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시민역사관

일제의 식민지 ‘근대화’ 보여주기

1977

[소장자료 톺아보기 38]

일제의 식민지 ‘근대화’ 보여주기

• 강동민 자료팀장

 

변화된 경성시가, <반도의 취록半島の翠綠>, 1926년
1926년 조선총독부 조선산림회에서 발행한 <반도의 취록>에 삽입된 경성시가의 모습. 극도로 낙후하고 정체된 조선 사회가 식민지 지배를 통해 경제적으로 발전되었다는 지배의 정당성을 공간의 변화를 통해 홍보하였다.

서당과 보통학교, <조선총독부시정2주년기념엽서>, 1911년

‘근대화’를 담당할 인력양성은 신식 교육의 보급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선전하는 모습. 상단의 사진은 서당의 풍경을 묘사했다. 갓을 쓴 훈장을 중심으로 툇마루에 책을 펼치고 앉은 댕기머리 아이들 뒤로 창호지가다 뜯어진 방문과 마루 아래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짚신이 눈에 띈다.
반면에 하단의 이미지는 양복을 입은 교사가 칠판 앞에 서 있고 학생들이 줄지은 책상에 책을 펼쳐 칠판을 보며 앉아 있다. 교실의 주변은 세계지도가 걸려 있다.
사진그림엽서가 정보전달 매체의 역할을 넘어 팽창하는 일본 제국주의를 선전하기 가장 좋은 매체로서 활용도가 높았다. 따라서 조선총독부의 ‘근대화’에 관한 사진엽서가 수없이 제작되었으며 이를 통해 일제는 식민지배의 합리화, 조선 근대화의 선전 및 자원 수탈의 정당성을 굳혀나갔다.

백운동 일대 조림지 변화 모습, <사진첩조선>, 1921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사진첩조선>에 삽입된 사방조림지 비교 사진. ‘조선총독부 시정1주년기념엽서’, <애뉴얼리포트>등 일제가 선전하는 홍보물에 자주 등장하는 사진으로 창의문 안에 있던 백운동(白雲洞)의 식림사업 초창기와 10여 년 후의
모습을 비교한 것이다. 황무지 같은 조선을 푸른 숲으로 가꾼 것은 식민지지배의 혜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제는 러일전쟁 시기부터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의 마구잡이 벌채로 조선의 삼림자원을 초토화시켰다.

 

“일본은 식민지조선에 사회간접 시설을 건설하고 근대적 제도를 도입, 보급함으로써 식민지를 개발했고 한국인도 일본의 개발에 자극받아 근대적 기술과 제도를 수용했다. 그 결과 식민지 조선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발전을 경험했으며 이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한국의 고도성장이 가능했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일본 식민지 지배의 수혜라는 말이다. 일본 우파와 연대한 한국 뉴라이트의 인식이다. 식민지근대화론의 시각에서 뉴라이트는 끊임없이 산업화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하더니 최근에는 시민사회의 과거사 청산을 <반일종족주의>로 폄하하면서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으로 지목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경제력과 생산력이 증대하고 발전했다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수탈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당연히 자본주의를 이식하여 식민지를 개발하고 성장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일제도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이 익숙한 제도와 기술을 이식하고 자금을 투여하여 조선의 생산력을 높이고 이를 수탈하는 것. 지극히 당연한 구조다. 문제는 ‘성장’ 그 자체가 아니라 ‘혜택의 대상’이 누구였는지이다. 뉴라이트는 바로 경제성장의 구조였던 ‘식민지’라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발전의 혜택이 식민지 지배층인 일본인과 소수의 조선인 자본가와 지주에게 돌아간 것은 재차 말할 것도 없다.

공주 감옥과 서대문 감옥, <사진첩조선>, 1921년
대한제국 시기 낡고 허술해 보이는 감옥을 배경으로 마당에 꿇어앉은 죄수들 사진을 하단에 배치하고, 상단에는 죄수를 한눈에 감시할 수 있는 ‘근대식’ 감옥인 서대문 감옥을 비교한 사진. 표면적으로는 야만적 형벌 집행을 폐지하고 ‘문명화’한 체계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실제로 식민지 감옥은 저항세력을 일반 대중과 분리하기 위한 억압과 공포의 상징이었다.

 

1910년 8월, 나라를 뺏긴 대한제국민은 한순간에 식민지 조선인으로 전락하여 일제의 가혹한 통치를 받아야 했다. 특히 군인들을 통제해야 하는 일제 헌병은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의 역할을 수행하며 총칼로 식민지조선의 행정업무까지 장악하였다. 그들은 대한제국을 구시대의 ‘낡은 국가’로 치부하며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각종 제도를 그들의 입맛에 맞게 개정하고 단기간에 변화된 모습을 조선인에게, 또 본국의 일본인에게, 그리고 세계에 알렸다. 위에 소개하고 있는 자료들이 바로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물이다. 일본은 그들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한 조선의 모습을 구시대와 비교하여 홍보하였다.
뉴라이트를 비롯한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특히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통계연보> 등을 통해 식민지기 ‘경제성장’을 통계학으로 분석한다. 특히 1930년대 이후 대규모의 일본 자본 유입과 조선총독부의 강력한 지배력으로 조선인의 소득이 향상되었고 각종 산업시설이 확장되었으며 근대화를 담당할 인력양성을 통해 한국의 비약적 경제발전이 가능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경제성장의 수치가 ‘수탈의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 사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또 하나의 문제는 뉴라이트의 왜곡된 인식을 한국사 교과서에 반영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있다. 이와 함께 유튜브 같은 매체를 통해 심각하게 확산시키고 있으며 이에 동조하는 극우세력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사실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통계를 활용한 수치 놀음에 현혹되지 않고 숫자 속에 숨어 있는 식민지 민중의 진정한 삶을 들여다보는 눈을 길러야 할 것이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