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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일제강점기 후지코시 강제노역 피해자 안희수 할머니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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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6학년 때 강제 동원…1·2심 승소하고 대법원 선고 앞둬

근로정신대 피해자 안희수 할머니 별세
(창원=연합뉴스) 한지은 기자 =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피해자 안희수 할머니가 21일 별세했다. 향년 93세. 사진은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정다운요양병원에 마련된 빈소. 2022.2.21 contactje@yna.co.kr

(창원=연합뉴스) 김선경 기자 =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피해자 안희수(93, 경남 마산) 할머니가 별세했다.

21일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안 할머니는 이날 새벽 창원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

안 할머니는 마산 성호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44년 일본 도야마 군수공장 후지코시 회사로 동원돼 강제노역 피해를 봤다.

당시 일본인 교사가 “후지코시에 가면 상급학교에도 다닐 수 있고, 꽃꽂이도 배우고 돈도 벌 수 있다”는 등 거짓말로 선동했기 때문이다.

후지코시는 조선에서 근로정신대로 가장 많이 동원한 기업이다.

1945년 자료에는 조선 전국에서 동원된 1천89명이 해당 회사에 근무 중인 것으로 기록돼 있다.

안 할머니는 후지코시 공장으로 끌려간 이틀 뒤부터 바로 군대식 훈련을 받는 등 혹독한 노역을 이어갔다.

피해 증언하는 안희수 할머니 [연합뉴스 자료사진]

아침 식사는 밥 4분의 1 공기, 단무지 한 개, 된장국이었고, 점심은 삼각빵 한 개가 전부였다.

안 할머니는 자신의 몸 보다 두 배 이상 큰 선반기계를 이용해 여러 작업을 했다.

그중 하나는 움직이는 기계에 기름을 넣어주면 그 기름에 깔때기를 대고 입으로 빨아올리는 일이었다.

이때 기름을 많이 마셔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안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중노동으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느꼈고, 단 한 번도 노동에 대한 임금도 받은 적이 없다고 생전에 진술했다.

이에 안 할머니는 2003년 후지코시를 상대로 동료 피해자들과 소송을 진행했지만 일본 현지 법원은 2011년 최종 패소 판결을 내렸다.

2013년에는 후지코시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1·2심은 승소했다.

2019년 1월 2심 승소 이후 대법원의 마지막 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 할머니의 못다 한 소송은 유족이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창원정다운 요양병원 특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3일 오전 7시 30분이다.

김선경 기자 ksk@yna.co.kr

<2022-02-21> 연합뉴스

☞기사원문: 일제강점기 후지코시 강제노역 피해자 안희수 할머니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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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사죄 못받고’…후지코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안희수 할머니 발인

전국 각지에서 추모 보내…”정부가 우선 보상해야, 대법 판결 기다려”

근로정신대 피해자 안희수 할머니 발인
(창원=연합뉴스) 한지은 기자 =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안희수 할머니의 발인이 23일 오전 치러졌다. 사진은 유족이 안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들고 이동하는 모습. 2022.2.23 contactje@yna.co.kr

(창원=연합뉴스) 한지은 기자 = 일제강점기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안희수 할머니의 발인이 23일 오전 치러졌다.

발인제는 안 할머니의 빈소가 마련된 경남 창원 정다운요양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됐다.

유가족은 엄숙한 분위기로 말없이 안 할머니의 명복을 빌었다.

안 할머니의 유족은 “어머니께서 긴 시간 강제노역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나서서 억울한 피해자들을 보상하고, 대법원판결도 빨리 나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대표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안 할머니는 내가 만난 분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말씀을 조리 있게 잘하시던 어른”이라면서 “오랫동안 활동하시는 걸 옆에서 지켜보며 함께했기 때문에 한국 재판에서 결과를 보지 못하고 떠나신 게 안타까운 심경”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일본 기업에 사죄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한을 묵과할 수 없다”며 “일본 기업·정부에 사죄받을 수 있도록 할머니 몫까지 싸워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안 할머니는 지난 21일 오전 5시 20분께 93세 일기로 숨을 거뒀다.

안 할머니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 각지에서 추모의 뜻을 보냈다.

빈소 앞에는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비롯해 정당과 국회의원 등이 보낸 조화가 놓였다.

안 할머니는 마산 성호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44년 일본인 교사의 거짓말에 속아 일본 도야마 군수공장 후지코시 회사에서 강제노역 피해를 봤다.

안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중노동으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느꼈고, 단 한 번도 임금을 받은 적이 없다고 생전에 진술했다.

이에 2003년 후지코시를 상대로 동료 피해자들과 소송을 진행했지만, 일본 현지 법원은 2011년 최종 패소 판결을 내렸다.

2013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후지코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2심 승소했다. 이후 대법원의 마지막 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 할머니의 못다 한 소송은 유족이 이어간다.

한지은 기자 contactje@yna.co.kr

<2022-02-23> 연합뉴스

☞기사원문: ‘사죄 못받고’…후지코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안희수 할머니 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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