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민관협의회가 4일 첫 회의를 열고 출범했다. 대법 판결 이후 출구가 보이지 않던 문제를 풀기 위해 정부와 피해자,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댄다는 것은 의미가 적잖다. 하지만 한일 관계 개선을 서두르면서 피해자들에게 양보를 강요할 것이라는 우려 또한 나오고 있음을 정부는 유념해야 한다.
이날 피해자 대리인단은 일본 가해기업과 직접 협상이 성사될 수 있도록 정부가 외교적 보호 노력을 할 것을 공식 요청했다. 2018년 대법원은 일본 기업들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배상이 끝났다며 일본 기업들의 판결 이행을 막아왔다. 피해자 대리인단은 대법원 판결 이후 강제동원 가해기업 쪽에 계속 협상을 요구했지만 “일말의 의사소통조차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며, 협상이 성사되면 일본 전범기업의 한국 내 자산 매각을 통한 현금화 절차를 늦출 수 있다는 뜻도 내비쳤다. 일본이 ‘자산 강제매각은 한일 관계 파탄’이라고 위협하고 있는 데 대해 피해자 쪽이 해법을 제안했다는 의미로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다.
최근 한일 정부가 양국 기업의 자발적 출연으로 조성한 300억원 기금을 활용하는 ‘대위변제안’(한국 정부가 배상금을 대신 지급하고 이후 일본 쪽에 청구하는 방식)을 조율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데 대해, 피해자 대리인단은 정부가 이런 안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피해자들에게 강요할 가능성도 우려했다. 정부는 최근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와 한일관계 개선을 강조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 대표단을 접견하고 “양국은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만들고자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불안한 국제질서를 고려하면 한일 관계 개선과 협력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와 관련해 ‘대법원 판결에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강조했지만, 사과와 배상에 어떤 진전도 없었던 데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외교 탓도 크다. 다만 한일 과거사 해법은 피해 당사자들과 여론이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해기업의 사과와 배상 참여는 중요한 부분일 수밖에 없다. 일방적으로 ‘면죄부’를 주는 합의는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처럼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정부는 직시해야 한다.
<2022-07-04> 한겨레
☞기사원문: [사설] 강제동원 민관협의회 출범, ‘졸속 화해’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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