), 오재순(吳在淳), 유익렬(劉益烈), 이병무(李秉武), 이상범(李象範), 이철(李哲=이억길李億吉), 이창훈(李昌薰), 이형근(李亨根), 정낙훈(鄭樂勳), 정필화(鄭弼和), 채규항(蔡奎恒), 한상범(韓相範), 홍종국(洪鍾國)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을 분야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중추원] 김갑순(1872~1960) 중추원 참의 / 군수 / 조선임전보국단 이사
- 박철희(1877~1944) 중추원 참의․참의관 / 국민협회 총무
- 홍종국(1885~1951) 중추원 참의․참여관
- [매국수작] 민영기=민영린, 민영언(1872~1932) 백작
- 성기운(1847~1924) 남작 / 경학원 대제학
- 성일용(1899~?) 남작 *성기운 손자
- 성주경(1862~1938) 남작 *성기운 아들
- 이병무(1864~1926) 정미7적, 경술국적 / 자작 / 일본 육군 중장
- 이창훈(1890~1947) 자작 *을사5적 이근택 장남
- [관료] 권익채(1876~?) 군수 / 경부
- 김기홍(1882~?) 이사관 / 군수
- 김성한(1887~?) 군수
- 김용래(1852~?) 군수
- 김용성( 1888~1937)군수
- 박영준(1890~?) 군수
- 심종석(1908~1988) 군수
- 오재순(1880~?) 군수
- 유익렬(1886~?) 군수
- 정낙훈(1895~1989) 군수
- 채규항(1892~?) 군수
- [사법] 김종석(1899~?) 판사 *김갑순 장남
- 한상범(1893~?) 판사
- [경찰] 안수병(1887~?) 경부
- 오세기(1904~?) 고등경찰
- 정필화(?~?) 경부
- [군] 신상철(1924~2005) 일본군 소위
- 이형근(1920~2002) 일본군 대위
- [교육학술] 오긍선(1878~1963) 국민총력조선연맹 상임이사 /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
- [음악무용] 이철=이억길(1903~1944) 조선연예협회 회장 /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위원
- [미술] 이상범(1987~1972) 화가
- [연극] 신정언(1902~?) 공연예술가 / 야담가 / 조선담우회 이사
- [개신교] 김수철(1895~1980) 감리교 목사 / 국민총력 기독교조선감리교단연맹 이사
김갑순은 ‘공주 갑부’·‘충청도 갑부’·‘조선 갑부’로 불리던 인물로, 장남 김종석 이외에도 당시 그가 인연을 맺은 이들은 대부분 친일반민족행위자였다. 성기운은 본인은 물론 아들, 손자까지 3대가 친일반민족행위를 하면서 나라를 팔아먹고 작위까지 받은 매국수작의 집안을 일궜으며, 이창훈은 을사오적 이근택의 장남으로 대를 이어 친일반민족행위를 하였다. 그리고 이상범(홍익대 교수)은 아산 현충사 이충무공 영정을 제작하고 동아일보 미술담당 기자로 있을 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 시상식 사진에서 일장기(日章旗)를 지워 보도(일장기말소사건)하는 등 민족적인 활동을 해왔으나 이후 친일로 돌아서 일제에 협조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김수철(감리교 목사) 또한 공주영명학교 3·1독립만세운동 이끄는 등 독립운동을 펼쳤으나 나중에는 친일로 돌아서 일제에 협력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이들 공주 출신 친일반민족행위자 32명은 언제 죽었는지 불분명한 자가 15명으로 가장 많으며, 일제강점기에 죽은 자는 7명, 해방 이후에 사망한 자는 10명이다. 이 가운데 해방 직후 1명(1947), 6·25전쟁 기간 1명(1951), 1960년대 2명(1960/1963), 1970년대 1명(1972), 1980년대 3명(1980/1988/1989) 2000년대 2명(2002/2005)이 사망하였다. 