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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역사소비의 시대, 용산 시민역사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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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비의 시대, 용산 시민역사 길라잡이
– 이순우, 『용산, 빼앗긴 이방인들의 땅 1,2』 (민족문제연구소, 2022)을 읽고 –

서 일 수(역사학연구소 연구원,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ilsutory@naver.com)

『용산, 빼앗긴 이방인들의 땅 1,2』 / 지은이: 이순우 / 출판사: 민연 / ISBN 978-89-93741-36-0 / 히스토리뱅크몰 historybank.kr

1. 사대문 밖 용산이라는 공간

푸코는 ‘1978년 콜레주드프랑스에서의 강의(『안전, 영토, 인구』)’에서 ‘경제적 발전으로 성벽을 허물게 되면서 야간의 폐쇄와 주간의 감시가 불가능하게 된 것’을 18세기 도시 변화 중 하나로 언급하였다. 도시 외부로 연결되는 교통망의 발달에 따라 성벽 밖으로 도시가 확장되는 현상이 수반되었다는 인식이다. 비슷한 시기의 한양 또한 사대문을 넘어 성저십리로의 확대를 경험하였다. 그리고 이때 교통망의 핵심은 마포, 서강 등 경강(京江)의 포구였다.

하지만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근대적 교통망이 이식되면서 사대문 밖 경성의 인공지형은 변화를 맞이하였다. 1900년 한강철교가 부설되고 용산역을 중심으로 식민지 철도망이 편성되면서 한촌에 불과했던 용산으로 교통망의 중심이 옮겨왔고, 1917년 한강인도교까지 개통되면서 철재 교량이 나루터를 대신하는 시대가 되었던 것이다. 또한 러일전쟁을 계기로 1906년부터 한국주차일본군이 용산에 주둔지를 마련하면서, 기지 너머 이태원은 용산과 단절된 별개의 공간이 되었다.

이러한 철도와 군사시설의 수요에 부응하려는 일본인의 이주는 신·구용산이라는 집단거주지(Enclave)를 만들어냈다. 그 중에서도 관사가 집중되었던 한강통(현재의 한강로와 용산동)은 일제시기 경성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곳이었다. 1936년 ‘대경성’ 성립 이전 사대문과 용산만을 일컬어 경성이라고 하였고, 김백영은 이를 이른바 ‘표주박형 이중도시’로 규정한 바 있다.1) 성저십리 중에서 용산만이 경성으로 선택된 맥락에는 이처럼 일제의 식민지배라는 시대적 상황이 자리하고 있다.

2. 돋보기로 들여다 본 역사적 용산

『용산, 빼앗긴 이방인들의 땅』 두 권의 책은 용산의 역사적 장소를 찾아간다. 저자 이순우는 2012년 유사한 방식의 책자를 여럿 출간한 바 있다. 『정동과 각국공사관』, 『손탁호텔』, 『광화문 육조앞길』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혔듯 이번 용산과 관련한 두 권의 책은 이전과 10년의 차이를 둔 발간이다. 그동안 저자는 민족문제연구소 회보 『민족사랑』을 통해 용산에 관한 글들을 꾸준히 집필하였고, 이번의 발간은 그 결과물이다. 2022년 2월 출간되었는데 공교롭게 최근의 청와대 이전과 맞물리면서 최고의 화제성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저자의 글쓰기 방식은 오래전부터 주목되어 왔다. 『정동과 각국공사관』, 『손탁호텔』 두 권에 대해 염복규는 충실한 고증에 입각하였다고 평가한 바 있는데2), 이러한 기조는 용산을 대상으로 한 이번 저서에서도 변함없이 이어졌다. “돋보기를 들이댄 듯하다.”는 평가 또한 이 책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각주 처리가 다소 부족하다는 비평 또한 적극 수용하여 상당 부분 개선한 점도 돋보인다.

저자는 용산을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고 각각 한 권씩 내용을 분배하였다. 만초천을 경계로 동쪽의 군영과 철도 지역을 1권에 담고, 서쪽으로 만초천에서 효창원 일원의 일본인 이주지로 구분하여 2권을 구성한 것이다. 만초천은 무악재에서 발원하여 서울역 인근까지 내려온 뒤 경부선 철도와 병행하여 흘러가다 원효로 방향으로 물길을 틀어 한강으로 합류하던 하천이다. 저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식민지시기에 아사히카와(旭川)로 불리게 되었는데(2권 23쪽), 지금도 솔직히 욱천이 더 익숙한 면이 있다. 만초천이 주는 이질감은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저자의 의도에 더하여 책에 대한 흥미를 일으키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이 두 권의 책에서는 일반인들에게 용산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이야기를 발굴하고 새롭게 조망하였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역사탐방과 교육자료로 사용될 목적에서였다. 하지만 이 두 권의 책은 전공자들에게도 신선하고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는 모두 각각의 주제를 구성하기 위해 성실하게 사료를 읽어나간 저자의 공이다. 다양한 사료 이미지를 제공하여 시각화 것도 장점이다. 특히나 저자가 직접 현장을 돌아보고 문장 하나하나를 작성하였음이 느껴져 읽는 재미를 준다.

