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 기도]
(28) 청년 김대중
이대선 황희두 박영훈 등 청년들
김대중의 민주·인권·평화 철학을
2030 청년들에게 알리기 위해
‘청년 김대중’ 만들어 활발히 활동
“저는 하느님의 제단으로
제 기쁨과 즐거움이신 하느님께 나아가오리다.
하느님, 저의 하느님,
비파 타며 주님을 찬양하오리다.” (시편 43,4)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뻐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
네 마음에서 근심을 떨쳐버리고
네 몸에서 고통을 흘려버려라.
젊음도 청춘도 허무일 뿐이다.” (코헬렛 11,9-10)
성경도 이토록 청춘을 예찬합니다. 또한 청춘을 노래하고, 청춘을 만끽하라고 가르칩니다. 젊음은 그 자체로 은총과 축복, 충만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창작과 발명, 운동 등 모든 영역의 신기록은 청년 시기의 결실입니다. 청년은 만발한 꽃의 시기, 그 이후는 열매 맺고 익어 가는 시기입니다. 이는 모든 것을 오직 하느님께 봉헌하고 의탁하라는 성경의 교훈입니다.
1977년 1월, 미국의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는 대통령 취임사 말미에서 자신의 청소년 시절 조지아주 작은 예배당에서의 체험을 얘기합니다. 그날 전도사가 가르쳐 준 성서 말씀을 인용하며 전 세계인에게 호소한 것입니다.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이고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너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 (미카 6,8)
전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 대통령이 가슴속 깊이 간직했던, 오래전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이 호소는 그 자체가 감동입니다. 저는 성당 주일학교 교사들에게 늘 말하곤 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르치는 이 어린이들은 바로 미래의 지도자, 미래의 대통령이 될 인재들이라고. 그러니 자부심과 긍지로 매일 매 순간 최선을 다하라고.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청년 시기의 열정은 우리의 현실을 아름답게 바꾸는 힘입니다.
함세웅 찾아온 청년 이대선
2020년 어느 날, 대만 유학을 다녀왔다는 한 청년이 저에게 만남을 청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호남 출신이며 유명 정치인의 인턴 보좌관을 한 경력이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그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가 대뜸 ‘김대중’이란 이름을 입에 올렸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위상이 저평가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해 2030 청년들에게 김대중의 철학과 정책을 알리고자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의 삶에서 가장 순수하고 뜻이 강렬한 시기가 청년기라고 생각한다”면서 청년 김대중을 주보로 모시고 한국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 후 몇 차례 만남이 이어졌고, 그는 ‘사단법인 청년 김대중’을 설립할 계획인데 저에게 대표 이사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여러분 스스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며 몇 가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제가 요즘 붓글씨를 쓰고 있다는 얘기를 귀담아들었던 그가 ‘청년 김대중’을 붓글씨로 써달라고 청했습니다. 그 청년의 이름은 이대선입니다.
2021년 1월 ‘청년 김대중’의 창립준비위원회가 발족했습니다. 코로나 19의 여파로 온라인으로 진행했는데 2백여 명의 창립준비위원이 참여하고 여의도에 사무실을 개설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무실에 제 글씨를 걸었습니다. 발족식에는 김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이인영, 김민석, 송영길, 설훈 의원 등이 축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뜻깊은 사실은 발족식에 해외의 청년들도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현재 영국에 망명 중인 홍콩 민주화 운동가 네이선 로 그리고 태국의 학생 운동가 네티윗 초티팟파이산이 영상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특히 네이선 로는 “김대중 대통령이 이룬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표하며, 그의 민주화 투쟁에서 영감을 얻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단법인 청년 김대중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90년대생 시민 운동가인 말랄라 유사프자이, 나디아 무라드 등 많은 분과도 교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2021년 8월에는 전년에 이어 김대중 대통령의 온라인 추모식도 열렸습니다.
사단법인 청년 김대중은 김대중 대통령이 홍익인간에 기초해 추구한 민주, 인권, 평화의 가치를 기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 겨레 모두의 근본 목표이며, 이를 2030 청년 세대와 함께 공유하고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모임입니다.
예언자는 자신의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한다는 격언에도 불구하고, 이 청년들은 남북 분단과 남남 지역 갈등의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평화와 화해를 지향했던 청년 김대중의 열정을 되새겨 개인과 민족공동체의 긍지를 살리기 위해 투신하고 있습니다.