대부분 해방 이후에도 처벌받지 않고 별 탈 없이 잘 살다가 죽었다. 처벌받기는커녕 일제강점기 누리던 부귀영화를 계속 누리는 가운데 후손에게 이어져 지금까지도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다. 참 묘한 일이라고 할까, 세상에 이런 일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배알도 없는 민족이라고나 할까, 그런데도 아무 일 없는 듯 다들 잘살고 있으니 참 묘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역사는 기억하자는 것이기도 하다. 잘한 것은 기억하여 오늘에 되살리고, 잘못한 것은 기억하여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잘잘못을 가려 ‘역사의 교훈’을 삼기도 한다. 하여 독립운동가는 누구인지 또 친일반민족행위자는 누구인지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알아야 면장(面墻)을 면(免)[면면장(免面墻)]할 수 있다. 무엇보다 누가 친일반민족행위자이고 독립운동가인지를 모르면 자칫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애국자로 둔갑하여 살 수 있고, 마치 독립운동가는 무능하여 못살고 있는 것처럼 여길 수 있다. 그러면 앞으로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사는 것보다 나라를 팔아먹고 민족을 배반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할 것이다. 이런 일이 더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공주 출신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누구인지 꼼꼼히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더불어 공주 출신은 아니어도 공주와 관련을 맺은 친일반민족행자 또한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공주와 관련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공주 행정을 책임진 공주군수(공주시장)와 공주 교육을 책임진 공주교육장, 또 충청남도 행정을 책임진 충청남도관찰사(충청남도장관, 충청남도지사)와 충청남도 교육을 책임진 충청남도교육감을 알아보는 게 우선일 것이다.
먼저 공주군수, 공주시장, 공주교육장을 지낸 자로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반민족행위자로는 공주 출신 김갑순(金甲淳) 1명과 출신을 알 수 없는 권태용(權泰容=권택수權宅洙=권봉수權鳳洙)과 박용관(朴容觀) 2명, 그리고 지희열(池喜㤠, 충남 서산), 신우선(申佑善, 서울 출신), 이석기(李錫基, 충남 부여) 3명 등 총 6명으로 파악되는데, 1945년 공주군수를 지내던 이석기는 재임 중에 해방을 맞았다, 이들 가운데 김갑순과 권태용은 구한말 공주군수를 지냈으며, 나머지 4명은 모두 일제강점기에 공주군수를 지냈다. 김갑순은 1906년 이외에 경술국치(1910년 8월 29일) 전후에도 공주군수를 지냈다고 하나 정확한 확인이 필요하다. 해방 이후 공주군수를 하거나 공주시장, 공주교육장을 역임한 사람 가운데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파악된 자는 1명도 없으며, 공주군수를 지낸 6명이 전부이다.
- [공주군수] 친일반민족행위자 6명
- 丙午(1906) 김갑순(1872~1960) 중추원 참의 / 군수 / 조선임전보국단 이사 *공주 출신
- 戊申(1908) 권태용=권택수=권봉수(1874~?) 군수
- 辛亥(1911) 박용관(1876~1919) 군수
- 甲寅(1914) 지희열(1875~1941) 군수
