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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의를 향한 겸손한 구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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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 1] ‘정의’라는 불쏘시개를 들고 광야를 쉼 없이 순례하는 성직자

▲ 인사말을 하는 함세웅 신부. ⓒ 김종성

지금 대한민국은 대전환기, 하나의 평면에 그려질 만큼 단순하지 않은 나라가 되었다. 가치 혁명과 사회시스템의 기조를 비롯 많은 것이 변하고 바뀌어야 하는 시점이다. 정치권력도 교체된다.

국제사회가 먼저 공식적으로 인정해준 선진국이 되었다.

2021년 7월, 195개국이 가입한 유엔무역개발회의(UNCATD)가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시켰다. 후진국→개발도상국→중진국→선진국의 대열에 이르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나라 140개 국가 중 유일한 케이스다.

더욱이 해방과 동시에 분단ㆍ전쟁ㆍ백색독재ㆍ군부독재ㆍ산업화ㆍ민주화의 힘겨운 도정을 거치고, 좀더 소급하면 긴 세월의 조공과 35년 식민지배의 굴욕을 겪었다. 아직도 분단 상태이고, 전시작전지휘권도 회수하지 못한 채이며, 친일잔재ㆍ군부독재의 적폐와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게 된 것은 국가적인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근대화에 실패하고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지만, 선진화에는 성공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국제사회가 존중하는 리더 국가가 되느냐의 여부는 새로 선출된 지도자(정부)의 역량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1,000년 동안에 겪을까 말까하는 역경과 도전을 우리는 80여 년에 모두 겪고, 선진국의 대열에 접어드는 기간 정치ㆍ경제ㆍ문화ㆍ사회ㆍ종교ㆍ학계ㆍ언론ㆍ스포츠 등 각 분야에서 출중한 인물이 적지 않았다. 나름의 역할과 기여가 있었고 평가가 따른다.

우리가 만만치 않은 역경과 도전 속에서도 선진화를 이룰 수 있었던 키워드는 단연 민주화라 할 것이다. 민주화가 있었기에 사회가 유연해지면서 문화예술 분야에 창의력이 나타나고 경제발전에도 윤활유 역할을 하게 되었다.

▲ 1979년 12월 8일 감옥에서 석방된 함세웅 신부 ⓒ 함세웅

박정희 군부독재가 절정에 이른 1970년대와 전두환 신군부의 광기가 살육을 일삼던 1980년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반세기를 사제복을 입고 오직 정의를 향한 무거운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겸손한 구도자가 있다.

불의한 집단이 공권력의 칼을 꿰어 차고 세상을 지배하면서 그들의 통치용어인 “유신만이 살길이다”, “정의사회구현”이 마치 시대정신인양 변주되고 여기에 기득세력의 무모한 욕망, 오도된 열정, 무지와 세뇌가 일반 대중의 미망과 겹치면서 이 땅은 중세 암흑기로 빠져들었다. ‘대중의 미망’과 관련, 박정희는 1978년의 체육관대선에서 통대위원 2,578명 중 2,577명의 지지, 99.9%의 찬성률, 전두환 역시 1980년 같은 방식의 대선에서 통대위원 2,525명 중 2,524명이 찬성, 99.8% 찬성률을 보였다. ‘통대위원’들 역시 이 땅의 시민이었다.

그 시절 마녀사냥이 거침없이 자행되고 성경을 손에 든 몽상가와 연금술사들이 서울 요지에 바벨탑을 짓고, 한 때 멀쩡했던 교계의 지도자들이 국가원수 조찬기도회를 열어 독재자ㆍ살인마의 만수무강을 축원했다. 17세기 유럽의 ‘장미십자가사건’을 방불케 한 사건이 잇따르고, 그들의 광기는 여차하면 북쪽을 향해 제2차 ‘십자군전쟁’도 불사할 태세였다.

