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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정희 도당이라고 했지, 박○○이라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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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 기도]

(46) 불길 같은 엘리야 예언자
유신 당시 반독재 운동하던 윤반웅 목사
‘긴급조치 위반’ 법정서 권력 편 검찰 조롱

“주님!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 이 백성이 주님만이 하느님이시며 바로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였음을 알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먼지를 삼켜버리고 도랑에 있던 물도 핥아버렸다.” (1열왕18, 37-38)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걸어가는데 갑자기 불 병거와 불 말이 나타나서 그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그러자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 (2열왕 2, 11)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 (집회서 48,1)

사람은 평등하고 저마다 개성이 있습니다. 거기에 위아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 존재와 사고의 한계로 어울려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고 우열이 생깁니다. 이를 극복하고 끊임없이 하느님 앞에서의 겸허함을 고백하며 이웃과의 평등성을 되새기는 것이 지혜로운, 성숙한 인간의 자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담은 성경도 인간의 언어로써 기록되었기에 순서와 우열이 있습니다. 이때의 순서와 우열은 차등을 확인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모두 함께 자극받아 더 노력하라는 하느님의 교육 방법과 구원 경륜입니다. 구약성경을 대표하는 두 인물은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두 분은 하느님의 명에 따라 불의한 권력자에 맞섰고 백성들의 해방을 위해 투신하였습니다. 왕궁에서 성장한 모세는 출생 직후부터 죽을 위험에 처했지만 후일 동족 히브리 백성의 해방자가 됩니다. 모세는 구약의 가장 위대한 예언자로 120세로 선종합니다.

반면, 엘리야는 출생 기록도 없이 자수성가한 인물입니다. 바람처럼 홀연히 왔다가 불 마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입지전적 인물입니다. ‘엘리야가 다시 오면 메시아가 도래하리라’라는 신화를 남긴 분입니다. 성경에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기록한 인물은 에녹(창세 5,24)과 엘리야 두 분입니다. 그중 엘리야의 행적은 1열왕 17장에서 2열왕 2장까지에 자세히 실려 있습니다.

아합왕을 찾아가 충언한 엘리야

엘리야는 북이스라엘 왕 아합(기원전 874-853)과 아하즈야(기원전 853-852) 시대의 예언자입니다. 아합 왕은 페니키아 공주 이세벨을 부인으로 맞았는데 그녀는 바알신의 숭배자로 이스라엘의 종교 생활을 문란케 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엘리야가 출현합니다. 엘리야란 이름은 ‘야훼 하느님은 나의 주님’이란 뜻입니다. 이름 자체에 존재 이유와 소명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한평생 불같은 열정으로 오직 하느님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 3년간 심한 가뭄이 찾아옵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바알신 우상 숭배에 대한 하느님의 벌입니다. 가뭄 중에 엘리야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시돈 지방 사렙타 마을의 과부 집에 머물고 기적을 베풉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민족에게도 은혜를 베푸신다는 구원의 보편성입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아합왕을 찾아가 충언하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마지막 방법을 생각해냅니다. 아합왕이 그리도 믿고 있는 바알신의 사제들이 거짓과 위선 덩어리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입니다. 엘리야는 오직 기도를 통해 제물의 장작에 불을 붙이자는 대결을 제안하고, 그 자리에 북이스라엘 백성이 참관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바알의 예언자 450명과 아세라의 예언자 400명 등에 맞서 혈혈단신 엘리야는 1대 850의 싸움을 벌입니다.

먼저 850명에 달하는 바알신 사제들이 나섰습니다. 그들은 가르멜산에 올라 제단을 쌓고 황소 제물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아침부터 열심히 기도를 했지만 장작에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녹초가 된 사제들이 나가떨어지고 엘리야 예언자가 나섭니다. 엘리야는 제물과 주변에 세 차례나 물을 철철 넘치도록 부은 다음 하느님께 기도를 바칩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예언자는 저 하나뿐입니다. 하느님,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를 증명해주십시오.”

