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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당신은 몰랐을 ‘임시정부’ 비하인드, 베토벤 가곡이 임시정부에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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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2년 4월 11일 (월요일)
□ 진행 : 이현웅 아나운서
□ 출연 :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현웅 아나운서(이하 이현웅):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2부, 시작했습니다. 4월 11일, 103년 전 오늘, 중국 상하이에 모인 독립운동가들은 헌법을 제정, 발표하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해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했습니다. 4월 11일, 바로 오늘은 <임시정부 수립일>입니다.
오늘은 <당신은 몰랐을 임시정부 비하인드 히스토리 5가지>란 주제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 함께 합니다. 어서 오세요?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이하 방학진): 안녕하세요.

◇ 이현웅: 임시정부 수립일 이거 모르고 지나가시는 분들도 상당히 많으실 것 같아요.

◆ 방학진: 네, 공무원들도 잘 모르더라고요.

◇ 이현웅: 이게 날짜가 좀 바뀌었잖아요.

◆ 방학진: 원래는 4월 11일로 알고 있었는데 학계에서 연구가 지속되면서 4월 11일로 확정이 됐죠.

◇ 이현웅: 13일로 원래 기념을 해 오다가 2019년부터 4월 11일로 기념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당신은 몰랐을 임시 정부 비하인드 히스토리 5가지라는 주제인데 저도 한번 쭉 살펴봤거든요. 정말 다 몰랐더라고요.

◆ 방학진: 학교에서는 잘 안 가르치죠.

◇ 이현웅: 일단은 지금 노래가 하나 나오고 있어요. 먼저 들어보시죠. 아마 목소리는 익숙하신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파바로티 목소리인데 이게 왜 임시 정부랑 연관이 있지 라는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주제 만나보도록 할게요. 첫 번째 주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베토벤의 노래가 불렸다 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얘기인가요.

◆ 방학진: 대한민국 임시정부라고 하면 많은 분들 인물을 얘기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분은 이동영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이현웅: 이동영 선생은 이름은 들어봤는데 어떤 분인지 잘 모르겠어요.

◆ 방학진: 한마디로 말하면 백범 김구의 멘토죠. 백범 김구를 문지기에서 임시정부의 주석까지 끌어올린 백범의 멘토라고 할 수 있고요. 천안의 독립기념관이 왜 그 자리인가 바로 이동영 선생님 집 바로 옆이죠. 한국의 독립운동계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죠. 이분이 돌아가셨을 때 이분을 추도하는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그 당시 독립운동 노래들이 대부분 서양의 민요라든지 서양의 노래, 찬송가를 곡을 따와서 독립운동의 내용으로 노래를 만들었거든요. 일명 노가바죠. 노래 가사 바꾸기. 유행이었는데 이동영 선생님이 40년대에 돌아가시니까 이분을 추도할 수 있는 노래를 잘 없는 거예요. 새로 만들 수도 없고 급하게 그래서 그 당시에 베토벤 노래에다가 곡을 붙여서 이동영 선생님의 추도가로 사용했던 거죠.

◇ 이현웅: 이게 인퀘스타 톰바 오스쿠라 이렇게 읽는 게 맞나요.

◆ 방학진: 맞을 겁니다. 제가 전공 안 했지만

◇ 이현웅: 이 어두운 무덤에 라는 베토벤의 곡인데 파바로티 목소리로 가사를 입혀서 들었고요. 약간 그런 의미가 있는지는 전혀 몰랐는데 이동영 선생의 추도가였다라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또 누가 있었나요.

◆ 방학진: 임시정부 요인 하면 우리가 이동영 선생님을 비롯해서 김구를 가장 먼저 떠올리기는 하지만 가장 먼저 임시정부를 얘기하면 떠올릴 분은 안창호 선생님이어야 합니다. 그 당시 임시정부가 상해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거든요. 블라디보스토크 이라든지 서울에서도 만들어졌고 지금처럼 sns 단톡방이 없으니까 3.1운동 이후에 임시 정부는 만들어야 되겠는데 너도 나도 좀 만들자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것들을 만주, 연해주, 서울, 상해에 있는 4곳에서 주로 임시정부 논의가 있었는데 이 네 곳을 다 통합해서 하나로 만든 분이 바로 안창호예요.