- 丙辰(1916) 신우선(1873~1943) 군수
- 乙酉(1945) 이석기(1908~1975) 군수
오늘날 충청남도지사에 해당하는 충청남도 관찰사·감사·장관․지사를 지낸 자로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반민족행위자는, 구한말 관찰사로 박제순(朴齊純, 경기 용인), 이재곤(李載崐, 경기 양주), 이건하(李乾夏, 경기 광주), 정주영(鄭周永, 충남 예산), 박용대(朴容大, 서울 출신), 이근호(李根澔, 서울 출신), 권중현(權重顯=권재형權在衡, 충북 영동), 한진창(韓鎭昌, 서울 출신), 최정덕(崔廷德, 출신 미상) 등 총 9명이 파악되고 있다. 이들 가운데 공주 출신은 1명도 없으며, 경기도 광주 출신 이건하는 관찰사를 두 차례(공주부관찰사와 충청남도관찰사) 역임하였다. 최정덕은 1908년 6월 충청남도관찰사 겸 충청남도재판소 판사에 임명되어 재임 중에 한일병합(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이 이루어져 그를 충청남도 마지막 관찰사, 충청감영(忠淸監營)이 있던 공주 선화당(宣化堂)의 마지막 주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박중양이 1910년 8월 충청남도관찰사로 부임하였기에 그를 마지막 관찰사로 보는 주장도 있는데, 최정덕이 충청남도관찰사(재임: 1908년 6월~1910년 9월)를 지낸 자료는 찾을 수 있었으나, 박중양이 충청남도관찰사로 지낸 자료는 찾지 못하였다. 최정덕은 1910년 10월 조선총독부 소속 경상북도 참여관이 되고, 박중양은 초대 충청남도장관(재임: 1910년 11월~1915년 3월)이 되어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친일반민족행위를 하였다. 이상의 관찰사는 충청도관찰사, 공주부관찰사, 홍주부관찰사, 충청남도관찰사를 대상으로 하였다. 충주부관찰사는 제외하여 충주부관찰사로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민영기(閔泳綺, 1858~1927, 서울 출신)는 포함하지 않았다.
- [구한말_관찰사] 친일반민족행위자 9명
- 甲午(1894) 박제순(1858~1916) 을사5적․경술국적 / 자작 / 중추원 고문 / 경학원 대제학
- 乙未(1895) 이재곤(1859~1943) 자작 / 중추원 고문
- 丙申(1896) 이건하(1835~1913) 남작
- 戊戌(1898) 정주영(1860~1923) 남작
- 庚子(1900) 박용대(1849~1927) 남작
- 辛丑(1901) 이근호(1861~1923) 남작
- 乙巳(1905) 이건하(1835~1913) 남작
- 乙巳(1905) 권중현(1854~1934) 을사5적 / 자작 / 중추원 고문
- 乙巳(1905) 한진창(1858~1935) 중추원 참의
- 1908~1910 최정덕(1865~ ? ) 참여관 / 일진회 총무원
조선총독부는 관찰사를 대신하여 지방 행정의 책임자를 장관(도장관)이라 하였다가 지사(도지사)로 바꾸었다. 일제강점기 충청남도장관·지사를 지낸 자는 총 17명으로 이들 가운데 일본인 5명을 제외한 나머지 조선인 12명 모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 초대 도장관 박중양(朴重陽, 대구 달성), 6대(도장관을 빼면 3대) 도지사 김관현(金寛鉉, 서울 출신), 7대 석진형(石鎮衡, 경기 광주), 8대 유성준(兪星濬, 서울 출신), 9대 신석린(申錫麟, 서울 출신), 10대 유진순(劉鎮淳, 평남 숙천), 12대 도지사 이범익(李範益, 충북 단양), 13대 정교원(鄭僑源, 대구 출신), 14대 이성근(李聖根, 황해 금천), 15대 이기방(李基枋, 평북 태천), 16대 송문헌(宋文憲, 서울 출신), 17대 박재홍(朴在弘, 충남 논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가운데 공주 출신 도장관·도지사는 1명도 없고 모두 다른 지역 사람이다.
