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찬성 편향 토론회 개최 등 ‘역사 교과서 국정화 지지 여론 조성’ 주도
국정화 찬성 외부 필진의 기고문 기획해 보수 언론에 게재 등 관주도형 ‘여론 조작’
보수 단체에 3,000만 원 연구과제 부당 지원 등 위법 행위도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 교육비서관으로 임명된 권성연 씨가 과거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의 실무 작업을 주도하며 ‘여론 조작’까지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권 비서관은 2014년 교육부 역사교육지원팀장으로 있던 당시 국정화 찬성 여론을 조작하고, 보수 단체에 국정화 연구과제를 몰아 지원하는 등의 위법 행위를 저질렀고, 정권 교체 이후 문재인 정부의 교육부에서 경고 조치 대상에 올랐던 것으로 밝혀졌다. 역사 단체들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며 권 비서관의 임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권성연 비서관, 2014년 ‘국정화 찬성 여론 조작’ 작업의 실무 책임자
2013년 6월 17일 집권 4개월 차, “역사 교육을 새 정부에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전직 대통령 박근혜 씨의 발언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은 시작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국정농단 사례 중 하나였다.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라는 역사 왜곡 비판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는 4년간 밀어붙였고,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폐기됐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정책의 폐기와 함께 2017년 9월,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를 발족했다. 조사위는 교육부 공무원과 변호사, 역사학자 등 외부 위원으로 구성됐다. 2017년 9월부터 2018년 4월까지 8개월간 활동했다. 이후 조사 결과를 정리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백서’를 펴냈다. 백서에는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 벌어진 각종 불법과 위법, 권력 남용 사례를 자세히 기록해놨다.
이 백서에는 당시 국정화 추진 책임자로 조사를 받은 ‘권00 역사교육지원팀 팀장’이 등장한다. 이 사람이 바로 윤석열 정부의 초대 교육비서관으로 임명된 권성연 씨다. 권 비서관은 박근혜 정부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추진을 준비하던 2014년 1월부터 12월까지, 약 1년간 교육부 역사교육지원팀장을 맡았다. 역사교육지원팀은 박근혜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을 위해 교육부에 신설했던 부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백서(2018.5)’에 따르면, 역사교육지원팀은 국정화 추진의 핵심 실무 부서였다. 권 비서관은 이 팀의 초대 팀장으로 있으면서 청와대 지시를 받아 국정화를 위한 실행 계획과 핵심 논리를 개발했다. 이 과정에서 권 비서관은 국정화 찬성 여론을 조성·조작했다. 당시 진상조사를 했던 한 관계자는 권 비서관을 가리켜 “청와대의 부당한 지시를 충실히 이행했던 실무 책임자이자 충성파 공무원”으로 기억했다.
국정화 백서 등에 드러난 권 비서관의 ‘국정화 찬성 여론 조성’ 비위
뉴스타파는 당시 권 비서관과 그가 이끌던 역사교육지원팀이 어떤 방식으로 국정화 여론을 호도하고, 조작했는지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이를 위해 교육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백서’와 ‘백서 부록’을 살펴봤다. 또 국회 교육위원회의 강득구 의원실로부터 당시 교육부 내부 조사 자료를 받아 실상을 파악했다.
