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역사관·식민지역사박물관
메타버스로 103주년 3·1절 행사
가상공간 익숙한 어린이 참여 몰려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1일 오전 11시 시민들이 한구절씩 독립선언문을 읽어내려가는 영상이 상영되고, 막바지에 “대한독립 만세!”라는 선창이 나오자 참석자 200여명이 일제히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여느 3·1절 행사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이곳은 오프라인이 아닌 메타버스 플랫폼 ‘모임(MOIM)’ 속 가상공간이다.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이날 디지털 가상공간인 메타버스를 통해 103주년 3·1절 행사 ‘메타버스 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을 열었다. 참석자들은 자신들의 캐릭터를 대강당으로 보이는 공간에 앉혀놓고 클래식 크로스오버 그룹 ‘레이어스 클래식’의 연주와 창작집단 ‘탈무드’의 3·1만세운동 재현 연극 등을 감상했다. 행사 중간중간 ‘박수하기’ 기능으로 박수를 보냈고, 두 차례 마이크를 켜고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짖었다. 간혹 연결이 불안정하고 영상 재생이 끊기는 일이 있었지만, 메타버스 행사를 중계하는 유튜브 댓글창에는 “다 같이 만세를 외치니 감동적이다”, “처음 진행하는 거라니 참을성을 가지고 독립투사를 추념하자”는 댓글이 올라왔다.
오미크론 확산세로 오프라인 행사를 열기 어렵다 보니 여러 단체들이 메타버스를 활용해 ‘코로나 3년 차 3·1절’을 기념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3개월 전부터 메타버스를 이용한 행사를 준비해왔다. 지난달 23일부터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재현한 맵을 운영하고 있다. 이날 제페토 내 역사관 맵을 방문해보니 실제 역사관 외벽에 걸려있는 태극기를 똑같이 볼 수 있었다. 옥사 안으로 들어가니 국가보훈처에서 선정한 ‘이달의 독립운동가’와 관련한 자료가 전시돼 있다. 계단을 점프해서 태극기가 꽂힌 정상까지 오르는 ‘점프존’이나, 서대문형무소와 관련한 퀴즈를 풀 수 있는 ‘OX퀴즈존’ 등 이벤트도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누적 방문객은 이날까지 약 1700명이다.
서울 용산에 위치한 식민지역사박물관도 메타버스 플랫폼 ‘게더타운’에 박물관을 구현한 관람 공간 ‘103년 전 그해 우리는’을 만들었다. 이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이 대한적십자회가 발행한 ‘3․1운동 영문 화보집’에 수록된 3·1운동 당시 시위대와 일본군 등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해설하는 시간을 네차례 가졌다. 영상 등 다양한 전시자료를 볼 수 있도록 곳곳을 꾸며놨고, 효창공원을 재현한 공간에서는 실제 공원 내에 위치한 백범 김구 선생, 삼의사(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의 묘역부터 의열사까지 구현돼 이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이날 250여명이 메타버스에 접속했다고 밝혔다.
이날 가상공간 행사는 메타버스에 익숙한 어린이들의 참여가 많았다. 메타버스 플랫폼 화면 곳곳에 형제끼리, 혹은 혼자 컴퓨터 카메라를 응시하는 어린이들이 보였다. 정석우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대리는 “역사관 방문객을 제한하다 보니 이를 대체할 방안으로 메타버스 행사를 처음 시행하게 됐는데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 자녀들과 의미 있게 3·1절을 보내고 싶다며 참석 신청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2022-03-01>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