- [일제강점기_충청남도장관·지사] 친일반민족행위자 12명
- 1910~1915 박중양(1874~1959)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의원 / 중추원 부의장 / 도지사
- 1921~1924 김관현(1876~1948) 중추원 참의 / 도지사 / 동민회 평의원
- 1924~1926 석진형(1877~1946) 도지사 / 참여관
- 1926~1927 유성준(1860~1934) 중추원 참의 / 도지사
- 1927~1929 신석린(1865~1948) 중추원 참의 / 도지사 / 동민회 회장
- 1929~1931 유진순(1881~1945) 중추원 참의 / 도지사
- 1935~1937 이범익(1883~?) 중추원 참의 / 도지사 / 만주군 참의부 참의 / 젠다오성 성장
- 1937~1939 정교원(1887~?) 중추원 참의 / 도지사
- 1939~1941 이성근(1887~?) 도지사 / 경시 / 매일신보사 사장 / 조선임전보국단 상무이사
- 1941~1942 이기방(1888~?) 도지사 /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
- 1942~1945 송문헌(1892~1970) 도지사 / 사무관 / 군수
- 1945~1945 박재홍(1892~1977) 도지사
해방되었지만 우리나라는 전승국이 아닌 탓에 곧바로 정부가 들어서지 못하고 미군(美軍)이 다스리는 3년간의 미군정기(美軍政期)를 맞았다. 이때 충청남도지사를 지낸 박종만(朴鍾萬, 충남 출신)과 서덕순(徐悳淳, 공주 출신)은 비록 친일행위를 한 여지는 있으나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단정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며 논란이 된 인물로, 『친일인명사전』에는 수록되지 않았다. 다만,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박종만(朴鍾萬, 1913~?, 충남 출신)과 미군정기 충청남도지사를 지낸 박종만(朴鍾萬)과 동명이인(同名異人)인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박종만은 “1932년 함경남도 원산중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달 경성제국대학 예과 문과에 입학(『친일인명사전』 앱 “박종만”)”했다는 기록과 충청남도지사를 지낸 박종만은 “1932년 현 논산시 광석면 면협의원에 선출(『동아일보』 1932.06.02.)”됐다는 기사로 보아 서로 다른 사람으로 짐작된다. 하여 미군정기 충청남도 도지사를 지낸 박종만과 서덕순은 친일행위 여부에 관한 논란이 있을 뿐,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반민족행위자는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충청남도청 홈페이지를 보면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부터 충청남도지사가 초대(1대), 2대, 3대로 이어져 2021년 12월 현재 38대 도지사까지 소개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반민족행위자는 6대 도지사 김학응(金鶴應, 충북 괴산)과 7대 도지사 김홍식(金弘植, 충남 아산) 2명이다. 다만, 2대 도지사 진헌식(陳憲植, 충남 연기, 현 세종)은 친일행위 의혹을 받았다. 진헌식은 해방 직후 반민족행위자처벌특별위원회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민족을 해친 현저한 사실이 없고 고향에서 (국회의원에) 입후보해 다수 민중의 용서를 받았다”는 이유로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진헌식은 친일행위 의혹이 있을 뿐,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반민족행위자는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 [해방 이후_충청남도지사] 친일반민족행위자 2명(3명은 논란, 의혹만 있었음)
- *친일 논란* 미군정기 도지사(1946.07.~1947.07.) 박종만
- *친일 논란* 미군정기 도지사(1947.11.~1948.10.) 서덕순
- *친일 의혹* 제2대 도지사(1951.12.~1952.08.) 진헌식
- 1958.07.~1960.04. 제6대 도지사 김학응(1899~ ? ) 군수
- 1960.05.~1960.10. 제7대 도지사 김홍식(1909~1974) 군수
교육감(敎育監)은 각 시·도의 교육 및 학예 업무를 집행하는 시·도 교육청의 장으로서 충청남도교육청 홈페이지를 보면, 충청남도교육감은 1963년부터 초대(1대), 2대, 3대로 이어져 2021년 12월 현재 17대 교육감까지 소개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반민족행위자로는 초대 교육감 황운성(黃雲性, 충남 연기, 현 세종) 1명으로 파악된다. 초대 충청남도교육감으로 시작하는 1963년 이전에 교육위원회 등이 있지만, 이에 해당하는 인물은 따로 조사하지 않았다.
