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학인들은 도덕과 윤리의 상징적 존재
친일문학상 반드시 폐지돼야
권위상 민족문학연구회 사무국장 인터뷰
인터뷰 : 방학진 기획실장
최우현 주임연구원
“친일파가 전부 다 주도하고 해서 친일 청산이 안 됐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요즘에 무슨 친일파 자꾸 얘기하고 그러냐고. 지금 세상이 어떤때인데. 꼭 그런 분들 보면요. 낮도깨비 만나고 온 사람들 같아요.”
대선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던 작년 여름, 모 라디오 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했던 정치인 김재원 씨의 발언이다. 아마도 이런 논리인 듯하다. 첫째, 요즘 세상에 친일파는 없다. 즉 다 죽었다. 둘째, 애초부터 청산하고 말고 할 친일이란 게 없었다. 친일청산이란 마치 ‘낮도깨비’처럼, 그 실체가 없는 것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지극히 단순한 접근이지만) 2022년 현재, 생물학적 수명을 유지하고 있는 친일행위의 당사자들은 없다. 그렇다면 친일청산은 어떨까? <친일인명사전>이 나왔으니, 국가차원에서 친일반민족행위를 조사했으니 그걸로 마무리 됐다고 볼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 일제 부역자들에 의해 고착화된 인적, 물적, 문화적 잔재는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친일파 현창을 위한 기념사업, 문학·가요제, 언론·학술상 등은 여전히 ‘성업’ 중이고 친일의 장물(贓物)인 ‘친일재산’은 2005년 관련 법 제정 이래 환수가 이어지고 있으며 징용노동자와 같은 친일행위의 직·간접적 피해자들은 재판 투쟁에 나서고 있다. 이번에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난 권위상 민족문학연구회 사무국장은 이 같은 친일잔재의 거대한 한 축이라고 볼 수 있는 ‘친일문학상’ 폐지를 위해 전력을 투구해온 인물이다. 우리 연구소 서울서부지부장(2010), 운영위원회 부위원장(2017∼현재)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문학·예술인이야말로 도덕과 윤리의 상징적인 존재’(샤를 드골)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엄격한 단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친일청산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이번에 등단 10년 만의 시집,『마스카라 지운 초승달』을 출간했다. 친일문학상 폐지와 관련된 내용은 물론, 자신이 지금껏 살아오며 목도한 한국 근현대사의 아픈 지점들을 모아 ‘시(詩)’로 눌러 담았다고 한다.
● 등단 10년 만에 나온 시집이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 솔직히 나는 참여시라고 썼는데 평단은 순수시에 가깝다고 했다.(웃음) 시를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각종 사회적 역사적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여기에 대한 내 관심의 ‘추(錘)’를 구태여 감추고 싶지 않았다.
권위상 시집 <마스카라 지운 초승달>(2022)
이를테면 장애인이나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해, 그리고 친일청산이나 5·18 민주화운동 등 근현대사의 왜곡에 대한 문제들이다. 또 최근 몇 년 사이 대두한 난민 문제에도 상당히 마음이 쓰인다. 지난2015년 시리아 난민 소년인 ‘아일란 쿠르디’1의 참혹한 죽음을 보고 느낀 바가 많았다. 그로 인해 한때 전 세계가 난민 문제를 성토했었는데 정작 바뀐 게 없는 지금 현실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글 쓰는 사람으로 그런 현상, 문제들을 지적하지 않고 넘어갈 순 없었다. 하다못해 뭐라도 ‘써야겠다’ 그런 의지가 생긴다.
● 일종의 부채의식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 비슷하다. ‘마음의 빚’이라고 바꿔 말해도 무관할 것 같다. 희생자, 피해자들에 대한… 관련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예전 초등학생이던 아들을 데리고 여름휴가를 갔을 때의 일이다. 보통 여름휴가는 바다나 휴양지로 가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 그래서 튜브랑 물놀이 용품까지 준비해서 바다로 떠났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당시 나는, 휴가를 떠나기 전에 이미 5·18국립묘지부터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래, ‘마음의 빚’이 있었던 거다. 결국 묘지로 차를 돌려버렸다. 아들은 ‘휴가를 공동묘지로 가는 가족이 어딨냐’며 불만을 터뜨렸는데(웃음), 설득하느라 애를 먹은 기억이 있다. 참고로 이번 시집 ‘소소한 관조’라는 시에 이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 1980년대부터 문필활동을 꾸준히 해왔다고 들었다. 그때부터 시를 썼던 건가?