사실 미국 클린턴 대통령, 스웨덴의 올로프 팔메 총리 등 세계 민주주의 지도자들은 김대중 대통령을 평화의 상징으로 바라봤고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를 김대중 대통령의 삶과 연계해 해석하고 평가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민족사적 긍지를 지녀야 합니다.
현재 사단법인 청년 김대중의 대표이사는 앞에서 말한 이대선이고, 김대중 대통령의 장손인 김종대, 노무현 재단 이사 황희두, 더불어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장인 박영훈 등이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이대선 대표는 매일 페이스북 등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의 어록을 뽑아 실천의 길잡이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 예로 2022년 4월 1일 자 어록을 소개합니다.
“그동안 우리 국토가 심대하게 파괴되고 환경오염이 심화된 것은 과거 개발지상주의에 입각한 잘못된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잘못된 정책 패러다임을 철저히 바꾸는 새로운 발상과 개혁이 필요합니다.” (김대중 어록)
서대문 형무소 옥중 동지 김대중
저는 김대중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1973년 8월 그가 일본 동경에서 납치된 사건 이후로 교우들과 함께 자주 동교동 자택을 방문하여 함께 기도했습니다.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으로 서대문 형무소에 함께 투옥된 옥중 동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이문영 교수님과 함께 그분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김대중 정권을 탄생시킨 김종필씨와의 연대(DJP 연합)부터 자녀 문제, 박정희 도서관 건립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은 그의 모든 허물을 뛰어넘는 위대한 발자취라 평가합니다.
분단된 지 55년 만에 남북의 정상이 처음 만난 6·15 남북공동선언은 우리 민족이 자주적이고 평화적으로 분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습니다. 언뜻 김대중의 오랜 꿈이 이루어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평화를 원치 않는 사람은 나라 밖뿐만 아니라 나라 안에도 존재했습니다. 이후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에서 다각적인 평화 공존 방안을 모색했으나 북한의 핵 개발로 촉발된 국제 관계에서 상황은 더욱 꼬여만 가고 있습니다.
5개 항으로 구성된 6·15 남북공동선언의 1항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한다”입니다. 우리말로 쓰인 글이니 따로 해석이 필요 없습니다. 20여 년 전의 이 단순 명쾌한 문장이 지금 시점에서 요원하게 들린다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픕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저희는 그분을 몇 차례 더 만났습니다. 특히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 30주년을 맞은 2004년 9월에는 김대중 대통령 내외분이 참석해 축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또한 2006년 3월 1일에는 명동 민주구국선언 30주년을 맞아 두 분이 민주화 동지들과 함께 결속과 연대를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 주 3회 투석을 하는 와중에도 미국이나 중국의 정치인들을 만나서 남북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호소했습니다. 그에게는 남북 평화 공존과 통일이 최고의 신념이자 신앙이었습니다. 저는 그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기독교의 핵심도 청년 예수
청년기는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청년기에 어떤 가치관이 형성되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 항로가 달라집니다. 우리는 ‘청년 안중근’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 청년의 굳센 의지와 민족정신이 후일 대한민국의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청년 예수님’이 보여 주신 큰 사랑과 헌신을 기억해야 합니다. 청년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은 후세 모든 종교인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20세기 가톨릭의 혁신적 신학자 한스 큉 신부님은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바로 창시자인 ‘타살당한 청년 예수님’이라고 술회했습니다. 33세의 청년 예수님이 종교와 세상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꿨다는 것입니다. 청년 세대가 바로 미래를 바꾸는 원동력입니다.
우리 시대의 청년들은 역사상 그 어떤 청년 세대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정치권과 기성세대들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순조롭게 기능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합니다. 청년이 행복하지 않은 세상에 희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청년의 눈물 위에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자들을 반드시 엄히 단죄해야 합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 새 생명을 통해 세상은 늘 새롭게 진전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섭리와 조화 속에서 저희는 늘 새로운 희망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청년 세대는 불안과 상실감 속에서 좌절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으로, 성령의 불길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청년들의 열정으로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아름답고 창조적인 새로운 세상을 개척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청년 예수님, 청년 김대건 신부님, 청년 안중근, 그리고 청년 김대중의 정신을 본받아 우리 청년 세대들이 민족의 번영과 평화를 이룩하는 선구자 그리고 실천자가 되게 해주소서. 성령 안에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함세웅 신부 _ 1968년 천주교 신부가 된 뒤 줄곧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1974년)을 주도하는 등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2012년 현역 은퇴 뒤에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연대의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현대사와 관련해 쓴 글과 붓글씨를 싣는다.
<2022-04-11> 한겨레
☞기사원문: 청년 김대중의 정신을 잇는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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