- [충청남도교육감] 친일반민족행위자 1명
- 1964.02.~1968.02. 제1대 교육감 황운성(1905~1981) 군수
이상 공주군수와 공주교육장에 해당하는 인물과 충청남도지사와 교육감에 해당하는 인물을 종합해 보면, 공주군수 6명(공주 출신 김갑순 포함), 충청남도지사 23명(구한말 관찰사 9명, 일제강점기 도지사 12명, 대한민국 도지사 2명), 충청남도교육감 1명, 총 30명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파악된다. 이 가운데 공주 출신 김갑순을 뺀 29명이 다른 지역 출신이다. 그리고 충청남도지사로서 현재 공주지역에 공덕비(功德碑)·불망비(不忘碑)·거사비(去思碑)를 비롯한 기념비를 남기고 있는 이로는 박제순과 박중양, 김관현 3명이 있다. 또 공주 출신은 아니어도 공주지역에 무덤을 둔,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이근택(李根澤, 충북 충주)이 있다. 이렇게 보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반민족행위자로서 권태용(권택수, 권봉수), 박용관(1876~1919), 지희열(1875~1941), 신우선(1873~1943), 이석기 등 5명의 공주군수와 박제순, 박중양, 김관현, 이근택 4명은 공주 출신은 아니지만, 공주와 특별한 관련이 있는 인물로 볼 수 있다.
- [공주지역 문화유산 관련] 친일반민족행위자 4명
- 박제순(1858~1916, 경기 용인) 을사5적․경술국적, 자작, 중추원 고문, 경학원 대제학
- 박중양(1874~1959, 대구 달성)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의원, 중추원 부의장, 도지사
- 김관현(1876~1948, 서울 출신) 중추원 참의, 도지사, 동민회 평의원
- 이근택(1865~1919, 충북 충주) 을사5적 / 자작 / 중추원 고문
또 공주 출신은 아니지만 공주 지역에 있는 학교 교가 등을 작사하거나 작곡한 자로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반민족행위자로는 김성태(金聖泰, 서울 출신)와 이흥렬(李興烈, 함남 원산) 등이 있다.
- [공주지역 학교 교가 제작 관련] 친일반민족행위자 2명
- 김성태(1910~2012) 양악 작곡가, 경성음악연구원 교수
- 이흥렬(1909~1980) 양악 작곡가, 피아노 연주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공주 출신 32명과 공주 관련이 많은 11명(공주군수 5명, 문화유산 관련 4명, 교가 관련 2명), 이들 43명에 대해서는 좀 더 관심을 갖고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다 기억하지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기억하면 된다. 적어도 공주사람이라면 이들을 기억해 이들의 죄를 처벌(처단)하지 않은 과거를 반성하는 동시에 우리 지역 일제 청산을 앞당겨 공주 하늘이 더욱 환하고 한결 떳떳해지길 바란다.
현재 충청남도에서는 일제 잔재 청산에 힘을 쏟고 있다. 홈페이지에서 역대 도지사를 소개하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밝혀진 자에 대해서는 이들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사실을 밝히고 이들이 저지른 친일반민족행위까지 요약하여 소개하고 있다.(아래 붉은색 테두리로 표시한 부분)
충청남도교육청에서도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작사하거나 작곡한 교가를 조사하여 교체를 권장하고 있으며, 학교 안에 세워진 각종 기념비 가운데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기리는 비석을 찾아내 교육 자료로 활용하는 등등 일제 잔재 청산에 힘을 쏟고 있다. 또 공주시에서도 친일반민족행위자와 관련된 비석 안내문에 “친일행적이 밝혀져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탄받는 인물”이라고 간단히 밝히는 일 등을 하고 있다. 이제라도 일제 잔재 청산에 국가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게 천만다행이다. 한편 사회단체에서도 오래전부터 꾸준히 일제 청산에 솔선수범하고 있다.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묘를 이전하거나 최소한 그들을 단죄하는 비석(안내문)을 세우는 일은 물론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기리는 기념물에 단죄비(斷罪碑)를 세우는 등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일에 앞장서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생활 속에서, 주변에서 일제 잔재에 해당하는 것들을 마땅히 청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럴 때 대한민국 사회가 한결 밝아지고 진정 자랑스럽지 않을까 싶다.
<2022-02-08> 뉴스채널1
☞기사원문: 내가 사는 공주에 이런,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