◇ 이현웅: 네 곳을 다 다니면서 의견들을 모으고 하나로 뭉쳐서

◆ 방학진: 안창호 선생님 혼자 다닌 건 아니고 연해주에서 만주로 오기도 하고 만주에서 상해로 오기도 하고 상해에서 연해주로 가기도 하고 이러면서 3.1운동 이후에 우리가 만세를 평화적으로 불렀더니 결국 남는 것은 총칼로 오는 보복밖에 없지 않느냐 우리가 독립운동 할 수 있는 최고의 기관을 만들라고 해서 임시정부를 만들기 위해서 이심전심으로 전 세계에 있던 독립 운동가들이 깃발을 들고 나섰는데 서로 연락이 안 되니까 그런 것들을 통합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런 통합을 열심히 했던 분이 바로 도산 안창호죠.

◇ 이현웅: 진짜 말 그대로 돌아다니면서 그냥 얘기를 듣고 하나로 모으는 역할들을 한 건가요.

◆ 방학진: 당시에는 연락이 여의치 않았으니까 서로서로 우리가 임시정부다, 우리가 임시정부다 라고 만들어진 거예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들어지고 서울에서도 만들어지고 이런 것들을 조율을 하고 최고 지도자들이 중복되는 지도자들도 있고 하기 때문에 이런 통합에서 최대한 누락되는 분들 없이 하나의 조직으로 만들자고 해서 4월 11일 상해 임시정부가 만들어졌지만 결국 여러 개의 통합된 임시정부는 다시 9월에 다시 한 번 완성이 되는 거죠.

◇ 이현웅: 그 얘기는 잠시 후에 이어서 하도록 하고 백범 김구 선생은 어떤 역할을 했나요.

◆ 방학진: 백범 일지를 보면 나는 임시정부의 문지기가 되겠다고 했는데 실제 문지기가 첫 번째 직함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임시정부를 찾아오는 조선 청년들이 많았어요. 너도 나도 독립운동 하겠다고 그 중에는 밀정도 많았습니다. 밀정을 어떻게 하면 감별할 수 있을까 감별사 역할을 한 거죠.

◇ 이현웅: 어떻게 하죠?

◆ 방학진: 2010년도 영화 밀정을 보면 이병헌 하고 영화 배우 송강호 씨가 나오면서 이 사람이 진짜 독립운동 하는지 안 하는지를 알아맞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뭡니까. 술을 마시는 거죠. 취중 진담을 해서 알아봤는데 마찬가지로 김구도 독립 운동하겠다고 오는 청년들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감별하는 경무국장을 했던 것이죠. 지금으로 말하면 경찰청장이 임시정부의 첫 번째 직함이었고 그 날짜가 1919년 8월 12일이에요. 한국의 경찰에서도 8월 12일에 별도로 기념식을 합니다. 그리고 경찰청 1층 로비에는 본인들의 초대 경무국장, 경찰청장이 바로 김구라고 해서 몇 년 전에 흉상도 만들었습니다.

◇ 이현웅: 실제로 그 영화에서처럼 감별하기 위해서 술자리를 갖고 술도 마시고 했습니까.

◆ 방학진: 만약에 밀정이다 하면 가서 조용히 가서 혼내주기도 하고

◇ 이현웅: 재밌습니다.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갈 텐데 두 번째 비하인드 스토리 사실 임시 정부는 한 개가 아니었다. 방금 살짝 얘기를 해 주셨어요. 상해 말고 어디 어디에 또 다른 데가 있었던 거죠.

◆ 방학진: 1918년도에 1차 세계대전이 끝나니까 폴란드도 독립하고 1차 세계대전 당시 식민지였던 나라들이 많이 독립을 하니까 우리도 일본의 식민지에서 독립할 수 있겠구나 라고 하는 꿈을 갖고 파리 강화 회의에도 사람을 보내고 또 17년, 18년도에 러시아 혁명이 생기면서 러시아 황제가 없어지고 18년에 독일 황제도 없어지고 하면서 우리도 곧 봉건제도 몰아내고 식민지에서 해방될 수 있겠네 라고 하는 꿈을 가졌던 거죠. 그러면서 고종이 승하하고 장례식에 맞춰서 3.1운동이 일어나니까 3.1운동의 목표가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단순히 만세 하는 게 목표가 아니지 않습니까. 대한독립이 만세니까 대한독립을 쟁취하려면 무엇보다도 정부가 필요하다고 해서 미국도 봐라 미국도 먼저 독립운동 할 때 영국에게 해방되기 위해서 정부를 만들었다. 우리도 똑같이 미리 정부를 만들자 물론 아직 완전한 해방 아니기 때문에 임시정부를 만들자고 했던 것이 이심전심이었죠.