○ 공학도였지만 시가 좋았다. 좋은 시를 읽으면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솟았다. 내가 쓴 시가 어느 수준인지 테스트해보기로 하고 1986년 시문학사 주최 전국대학문예 공모전에 응모를 했더니 입선이 되었다. 그때부터 정식으로 창작에 몰두한 것 같다. 그러나 직장생활 하느라 한동안 ‘생산자’가 아니라 시의 ‘소비자’로 남았다. 그러다 우연히 윤삼육 선생을 만났다. 그분은 제18회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살어리랏다》를 연출해 남우주연상(이덕화)을 수상했고 그가 쓴 200여 편의 시나리오가 영화화될 만큼 대가셨다.
그분의 제자로 시나리오를 쓰면서 감독을 꿈꿨으나 뜬 작품이 없어 결국 감독의 꿈은 접게 되었다. 당시에 쓴 작품 몇 개는 아직도 손보고 있다. 그중 《반민특위》라는 시나리오가 초고를 쓴 상태로 남아있다. 올해엔 꼭 반민특위 시나리오를 완성하려 한다. 현재 국민들이 이념과 진영논리로 쪼개진 원인도 결국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다.
1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 탈출하려다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소년. 아일란 쿠르디의 참혹한 사진이 공개되면서, 난민 문제에 대한 세계적 반성이 일어났다.
시나리오를 통해 왜곡된 역사의 근원을 찾고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고 싶다. 몰론 영화 한 편으로 모든 게 해결되리라 보지는 않는다.
● 문필활동과 더불어 사회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친일문학상 폐지운동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임한 걸로 알고 있다.
○ 친일문학상 폐지를 위한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그 시작은 중앙일보가 한국 근현대사의 대표적인 친일 문인 서정주를 기리는 <미당문학상>을 제정했을 때부터였다.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를 비롯한 문화예술, 사회, 노동, 시민단체의 격렬한 반대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미당문학상>은 15년여 세월동안 한국 최고의 문학상으로 그 지위를 굳혀갔다.
특히 2015년경부터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등 역사퇴행의 전조가 극에 달했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본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팔을 걷어붙였다. 한국작가회의 산하기구인 ‘자유실천위원회’(당시 위원장 맹문재 안양대 교수)가 주도하는 반대운동에 참여하면서 한편으로 민족문제연구소에 적극적인 연대를 요청했다. 2016년 민족문제연구소와 자유실천위원회가 공동주관한 ‘친일문인 기념문학상 반대 긴급토론회’는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친일문학상에 대한 의제를 문학계에 공개적으로 제시했다고나 할까. 이후 친일문학상에 대한 반대운동이 본격화되고 작가회의 안건으로 채택되는 등 내부논의를 거쳐 친일문학상 폐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반대운동의 흐름과 논의를 대단히 소략하여 말했는데 사실 거기까지 이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민족문학연구회 회원들의 역할이 컸다. 특히 송경동 회원은 2017년 <미당문학상> 수상 후보로 올랐는데 단호히 거부했다. 송경동 시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같은 반대운동과 깨어있는 문인들의 양심에 힘입어 <미당문학상>은 2018년 이후 사실상 폐지수순을 밟게 된다.
(필자 주: 송경동 시인은 2017년 미당문학상 수상 거부 당시, 다음과 같은 글을 자신의 SNS에 남겼다. “ ‘2017 미당문학상’ 후보로 올리려 한다고 중앙일보에서 전화가 왔다. 적절치 않은 상이라고 했다. 미당의 시적 역할이 있을 수 있겠지만, 친일 부역과 5·18 광주학살과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전두환을 찬양하는 시를 쓰고, 그 군부정권에 부역했던 이를 도리어 기리는 상 자체가 부적절하고 그 말미에라도 내 이름을 넣을 수 없다고 했다. 그건 어쭙잖은 삶이었더라도 내가 살아 온 세월에 대한 부정이고, 나와 함께 더불어 살아왔고, 살아가는 벗들을 부정하는 일이며, 식민지와 독재로 점철된 긴 한국의 역사 그 시기동안 민주주의와 해방을 위해 싸우다 수없이 죽어가고, 끌려가고, 짓밟힌 무수한 이들의 아픔과 고통 그 역사를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앙 언론사가 주관하는 친일문학상으로, 대표적인 3가지를 꼽자면 다음과 같다. 시 부문에 중앙일보의 <미당문학상>, 평론 부문에 김기진을 기리는 한국일보의 <팔봉비평문학상>, 그리고 소설 부문에 김동인을 기리는 조선일보의 <동인문학상>이다. 우리 민족문학연구회의 200여 문학 동지들이 힘을 모아 철폐 투쟁을 벌인 끝에 지금은 조선일보의 <동인문학상>만 남아있다.