결과는 당연히 엘리야의 승리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불은 흠뻑 젖은 황소와 장작, 제단 주변의 물까지 태워버립니다. 가르멜산 불길 속에서 엘리야가 체험한 하느님이 바로 오늘날 가톨릭 가르멜 수도자들의 핵심 영성이며 길잡이입니다. 열왕기에는 이후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사제들을 기손 냇가로 끌고 가 죽였다는(1열왕 18,40) 내용이 나옵니다. 1970~1980년대 신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불의한 정치인, 하느님의 말씀에 반하는 거짓 종교인은 죽여도 된다는 과격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1978년 9월 김대중은 서울대병원 감금에 항의해 교도소 이감을 신청하고 단식 투쟁까지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때맞춰 이우정(앞줄 왼쪽부터)·문익환·공덕귀·김한림 등 구속자가족협의회 회원들은 서울대병원 본관 앞에서 ‘김대중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 때문에 문익환·윤반웅 목사 등은 또다시 구속됐다.

반성은 커녕 오히려 엘리야 체포령

문제는 젖은 장작과 제물에 불이 붙는 기적을 목도했지만 아합왕과 이세벨 왕비는 반성할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엘리야를 죽이겠다며 체포령을 내립니다. 이에 엘리야는 피신합니다. 하느님의 힘으로 거짓 예언자들 무리에 맞섰던 위대한 예언자도 두려움을 느끼고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그러나 이 시간이 바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 기간이며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시간입니다.

엘리야는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며 항복의 기도를 올립니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제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조상들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1열왕 19,4) 그리고 기진맥진해 싸리나무 아래 잠들었습니다. 그때 천사가 그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깨어 보니 옆에 빵과 물병이 놓여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이를 먹고 마신 후 밤낮으로 40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먹은 빵이 바로 성체성사의 전표이고, 호렙산은 모세가 하느님께 십계명을 받은 거룩한 시나이산입니다. ‘40’은 성경에서 완결을 뜻하는 상징적 숫자로 노아 홍수 40일, 시나이산에 모세가 머문 40일, 약속의 땅을 향한 40년, 엘리야의 40일 여정 그리고 예수님의 광야 40일 단식 등이 그 예범입니다.

모세가 하느님을 만나 뵙던 곳, 선조들이 십계명을 받고 하느님 앞에 신앙을 다짐하던 곳, 노예의 선조들이 은총의 새 아들딸로 태어난 그곳에서 엘리야는 하느님을 체험합니다. 백성들은 하느님을 뵙고 시나이산에서 내려온 모세를 감히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광채가 너무나 빛나 모세는 너울로 얼굴을 가려야 했습니다. 태양을 직접 보면 눈이 멉니다. 태양을 보기 위해서는 색유리 등 매개체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히브리인들의 신관입니다.

히브리인들은 하느님의 이름 ‘야훼’를 감히 발음하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는 사실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히브리인들은 ‘야훼’를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분’, ‘만군의 주님’ 등으로 바꿔 불렀습니다. 가톨릭은 20여 년 전부터 하느님을 극진히 모셨던 유다교의 전통을 존중해 ‘야훼’ 대신 하느님 또는 주님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힘을 내서 호렙산 동굴에 당도한 엘리야는 폭풍 속에서도, 지진 속에서도 또 불길 속에서도 하느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 모든 무서운 일을 겪은 후에야,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엘리야가 하느님을 체험한 순간입니다. 그 소리의 실체는 양심이고, 이웃의 아픔을 감지하는 공감 능력입니다. 양심과 공감이 하느님 현현의 구체적 표징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새 소명을 주십니다.

양심은 하느님이 거하는 성소

“다마스쿠스 광야로 가서 하자엘을 아람의 임금으로 세우고, 님시의 손자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워라. 그리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후계자 예언자로 세워라.” (1열왕19,15-16) 정의 구현을 위한 예언자와 신앙인의 정치 사회적 책무입니다. 그 후 엘리야는 후학들의 양성을 위해 예언자학교도 세웠습니다. 양심이 바로 하느님께서 거하시는 성소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바로 거기에 하느님이 계시다고 확신했습니다. 내 안에 하느님이 계시니 내가 바로 하느님이라는 선언도 가능합니다. 사람을 잘 보면 하느님이 보인다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의 바탕입니다. 그런데 전제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준비되어야 합니다. 맑아야 합니다. 경지에 올라야 합니다. 이를 위해 수덕실천이 필요합니다. 노력한 만큼, 집중한 만큼, 나를 버린 만큼, 하느님께서 다가오십니다.

