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사

[한겨레] “사도광산 등재 추진은 ‘식민주의 극복 노력’ 역주행”

632

[한겨레S] 기획
일본, 또 역사부정 세계유산 추진

일 NGO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나카타 미쓰노부 사무국장 인터뷰
“조선인 강제동원 한국 주장은 사실
한·일 합의 없는 유산등재도 부적절”

일본 정부가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사도광산은 조선인 1500여명이 강제노역에 동원됐던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사진은 사도광산 금은 추출터. 사도광산 누리집 갈무리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역사를 부정한 채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을 추진하면, 이제까지 사도광산의 (진정한) 역사적 가치 확대에 힘써온 이들, 역사적 진실을 밝히려 싸워온 이들, 그리고 (전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존엄을 짓밟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방침이 알려지자, 지난달 25일 일본 시민단체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는 이런 성명을 냈다. 이어 지난 1일 일본 정부가 실제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강행하자,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를 비롯한 일본 내 뜻있는 시민단체들은 잇따라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이 에도시대 전통 수공업으로 광물을 캔 역사적 공간이라고 설명하지만, 동시에 이곳은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조선인 1500여명이 강제노역에 동원된 비극적 장소다. 일본 정부는 아픈 역사를 감춘 채 센고쿠(전국)시대부터 에도시대까지 역사만 세계유산 등재 대상으로 삼겠다는 태도다.

앞서 일본 정부는 2015년 하시마(군함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과정과 판박이 같은 태도를 보였다. 당시엔 일단 하시마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해주면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되어 강제로 노역했던 일이 있었고, 이러한 역사를 함께 알리기 위한 인포메이션 센터 등을 설치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이를 지키지 않았다. 지난해 약속을 이행하라는 유네스코의 재요구마저 무시한 상황에서, 다시 한국인 강제동원 역사가 아로새겨진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나카타 미쓰노부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사무국장은 <한겨레>에 “사도광산이 강제노역의 현장이었다는 한국 쪽 주장은 사실”이라며 “일본 정부는 역사를 부정하지 말고, 강제노동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유네스코 역시 관련국인 한-일 간 합의 없이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승인할 경우, 세계문화유산의 존재 의미 자체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터뷰는 10일 전자우편 서면 답변을 통해 이뤄졌다.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조선인 강제노역 역사 또 부정

―사도광산은 어떤 곳인가.

“사도광산은 1600년대 초 금맥이 발견된 뒤, 한때 일본 최대 금광산이었던 곳이다. 일본 정부가 에도시대 전통 수공업으로 광물을 캤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세계유산으로서 가치를 주장하지만, 한편으로 가혹한 노동과 산업재해, 그에 대한 노동자의 저항이 있었다. 특히 2차대전 당시 총동원체제 아래서 일본 정부가 식민지 조선 사람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한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하시마의 역사적 진실을 알리겠다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채, 사도광산 등재 시도가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유네스코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가 하시마 문제에 대해 일본 쪽에 ‘강한 유감’을 표시하고 재이행을 요구하는 내용을 결의했다. 당장 일본 정부는 12월까지 하시마의 강제동원 역사 기록을 포함한 ‘(산업유산정보센터 전시 내용) 이행 상황 개선 보고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해야 한다.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 숨겨왔던 강제동원의 역사적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을지, 지금이 중대한 국면이다. 이번에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 과정에서도 ‘(사도광산에서) 조선인 강제동원이 있었다는 건 한국의 독자적인 주장일 뿐’이라는 인식을 바꾸지 않는 이상 유산 등재 가능성 역시 절망적이라고 생각한다.”

―애초 올해 등재 추진에 부정적이던 일본 정부가 아베 신조 전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을 비롯한 보수 강경파들의 ‘유약한 외교’ 비판 등을 견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1995년 이른바 ‘무라야마 담화’를 내놨다. ‘(일본이) 전쟁의 길을 걸어 (…) 아시아 제국의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며 사죄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무라야마 담화 등에서 내놓은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는 태도에 반대하며, 식민지배 책임을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 등에서 역사 수정(조작)에 앞장섰던 대표적 정치가가 아베 전 총리와 다카이치 회장이다. 게다가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올여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아베 전 총리 같은 보수층으로부터 ‘소극적’이라고 찍힐 것을 우려해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신중했던 태도를 바꾼 것이다.”

―강경파들이 사도광산 등재에 집착하는 까닭은 뭐라고 보나.

