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회원 마당]
역사와 진실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 5.18연극 <고백, 나는 광주에 있었습니다> 감상 후기
김진주 서울서부 후원회원(<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홍보위원)
“아버지, 아버지가…!”
무대 위 영은의 절규 속에, 오래된 영화 한편이 떠올랐다. 중고서점을 뒤져 <뮤직박스>를 다시 열었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추악한 진실과 대면한 순간, 앤(제시카 랭 분)이 표정으로 보여준 ‘소리 없는 절규’가 영은의 비명과 겹쳐졌다. ‘내게는 이토록 자상한 아버지가, 수많은 사람들을 잔혹하게 죽인 학살자라니!’ 영은과 앤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진실을 결국 수용하지만, 그녀들의 아버지는 각기 다른 선택을 한다.
“나도 피해자야!”,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야! 진짜 가해자는 국가권력”이라고 울부짖던 영은의 아버지는 결국 죄를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묘소를 찾지만, 앤의 아버지는 끝끝내 죄를 부정한다. 그러나 죄에 대한 사회의 태도는 또 달랐다. 앤의 아버지 미쉬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지은 죄를 40년 넘게 숨겨왔지만, 1980년대에 법정에 서고 죗값을 치른다. 반면, 영은의 아버지 정하는 죄를 인정했음에도 2022년
대한민국 법은 그를 심판하지 않았다.
왼쪽부터 연출가인 이당금 푸른연극마을 대표, 이명화 국민재산환수 집행위원, 그리고 김진주·박선영 회원. 지난 5월 14일, <고백, 나는 광주에 있었습니다> 대학로 공연장에서 서로 인사를 나눴다. 박선영 회원이 손에 쥔 것은 연대의 정신을 상징하는 ‘광주 주먹밥’이다.
지난해 3월, 5·18계엄군의 첫 공식사죄가 있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이후 41년 만이다. 올해 5월에는 계엄군 3명이 광주를 찾아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사죄”했다고 한다. 언론의 표현을 빌리면 ‘오월어머니’가 그들을 끌어안고 “용서하고 싶다”, “죽은 아들을 만난것 같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 ‘용서와 화해’로 가득한 기사를 본 나는 감동 대신 찜찜함과 허탈함에 젖었다. 학살 같은 거대한 폭력에 대해, ‘용서’와 ‘화해’가 정말 가능한 것인가? 그 어떤 사죄의 말도, 그 어떤 보상으로도 죽은 사람을 살리거나 고통의 세월을 되돌릴 수 없을텐데 말이다. 게다가 영은의 아버지가 말한 “진짜 가해자”는 지난해 11월, 저 세상으로 ‘도망’쳤다. ‘가해자들의 가해자’, 학살의 주범은 끝끝내 죗값을 치르지 않았으며 사죄의 말 한 마디 없었다. 그런 전두환의 죽음 앞에서 국회의원 이재명은 “그를 애도할 수 없다. 역사와 진실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라고 했다. 나는 근본적으로 ‘공소시효’ 자체가 매우 비합리적이며 비윤리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왜! 피해자에게는 고통을 끝낼 ‘고통시효’가 없는데, 가해자의 죄에는 공소시효가 있는가? 왜! 세금이나 빚은 갚지 못한 시간만큼 연체료나 이자가 붙는데, 죗값은 치르지 못한 시간만큼 ‘망각’과 ‘공소시효’ 같은, ‘할인’이 붙는가? 분노에 찬 질문들 속에서, <뮤직박스>의 버크 검사가 앤에게 호소하던 말이 뇌리
에 꽂혔다.
“죄가 사실이라면, 아무리 오래 전 일이라도 응징해야 합니다.” 어쩌면 죄지은 자들을 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을지 모른다. 죽은 사람을 살리거나, 소중한 사람을 잃은 아픈 세월을 되돌리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그것은 ‘기억’과 ‘기록’이다. ‘절대 잊지 않는 것’,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것’. 버크 검사도 말하지 않았던가.
“과거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잊지 않을 수는 있어요. 내가 하려는 건, 잊지 않게 만드는 겁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이메일을 통해 우리 부부(남편은 박선영)가 지난 5월 대학로에서 만난 <고백, 나는 광주에 있었습니다>는 2013년 5월 <짬뽕>과 2014년 5월 <푸르른 날에>에 이어 세 번째로 본 5·18연극이다. 앞의 두 작품이 피해자인 광주시민들의 기억을 따라간 것과 달리 <고백, 나는 광주에 있
었습니다>는 관찰자인 딸의 시선을 통해 가해자인 아버지의 기억과 사죄를 이끌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