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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독립운동가 탄압하던 법, 국가보안법으로 탈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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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 기도]
(41) 국가보안법 폐지

일제강점기 ‘치안유지법’ 조문 베껴
박정희 때부터 1만3천명 넘게 기소
재심서 무죄 선고된 피해자 449명
폐지안 발의 20년째…번번이 실패

국가보안법 폐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2,27)

“너희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지옥형 판결을 어떻게 피하려느냐? 그러므로 이제 내가 예언자들과 현인들과 율법학자들을 너희에게 보낸다. 그러면 너희는 그들은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또 이 고을 저 고을 쫒아다니며 박해할 것이다.”(마태 23,33-34)

‘법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우리는 언제나 진지하게 되물어야 합니다. 저는 윤리신학 입문 과정에서 프랑스인 사제 교수가 서투른 한국어로 힘주어 말한 내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법, 법은 필요 없어요! 양심, 양심이 최고예요!” 로마 유학 시절 동방신학 교수 한 분이 교회 법전을 탁상에 내리치며 “이놈의 교회법이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망하게 한 주범입니다!”라고 외치셨던 일도 늘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법은 양심과 상식에 기초한 사회적 합의로 무엇보다 약자의 보호막이어야 합니다. 성경을 중심으로 살았던 히브리인들은 십계명에 기초해 동태복수법을 공인하고 613조나 되는 율법을 제정했으며, 이를 기초로 종교사회 지도자들은 백성을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법의 근본정신을 강조하시며 “모든 법은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경천애인·敬天愛人)이며 법의 준수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내면적 지향”이라고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살인하지 말라’는 금령을 넘어 살의도 품어서는 안 된다는 완전한 가르침입니다. 물론 이는 법을 넘어선 종교의 영역이지만, 사람은 모름지기 외적 행동과 함께 내적 자세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법은 외치(外治), 양심은 내치(內治)라고 구분하지만 성숙한 도덕인은 이 둘을 종합해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만일, 법만을 강조한다면 법 운영은 많은 경우에 지극히 잔인한 폭력이 됩니다. 국가보안법이 바로 그 예범입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진보당 사건 관련자들. 앞줄 왼쪽부터 법원 정리 다음이 조봉암 당 위원장, 두사람 건너 윤길중 당 간사장의 얼굴이 보인다. 한겨레 자료사진

헌법 제정되던 해에 국보법도 생겨

우리나라 헌법이 1948년 제정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지만, 국가보안법 역시 같은 해에 제정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1948년 12월1일, 이승만 정권은 순수하지 못한 의도로 국가보안법을 제정합니다. 직접적인 계기는 1948년 10월19일 발발한 이른바 여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주동자가 군인이라는 점에서 이승만 정권은 큰 위협을 느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국가보안법의 뿌리가 일제강점기 ‘치안유지법’이라는 데 있습니다. 주요 조항과 조문을 그대로 베꼈습니다.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법이 자국민을 억압하는 데 쓰였다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게다가 일제의 부역자들이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측면도 있습니다.

1949년 여름 ‘국회 프락치 사건’이 그 예범입니다. 일제에 맞서 독립 항쟁에 투신했던 분들과 같은 뜻을 지닌 소장파 의원들은 일제 시대 헌병으로 부역했던 자들에게 체포돼 고문을 받는 수모를 겪은 뒤 재판까지 받았습니다. 바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말입니다. 국보법 악용의 첫 사례입니다.

우리 모두는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책무를 다합니다. 이 책무를 어긴다면 마땅히 공동체와 공동선의 이름으로 그들을 엄하게 꾸짖고 처벌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형법 등이 거의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옥상옥과 같은 국가보안법을 새로 제정한 것은 그 의도가 매우 불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1948년 11월14일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이러한 법의 제정은 악법이 될 수 있으므로 국회에 경고한다”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오늘의 <조선일보>가 그때의 건강한 시각을 되찾아 바른 언론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박정희 때는 반공법까지 등장

그런데 이승만을 이은 독재자 박정희는 국가보안법으로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해괴한 법을 하나 더 만들어냅니다. 바로 반공법입니다. 박정희 정권은 반공을 국시로 삼았습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여수∙순천 사건 관련자로 처벌 받았던 박정희는 자신의 과거를 은폐하기 위해 엉뚱하게 더 큰소리를 낸 것입니다. 그리고 본의든 아니든 그의 형 박상희와 가장 친했고 박정희 자신도 어린 시절 흠모했던 황태성을 처형합니다. 미국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던 박정희 개인의 비극이며 동시에 우리 민족의 아픔입니다.

무엇에 반대하는 것을 국가의 정체성으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고 서글픈 일인데, 한술 더 떠서 공산주의에 반대하기 위해 법을 제정한 것입니다. 이는 법 이론상이나 사회 통념상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반공법은 1961년 7월 제정되어 1980년 국가보안법에 통합되며 폐지되었습니다. 국가보안법에서 가장 문제시되고 있는 제7조 찬양∙고무죄가 바로 반공법의 조항을 물려받은 것입니다.

[국가보안법 제7조 1항]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 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법률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 조항의 문제를 금세 눈치챌 수 있습니다. 찬양, 고무, 선전, 선동이라는 단어는 법적 용어로서 부적절합니다. 그야말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입니다. 실제로 우리 역사의 독재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정적을 제거하는 데 이 법을 이용했습니다. 또한 국민의 기본권인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로 삼았습니다.

