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기업 국내 자산 매각 가로막기에만 골몰
피해자 협의·통보 없이 대법원 의견서 제출도
일본 태도 안 바뀐다?…“대일 지렛대 포기한 셈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의 해법 마련을 위해 지난 7월 발족했던 민관협의회가 네차례 회의 끝에 활동을 마쳤다. 피해자 쪽 의견 수렴 모양새를 갖추긴 했으나,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이란 외교적 성과에 급급해 ‘피해자 중심주의’란 대원칙을 저버렸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6일 정례브리핑에서 “강제징용(동원) 해결 방안에 대해 정부는 특정 시한을 정한 바가 없다”며 “민관협의회에서 검토된 내용을 바탕으로 책임감과 긴장감을 갖고 조속히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날 민관협의회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한 채 활동을 종료했지만, “한·일 공동의 이익에 부합”하는 해법 마련을 위한 추가적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그간 민관협의회 활동은 물론, 불참한 피해자 쪽과도 개별적으로 접촉해 충분히 의견을 ‘경청’했다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 및 지원단체 쪽에선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이란 외교적 성과에만 급급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우선 대법원의 배상 판결 이행을 위한 일본 가해 전범기업의 국내 자산 매각(현금화)을 막는 것을 협의회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현금화는 한-일 관계 파탄을 뜻한다”는 일본 쪽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2차 협의회에 지원단체 몫으로 참석한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는 “대법원 판결의 대전제는 일제의 식민 지배가 불법이라는 점”이라며 “일본 쪽의 부당한 주장에 맞서 판결의 정신을 관철시켜야 할 정부가 현금화 막는 데만 급급한 것은 사법주권 침해를 용인할 꼴”이라고 짚었다.
외교부가 “개인이 일본 민간기업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으로 외교적 보호권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논리로, 피해자 쪽과 사전 협의·통보 없이 대법원 재판부에 의견서를 제출한 것이 피해자 중심주의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특히 박진 외교부 장관은 피해자들의 말을 경청하겠다고 강조하면서도, 의견서 제출을 “철회할 생각 없다”고 일축해 피해자 쪽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대표는 “대법원도 정부의 외교적 보호권은 살아 있다고 판결했다”며 “사적인 소송으로 치부했던 외교부가 ‘공익과 관련된 일’이라며 재판부에 결정을 미뤄달라는 취지로 의견서를 제출한 것은 사실상 가해 기업 입장에서 재판에 개입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정부가 협의회 출범 초기부터 “현실적으로 일본 쪽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기정사실화 한 것도 문제로 지목된다. 이는 협의회 논의의 초점이 피해자 동의 없는 채권(가해 기업의 배상 의무) 소멸 문제로 좁혀진 결정적 이유다. “현금화가 되면 한-일 양국은 물론 기업, 국민 등 천문학적 피해가 우려된다”(8월8일 윤덕민 주일 대사 특파원단 간담회), “일본이 우려하는 주권 문제의 충돌없이 채권자들이 보상 받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8월17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는 식의 주장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1, 2차 협의회에 피해자 대리인단 자격으로 참석한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협의회를 포함해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노력을 일본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외교적 지렛대로 삼아야 했다. 정부 스스로 대일본 협상을 위한 지렛대를 내려놓은 셈”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19일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에 이어 이날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도 미쓰비시중공업이 국내에 보유한 상표권 2건에 대해 내려진 특별현금화 명령에 불복해 낸 재항고 사건에 대한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을 유보했다. 이국언 대표는 “배상 판결도, 특별현금화 명령도 대법원이 내렸다. 가해 기업의 불복 절차도 3심까지 이어졌다. 더는 판단을 미룰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2022-09-06> 한겨레
☞기사원문: ‘일 강제동원’ 민관협의회 결론 앞두고 “현금화 막기 급급”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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