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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독립운동가의 집… 황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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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우철 애국지사가 70여년 거주한 곳… ‘독립운동 기념공간’으로 사용할 순 없었을까

며칠 전 동작구 향토사학자인 동작역사문화연구소 김학규 소장의 페이스북을 통해 서울 상도동에 있던 독립운동가 고 임우철(1920~2021) 애국지사의 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임 지사의 집이 철거됐다, 허탈하다”는 게 주 내용이었다.

임우철 지사는 1941년 6월부터 1942년 12월 사이 일본 도쿄의 공옥사고등학교(攻玉社高等學校) 토목과에 재학 중 동급생들과 함께 내선일체(內鮮一體)의 허구성과 궁성요배(宮城遙拜: 일본 천황이 사는 궁궐을 향해 절하는 행위)를 비판하는 등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하던 중 피체됐다. 붙잡힌 임 지사는 치안유지법 위반 및 불경죄 등으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 받았다. 이러한 항일운동 공로가 인정되어 2001년 독립유공자로 서훈된 바 있다.

철거된 현장에 직접 가보니

▲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임우철 지사의 집 ⓒ 김경준

공교롭게도 나 역시 상도동 주민으로서 지사께서 생전에 머물던 집이 근방에 있다는 사실을 듣고 언젠가 한 번 찾아가보기 위해 벼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차에 철거 소식을 접하니 황망할 따름이었다.

지사의 집이 있던 주소를 찍어보니 중앙대학교 근처 주택가로, 내가 사는 곳과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주택가 골목을 샅샅이 뒤진 끝에 마침내 황량하게 비어있는 임우철 지사의 집터를 발견했다. ‘송두리째’ 사라졌다는 표현이 적확할 정도로 현장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줬을 아름드리 나무 역시 잘려나간 채 밑동만이 휑뎅그렁하게 남아있었다.

철거된 집터 위에는 물건과 편지, 그릇 등등이 굴러다니며 방치되어 있었다.

▲ 임우철 지사의 집에 서 있던 아름드리 나무가 밑동만 남은 채 잘려나가 있다. ⓒ 김경준

현장을 둘러보고 있노라니 자신을 공사 관계자라 소개하는 이가 다가와 “무슨 일이시냐”고 물었다. “원래 이 터에 독립운동가 임우철 지사께서 머물고 계셨다”고 하자 “그런 사연까지는 몰랐다”며 약간 놀라는 눈치였다.

철거된 건물은 지사께서 1953년 이래 별세할 때까지 무려 70년 가까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2019년 1월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직접 찾아와 대문 앞에 ‘독립유공자의 집’ 명패를 부착하기도 했다. 2020년에는 대한주택건설협회 등 주택 업체들이 실시한 국가유공자 노후주택 무료 보수 사업의 일환으로 리모델링을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한 바 있다. 여러모로 상징적인 공간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이 집은 대체 무슨 연유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걸까. 관할 지자체인 동작구청 도시건설국 건축과 관계자는 “해당 건축물은 소유자의 신청으로 인하여 해체됐으며 향후 공동주택 건축이 계획돼 있다”고 답했다. 임우철 지사의 유족들이 철거를 결정한 것인지 묻자 “소유주에 대해서는 개인정보이므로 알려드릴 수 없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구청 측은 “법령에 의거해 적법한 절차를 거쳐 진행됐다”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독립운동 기념공간으로 활용할 수는 없었을까

▲ 2019년 1월 25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임우철 애국지사의 집을 방문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독립유공자의 명패”를 직접 달고 있다. ⓒ 국가보훈처

철거 과정이야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이 집의 상징성을 잘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답변이었다. 차라리 동작구청이나 서울시가 이 집을 매입하여 임우철 지사를 비롯한 동작구 지역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공간 등으로 활용했더라면 어땠을까.

철거 사실을 처음 알린 김학규 소장 역시 “만약 이 건물을 동작구청이 구입하여 ‘동작 독립운동기념관’으로 만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면서 “우리가 기억을 이어가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씁쓸함을 토로했다.

실제로 서울 동작구에는 동작구의 독립운동을 기념할 만한 공간이 전무한 실정이다. 관내에 국립서울현충원이 자리하고 있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동작구에 위치하고 있다 뿐이지 동작구의 독립운동사나 동작구 출신 독립운동가들만을 오롯이 기억하기 위한 공간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웃 동네인 용산구는 최근 관내에 이봉창역사울림관·용산역사박물관 등을 건립하면서 ‘애국선열의 도시’를 선포하는 등 용산구의 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행보를 적극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임우철 지사의 집 철거는 이러한 행보와 대조되어 더 아쉬움이 남는다.

한편 이와는 대조적인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서울 관악구 남현동에 위치한 ‘미당 서정주의 집’. 이곳은 시인 서정주(1915~2000)가 1970년 이사 온 이래 사망할 때까지 30년 동안 살던 집이다.

▲ 사당역 6번 출구 뒤쪽에는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미당 서정주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그곳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미당이 살던 집이 있다. ⓒ 김종훈

2020년 8월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2003년 이명박 서울시장 재임 당시 서울시는 서정주의 집이 한 건축업자에게 매각될 상황에 놓이자 시비 7억 5000만 원을 들여 매입했다고 한다. 또 2009년 오세훈 시장 재임 당시 다시 시비 10억 원, 구비 2억 5000만 원을 추가 투입해 서정주의 집을 기념관으로 리모델링했다. 나아가 2013년 박원순 시장 재임 당시 서울시는 이곳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했다. 서울미래유산은 서울의 근현대 유산 중 미래 세대를 위해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유·무형 자산을 의미한다(관련 기사: 세금 20억 들어간 친일파의 집… 친일 안내조차 없고).

관할 지자체인 관악구청 홈페이지에는 “국내 유일하게 남아 있는 미당의 창작 산실인 이 곳은 시인 생애의 마지막 집필 공간이라는 의미가 크다”며 서정주 가옥을 ‘인기 명소’로 소개하고 있다.

서정주는 ‘학병·지원병·징병의 선전 선동’, ‘일제 침략전쟁과 전사자 찬양’, ‘대동아공영 선전’, ‘조선문인보국회 활동’ 등의 혐의로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친일파)로 지정된 바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에 부역하며 젊은 청년들을 사지로 내몰던 친일파의 가옥은 이런 저런 의미를 붙이고 20억이나 들여 보존하면서, 독립운동가가 70년 넘게 거주하던 공간은 외면당하는 현실이 씁쓸할 따름이다.

이제 지사는 떠나고 그가 살던 집도 사라졌다. 지사의 집이 있던 자리에 공동 주택이 들어서게 되면 이곳에 독립운동가가 살았다는 기억조차 점점 흐릿해질까 두렵다. 아쉬운 대로 새로 지어질 주택 앞에 이곳에 독립운동가 임우철이 살았다는 작은 표지석 하나만이라도 세우면 어떨까, 바람을 남겨본다.

김경준(kia0917)

<2022-04-22>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독립운동가의 집… 황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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