● 하지만 반론도 있다. 역사와 문학·예술을 분리시켜 봐야한다는 류의 주장이 대표적인데.
○ 분리가 가능할까? 이 논쟁이 한창일 당시, <미당문학상>을 수상한 모 시인이 <5·18문학상> 본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사건이 발생해 논란이 일었다. 전두환을 향한 낯 뜨거운 찬양시를 헌사했던 서정주를 기리는 문학상과 전두환에 짓밟힌 피해자들을 기리는 <5·18문학상>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친일문인들은 ‘기념할 대상이 아니라 기억할 대상이다’라는 이명원 평론가의 말을 거듭 되새겨보고 싶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잣대가 아니다. 나치 독일에 맞서 프랑스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샤를 드골은 문학·예술인의 부역을 엄격히 단죄했다.
드골은 ‘문학·예술인들이 도덕과 윤리의 상징적인 존재’이며 ‘예술가가 가장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선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악에 대해서도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라며 단죄의 이유를 밝혔다.
만약 문장의 완성도만을 따로 분리해서 바라보고 그것을 기념해야한다면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 괴벨스도 기념의 대상이 된다. 괴벨스의 악행은 분리해두고 문장 그 자체만 기념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상식적으로 알지 않는가. 이런 측면에서 친일문학상 폐지는 분명한 과거청산의 명분이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친일 청산은 2022년 지금도 여전히 ‘미완’의 상태다. 중앙 언론이 주관한 3대 친일문학상 말고도 도처에서 친일 문인을 기리는 상을 주고받고 심사하고 있다. 이들의 역사의식 없는 논리가 바로 ‘작품으로만 보자’는 주장이다. 가당찮은 말이다. <동인문학상>은 가장 격렬하게 반대운동을 펼쳤는데 끄떡도 없다.(웃음) 지금 이 순간에도 월마다 문학상 본 심사를 진행 중이다. 그 심사자들은 문단에서 행세깨나 한다는 분들이다.
● 앞으로의 활동방향과 각오를 피력해 달라.
○ 2019년 8월 15일, 항일문학 발굴 연구, 친일문학 청산, 나아가 통일문학을 지향하는 민족문학연구회가 민족문제연구소 산하 단체로 창립됐다. 문학평론가인 임헌영 소장님을 모시고 시, 소설, 평론, 아동문학, 수필 등 전 분야에서 뜻을 같이 하고 있는 문학 동지들이 모여 ‘우리 대에서는 반드시 친일문인을 기리는 문학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로 모여 세미나, 집회 등을 개최했는데 아직도 조선일보의 <동인문학상>을 폐지하지 못해 아쉽다. 연구소의 도움으로 독립운동가 기림 시집(<독립운동의 접두사>, <겨레의 큰 별들>)도 발간했고 앞으로도 연구회와 긴밀히 협의해 나갈 것이다.
우리 연구회는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고 있다. 연간 4회 회보를 발행하고 올해부터는 엔솔러지(anthology)로 가칭 <민족문학>을 준비하고 있다. 이 자리를 빌려 여태 뜻을 함께해 온 우리 민족문학연구회 동지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지금은 고인이 된 <미당문학상> 수상자 한 분이 ‘무슨 이득을 취하려고 현수막을 들고 설치냐’며 SNS에서 우리 단체를 비방했다. 어처구니가 없고 참 씁쓸했다. 문단의 현실이 이렇다. 그나마 나아진 것은 친일문인을 기리는 상을 탔던 분들이 자기 이력에 친일문학상을 지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진일보한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