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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강제동원, 어떤 해법을 찾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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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코시 상대 강제동원 소송 피해자 지원단(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피해자 대리인 임재성(왼쪽부터)·장완익 변호사,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등이 7월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강제동원 관련 민관협의회 첫번째 회의에 앞서 피해자 쪽 입장을 밝히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세상읽기] 임재성 |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

한국 대법원은 2018년 일제시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들였다. 20년 가까운 소송 끝에 패소가 확정됐지만, 일본 기업들은 판결에 따르지 않았다. 일본 정부를 믿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일국의 최고법원 판결을 부정했고, 비난했다. 피해자들의 권리행사(강제집행)에 경제보복으로 경고했다. 일본 정부의 메시지는 간결했다. 일본 기업 자산이 현금화돼 피해자들에게 돌아가면 더 큰 공격을 할 것이다.

한국 외교부는 지난 4일 강제동원 문제 해법을 논의하겠다며 민관협의회를 출범시켰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해법’이란 포장지에 싸인 알맹이는 일본의 예고된 공격을 피할 수 있는 방안이다. 더 노골적으로는 일본 기업이 강제집행을 당하지 않을 방안이다. 그걸 왜 한국 정부가 만들어야 하냐는 질문은 상식적이고도 타당하다. 타협해야 한다는 쪽 답변은 이렇다. ‘일본 입장은 아주 강경하다. 한-일 관계 파탄은 막아야 한다.’

한국 정부가 타협안을 공개적으로 만들겠다는 상황. 타협의 선택지가 어디에서 어디까지인지 정확하게 확인해야 한다. ‘일본 사과 여부’와 ‘손해배상채권 변제 재원’을 기준으로 타협안은 6개로 압축할 수 있다.

먼저 사과 문제. 강제동원은 개별 기업의 문제를 넘어 제국주의 일본이 침략전쟁의 끝으로 치달아가며 조직적으로 벌인 식민지 수탈 범죄다. 당연히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 모두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하지만, 피해자들은 최소한 일본 기업의 사과만이라도 이뤄져야 한다고 일관되고 강력하게 요구해왔다. 타협안에 일본 기업의 사과가 포함되느냐가 첫번째 쟁점이다.

다음으로 변제 재원의 문제. 일본 기업의 채무를 대신 이행(대위변제)하기 위해, 변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쟁점이 된다. 돈에도 이름이 있다. 누가 재원을 부담하느냐는 누가 책임지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가지 방법을 가정해볼 수 있다. 한국 쪽(한국 정부 또는 한국 기업)이 모두 부담하는 안(한국 전부 부담안). 한국 전부 부담안에 판결과 관련 없는 일본 기업 등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안(일본 자발적 참여안). 일본 자발적 참여안에 미쓰비시중공업 등 패소한 일본 기업들까지 참여하는 안(피고 기업 참여안). 판결 이행까진 아니지만, 후자로 갈수록 일본 쪽 책임이 분명해지는 구조다. 이 세가지 변제 재원 마련 방안에 일본 기업의 사과 여부에 따른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 6개 안이 나온다.

한국 외교부는 2019년 6월 “소송당사자인 일본 기업을 포함한 한·일 양국 기업의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안을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사과는 언급되지 않았다. 사과 없는 ‘피고 기업 참여안’이었다. 피해자 쪽은 당시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절차적 문제와 함께 사과 요구가 없다는 점을 강력하게 항의했다.

2019년 말 등장한 문희상 안은 사과 없는 ‘일본 자발적 참여안’이었다. 피고 기업의 부담이 빠졌다는 점에서 앞선 외교부 안보다 후퇴한 안이었다. 일본 정계 반응은 호의적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피해자 쪽은 물론 한국 내 지지도 얻지 못했다. 최근 보도된 ‘한·일 기업 300억원 대위변제설’ 등도 이 안에 해당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은 그 어떤 책임도 거부할 것이기에 ‘한국 전부 부담안’이 유일한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과 없는 한국 전부 부담안은 행정부가 사법부의 판결을 사실상 무효로 하는 조치다. 강제동원 가해 기업에 일방적인 면죄부를 주는 최악의 타협안이다.

한국 정부가 타협의 주체가 된 이상, 피해자들 역시 설득해야 한다. 패소한 일본 기업이 아닌 제3자가 피해자의 채권을 갚기 위해서는 피해자 동의가 법률적으로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최근 강제동원 소송에 참여한 피해자와 유족분들을 뵙는 기회가 있었다. 두 분의 말씀을 전한다. “내 젊은 날 일본에서 너무 고생했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이야기를 꼭 들어야겠다.” “사과 없이 끝난다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재판하며 싸우셨던 과정이 다 무효가 되는 것 아니냐. 사과가 꼭 필요하다.”

어떤 타협을 할 것인가. 한-일 관계만이 아니라 피해자를 위한 타협, 외교와 교섭이 되길 바란다. ‘사과는 없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이 돈이라도 빨리 받으시라’며 피해자를 몰아세우는 결말이 아니길 간절히 바란다.

<2022-07-12> 한겨레

☞기사원문: 강제동원, 어떤 해법을 찾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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