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를 빛낸 사람들
2021년 4월, 광주에서 개막한 비엔날레에 출품된 수 많은 작품 중 세간의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은 작품은 누가 뭐래도 이상호 작가의 ‘일제를 빛낸 사람들’이었다. 국권침탈과 민중수탈, 또 일제의 징병, 징용, 일본군 성노예 등 조선인에 대한 강제동원에 앞장선 친일반민족행위자, 이른바 친일파 92인에게 수갑을 채우고 포승줄을 묶은, 실제하지 않은 역사를 그림으로 형상화한 작품이었으니 뒷말이 많았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불을 지핀 것은 박정희 재단이었다. 광주 비엔날레 재단 측에 그림 전시를 중단, 철거를 요청한 것이었다. 비엔날레 재단 측과 광주, 전남 지역의 예술인 등은 입장문과 성명서를 통해 작가의 창작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또 역사적으로 검증된 친일의 역사를 그림으로 형상화한 작품에 대한 철거 요청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반박했다. 그림에 수록된 92명은 박정희, 방응모, 김성수, 김활란, 서정주, 안익태, 최남선, 이광수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거물 친일파들이다.
작가 이상호가 걸어온 길
이상호 작가는 1960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났다. 피카소, 마네, 모네 등을 동경한 미술학도였고, 그들처럼 멋진 화가가 되고 싶었다. 1979년 서울의 모 대학 불교 미술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1980년 5월 17일 서울역에서의 학생대오 후퇴 후 그는 학교 중퇴를 선택했다. 광주로 내려가 확인한 학살의 현장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그리고 조선대학교 서양화과에 다시 입학했지만 그는 더 이상 피카소, 모네 등을 꿈꾸는 미술학도가 아니었다. 수많은 민중을 학살한 독재권력, 학살을 묵인하고 독재정권의 든든한 뒷배였던 미국, 재벌과 언론 등 민중을 억압하고 탄압해 온 수많은 부정을 그림으로 고발하고 민중의 투쟁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작품을 붓으로 구현하는 투사였다. 그러던 중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이 되었다. 서울로 끌려올라와 가혹한 고문과 수감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청산되지 않은 친일잔재, 결론은 역사정의 실현이 우선이다.
1987년 학교 그림패 후배들과 함께 제작한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 걸개그림으로 그는 미술인 최초 국가보안법 위반 수감자가 되었다. 박종철이 숨져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끔찍한 고문을 당했고, 서대문 형무소가 자리했던 서울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6개월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옥한 이상호 작가는 고문 후유증과 정신적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고 오랜 시간 침잠해 있었다. 작품활동은 고사하고 은둔생활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 그를 일으킨 것은 구치소 감방 바닥에 새겨져 있던 ‘대한독립만세!’라는 글귀였다. 환영처럼 보았던 그 문구는 발 딛고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암울한 현실의 뿌리가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가 내린 답은 1945년 해방은 되었지만 청산되지 않은 과거, 친일파 후손들이 여전히 사회지도층으로 부와 권력을 움켜쥔 현실이었다. 분단도, 국가보안법도 주한미군도 모두가 그 연장선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결론에 닿았다.
2022년 8월, 용산에 이상호 작가의 그림이 전시된다.
‘일제를 빛낸 사람들(2021)’, ‘지옥도(2010)’, ‘민중항쟁시리즈-외세 막는 금강역사도’, ‘통일염원도(2014)’, ‘통일열차 타고 베를린까지(2018)’ 등 이상호 작가가 고문 후유증과 트라우마를 이겨오며 그린 작품들이 2022년 8월 두 달여 간 일정으로 용산 식민지역사박물관에 전시된다. 여전히 분단은 극복되지 않았고, 국가보안법, 주한미군도 온존해 있지만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1960년 4.19혁명, 1979년 부마민중항쟁, 1980년 광주 민중항쟁, 1987년 6월항쟁, 2016년 광화문 촛불혁명 등 꺼질 듯 꺼지지 않고 끊임없이 독재권력에 맞서 싸워왔던 한국인들의 저력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호 작가의 그림은 역사정의 실현과 민주화를 염원하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잃지 않고 꿈을 꾸게 할 촉매제이자 활력소가 될 것이다. 이상호 작가의 작품전시회는 희망이 부재한 지금, 우리들에게 큰 위안과 힘을 북돋아 줄 것이다.
이상호 작가의 작품전시회를 응원해 주세요.
설립된 후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일제잔재 청산과 역사정의 실현을 위해 활동해 온 민족문제연구소는 해방 77돌을 맞는 2022년 8월, 이상호 작가의 작품 ‘일제를 빛낸 사람들’을 포함하여 여러 작품들을 전시할 계획이다. 이상호 작가의 작품 대부분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아픈 곳들이기에 보는 사람에 따라 불편할 수도, 또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숨기고 감춘다고 아프고 불편한 진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드러내고 밝혀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를 모으는 것이 정의를 위한 길임을 알기에 이번 작품 전시회를 기획하게 되었다. 아무쪼록 이상호 작가의 작품 전시회가 우리 사회,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단초들을 찾는 그런 기회로 자리하길 기원한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역사정의 실현을 위해 후원과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시길 기원한다.
※관련자료
☞[사이트] 민족문제연구소
☞[사이트] 식민지역사박물관
☞[광주일보] “오월의 모든 사람들 기억했으면…” 이상호 초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