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대학다울 수 있는 관건은 비판적 지성의 요람으로서 본모습을 지킬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대학의 생명은 연구비 수주액이나 학생의 취업률 같은 계량적 수치 너머에 존재한다. 기득권 세력의 과거에 대한 해석과 미래의 방향을 비판적으로 통찰하고, 이를 실천하는 일은 대학의 핵심적 가치 중 하나이다. 대학에서 교수들과 학생들의 자치가 강조되는 것은, 이를 통해 권력자의 위력에 굴복하지 않는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시민을 양성하는 일이 대학의 중추적 기능이기 때문이다.
영남권의 대표사학 중 하나인 영남대학교의 교수회 지도부를 구성했던 두 교수의 징계사유를 보면서 놀라운 것은 대학당국이 제시하는 영남대의 역사에 대한 해석과는 다른 해석을 용납하지 못하고 바로 징계 절차에 돌입했다는 점이다. 영남대학교의 전신인 구 대구대학 설립자 유족의 초청강연과 촛불집회에서 영남대의 역사에 대한 교수회 의장의 발언이 주요한 징계사유로 제시됐다는 것으로 그 점은 분명해진다. 그뿐 아니라 교수회 의장이며 한 지성인의 의사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제약한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엄중한 사안이다.
이승렬-김문주 전임교수회 지도부에 대한 징계사유의 또 다른 내용은 교수회 회원들의 회비사용과 관련된 문서처리가 회계원칙을 지켰는지와 관련돼 있다. 교수회비를 집행하는데 있어서 회비와 관련된 교수회 내부규정을 지도부가 제대로 준수했는지는 법리적 검토를 통해 살피면 될 일이지만, 여기서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교수회비 회계의 운영은, 교비회계와 달리 어디까지나 교수자치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대학본부가 이를 자의적으로 심각하게 침해하고 이를 교수 징계의 중요한 사유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회원들의 회비를 사적으로 유용하거나 횡령한 경우처럼 명백한 범죄혐의가 없는 한, 교수회비 회계의 운영은 교수회 자체 감사의 지적과 시정을 통해 바로잡는 것이 교수자치에 부합하는 일이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다. 대학 본부가 교수회의 회비 운영에 초점을 맞추고 아전인수격으로 침소봉대해 징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월권행위이며 그 저의가 순수하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승렬-김문주 전임 교수회 지도부가 영남대학교의 거버넌스 체제의 개혁과 같은 민감한 문제를 거침없이 제기하고, 정의로운 대학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구성원들의 뜻을 수렴하고 그 결과를 법인이사회에 상정하기까지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왔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은 강력한 기득권 체제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결국 실패로 막을 내렸다.
총장선출제도 개혁에 힘을 모았던 주체로 이승렬-김문주 교수회 지도부 이외에 당시 직원노조위원장과 법인이사 한 사람이 한마음으로 행동했지만, 법인이사회에 의해 새로운 총장이 선임된 이후 개혁의 세 주체들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가? 해당 법인이사는 이사직에서 물러났고, 당시 직원노조 위원장은 업무의 성격과 보직상 사실상 강등 배치된 이후 대학에서 퇴직해 현재 ‘직장 내 괴롭힘’ 혐의로 총장을 고소한 상태이며, 교수회 지도부였던 두 교수는 이제 대학 본부에 의해 징계의 대상이 됐다.
현 영남대학교의 지배체제는 숱한 논란을 낳았던 이명박 정부의 교육부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배적인 영향력 아래 탄생하였다. 박 전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를 배경으로 영남대와 영남학원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행사한 인사가 결국 총장에 선임됐다. 전임교수회 임원이었던 두 교수에 대한 탄압과 징계는 학원민주화를 도모하고 자신을 막아섰던 일에 대한 총장의 사적인 보복이라는 것이 대학 안팎의 중론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 이후 사면됐지만 그 정치적 영향력이 현격히 줄어든 지금, 영남대학교는 한 개인에 의해 빠른 속도로 사유화되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전 재산을 기부한 경주 최부자와 영남권 유림의 헌신에 기반하여 대한민국 대학의 역사에 길이 빛나는 민립대학으로부터 출발한 영남대학교가, 한 사람에 의해 사유화의 길을 밟아가는 것은 한국 사립대학의 암울한 현주소를 웅변해주는 상징적 사례이다. 우리는 한국 사립대학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올곧은 싸움을, 앞으로 영남대의 정상화를 통해 줄기차게 이어가고자 한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바이다.
一.영남대는 전임교수회 의장의 공적행위와 발언을 사유로 한 모든 징계조치를 철회하라.
一.영남대는 교수자치를 침해하는 일체의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
一.영남대는 한 개인에 의한 사유화를 중단하고, 공공성에 기반해 투명하게 운영하라.
一.‘영남대 정상화’의 첫 단추를 잘못 채운 교육부는 영남대 사태를 책임지고 해결하라.
2022년 7월 7일
(사)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 사립학교개혁과 비리추방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한국교수노동조합연맹, 전국국공립대학교수노동조합, 한국사립대학교수노동조합, 전국사학민주화교수노동조합,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민주전국교수노동조합 대구경북지부, 대구경북전문직단체협의회, 경북대민주화교수협의회, 부산경남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광주전남교수연구자연합, 민주노총대구지역본부, 전교조대구지부, 교육공무직노조대구지부,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대구지부, 대구환경운동연합, 녹색당대구시당, 전국여성노동조합대구지부,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포항시민단체연대회의, 문경시민희망연대, 영남대 전임 교수회임원 부당징계대책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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