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한국 경찰은 일제강점기, 독재 시기 민중의 편에 선 경찰 선배들을 사표로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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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진 기획실장
임무성 상임교육위원

8월 16일 오후 1시 30분경 황운하 의원과 함께 3층 회의실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이 자리에 방학진 기획실장과 임무성 교육위원이 참석했다. 최근 행안부 내에 경찰국이 신설되어 경찰의 권력 시녀화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연구소 회원인 황운하 의원에게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사회적 현안과 경찰의 역사적 과오 반성 등 과거사 청산 문제에 대한 해법이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의원님이 2005년도 10월 3일 회원 가입을 해주었어요. 벌써 17년 되었는데 그 당시가 경찰청 수사권 조정팀장이었을 때입니다. 당시 어떤 가입의 동기가 있었을까요?

기억이 생생한데, 2005년에 제가 경찰청 수사권 조정팀장을 했었습니다. 수사권 조정업무라는 것은 크게 보면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검사 주도 형사사법 체계, 또는 검찰 주도 형사사법 체계는 일제 식민지배의 잔재입니다. 우리나라에 근대적 검사제도와 경찰제도가 들어온 것도 고종 임금 시절 조선의 식민지화를 준비하던 일제에 의해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식민지배가 본격화되면서 경찰이 식민지배의 도구화가 되고, 검사제도도 일본의 형사소송법 제도를 그대로 모방해서 적용하였는데, 그만 광복 후의 우리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이 돼버렸습니다.

사실 군국주의 시절 일본의 형사사법체계에서는 경찰의 권한도 강했지만, 검찰의 권한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경찰에게 영장 없이 마구잡이로 사람을 감옥에 넣을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소수의 검사가 경찰을 완전히 지휘할 수 있도록 해놨어요. 일왕의 입장에서는 검사만 장악하면 경찰까지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렇게 강한 검·경의 권한으로 전 국민을 장악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군국주의 지배체제를 강화하는 통치수단으로 경찰과 검찰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차대전 패전 이후에 일본에서는 미군정 시절 맥아더가 수사와 기소권을 다 가지고 있는 검사의 권한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분권, 상호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라면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미국식 형사사법제도를 이식합니다. 경찰에게 수사권을 주고 검찰은 사법적 통제기관으로 역할을 하게 했던 것입니다. 사실은 검찰을 통해 막강한 권한으로 통치하는 일왕의 권력을 해체하려 했던 것입니다.

맥아더의 군정은 일왕, 군부, 검찰의 권력을 해체해야 일본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자 일본의 검사들은 심하게 반발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절충안이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이 하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현재의 형사사법제도로 자리를 잡습니다. 예를들면, 도쿄특수부의 권력형 비리 수사 같은 것입니다. 제한된 영역의 수사입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이승만정권 때 좌익을 척결해야 한다면서 검사에게 수사권을 주고, 경찰수사에 대한 지휘권까지 같이 주었습니다. 이것이 5·16 이후에는 검사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굉장히 강해져서 경찰은 검사 휘하에서 철저한 지시를 받는 기관으로 성격이 좀 변질됐다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니 수사권 조정은 일제잔재의 청산과 맞닿아 있고, 민족문제연구소가 하는 일과 같은 맥락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일제잔재 청산에 앞장서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를 후원하고 싶었습니다. 또 그때가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명단을 발표해서 시끄러웠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런 일에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작인 1910년부터 4·19혁명 때까지 50년 동안 사실 경찰권력이 정점에 있었죠. 반대로 검찰권력은 1960년부터 지금까지 60년이 넘도록 정점에 있는데요. 검경의 상호 견제와 균형은 역사적 시대적 과제라고 봅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1910년부터 60년대까지 일제강점기 때의 형사사법제도가 그대로 유지됐으니까, 광복 후 이승만정권을 거쳐 5·16군사 쿠데타 때까지도 이런 제도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지요. 특히 이승만정권 시절에는 경찰에게 힘이 많이 실려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강원도에 군부대 사단장이 부임하면 본부에 있는 경찰서장도 아니고 지역 파출소장한테 가서 인사를 했답니다. 왜냐하면 파출소장이 사단장에 대한 보고서를 써서 올리니 경찰한테 잘 보일 수밖에 없는 거였죠. 이승만 대통령이 경찰을 독재정권 유지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다보니, 실질적인 파워가 검사나 군보다 우위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 시절의 경찰은 잘못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그 정점에 이르렀던 사건이 바로 3·15 부정선거입니다. 잘못된 제도는 어느 순간 자멸하게 돼 있습니다. 3·15 부정선거 때 치안국의 경찰을 직접 관장하던 내무부 장관 최인규는 경찰서장들을 불러다 놓고 “내가 책임질테니 수단 방법을 막론하고 이승만 대통령을 반드시 당선시켜라. 그것이 나라를 위한 길이니, 설령 잘못 된다 하더라도 내가 다 책임을 지겠다.”며 선거에 대한 개입을 지시합니다. 현재의 경찰국 문제를 볼 때 행안부 장관이 경찰을 직접 지휘하게 되면 역사적 과오가 또다시 되풀이될 수 있을 것 같아 아주 섬뜩합니다.