◇ 이현웅: 가장 좋은 거는 한국 안에 만드는 게 제일 좋았겠어요.

◆ 방학진: 조선 한복판에 만드는 게 가장 좋지만 총독부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20만 명의 우리 동포가 있었던 블라디보스토크가 가장 좋은 후보지가 아니겠는가. 두만강 하고 붙어있기 때문에 강 하나만 건너면 바로 우리 조국이기 때문에 그런데 상해를 택한 이유는 상해가 국제도시고 외교의 중심지입니다. 우리의 활동, 우리의 만세운동, 일본의 탄압 이런 것들을 전 세계 양심에 호소할 수도 있다. 외교론이죠. 일종의 외교론을 펼치기 아주 좋은 곳이기 때문에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만들었던 거죠.

◇ 이현웅: 다소 집결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아요.

◆ 방학진: 그래도 상해가 프랑스 조계지와 영국 조계지가 있는데 우리 다행히 상해 임시정부가 프랑스 조계지에 있었는데 프랑스는 유명한 자위, 평등, 박애 정신이 있거든요. 상대적으로 독립운동을 하는 분들에 대해서 우호적이었어요. 일본이 프랑스 경찰에 와가지고 조선인 독립운동가 색출하러 들어온 다음에는 막아주고 했거든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프랑스 조계지가 있는 상해가 독립운동하기에 너무 좋았던 것이죠. 그쪽에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물론 조계지 안에서도 일본 밀정도 있었습니다만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독립운동 활동들을 할 수 있었죠.

◇ 이현웅: 진짜 들어보니까 그 당시의 상황들이 하나씩 그려지는 것 같은데 그러면 상해에 있었고 블라디보스토크에도 있었던 거고 또 다른 데도 있었나요.

◆ 방학진: 1919년 4월 2일에 지금 맥아더 동상이 있는 곳이 있거든요. 자유공원이라고 하는데 인천의 명소죠. 그게 그 당시 이름은 만국평화공원입니다. 만국평화공원이어서 거기에서 13개 대표, 13개 지역에 지금은 8도이지만 그 당시에는 13개도라고 했거든요. 13개 도 대표들이 모여서 우리 정부를 여기서 만들자 국내에서 만들자.

◇ 이현웅: 국내에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네요.

◆ 방학진: 조직이 됐었고 우리가 만들어졌다고 하는 대회를 보신각에서 하자 우리가 3월 1일에 만세도 불렀으니까 4월 20 며칠 날 보신각 앞에서 수만 명의 우리 군중들이 모여서 임시정부를 선포하자라고 했는데 일본이 가만히 놔두지 않죠. 그래서 형식적으로 전단지가 뿌려지고 몇 명의 학생들이나 시민들이 참가할 수밖에 없었는데 어쨌든 형식적으로는 임시정부가 서울에서도 만들어졌던 거죠. 그 임시정부를 일명 한성 정부라고 합니다.

◇ 이현웅: 그러면 이런 것들이 나중에는 요즘 말로 하면 통폐합이라고 하나요. 그렇게 돼가는 과정은 어땠나요.

◆ 방학진: 통폐합은 어떤 것이 없어지는 게 폐합인데 아주 지혜롭게 어떤 것이 없어지지 않고 지역에서 유명한 이동녕이라든지 문창범, 최재형 이런 분들도 요인으로 모시고 한성 정부에서 모셨던 요인들도 모시고 기존에 상해 임시정부에서 모셨던 요인들도 모셔서 통합을 한 거죠. 누구 하나 배제되거나 소외됨 없이 통합하려고 노력했고 그 중심에 도산 안창호 선생이 있었죠.

◇ 이현웅: 들으면 들을수록 몰랐던 얘기들이 많아서 오늘 굉장히 유익한 시간이 되는 것 같은데 세 번째 비하인드 스토리로 넘어갈게요. 우리나라 국호가 대한민국이 아닐 수도 있었다.

이게 무슨 얘기예요.

◆ 방학진: 1919년 4월 11이죠. 4월 10일 밤에 모여서 밤 10시에 모여서 딱 12시간 마라톤 회의를 했는데 가장 중요한 건 이 독립운동을 해야 할 최고의 기관의 이름을 정하는 거죠. 우리가 아이를 낳을 때 태명도 짓고 하는 이유는 그 태명 속에 뜻이 담겨 있거든요. 튼튼하게 잘하라는 의미, 씩씩하게 자라라는 의미, 돈 많이 벌라는 의미 등등의 부모들의 뜻을 담아서 이름을 넣듯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도 새로운 국호를 만들 때 어떤 이름을 하는 게 좋을까라고 해서 후보를 몇 개 골라요.

