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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대중가요 시리즈] 5편, 신민요의 여왕들 ‘왕수복과 이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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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대중가요 시리즈 5편] (2022년 5월 31일 방송)
신민요의 여왕들 ‘왕수복과 이화자’
이준희, 이영미와 함께합니다.

00:23:59 고도의 정한
1930년대 신민요 가수로 ‘여왕’ 소리를 함께 들었던 왕수복과 이화자.
왕수복은 공전의 히트곡 ‘고도의 정한’으로 최초의 가수 인기투표에서 1위로 선정. 바로 그때 이화자는 김용환의 테스트를 받으며 가수로서 가능성을 확인

00:41:16 노랫가락
평양 권번에서 음악을 익힌 왕수복은 과감하게 대중가요 가수가 된 것은 물론,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을 결합시키는 방안에 대한 생각도 많았음. 반면 1936년에 데뷔한 이화자는 남자와 돈, 나아가 아편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던 것으로 유명

00:53:44 아리랑
성악 공부를 하고 돌아온 왕수복은 사실상 가수 활동을 더 이상 하지 않음. 1940년에 아내와 사별한 작가 이효석의 연인이 되는데 이후 이효석이 1942년에 세상을 떠난 뒤에는 경제학자 김광진과 결혼. 반면 이화자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분방하게 생활. 남자의 선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자를 선택하는 자기주도적 연애를 실천

01:03:42 화류춘몽
최고의 신민요 가수로 갈채를 받기는 했지만, 그런 인기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허허로움이 있었는지, 1940년대 들어 이화자는 심각한 아편 중독자가 됨

01:15:20 꼴망태 목동
해방 후 남한에서는 잊힌 존재가 되었고, 북한에서 새로운 음악 인생을 시작. 왕수복의 독특한 창법은 민족적이면서도 봉건적이지 않은 노래로 평가를 받았던 듯하며, 북한을 대표하는 공훈배우가 되기도

01:27:11 어머님전상백
계절에 맞지도 않는 낡은 여우 목도리를 언제나 두르고 다니며 삶의 마지막 시기를 보낸 이화자. 이런저런 무대에 계속 서기는 했으나, 그 인기나 기량은 예전만 못한 상황. 1950년 4월에 조용히 숨을 거둔 것으로 확인

▶민족문제연구소 https://www.minjo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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