3. 용산 공간의 문화적 보전을 위해

요즘 포털에서 제공하는 지도 서비스는 위성지도 형식을 제공하고, 과거 위성사진 또한 함께 볼 수 있다. 지난 10여 년간의 위성사진을 통해 용산의 변화를 살펴보면 대규모 재건축으로 인해 청와대 이전은 차치하더라도 이미 새로운 시대로 접어든 상태이다. 100여 년 전 ‘군대, 철도, 이주민’을 키워드로 형성되었던 용산은 이미 사라졌거나 곧 사라질 예정이다. 지금까지의 용산을 역사로 다룰 수 있는 단계가 된 것이다.

이른바 ‘도시 재생’ 사업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역사의 흔적’을 잔존시키는 이슈는 합의에 이르기 어려운 경우가 다수이다. 용산역 앞 집장촌을 역사적 의미를 생각해서 일부 건물을 남겨놓자고 했다면 찬성하는 개발업자나, 입주자가 얼마나 되었겠는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향후 재개발이 예상되는 경우 콘텐츠의 형식으로만이라도 미리 확보하고, 활용 방안까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도 『용산, 빼앗긴 이방인들의 땅』 두 권의 책은 가치가 있으며, 동시에 몇 가지 아쉬운 면도 있다. 주로 글의 주제나 내용보다는 구성 방식과 관련되어 있다. 그렇지만 두 책이 『민족사랑』을 통해 미리 발표된 글을 모아 발간한 책이라는 맥락은 충분이 감안되어야 하며 이하의 내용이 저자의 업적에 흠집을 내고자 하는 의도는 결코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우선 주제별로 해당 역사적 장소에 대해 앞머리에서 설명하는 방식을 택하였으면 어땠을까 한다. 위치나 현재 상태 등과 연관 지으면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장소에 대해 먼저 설명하고, 이후 시대적 배경이나, 사건의 전개 등을 서술해 나가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역사적 장소를 이용하여 미시적인 글쓰기를 할 수 있는 가능성, 나아가 공간을 통해 역사를 다르게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 현장을 방문한 이들이 용이하게 역사적 층위를 파악하도록 하는데도 유용하다.

또한 현장 답사 동선을 염두에 둔 주제 배치가 필요할 듯하다. 『용산, 빼앗긴 이방인들의 땅』 두 권의 책은 일본군 병영과 철도, 만초천과 효창원 일대로 각 권의 1·2부를 구성하였고, 첫 번째 제시되는 주제가 각 부의 개관이 되도록 설정하였다. 여기에 되도록 이동에 편리하도록 가까운 위치 순서로 주제가 이어지도록 했으면 어땠을까 한다. 한 눈에 전체 주제의 공간 분포를 확인할 수 있도록 지도를 함께 제공하는 것도 좋았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용산역이 실제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로 용산을 한정하는 것도 방법으로 보인다. 저자가 제시한 만포천은 매우 창의적인 접근법이기는 하지만 청엽정(靑葉町), 즉 청파동 일대는 행정구역상 용산이지만, 경성역을 이용하기 편리했다. 저자가 언급하였듯이 용산역에서 역부·연결수 등으로 일하던 이봉창 의사의 집이 효창원 인근이었고(2권 280쪽), 이는 효창원이 당시 용산 ‘역세권’의 끝자락이었음을 의미한다.

4. 시민역사의 가능성을 향해

2018년 역사학대회가 ‘역사소비 시대’를 주제로 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 김정인에 의해 지적되었던 바 대중역사의 활황을 직접 실감하고 있는 요즘이다.3) 학계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공공역사의 필요성이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역사학의 최신 학문적 추이와 대중이 소비하는 역사와의 괴리는 확연하다. 그럼에도 시민의 참여를 전제로 하는 공공제로의 전환은 끊임없이 시도될 필요가 있다. 『용산, 빼앗긴 이방인들의 땅』 두 권의 책은 사료의 제시와 분석에서 탁월한 전문성을 제시하였다. 사료를 다루는 작업이 더 이상 역사학자의 전유물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공적 영역에서의 역사서술 가능성을 확인하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시민역사 시대의 개막을 기대하게 한다.

저자가 이 두 권의 책에서 목표로 한 역사탐방과 교육자료는 역사소비 시대의 중요한 매체이다.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장소라는 의미에서 장소성의 탐구는 다른 학문에 비해 역사학이 유리(有利)할 수 있다. 역사서술의 주체로 떠오를 시민의 일상과도 유리(遊離)되지 않을 것 같다. 이러한 지점이 앞으로 역사소비의 시대 시민역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두 권의 책 『용산, 빼앗긴 이방인들의 땅』 은 그 길라잡이가 되기에 충분하다.


1) 김백영, 『지배와 공간』, 문학과 지성사, 2009, 319~323쪽.
2) 염복규, 「돋보기를 들고 떠나는 근대 도시공간 탐사」, 『황해문화』 75, 2012.
3) 김정인, 「역사소비시대, 대중역사에서 시민역사로」, 『歷史學報』 24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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