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회원 마당]
임청각에서 소중한 의미를 깨닫다
신윤정 구미지회 후원회원
지난해 10월 ‘왕산 허위 선생 추모식’에 석주 이상룡 선생 후손인 이혜정 여사님을 모시기 위해서 댁이 있는 경주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석주 선생의 증손부가 왕산 가문의 허은 여사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허은 여사의 따님인 이혜정 여사님을 뵙게 되다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1910년 나라를 빼앗기자 가족과 함께 만주로 망명을 떠나 독립운동기지인 경학사,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내신 분입니다.
경주에서 구미로 가는 동안 이혜정 여사님은 석주 할아버지, 어머니 이야기, 고되고 어려웠던 형편을 말씀해 주시면서 어머니가 만주에서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만드신 국수도 알려주셨습니다.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마음 한편에 석주 선생의 생가인 안동 임청각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이번에 ‘고택‧종갓집 활용 사업 – 임청각에서 나라사랑 정신을 배우다’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단번에 신청을 하게 되었고 아이들과 함께 참가했습니다. 5백 년 전통 고택에서의 하룻밤이라는 기대와 석주 가문의 정신이 깃든 곳이라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특히 일제가 집의 일부를 허물고 기찻길을 만들었다는 가슴 아픈 역사에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다행히 현재는 선로가 해체되고 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안동문화지킴이 해설사 님과 후손과의 토크 콘서트를 통해 석주 선생의 업적을 잘 알 수 있었고, 특히 방 안에 비치된 책을 읽은 후 더욱 감명 깊게 다가왔습니다. 이 책은 바로 허은 여사의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책을 만화로 펴낸 <먼동이 틀 때>입니다. 여덟 살 때 가족과 구미를 떠나 만주로 가, 열여섯에 석주의 손자 이병화 선생과 결혼한 후 시할아버지인 석주선생과 시아버지, 남편의 독립운동 뒷바라지를 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오신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산 가문, 석주 가문을 비롯해 얼마나 많은 분들이 척박한 그 곳에서 독립을 위해 목숨과 재산을 바치셨는지 다시금 알게 되었습니다.
‘얼어죽을 각오, 굶어죽을 각오, 맞아죽을 각오’로 온몸을 바친 그분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임청각에서 소중한 의미, 감사한 마음을 깨닫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독립운동가의 생애와 가치를 잘 전달하겠습니다.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관계자 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