3·15 부정선거가 4·19를 불러와 일시적으로 경찰의 중립성을 헌법에 보장하는 조치가 있었지만 바로 일어난 5·16 군사쿠데타로 무산돼버리고 군인인 박정희가 정권을 잡으니 그간의 경찰에 대한 반감을 이용합니다. 군인들이 경찰한테 눈치를 많이 봤었으니까 경찰을 누르고 검사의 권한을 강하게 하는 방법으로 헌법에 검사의 영장 청구권을 독점적으로 규정합니다.

이것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도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법률에나 규정할 것을 헌법에다 하는 것은 맞지 않는 일입니다. 이렇듯 박정희 대통령이 경찰을 좀 누르고 그 대신 검찰 권한을 활용하려고 하는 심리를 이용해서 헌법에다가 규정해 놓은 것이 검찰권 강화의 시발점이 됐습니다. 박 대통령은 물론 경찰도 활용하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검찰과 군, 중앙정보부를 주로 활용했습니다. 공안 검사와 군인들을 활용해서 예컨대 인혁당사건을 일으키고 생사람을 잡아서 사형을 시키고는 했습니다.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사람들 잡아다가 공산주의자라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 선고하고 바로 집행했던 사건이 인혁당사건 아닙니까. 또 하나의 사례가 남영동에서 이른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당일 오전인가 그 전날 오전인가 내무부 장관 김종호가 남영동 대공분실을 방문합니다. 시국사건 수배자들을 빨리 잡으라 하니 남영동에 근무하던 대공 경찰들이 굉장히 큰 업무적인 압박을 받은 것입니다. 시국사건 수배자들을 빨리 잡는 것이 경찰이 애국하는 길이라며 압박하니까 그런 무리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반성으로 경찰은 정권 유지의 도구로 활용되면 안 되고, 중립성과 독립성이 보장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장관이 경찰에 개입하면 안 된다 해서 내무부에서 경찰이 독립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다시 내무부 산하에 두겠다는 것이 바로 경찰국 신설 문제입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행안부 장관이 경찰업무에 세세하게 개입하려고 하지 않았고 1991년도에 경찰청이 내무부에서 독립돼 외청으로 나갔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무부 장관이든 행안부 장관이든 경찰사무에 대해서 개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법에 경찰청을 독립시켜놓은 취지에 맞지 않고, 아픈 역사적 과오에 대한 산물로 경찰청 독립이 이루어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계기로 경찰청 내 임정TF팀을 만들고 경찰 출신인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 김구 흉상을 경찰청 내에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일회성에 그치고 있지 않나, 경찰대학에서 체계적으로 지속적으로 독립정신을 교육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점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이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경찰 내에서는 임정TF 종료 이후에도 2020년 초부터 경찰역사기록TF를 운영하면서 경찰역사를 발굴・선양하고 교육 및 홍보하는 것에 지속적으로 힘쓰고 있습니다. 안병하 치안감 의원면직 취소처분 등 경찰 과거사 대응을 추진하고, 경찰영웅 선정, 참경찰 발굴 등을 통한 경찰정신 선양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안병하 치안감은 의원면직 취소 발령으로 유족에게 임명장이 전달됐고 보수도 소급해서 지급됐습니다. 경찰정신을 실천한 경찰영웅으로 2022년 최규식, 정종수, 정옥성 경찰이 선정돼 경찰 내부의 사명감 고취와 국민에게 공감받는 경찰상을 지속적으로 홍보하며 친근하게 다가서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참경찰 발굴사업은 참된 경찰정신의 귀감이 되는 경찰관을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참경찰 인물열전> 2022년판을 발간할 예정입니다. 2019년에 초판이 발행된 후 2021년에 26명을 추가 발굴하여 총 247명의 참경찰을 소개하는 증보판 발행이 눈앞에 있습니다. 이 밖에도, 경찰역사순례길, 경찰역사 콘텐츠 홍보를 이용하여 경찰역사에 대한 국민 관심도를 높이는 데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1987년 이후 경찰은 4·3 등 과거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지만 아직도 미진한 부분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반민특위 해체에 앞장 선 점과 6·25 당시 민간인 학살입니다.