◇ 이현웅: 후보가 있었나요.

◆ 방학진: 후보가 총 4개 정도 됩니다. 가장 유명한 대한민국 먼저 하죠. 그다음에 신한민국 그다음에 고려공화국 그다음에 조선공화국 크게 4개가 후보가 올라가는데요. 그런데 이 4개 이름 중에 앞에 것 다 떼면 대한민국의 대한을 빼고 신한민국의 신한을 떼고 고려와 조선을 남는 것은 민국과 공화국이에요. 결국 앞에 있는 것은 꾸민 말이고 이 나라의 핵심은 민국, 민주주의 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 그다음에 공화국으로 만들겠다. 이런 뜻이 담겨 있었던 거죠. 투표를 해가지고 다수결에 의해서 대한민국이 되었고요. 재밌는 것은 고려공화국도 사실은 의미가 있는 거죠. 지금 한국의 영어 명칭이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죠. 그대로 직격하면 뭐가 됩니까. 고려공화국으로 가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 당시 고려공화국도 꽤 지지를 받았었는데 당시에도 회의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고 어색하잖아요. 일반 민중들이 고려공화국 하면 직전에 망한 나라 이름이 대한제국 아닙니까. 대한제국으로 망했으니까 대한민국으로 흥하자 결국 중요한 것은 앞에 대한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국에서 민국 황제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 바뀌었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지금 시간도 없고 일본 밀정들이 지금 주변에 많이 있으니까 빨리 회의를 끝내기 위해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바꾼 거죠. 1호 안건이었어요.

◇ 이현웅: 대한민국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그냥 부르다 보니까 이런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 방학진: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한자 바꾸는 데 500년이 걸린 거죠.

◇ 이현웅: 그렇게 설명해 주시니까 더 와 닿네요. 12시간 정도 마라톤 회의를 거쳤다. 이렇게 설명이 돼 있는데 여기 회의 동안에 이름 바꾸는 거 말고 또 어떤 내용들이 오고 갔어요.

◆ 방학진: 이 나라의 헌법도 정해야 되겠고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헌법이겠죠. 헌법 안에 우리의 지향이 담겨 있는 것이니까 임시헌장을 만들었는데 한 10개 조를 만들어요. 급하니까 10개밖에 없었고 지금은 한 300개 가까이 되는데 헌법 조항이 그 당시에는 시간이 없으니까 중요한 것만 해야 하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제1조죠. 지금 현행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이 뭐냐 하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이다죠. 노래도 있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하는 노래도 있는데 똑같습니다. 그 당시에도 그래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 이현웅: 이때부터 대한민국에 아예 국호를 썼네요.

◆ 방학진: 그래서 이 1조는 1919년부터 2020년 지금까지 절대 바뀌지 않고 그 위치도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고 가장 중요한 성과인 거죠.

◇ 이현웅: 오늘 역사 얘기 듣다 보니까 나 왜 이렇게 몰랐지 이런 생각 드는데 우리 4307님께서도 듣다 보니까 의아하네요. 왜 이렇게 저는 아는 게 없었죠. 태정태세문단세 조선 왕조는 드라마 덕분인지 잘 아는데 임시정부의 이 구성이라든가 결성, 업적 이런 것들은 잘 몰랐네요. 이렇게 말씀을 해 주십니다.

◆ 방학진: 교육부 당국자들이 반성해야죠.

◇ 이현웅: 오늘 이렇게 비하인드 스토리 얘기 나눠보고 있고 5개가 준비가 돼 있는데 지금 3개까지 진행이 됐습니다. 네 번째 비하인드 스토리 만나보죠. 윤석열 정부와 정치권이 말하는 지금의 시대정신 국민통합 이게 사실은 103년 전 임시정부의 시대정신이었다.