“사도광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겠다는 실제 목적도 있겠지만, 아베 전 총리 같은 강경파들은 이를 이용해 보수 기반을 넓히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거 같다. ‘한국’이라는 외부의 적을 만든 뒤, 민족주의와 이웃 나라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겨 자신들의 지지 세력을 넓히는 식이다. 혐한 등을 통해 내셔널리즘을 부추겨 보수 세력을 결집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역사부정, 정치적 악용 안돼”

―이 문제를 놓고 일본 내부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건 왜일까.

“먼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필요가 있다. 두차례 비참한 세계대전을 겪은 국제사회는 전쟁 억제를 위해 국제연합(UN)을 출범시켰다. 이어 ‘인간 존엄성과 평등권을 인정할 때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이 된다’는 요지의 세계인권선언을 내고, 교육·문화·과학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속 평화의 성’을 만들기 위해 유네스코(UNESCO)를 설립했다. 더 폭넓은 사회·문화·역사·자연적 상황과 배경에 따라 세계문화유산의 가치를 결정해야 한다는 내용도 채택했다. 이런 뜻에 따라 세계유산은 인류 평화를 촉진할 밑거름이 돼야 한다. 사도광산과 관련해 지금처럼 부정적인 역사를 외면하는 태도로는 세계유산에 등재될 수 없다.”

―<마이니치신문>은 최근 이 문제와 관련한 사설에서 “이웃 나라와 대결 자세를 연출하려는 생각으로 문화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동이 오히려 국익을 해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과거 한-일 간 징용공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다수 언론이 일본 정부 쪽 주장을 받아 쓰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역사를 올곧게 인식한다는 점에서 식민지 강제동원 문제를 부정할 수 없다’는 논조의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다만 여전히 <요미우리신문>, <산케이신문>, <엔에이치케이>(NHK)처럼 일본 정부 입장과 움직임 위주로 보도하는 모습도 있다. 특히 엔에이치케이는 ‘역사전(쟁)’이라는 문구를 섞어 이 문제를 한-일 간 전쟁처럼 비유하는데, 역사 문제에 ‘승패’를 따진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는 쪽으로 논의해야 한다. 갈등을 부추겨 이익을 얻는 게 누구인지 간파해야 한다.”

―하시마 역사부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터라 현실적으로 추가 등재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유네스코는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관련국 간 대화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일본 입장에선 한국과 ‘외교적 전쟁’을 벌이는 대신 대화를 해야 한다. 한편으론 유네스코가 일본 정부의 압력 등에 굴복해 한-일 간 합의가 없는 상태로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승인하면, 이번에는 세계문화유산의 존재 의의 자체를 잃게 될 것이란 우려가 있다.”

식민주의 극복 ‘역주행’ 우려 커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은 한-일 관계에 또 다른 악재가 되고 있다. 지난 3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과 한 통화에서 “일본 정부가 한국인 강제노역의 아픈 역사를 외면한 채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 추진키로 결정했다. 깊은 실망과 항의의 뜻을 표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저지를 위한 태스크포스(TF)도 꾸렸다. 한-일 간 또 다른 긴장의 끈이 당겨지고 있는 것이다. 10일엔 문재인 대통령이 <연합뉴스> 및 세계 7대 통신사와 한 합동 서면 인터뷰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며 “과거사 문제 해결과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에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는 내년 5월 유네스코 자문기관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코모스·ICOMOS)의 권고 등을 거쳐 같은 해 여름께 결정된다.

사도광산 내 갱도. 연합뉴스

―역사문제에 대한 일방적 태도가 또 다른 갈등을 부르고 있다.

“2001년 유엔이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인종차별철폐회의를 열어 ‘식민주의는 비난받아야 하며 재발은 방지되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더반 선언’을 채택했다. 이후 국제사회는 식민주의 극복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3년 전 징용공에 대한 한국 대법원 판결이나 일본 정부의 주권면제를 배제하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 구제를 명령한 판결도 그 흐름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 일부 보수층이 완전히 반대의 길을 걸어가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당장 접점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일본의 경우,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전후 보상이나 식민지 지배 책임의 과제로서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과거로부터의 연구를 축적해왔다. 그러나 최근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보면, 강제동원과 관련한 역사부정에 비판적인 태도가 오늘날 일본 시민사회의 보편적 인식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주요 일본 언론들도 사도광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한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는지는 제쳐두고, 한-일 간 정치 대립의 문제로 보도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을 인정할지 여부가 유일한 논점인 것처럼 보도하는 모습도 있는 것 같다. 객관적이고, 냉정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2022-02-13> 한겨레

☞기사원문: “사도광산 등재 추진은 ‘식민주의 극복 노력’ 역주행”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