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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역발상 시즌1_대중가요 작사의 쌍두마차 박영호와 조명암_식민지시대 사람들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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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26) ‘역발상’ 시즌 1: 대중가요 작사의 쌍두마차 박영호와 조명암_식민지시대 사람들 6편

오늘의 이야기: 대중가요 작사계의 투톱
출연: 이준희(옛가요 전문가) 이영미(대중문화평론가)

■ 양적인 면이나 질적인 면에서 모두 해방 이전 대중가요 작사를 대표하는 쌍벽, 박영호와 조명암. 두 사람이 다양한 필명으로 발표한 작품은 대략 1100여 곡.
작사자가 확인된 작품이 대략 3500여 곡이니, 약 1/3을 점하는 셈. <꿈꾸는 백마강>

■ 두 사람은 또 특이하게 같은 필명을 공동으로 사용하기도. 김다인이 바로 문제의 필명. 김다인 명의로 발표된 작품 중 어떤 것이 조명암의 작품이고 어떤 것이 박영호 작품인지는 확정하기 어려운 문제. 음반회사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 그나마 타당. <온돌 야화>

■ 대중가요에서 작가의 개성을 찾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으나, 두 사람의 대비는 그래도 꽤 확인되는 편. 박영호는 작사가인 동시에 극작가로 활약했고, 조명암은 역시 극작도 했지만 시인으로 문필 활동을 시작. 가사만으로 작사자를 충분히 추정할 수 있는 곡들도 다수 존재. <타국의 여인숙>

■ 작품 활동만 했던, 그래서 그런지 작품 수가 좀 더 많기도 한 조명암과 달리, 박영호는 음반 기획을 총괄하는 음반회사 문예부장을 몇 차례 맡기도. 녹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가사를 완성하지 않아 가수들을 초조하게 했다는 박영호의 집필 스타일이 그런 상황과 관련이 있는지도. <오빠는 풍각쟁이>

■ 많은 작품을 발표한 두 사람은 군국가요에서도 역시 쌍벽을 이루는 작가. 특히 조명암은 확인된 군국가요의 2/3 정도를 도맡아 썼을 정도. 그리고 1940년 이후 등장한 일본어 가사 역시 조명암이 거의 대부분 작사. <불어라 쌍고동>

■ 해방 이후 두 사람 모두 월북을 선택. 박영호는 1946년, 조명암은 1948년. 박영호는 1952년 또는 1953년에 사망했으므로 북한에서 노랫말을 그렇게 많이 만들었을 것 같지는 않으나, 조명암은 1993년까지 살면서 많은 체제선전 가요를 작사. 여러 모로 대비점이 많은 두 사람. <고향초>

※지난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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