◆ 방학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운동을 했고 나름대로 고생을 했기 때문에 다들 자기가 고생한 게 크게 느껴지잖아요. 내가 독립운동을 1년 했어 아니야 나는 10년 했어 나는 독립운동하면서 감옥을 1년 살았어, 나는 10년 살았어. 서로 자신들의 주장을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을 다 통합할 분이 중요하거든요. 통합의 지도자가 참 중요한데 3.1운동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분은 유관순 열사밖에 없지 않습니까. 3.1운동은 두 가지 깃발을 들었던 것이거든요. 하나는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자, 일본 놈들 물러가라 두 번째는 그럼 물러나간 다음에 이 나라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일본이 물러나면 똑같이 전주시의 나라를 그대로 유지할 거야 아니지 않아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되지 않아 그게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탄생이거든요. 3.1운동은 첫 번째로는 일본 놈들을 몰아내자 두 번째로는 우리 국민의 나라 민주공화국을 만들자 두 가지였는데 이 두 번째 바로 핵심이 바로 임시정부의 노력이었고 결국은 수많은 분들이 다 임시정부를 너도나도 만들려고 경쟁이 붙었어요. 3.1운동이 지나니까 러시아에서 제일 먼저 만들어졌습니다. 3월 17일 날 만들어져요. 3.1운동이 만들어지고 2주 만에 여기가 임시정부입니다. 여러분들 우리에게 성원해 주십시오. 우리 후원해 주십시오. 라고 하기도 하고 한성 정부는 아닙니다. 저희는 우리나라 땅에서 서울 한복판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가 정통성이 있습니다 라고 따지기도 하고 마찬가지 상황이라든지 만주에서도 그런 노력들이 있었는데 이런 분들을 다 아울러서 폐합이 아니라 통합하려고 그래서 당신들이 원하는 지도자, 당신들이 내세운 대표 선수들을 다 상해 모으시오. 우리가 같이 통합정부 만듭시다 라고 해서 4월에 만들어진 임시정부를 고집하지 않고 9월에 통합 임시정부를 만들었던 거죠.

◇ 이현웅: 요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보면 인선 관련해서 여러 가지 평가들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서 항상 강조가 되는 게 통합 얘기를 많이 나오는데 그러다 보니까 이 얘기가 더 흥미롭게 들리는 것 같고요. 여기에 중심이 앞서서 말씀해 주신 도산 안창호 선생이라고 보면 되나요.

◆ 방학진: 그렇습니다. 안창호 선생님은 특이한 이력을 갖고 계시죠. 조선시대 때 소외됐던 지역이 서북 지역이에요. 평안도 함경도 지역 특히 평안도 지역 함경도 지역은 조선시대 소외됐던 지역인데 이분은 함경 평안도 분이거든요 소외된 지역의 출신이죠. 서양의 사상 민주주의 사상이라든지 자유사상을 먼저 깨친 분이에요. 전 세계를 많이 다니면서 견본을 넓히셨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통합이라고 하는 것들을 체험한 분이고 이런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임시정부가 지금 우리가 평가할 수 있는 기반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 이현웅: 조직을 할 때 각자들이 가지고 있는 이념도 있고 생각하는 방향들이 있었을 텐데 이걸 통합하는 게 지금은 쉽게 얘기하지만 당시에는 쉽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 방학진: 이분이 더 훌륭한 점은 그 당시에 대통령도 있고 국무총리가 있는데 스스로가 넘버 2나 좋은 자리에 갈 수 있었는데 본인이 아마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한다고 해도 아무도 못 말렸을 거예요. 스스로가 노동부 총판화입니다. 지금 말하면 노동부 장관으로 스스로 자기 자리를 자리매김해요. 낮은 자리로 자기가 자리매김함으로써 다른 지도자들을 더 위로 모시는 그런 역할을 한 거죠. 나는 낮은 일을 하겠어. 당신들이 더 높은 곳에서 일을 하시오. 이게 사실 통합의 정신입니다. 내가 가장 좋은 데 있을 거니까 니들이 내 밑으로 와 누가 오겠습니까. 윗자리를 남겨놔야지 좋은 분이 모이죠.

◇ 이현웅: 이런 리더십은 또 처음 제가 들었습니다. 안창호 선생이 수많은 독립군가도 만들었다.

◆ 방학진: 이분이 보니까 저도 놀랐는데 기독교인이기도 해서 수많은 찬송가들을 부르기도 하고 접해서 그런지 몰라도 노래에 관심이 많으셨더라고요. 현재까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굴한 것만 해도 이분이 작사한 노래가 14곡이에요. 더 많이 만들어질 수도 있어서 제가 한 번은 흥사단에 가서 흥사단이 안창호 선생님이 만든 조직이기 때문에 나중에 안창호 음악회를 해도 된다. 안창호 선생이 만든 노래만 가지고도 음악회도 충분하다. 이런 엔터테이너죠.

◇ 이현웅: 작곡은 안 하시고

◆ 방학진: 작곡은 못 하시는 것 같아요.

◇ 이현웅: 작곡은 아니고 작사를

◆ 방학진: 음치시지 않았나 싶은데 작사는 많이 하셨습니다.