이런 시기에 깨어있는 성직자ㆍ지식인ㆍ정치인ㆍ문화예술인 특히 학생ㆍ노동자가 적지 않았다. 이들의 반유신운동과 김재규 장군의 거사로 마침내 유신의 심장을 멈추게 하고, 노도와 같은 6월항쟁으로 살인마의 폭정은 정지되었다.

이후 이른바 ‘1987년 체제’가 마련되고 민주화의 진행 과정에서 몇 차례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유신과 5공의 물적ㆍ인적인 토대 위에 들어선 ‘민주화’는 시대를 건너고 세대를 가로지르는 동안 발전과 퇴보, 혁신과 수구가 반복되었다. 마치 해방 후 친일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친일잔당이 주류가 되었듯이, 유신ㆍ5공의 미청산으로 그들 변통세력이 주역 노릇을 하게 되었다.

▲ 함석헌 선생과 함세웅 신부 ⓒ 함세웅

이런 도정에서 ‘정의’라는 불쏘시개를 들고 광야를 쉼 없이 순례하는 성직자가 함세웅 신부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현실에 타협하거나 연치의 한계에서 활동을 멈추어도 그는 온화함과 명징한 시대정신으로 초지일관 예수의 길, 역사의 길, 정의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세속에 사는 사제이지만 속되지 않았고, 80세의 연치에 이르지만 노쇄하지 않고, 책임 맡은 과제가 많음에도 일처리에 삿됨이 없는 모습은 한 시대의 가치기준으로 삼는 데 모자라지 않을 터이다.

그의 생애는 큰 줄기만을 헤아려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 민주회복국민회의 대변인, 두 차례 투옥, 가톨릭대학교 신학과 교수, 평화신문ㆍ평화방송사 대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10.26 재평가와 김재규장군명예회복위원회 공동대표,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원 원장,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등이다. 아무나 하기 어려운 자리이고 맡기지도 않는 위치이다.

그는 흔히 여느 명사들처럼 간판용이 아닌 열과 성으로 맡은 소임을 다한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지 않는 성실성을 보인다. 민주화운동에 나섰던 명사들 중에 더러는 지치고, 상당수는 관복을 입고, 혹자는 변신하여 반동적 수구파가 되고, 일부는 진보를 팔아 얼치기 진보 행세로 진영을 망치는 자들도 생겼다.

야만성이 짙었던 한국의 격변기(격동기)에 지명도 높은 인물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품격 있게 살아가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은 사회였다. 확증편향이 심하고 극단과 불신의 골이 깊어진 시대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신념과 명징함을 잃지 않고 정의의 가치를 확산시키고자 노력해왔다. ‘정의’를 시대적 가치로 정신무장을 단단히 한 까닭이리라.

화가들은 용이나 기린 등 상상의 동물보다 소ㆍ닭ㆍ돼지를 그리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전자는 보는 사람이 없어서 잘 모르기 때문인데, 후자는 너무 세세하게 잘 알아서 그리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동시대 인물 평전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낸 것은 시대는 바야흐로 ‘공정과 상식’이란 관제 구호가 나부낀다. 과거 전두환의 국정지표라는 ‘정의사회구현’이나 이명박의 ‘공정사회’ 구호 등 ‘승자의 정의(Victor’s justice)’가 ‘불의의 뒤엎음’ 이었음을 보여주었다. 하여 진정한 의미의 ‘정의’가 요구되고, 여기에 함세웅 신부의 정의를 향한 강고한 삶의 궤적을 살피면서 ‘관제정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하고자 한다.

아울러 같은 시대를 살면서 지켜보아온 대로, 그는 기나긴 수행의 과정을 거쳐 험난한 현대사의 현장을 떠나지 않는, 식을 줄 모르는 관심과 지속적인 학구열, 그래서 “정의를 향한 겸손한 구도자”를 나의 ‘평전 시리즈’에서 놓치고 싶지 않아서이다. 뜻 있는 분들의 많은 편달을 기대하면서 ‘숨 쉬는 현대사’를 찾아가는 길손이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김삼웅(solwar)

<2022-04-07>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정의를 향한 겸손한 구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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