이렇게 확인한 권성연 교육비서관과 그가 이끌던 역사교육지원팀의 국정화 관련 업무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이 중에는 보수 언론을 이용해 국정화 우호 여론을 만들려고 했던 내용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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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보수 성향 단체에 역사교과서 관련 정책 연구 과제 3,000만 원 수의 계약
●2014년 8월 30일, KBS심야토론에 출연한 강은희 당시 새누리당 의원에게 토론 자료 제공
●2014년 9월, 국정화 찬성 학자 섭외해 조선일보, 문화일보에 기고글 게재 기획
●2014년 9월 25일, 국정화 찬성론자 위주로 구성한 교과서 토론회 개최
●2014년 10월, 보수 성향 시민단체의 국정화 지지 성명서 검토 및 배포
●청와대 지시로 EBS에 EBS 한국사 교재 수정 지시
●국정 교과서 반대 목소리 차단 위해 교사 징계 등 대응 방안 마련
●국정화 정당화 논리 자료 ‘한국사 교과서는 왜 국정화 되어야 하는가 (12문 12답)’ 마련
▲권성연 비서관이 팀장을 맡았던 2014년 1월부터 12월까지 역사교육지원팀이 했던 주요 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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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 이용해 국정화 찬성 여론 조성
2014년 8월, 권 비서관이 이끌던 역사교육지원팀이 작성한 내부 문건인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 9월 언론 홍보계획(안)’에는 조선일보와 문화일보 등 보수 매체를 통해 국정화를 찬성하는 기고문의 연재를 매주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9월 첫 주부터 마지막 주까지 한 달간, 역사교과서 관련 기획 기사와 국정화 지지 학자가 기고한 글을 언론에 게재한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역사교육지원팀은 언론 게재의 시기와 매체, 기고자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정했다.
확인해 보니, 실제 문건에 나온 대로 ‘여론 조작’은 실행됐다. 2014년 9월 2일과 14일, 이재범 경기대 교수와 홍후조 고려대 교수 등 국정화 지지 교수의 기고문이 각각 문화일보와 조선일보에 실렸다. 교육부 진상조사위 조사 문건에 따르면, 권 비서관은 당시 조사를 받으며 “사전에 이들 교수와 소통한 적이 있다”며 교육부가 직접 외부 필진을 동원하고 보수 매체를 이용해 여론 조작에 나선 사실을 인정했다. 관 주도형 ‘여론 조작’을 벌인 것이다.
‘국정화 지지’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의 TV토론 지원
권 비서관은 국정화 지지 인사와 새누리당 의원들의 TV 토론회 출연도 지원했다. 2014년 8월 30일, KBS <심야토론>이 그랬다.
이날 방송에 국정화 지지 토론자로 홍후조 교수와 새누리당 역사교과서 개선 특위 간사였던 강은희 의원이 나섰다. 이때 강은희 의원에게 국정화를 지지하는 내용의 토론 자료를 제공한 사람이 권 비서관이었다.
‘국정화 찬성 편향’ 교과서 토론회 기획
2014년 9월, 국정화 찬성론자 위주로 패널을 구성해 편향성 비판을 받았던 교육부 주최 국정화 토론회도 권 비서관의 주도로 기획됐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 조사 백서’에 따르면, 2014년 8월 26일, 교육부가 주최한 역사교과서 1차 토론회에서 토론자 대부분이 국정화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자, 권 비서관은 한 달 뒤인 9월 25일, 2차 토론회를 다시 준비해 개최했다. “국정화 찬성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는 당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의 질책을 받은 직후 기획한 행사였다.
9월 25일, 2차 토론회는 전체 패널 9명 중 7명을 국정화 찬성론자로 채워 편향 논란이 일어났다. 2014년 당시, 뉴스타파도 패널 구성 등 교육부 토론회의 문제를 보도한 바 있다. 그런데, 이 토론회를 기획한 사람이 바로 권 비서관이었다.
국정화 지지하는 보수 단체에 3,000만 원 연구용역 부당 지원
권 비서관은 국정화를 지지한 보수 성향의 단체에 교육부 정책 과제를 지원하기도 했다. 뉴스타파가 강득구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진상조사 내부 문건에 따르면, 권 비서관은 2014년 8월, ‘남북한 역사 교과서 근현대사 비교 분석 연구’라는 교육부 정책 과제를 ‘청년지식인포럼 story K(스토리K)’의 이종철 대표에게 수의 계약으로 줬다. 용역비는 3,000만 원이었다.
이 단체는 교학사 교과서를 옹호하는 유인물을 일선 학교에 무단 배포해 물의를 빚었던 곳이다. 용역 연구도 이명희 공주대 교수, 김윤태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 등 국정화를 지지하는 인물이 함께 맡았다.