말씀해주신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뼈아픈 반성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민특위는 1948년 조직되어 친일행위를 한 자들에 대한 색출과 조사, 기소, 선고에 이르기까지 반민족 행위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활동을 수행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정부가 반민특위를 비난하고 활동을 방해했고, 반민특위가 1949년에 해산되는 과정에서 경찰이 앞장섰던 일이 있었습니다. 또한 6·25 당시 민간인 학살사건은 1950년 6·25 전쟁 초기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 운봉 마을에서 국민보도연맹 회원들을 학살한 사건으로, 경찰이 민간인 학살에 가담한 사건입니다. 경찰은 잘못된 과거에 대해서는 뼈를 깎는 반성과 성찰을 하고, 일제강점기와 독재정권 시기에서도 민중의 편에 선 경찰 선배들을 사표로 삼아 그 정신을 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찰에서 정계에 입문하였을 때 특별한 계기나 동기가 있었습니까?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입법사항이나 공약은 어떤 것인지요?

2005년 수사권 조정팀장 때부터 우리 팀원들에게 경찰이 여기서 검찰하고 맨날 싸울 일이 아니고 경찰 출신 중에 제대로 된 사람이 국회에 가서 입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물론 한 명의 국회의원이 다 해결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경찰 출신 국회의원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그 뒤에 몇 명이 있기는 했는데 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정년퇴임이 2~3년 남았을 무렵, 후배들이 경찰에 있으면서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젠 입법적으로 해결해야 될 문제라고 제게 귀띔합니다.

결국 검찰개혁의 종착점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입니다. 검찰의 최근 사례를 봅시다. 검찰이 박지원과 서훈 전 국정원장 건에 다 합세합니다.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봅시다. 정책사항은 잘잘못 여부를 떠나, 보는 시각에 따라서 좀 오류가 있었다하더라도 그건 정책 결정 사항이고 대통령의 통치 행위이고 판단입니다. 검찰이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법적으로 문제될 게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떤 정치행위라도 검찰의 사법적 잣대로 판단해야 합니까. 그런 식으로 대한민국을 검찰이 쥐락펴락해서는 안됩니다.

정권이 바뀐다고 전 정권의 어떤 정책적인 결정사항 또는 대통령의 통치행위와 정치적인 판단영역을 검찰의 마음대로 사법적 잣대로 들여다보겠다면, 대한민국은 검찰의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검찰이 주인인 나라가 되고, 검찰이 최상층부 권력기관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는 안되고 제도적으로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검찰에게 항의하고 시위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아요. 법무부장관 한 명 탄핵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결국은 제도로 입법으로 그걸 완성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검찰의 수사권을 전면 폐지해야 합니다. 실제로 선진국들은 다 검찰 수사권이 상징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있더라도 행사를 안 하거나 기소권만 행사를 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이 돼있습니다.

그게 이른바 수사 기소 분리입니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경찰 권한이 강해지는 것이냐? 경찰권한이 강해지지 않게, 오히려 약화되거나 현상 유지 정도를 위해서 검찰의 수사권을 빼서 미국 FBI와 같은 제3의 기관, 경찰도 검찰도 아닌 전문 수사기관을 만들어서 이 기관이 적절하게 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금 검찰은 과잉 수사를 합니다. 자신들이 범죄를 규정하면 이게 범죄고, 아니라면 아닌 것입니다. 자기들 식구를 봐주고 싶으면 이건 범죄가 아니라 하고 이걸 엮어놓고 싶으면 수없이 압수수색해서 무엇이라도 찾아내면 여론몰이를 합니다. 검찰은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것, 앞뒤가 안 맞는 것만 찾아내어 여론몰이를 하고, 사법적인 처벌을 일삼습니다. 검찰은 권력이 강한 곳이니 재능 있고, 영리한 사람들이 많이 옵니다

권력의 단맛을 누리기 위해서 똑똑한 친구들이 오고 이 친구들이 그 권력을 최대한 활용을 해가지고 자신의 권력을 더 극대화하려고 합니다. 이런 현실을 근본적으로 막는 방법은 검찰의 수사권을 폐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글로벌 스탠다드입니다. 그래서 정치를 시작했고 검찰의 수사권 폐지를 입법하는 것이 제 마지막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마무리되면 정치는 그만해도 될 것 같습니다.

끝으로 민족문제연구소 후원회원으로서 연구소에 바라는 점이나 후원회원님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 부탁드립니다.

반성할 과거가 있다면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이 미래로 나아가는 첫 걸음인 만큼, 앞으로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지속적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과제를 연구해 굴절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에 더욱 힘써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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