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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나는 일본군 조병창서 무기만든 소년” 94세 노인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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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피해자 문주현옹…日항공기 제작소로 재차 끌려가

강제 동원 피해자 문주현(94)옹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연합뉴스) 홍현기 기자 = “공업학교와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했어. 학비도 안 들고 공부할 수 있다고 했지.”

일제강점기인 1943년 14살 나이에 인천에 있던 일본군의 무기공장 ‘일본 육군 조병창’에 강제 동원됐던 문주현(94)옹은 최근 대전시 자택에서 동원 과정을 담담하게 전했다.

문옹은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구술 채록’ 사업을 추진하는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와 이상의 인천대 초빙교수를 만나 79년 전 강제 동원의 기억을 회상했다.

전북 완주군에서 태어난 그는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공업학교 시험을 봤으나 합격하지 못했고, 국민학교 교장의 추천으로 1943년 4월 조병창에 동원됐다.

일본 육군 조병창은 일제가 강제 동원한 조선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전국 각지에서 수탈한 금속품으로 무기를 만들던 공장이다.

문옹은 처음에는 조병창 기능자 양성소에서 이따금 공부하면서 무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조병창 2공장에 배치된 문씨는 매일 소총의 몸통을 만드는 일을 했다.

당시 공장은 소총의 각 부속품을 만드는 장소를 분리하는 등 철저한 분업체계로 운영됐다.

문옹은 “시간이 지나면서 공부는 안 시키고 공장에서 소총만 만들게 했다”며 “공장이 넓고 사람도 많았는데 소총 부속을 만드는 장소가 여러 개 있었다”고 했다.

조병창에는 문씨와 같이 전국 각지에서 온 학생들이 많았다. 조병창 기능자 양성소의 기숙사 앞에서 찍은 문씨의 사진을 보면 조병창에 동원된 학생들의 면면을 짐작할 수 있다.

조병창 기능자 양성소에서 촬영한 사진. 왼쪽 첫번째 소년이 문주현씨. [문주현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매일 소총의 몸통 만드는 일을 하던 문옹은 1944년 12월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로도 ‘파견’됐다고 한다.

이상의 교수는 6일 “사진을 보면 만 14세의 어린 모습이 확인된다”며 “이런 아동까지 무기 생산 업무에 배치하고 일본으로도 파견이라는 이름으로 동원한 것”이라고 했다.

문옹은 당시 일본이 미군에 대응하기 위해 항공기 제작을 확대했고, 조선에 있는 노동자들을 대거 일본으로 데려갔다고 기억했다. 그는 “지원한 것도 아니고 강제도 아니고 반 강제식으로 데리고 갔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이곳에서 문씨는 항공기의 머리 부분을 만드는 작업에 투입됐다. 식사로는 감자나 고구마를 섞은 밥을 줬는데 쌀의 비율은 10% 정도였다. 항상 배가 고파서 가끔 외출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고야 시내에서 죽을 사 먹었다고 한다.

나고야에 전환 배치된 지 두 달 정도가 지난 뒤에는 항공기 제작소에 매일 공습경보가 발령돼 외부로 대피하는 생활이 반복됐다.

문옹은 “하루에도 여러 번 공습경보가 울려서 밤이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기숙사에서 나와 벌판으로 뛰어갔다”며 “공습을 피하기 좋다는 말에 기숙사에서 먼 대나무밭까지도 뛰어가기도 했다”고 했다.

강제동원 피해자 문주현씨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조병창에 이어 일본 현지의 항공기 제작소에서도 강제동원 생활을 계속했으나 문씨에게 지급되는 돈은 거의 없었다.

나중에 돈을 지급하겠다며 강제로 저축하도록 한 뒤 조금씩 지급한 돈은 이따금 죽 등을 사 먹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저금했다는 돈은 결국 받지 못했다.

문옹은 일본이 강제 동원할 때 솔직하지 않은 태도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일본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도 그런 생활을 할 수밖에 없도록 조종하는 정책을 폈다”며 “우리와 같이 군속 생활을 한 사람도 학교 교장을 시켜서 마치 좋은 대우를 해줄 것처럼 속여서 데려갔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그나마 (문씨는) 일본으로 동원됐기에 1년에 80만원의 의료비 형식의 지원을 받고 있다”며 “조병창에만 강제 동원된 피해자들은 그마저도 받지 못하고 있어 국내 강제 동원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현기 기자 hong@yna.co.kr

<2022-04-06> 연합뉴스

☞기사원문: “나는 일본군 조병창서 무기만든 소년” 94세 노인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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