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명장 허형식 장군 80주기 추모제 열려
지난 3일 늦은 오후 6시, 경북 구미시 임은동 왕산 허위 선생 기념공원에서 허형식 장군 제 80주기 추모제가 유족 및 구미 시민 등 50여 명의 참배객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고도 장엄하게 열렸다. 이번 추모제는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가 주최하고, 광복회 경북지부가 후원했다.
이날 추모제는 식순에 따른 국민의례와 분향, 헌화에 이어 김영덕 민문연 구미지회장의 행사 의의, 이재섭 고문의 공적보고, 허형식 장군의 조카 허창수 옹의 유족 인사에 이어 <허형식 장군>을 쓴 필자의 작품 배경 이야기가 있었다.
필자는 구미 출신으로 선산 구미는 충절의 고장이라는 얘기를 듣고 자랐다. 하지만 현대사에서 그런 인물을 발견치 못하던 중, 1999년 여름 항일유적 답사 길에 북만주 하얼빈 동북열사기념관에서 허형식 장군을 만나자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본 감동을 느꼈다. 그리하여 이듬해 홀로 북만주 벌판의 허형식 장군 희생지에 들꽃을 헌화한 뒤 귀국하여, 10여 년 도 닦듯이 오대산 월정사 등지에서 작 이 작품을 집필하여 마침내 세상에 내놓았다.
장엄한 허형식 장군의 생애
장세윤 박사(전, 동북아 역사재단 수석 연구위원)는 허형식 장군의 장엄한 생애에 대해 ‘자유와 정의, 평등과 해방을 위한 최후의 전사’라는 추모사를 했다. 장 박사는 일찍이 <허형식 연구>라는 논문을 국내 처음으로 발표한 바 있다.
장군께서 북만주 경성현(현, 경안현) 청송령 소릉하 기슭에서 순국하신 지 어느덧 80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잊힌 장군님의 고귀한 희생과 실현코자 했던 참된 가치가 이제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허형식 장군님! 장군님은 불과 33세 나이에 미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머나먼 이국땅에서 삶을 마감하셨습니다. 예로부터 지사는 당신의 목숨을 가볍게 여긴다고 했지만, 어찌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1942년 8월 3일 새벽,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습니다. 상대는 일제의 만주국 토벌대 50여명이었지만 장군님은 경위원 안내원 등, 단 세 명뿐이었습니다. 투항하면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지만, 끝내 적의 총탄을 맞아 장렬히 전사, 머리가 잘리는 참혹한 수난을 당하셨습니다.
징군께서는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군장 및 총참모장으로서 북만주 벌판을 흰 말을 타고 종횡무진누비셨습니다. 장군의 조카 이육사 시인은 ‘광야(曠野)’에서 당신의 행적을 다음과 같이 형상화했다지요.
광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
바다를 연모해 휘날릴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 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강이 비로서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허장군님! 부디 하늘에서 당신의 고향 구미와 경상북도, 남북한 8천만 한 겨레, 세계 인류 모두 어울려 평화롭게 잘 사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굽어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남북통일 되는 그날이 올 수 있도록 당신께서 하늘나라에서 음우(陰佑)하여 주소서!
이 날 추모제 하이라이트는 곧 이은 김형숙 님의 <광야> 추모시 낭독과 정정숙 님의 <아리랑>, 그리고 류제신 님의 <진혼무>였다.
아마도 그 순간 허형식 장군은 하늘나라에서 매우 감읍하셨으며, 당신의 희생에 대한 보람을 느껴셨을 것이리라. 이날 마지막 식순은 참석자 모두 태극기를 들고 독립군가를 제창하는 걸로 ‘허형식 장군 80주기 추모제’를 마쳤다.
박도(parkdo45)
<2022-08-05>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백마 타고 온 초인’을 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