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기·일왕 상징 교화 등 여전
학교 측 현실적인 어려운 호소
사천 남양초·양산 웅산중 등
교표·교목 바꾼 곳도 있어
전문가, 학교·단체장 의지 강조
경남지역 일부 학교에 일제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랫동안 이어오던 상징을 바꾸기 어렵지만, 일부는 학교 구성원의 합의 하에 바꾼 곳도 있다.
◇여전히 남은 학교 내 일제 잔재 = 교육희망경남학부모회는 2019년 경남 971개 초·중·고등학교를 전수조사해 일제 잔재 여부를 살핀 결과를 발표했다. 3년여가 흐른 지금, 당시 일제 잔재가 남아 있다고 지적받은 학교를 다시 확인해 봤다.
조사 당시 영산홍(일본이 원산지), 국화(일본 왕실 상징), 벚꽃과 벚나무(일본 대표 꽃)를 교화로 지정한 학교는 96곳이었는데, 최근까지 이를 바꾼 학교는 2곳에 불과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 교가를 작사·작곡한 학교는 20곳이었는 데 교가를 바꾼 학교도 2곳이 전부다.
일장기가 연상되는 교표를 사용하는 학교도 있었다. 해당 교표는 붉은 원이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듯한 모양새로 하늘색 원이를 감싸고 있다.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상임고문은 “학교 교표가 아니었다면 일본 기업 마크로 오해할 수 있을 만큼 문제 소지가 있어 보인다”며 “붉은 원을 하늘과 바다가 감싸는 듯한 모양인데, 빛을 내뿜는 형상인 욱일기가 변형된 것이거나 거기서 파생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일제 잔재가 바뀌지 않는 데 대해 학교 관계자들은 인사이동, 복잡한 논의 과정 등을 이유로 들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호소했다.
한 학교 관계자는 “교가는 함부로 바꾸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동문회와도 논의를 해야 하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초등학교 관계자는 “2019년 이후 교장, 교감이 자주 바뀌어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며 “학교운영위원회 등을 열어서 관련 내용을 논의하고 바꿀 수 있도록 하겠다” 고 밝혔다.
전진숙 교육희망경남학부모회 대표는 학교와 교육청의 의지에 달린 문제라고 꼬집었다.
전 대표는 “교사들조차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보니 아이들도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며 “학교 측에서 의지를 갖고 바꾸려고 해도 쉽지 않은 문제인데 그게 아니다 보니 아무런 진전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면서 “지금 학교 교목이나 교화는 너무 천편일률적이다”며 “다양성이 더 중요한 시대인 만큼 이번 계기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에 도교육청 관계자는 “교목이나 교화는 기존에 있던 것들을 제거할 수는 없기 때문에 다른 걸로 지정하는 방안을 계획 중”이라며 “교가를 바꾸는 것은 어려움이 따르기는 하지만 늦어도 내년까지는 바꿀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학교 구성원 뜻모아 바꾼 곳도 = 일제 잔재를 학교가 나서 바꾼 곳도 있다. 사천 남양초등학교는 일본 욱일기를 연상시키는 교표와 전근대적인 교가 노랫말을 바꿨다.
남양초교는 2020년 5월 1일부터 새로운 교표를 사용하고 있다. 이전부터 교표에 대한 문제제기는 있었지만 쉽사리 바꾸지 못했다. 2019년 김숙진 전 남양초교 교장이 취임하고 나서 교표 교체 과정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김 전 교장은 학생, 학부모, 교직원을 대상으로 새로운 교표 디자인을 공모해 최종 디자인을 선정했다. 이후 학교 운영위에서 교표 변경이 통과되면서 지금의 교표가 됐다.
교표 변경을 한 뒤에는 교가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이번에는 학생들이 먼저 발견했다. 기존 교가에 포함된 ‘피흘린’, ‘일천건아’라는 표현이 자극적이고 전근대적이라는 지적이었다.
이후 변경할 교가 노랫말에 대한 공모를 진행했다. 학급회의를 거쳐 최종 후보를 선정했고 3~6학년 학생들의 투표로 새로운 노랫말이 탄생했다.
김 전 교장은 “바꾸기 전 교표가 욱일기를 닮았다는 사실은 다들 동의했기 때문에 변경 과정은 비교적 수월했다”며 “교가를 바꾸는 과정도 교내에 교표를 바꾸겠다고 공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제 제기가 나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양산 웅산중학교는 교목을 바꿨다. 일본 천왕을 상징하던 금송 대신 소나무를 교목으로 정했다.
교목 변경에 참여한 한 교직원은 “금송이 일본 천왕을 상징한다고 해서 교목을 변경하자는 취지에 모두가 동의했다”며 “결국에는 학교장이 의지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면 충분히 바꿀 수 있는 부분”이라고 전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관련 법령이나 조례는 생겼지만 이를 강제할 근거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결국 지자체 수장이 나서서 지시하고 관련 내용을 담당할 행정체계를 마련해야 학교들도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신 기자
<2022-09-13> 경남도민일보
☞기사원문: 학교에 뿌리내린 ‘일제 잔재’ 손 못된 곳 대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