엘리야는 호렙산 동굴에서 이를 실천했고 하느님을 체험합니다. 백두산이 민족의 명산이라는 우리의 해석과 상통하는 부분입니다. 거룩함은 우리가 만든 것입니다. 하느님을 모시고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생각하고 집중하면 그것이 바로 성화(聖化)입니다. 엘리야 예언자와 같이 우리도 이제는 작은 바람결에서도 하느님을 체험합니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느님을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어떤 모습으로든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체험한 엘리야는 거듭납니다. 하지만 이 은총은 결코 개인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웃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엘리야가 다시 세상 한복판으로 나아가 투신한 이유입니다. 엘리야는 두려웠던 박해자 앞에 당당히 나섭니다. 아합왕과 부인 이세벨이 저지른 불의를 지적하고 불의한 방법으로 빼앗은 포도밭에 대해서도 무섭게 꾸짖습니다. 바로 나봇의 포도밭 이야기입니다. 아합은 궁전 근처 나봇의 포도밭을 탐했습니다. 나봇이 선조에게 물려받은 땅이어서 줄 수 없다고 하자, 아합은 나봇을 무고해 죽이고 그 포도밭을 빼앗습니다. (1열왕 21장)

독재자들을 꾸짖은 엘리야들

1970년대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 우리는 이 성경 예화를 인용하곤 했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역대 독재자들을 꾸짖고 비판한 것이 바로 엘리야 예언자 행업의 재현입니다. 윤반웅 목사님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긴급조치 위반 재판정에 선 윤 목사님에게 공안부 검사가 물었습니다. “피고인은 예배당에서 ‘박○○ 도당을 타도해 주십사’하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까?” 윤 목사님이 “저는 박○○ 도당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박정희 도당이라고 했습니다!”라고 대답해서 재판정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독재자의 이름을 감히 부르지 못하고 “박○○”라고 불렀던 부끄럽고 못난 검찰들, 이제라도 검찰 권력은 자신들의 우매함을 깊이 뉘우치고 역사와 겨레 앞에 속죄해야 합니다.

엘리야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불(火)과 함께했습니다. 엘리야의 승천은 열왕기하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엘리야는 불 마차를 타고 하늘로 올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를 소재로 그려진 그림도 많습니다. 성경에 불 마차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는 엘리야를 따라가려는 제자 엘리사를 떼어 놓기 위함입니다. 엘리야는 분명 회오리바람과 함께 승천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엘리야가 죽지 않은 상태로 승천했기에 엘리야 예언자가 다시 오면 메시아가 오는 것이란 전설이 만들어졌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바로 엘리야임을 예수님께서도 확인해주셨습니다. (마태오 17,10-13) 엘리야는 불의한 왕, 불의한 종교를 깨부수고 바른 가치관을 세웠습니다. 불길 같은 예언자 엘리야에서 ‘불길’은 불의한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의노와 무서운 심판입니다. 하느님의 의노로써 불의의 수레바퀴를 멈추게 하고 이 세상에 하느님의 말씀이 생생하게 살아 계시도록 실천해야 합니다. 엘리야의 불길이 필요한 시대는 늘 바로 지금입니다. “횃불처럼 타오르는 엘리야 예언자”를 기억하고 칭송하는 이유입니다.

거룩하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령의 불길을 받은 엘리야 예언자처럼 저희 모두 우리 시대의 횃불이 되게 해주소서. 이웃과 약자들에 대한 사랑으로 헌신하고 불의한 권력자들을 내리치는 말씀의 몽치가 되게 해주소서. 약자들을 돌봐주시고 지켜주소서. 이 모든 것을 성령 안에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함세웅 신부 _ 1968년 천주교 신부가 된 뒤 줄곧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1974년)을 주도하는 등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2012년 현역 은퇴 뒤에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연대의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현대사와 관련해 쓴 글과 붓글씨를 싣는다.

<2022-08-15> 한겨레

☞기사원문: “박정희 도당이라고 했지, 박○○이라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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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연재] 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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