1974년 8월 가톨릭 신부와 신자들이 민청학련 관련 구속자들의 석방과 유신 철폐 요구하는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69년에만 889명 입건

1960~70년대에는 반공법을 ‘막걸리 반공법’이라 불렀습니다. 막걸리 한잔하다가 말 한마디 잘못하면 걸려든다는 의미에서였습니다. 어선이 풍랑을 만나 북한에 갔다 왔다는 이유만으로 반공법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1969년 한 해에만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으로 입건된 사람은 881명에 달합니다. 1965년 이만희 영화감독, 1972년 김지하 시인, 1974년 민청학련 사건, 1975년 한승헌 변호사, 김대중, 문인간첩단 사건 등 반공법으로 처벌된 사례는 분야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 후 매 사건마다 한 명에서부터 수십여 명이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으로 구속되었습니다.

지난 70여 년간 기소된 분들의 수는 이승만 정권을 제외하고도 박정희 6944명, 전두환 1759명, 노태우 1529명, 김영삼 2075명, 김대중 2158명, 노무현 412명, 이명박 202명, 박근혜 181명, 문재인 20명으로 모두 1만3천여 명에 달합니다.(노동사회과학연구소)

참고로 인권의학연구소와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숨’이 연구∙공표한 ‘국가기관에 의한 간첩조작과 진실규명의 역사’ 자료를 소개합니다.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0월 현재,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된 피해자만 449명입니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피해자의 수는 추정조차 불가능합니다. 1959년 죽산 조봉암 선생부터 2013년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까지 국가기관의 간첩조작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서 끊임없이 자행되어 왔습니다. 다행히 2005년 함주명 선생을 시작으로, 개인의 재심청구를 통해 진실의 역사가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무고한 국민에게 불법 구금과 고문을 가한 국가기관은 다음과 같습니다.

· 국정원(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 – 47.6%(214명)
· 경찰청(치안본부 대공수사처) – 26.7%(120명)
· 국방부(보안사령부, 국군기무사령부) – 16.7%(75명)
· 기타(확인하지 못한 기관) – 8.9%(40명)

공권력의 고문과 조작에 희생된 이들

지금도 재일동포 등 많은 분들이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고 있습니다.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보호해야 할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하고 고문과 조작을 통해 죄 없는 사람들을 간첩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악법을 창안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역대 대통령들과 이 법을 악용한 중앙정보부, 경찰, 보안사, 검찰, 판사 등의 실명을 모조리 밝혀 역사 앞에 고발하고, 당사자들과 후예들의 진실한 속죄를 받아 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 정화, 참된 회개, 그리고 인간성과 국격의 회복입니다.

국가보안법은 동족과 가족을 원수로 삼고 민족을 분열시키는 법입니다. 심지어 우리를 침략했던 일본과도 국교를 맺었고, 최근에는 위안부나 독도 문제 등 여러 이슈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러니 같은 겨레인 남과 북이 적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동족을 적을 넘어 악으로 규정하는 법은 반인륜적이고 비인간적입니다. 다른 정치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다는 것이 누가 누구를 굴복시켜야 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 공존과 공생, 그리고 상생의 원리입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는 주장과 노력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의 생명력이 더 길었는지, 그 법에 의지해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더 많았는지 아직까지 염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국가보안법의 피해자인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2000년 처음으로 폐지안이 발의된 이래 여러 차례의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좌절되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대표로 있었던 한나라당의 극렬한 반대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는 헌재의 합헌 결정으로 동력을 잃었습니다. 시대의 한계, 정치적 무력감 앞에서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

양심수 전원 석방 및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범국민대회에서 고 전태일 군 어머니 이소선씨가 전경의 투구를 쓰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저는 민족을 분열시키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국가보안법을 시대의 이름으로 마땅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신학적으로도, 동족에 대한 배척과 거부는 하느님 앞에 큰 죄입니다. 국보법은 신앙의 이름으로도 마땅히 폐지해야 합니다. 겨레의 합의에 의해 이 법이 폐기되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바라며, 그동안 국가보안법에 희생된 분들과 국가보안법 폐지에 몸 바치셨고 지금도 노력하고 계신 분들을 기억하며 희생자들과 가족 모두의 건강한 치유를 위해 기도하며 하느님의 은총을 청합니다.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흩어진 사람들을 모으시고 모인 사람들은 지켜주시니,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을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화해와 일치를 이루어 평화공존의 삶을 살고 흩어진 가족들이 함께 모여 기쁘게 선조들과 선열들을 공경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게 해주소서.

하느님, 남북으로 분단된 저희가 잘못된 과거를 뉘우치고 회개해 서로 화해하도록 도와주십시오. 2014년 8월에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저희에게 권고했습니다. 저희가 비록 남북으로 갈라져 있지만 저희는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는 어머니가 같은 한 가정의 형제자매들임을 깨우쳐 주었고 여러 면에서 더 여유롭게 살고 있는 남쪽의 형제자매들이 북의 형제자매들을 도와주고 껴안아야 함이 의무임을 강조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느님 저희는 참으로 한 민족 한 형제, 자매들입니다. 하오니 한 가족과 형제자매들을 적과 원수로 규정한 국가보안법과 같은 악법을 폐지하고 남과 북이 하나 되어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임을 깨닫고 실천하게 해주소서. 국가보안법을 악용한 이들과 고문 등 비인간적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속죄하고 진심으로 뉘우치도록 하느님, 그들의 양심을 깨우쳐 주소서. 저희 모두 정의와 평화, 형제자매 속에 살게 하시고 남북의 겨레와 민족 공동체를 축복하소서. 이 모든 것을 성령 안에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함세웅 신부 _ 1968년 천주교 신부가 된 뒤 줄곧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1974년)을 주도하는 등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2012년 현역 은퇴 뒤에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연대의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현대사와 관련해 쓴 글과 붓글씨를 싣는다.

<2022-07-11> 한겨레

☞기사원문: 독립운동가 탄압하던 법, 국가보안법으로 탈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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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연재] 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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