◇ 이현웅: 안창호 선생이 작사를 14곡이나 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습니다. 다섯 번째 비하인드 스토리로 넘어갈 텐데 이것도 신기합니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국립묘지 현충원에 없다.

너무 당연히 여기에 모실 것 같은데

◆ 방학진: 임시정부 요인들의 일부는 서울 국립묘지에 계시기도 하지만 우리가 가장 상징적으로 말하는 분 중에 하나인 바로 김구 김구의 멘토인 이동영 말씀드렸죠. 그다음에 김구의 마지막 비서실장인 차희석 그다음에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신 조성환 이런 분들이 효창공원에 계세요. 효창공원에는 아예 묘역이 크게 안중근 의사의 허묘,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3유사 묘소가 있고 김구 묘지가 있고 또 다른 영역에는 임정요인 묘역이 있습니다.

◇ 이현웅: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 방학진: 그러니까 아마 김구 선생님이 해방 이후에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됐으면 효창공원이 독립운동과 전용 국립묘지가 됐을 거예요. 해방이 되고 난 다음에 가장 중요한 건 그동안에 35년 동안 일제로부터 해방하기 위해서 해외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모셔오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김구 선생님 모셔오셨거든요. 이동영도 모셔오고 이렇게 하면서 그러면 당연히 이분들을 가장 좋은 곳에 모셔야 되고 그것을 효창공원에 모셨던 거고 우리 지난번 드라마의 성가덕임 아주 유명했지 않습니까. 성가덕임이 효창원에 계시다가 실은 일제에 의해서 다른 데로 옮겨지셨는데 빈 무덤 터에다가 국립묘지 격을 만들었는데 대통령이 안 되시는 바람에 지금은 근린 묘지가 됐지만 이런 역사적인 인연이 있는 곳도 바로 효창공원이죠.

◇ 이현웅: 임시정부 독립운동가들은 광복을 완전한 광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 방학진: 당연히 그렇죠. 그분들의 머릿속에는 분단된 조국은 일도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48년도 8월에 대한민국이 단독 정부를 수립되고 9월 달에 북한 정권이 수립됐지 않습니까. 긴박한 시점에 바로 48년도 4월이니까 대한민국이 단독 정부를 수립하기 한 4, 5개월 전에 임시정부 요인이었던 김구, 김규식이 과감히 38선으로 올라갑니다. 우리가 그 유명한 사진 김구 선생이 38선을 배경을 한 사진이 바로 그거거든요. 북한의 지도자인 김일성과 김두봉을 만나서 4인 유임 회담을 하거든요. 1948년 4월에. 우리가 독립운동 한 목적이 분단이었어? 또 북한에서 그렇게 정권 최고 지도자가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우리는 이렇게 분단되지 말고 통일 전부를 만들자고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은 심정으로 끝까지 조국의 독립 통일된 조국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셨다. 이런 것도 저희가 한번 더불어서 기억해야 될 것 같습니다.

◇ 이현웅: 연구를 또 많이 하고 계시다 보니까 요즘에 북한하고 관계라든가 이런 것들도 좀 남달리 보이실 것 같아요. 어떠세요. 임시정부 수립일을 맞아서

◆ 방학진: 그렇습니다. 임시정부 수입을 맞아서 사실 역사라고 하는 건 요즘을 비춰보는 거울인데 지금 그분들이 보시기에 선제타격 얘기가 나오고 ICBM 얘기가 나오고 험악한 말들이 오고 가는 이 시점이 과연 이분들이 103년 전에 바라던 그림은 아니었을 거예요. 정말 독립운동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라도 험악한 발언들을 남북 당국자들이 자제해야 합니다.

◇ 이현웅: 효창공원 가면 실장님이 직접 역사 설명도 해 주신다고요.

◆ 방학진: 무료로 해드립니다.

◇ 이현웅: 매일 하시나요.

◆ 방학진: 요즘에는 코로나로 적은데요. 코로나 없을 때는 일주일에 7번 한 적도 있습니다.

◇ 이현웅: 오늘 방송 들으시면서 호기심 많이 생기시고 역사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분들은 효창공원 가시면 방학진 실장이 직접 역사 설명도 해 준다고 하니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4월 11일 오늘 어떤 의미인지 말씀을 나눠봤으니까요.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한 번쯤 검색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2022-04-11> YTN

☞기사원문: 당신은 몰랐을 ‘임시정부’ 비하인드, 베토벤 가곡이 임시정부에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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