권 비서관은 이후 진상 조사과정에서 “최원기 당시 청와대 행정관의 부탁으로 공모 아닌 지정 연구로 발주했다”고 진술해 교육부 연구 용역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국정화 지지 인사들을 부당 지원했음을 인정했다.
국정화 반대 목소리 탄압에도 앞장
권 비서관은 국정화에 반대하는 교사들의 목소리를 축소하거나 심지어 탄압하는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일도 주도했다.
2014년 10월, 권 비서관의 교육부 역사교육지원팀이 작성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발표 현황 및 대응 방안’이라는 문건에는 국정화 반대 시위에 참여한 교사들을 형사 고발하고, 시·도 교육감에게 징계 요구했던 사례들이 열거돼 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국정화 반대 교사들에게 징계 등 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문건에 적힌 대로, 당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거나 시국 선언에 이름을 올린 많은 교사가 징계를 받았고, 형사 고발을 당했다.
부당·위법 행위로 ‘경고’ 대상 올랐지만, 징계 시효 지나 ‘불문’
이렇게 권 비서관이 박근혜 정부에서 했던 업무 가운데는 여론 조작, 수의 계약 부당 지원 등 직권 남용에 해당하는 위법 행위가 발견된다. 이에 따라 2018년 교육부 진상조사위에서는 권 비서관을 징계하고, 백서에도 실명으로 기록해 남겨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당시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국장급 이상 고위 공무원의 실명만 백서에 공개하고, 인사혁신처에 징계를 요구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당시 김상곤 장관은 교육부와 소속기관 고위 공무원 6명에 대해 징계를 요구하고, 위법·부당한 행위로 범죄 혐의가 있던 청와대 관계자 5명, 교육부 관련자 8명, 민간인 4명 등 총 17명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여기에 권성연 비서관은 빠졌다. 권 씨의 부당·위법 행위는 밝혀졌지만, 당시 직급이 과장급에 해당했기에 수사 의뢰나 징계 요구 대상이 아닌 교육부 내부의 경고 조치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국가공무원법상 징계 시효인 3년이 지났다는 사유로 권 씨는 아무 처분도 받지 않았다. 결국, 단죄나 반성이 없었던 권 씨는 공직을 계속 이어갔고, 윤석열 정부 들어 1급 공무원인 대통령실 교육비서관으로 영전했다.
2017년 당시 진상조사위의 외부 위원으로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국정화 추진 당시 상부의 지시에 반대하며 사표를 내거나 좌천된 공무원도 있었다. 하지만 권성연 비서관처럼 단순히 상부의 지시를 이행한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하고 실행했던 사람들은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았다”며 “그때 제대로 문책하지 못한 잘못이 이번 (인사 발탁의) 결과를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스타파는 권성연 교육비서관에게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추진은 지금도 정당했다고 생각하는지, 당시 청와대 지시에 따라 국정화 찬성 여론을 조성하는 일을 했던 것이 공무원으로서 정당한 직무였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하지만 답변이 오지 않았다. 청와대 대변인실에도 권 씨를 교육비서관으로 발탁한 사유가 무엇인지, 권 씨가 과거 국정화 작업의 핵심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임명했는지 질의했지만, 역시 답은 오지 않았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의 강득구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공정과 상식을 외쳤고, 취임 연설에서는 자유와 지성주의를 부르짖었다. 그런데 이번에 임명된 권성연 교육비서관은 지난 국정교과서 사태 때, 국민의 상식에 반하고 반자유, 반지성주의의 표본과도 같은 일을 했다”며 “대한민국 교육을 추진하기에는 너무도 불공정한 인사다. 당장 윤석열 대통령은 사과하고, 권성연 교육비서관은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도 5월 13일 논평을 내고, “역사적 심판을 받은 교과서 국정화를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한 인물에게 국가의 교육정책을 다시 맡길 수는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권성연 교육비서관 임명을 당장 철회하라”라고 요구했다.
홍여진 sarang@newstapa.org
<2022-05-16> 뉴스타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