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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친일가수 ‘남인수 가요제’ 부활에 사회단체 “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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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연예협회, 예선전 펼침막 내걸어… ‘강씨 대종회’ 후원 명칭 사용 논란도

▲ 진주연예협회는 “남인수 가요제”를 부활하겠다며 거리에 펼침막을 내걸었다. ⓒ 윤성효

친일 행적이 드러나면서 십수 년 전 폐지된 남인수 가요제를 부활하자는 움직임이 있어 논란이다.

진주예총 소속 진주연예협회(지부장 진창환)는 ‘대한민국 가요 100년사 황제의 귀환’이라는 제목으로 제1회 남인수 가요제(예선)를 열기로 했다. 최근 거리 곳곳에는 ‘부활’이라는 단어와 함께 펼침막이 내걸렸다.

진창환 지부장은 31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남인수 가요제가 그동안 남인수가 친일파라는 이유로 열리지 못했다. 예술인들은 ‘친일’로 분류할 이유가 없는데 여론몰이로 인해 폐지되어 아쉬웠다”고 말했다.

진 지부장은 ‘부활’이라는 단어를 펼침막에 쓴 이유에 대해 “남인수는 진주를 빛내고 가요사에 명성이 있는 인물이다. 묻어 놓아서는 될 일이 아니라 판단해 가요제를 부활하고자 한다”며 “젊은 세대들한테 남인수 선생을 심어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친일파 ‘남인수’ 가요제 부활 개탄”

해당 소식이 전해지자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회장 강호광)를 비롯한 단체는 8월 31일 ‘친일파 남인수 가요제 부활을 개탄한다’는 제목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최근 진주 시내에 남인수 가요제가 부활한다는 현수막이 곳곳에 나붙었다”며 “참으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성토했다.

남인수 가요제는 1996년 시작되어 10여 년간 이어지다가 남인수의 친일행적이 드러나면서 2008년 폐지되었다. 당시에는 진주시가 재정 지원을 통해 가요제를 개최했다.

단체들은 “남인수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가수다. 그러나 남인수는 유명세만큼이나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한 친일파다”라며 “남인수의 친일행위는 태평양전쟁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본격화했다. 그는 노래를 통해 후방에서 일제가 일으킨 전쟁을 후원하고 우리 조선의 젊은이들을 죽음의 전쟁터로 내몰았다”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남인수가 부른(녹음) 친일 군국가요로 확인된 노래는 1942년 강남의 나팔수(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 , 그대와 나(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 남쪽의 달밤(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낭자일기(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병원선(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1943년 이천오백만 감격(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 혈서지원(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등이다.

또 남인수는 1944년 9월 부민관에서 조선연극문화협회 주최로 열린 성난 아세아(怒りの亞細亞)에 출연했다. 성난 아세아는 ‘미영격멸(美英擊滅)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연극인들의 역량을 총집결한 예능제(藝能祭)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남인수는 노래와 연극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며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하였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당시 대중적 유명세가 높았던 남인수의 친일행위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우던 임시정부에서 큰 골칫거리였다.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 선생은 해방 후 임시정부 요인이었던 김승학에게 반드시 처단해야 할 친일파 267명의 명단을 작성하게 했는데 이 명단에 남인수는 이름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남인수는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다.

진주지역 단체들은 “흔히 진주를 역사의 도시라 한다. 우리의 오랜 역사에서 진주는 임진왜란, 농민항쟁, 의병활동, 형평운동 등을 통해 여러 번 세상에 귀감이 되었다”며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는 우리 진주 사람들의 자부심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남인수가 진주 출신의 유명인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단지 남인수의 유명세만을 내세워 ‘생계형 친일’ 운운하며 그를 두둔하고 미화하는 가요제를 개최한다면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치신 분들의 영전에 무엇이라 변명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어 “남인수가 대중 가요계의 황제로 대접받은 만큼 민족의 운명에 대해 바르게 처신했더라면 진주시민과 자손대대에 부끄러운 인물로 기억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성명에는 생활정치시민네트워크 진주같이, 경남민예총 진주지부, 진주참여연대, 진주교육사랑방, 진주시농민회, 진주여성농민회, 진주여성회, 진주진보연합, 민주노총 진주지역본부, 진보당 진주시위원회, 진보대학생넷 진주지회, 전교조 진주지회, 진주교육공동체 결, 진주여성민우회, 진주YMCA, 진주혁신포럼, 진주환경운동연합도 같이 이름을 올렸다.

후원 단체 ‘강씨 대종회’ 명칭 사용 두고 논란

한편 이번 남인수 가요제에 후원단체로 들어가 있는 ‘강씨 대종회’를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강원기 ‘진주강씨 진주종회’ 회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우리 문중에서 후원한 사실이 없다. 현수막이 걸려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소문을 하고 있다. 집안에서는 동의한 사실도 없다”며 “항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진창환 지부장은 “강씨 문중에 문화담당하는 사람과 연락을 했다. 그분이 책임지겠다고 해서 후원 명칭을 넣었다”며 “강씨 문중에서 재정지원은 없다”고 했다.

경남 진주 출신인 남인수(1918~1962)는 원래 이름이 최창수(崔昌洙)였는데, 생모(장화방)가 강씨 문중(강영태)으로 개가하면서 남인수를 데리고 들어갔고, 강문수(姜文秀)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는 해방 이후 정훈국 문예중대 소속 군위문 활동에 참여했으며, 1958년 대한레코드가수협회 회장, 1961년 한국가수협회 회장, 1961년 한국연예협회 부이사장 등을 지냈다.

진주 하촌동에 있던 남인수 생가는 문화재청이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53호’로 지정했다가, 2013년 12월 역사인물 관련 등록문화재 적정성 검토 일제조사 당시 “정서상 실제 태어난 곳과 상관없이 부친의 거주지로 출생신고 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등 여러 정황상 남인수의 생가로 볼 수 없다”며 등록문화재 말소 조치를 했다.

윤성효(cjnews) 기자

<2022-08-31>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친일가수 ‘남인수 가요제’ 부활에 사회단체 “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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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 ‘친일’로 폐지된 남인수 가요제 부활 두고 반발

☞경남매일: `친일 가수` 남인수 가요제 부활 명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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