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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일본이 ‘식민지배 불법성’ 인정하면 모든 게 좋아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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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일본 국제법·인권 전문가 도츠카 에츠로 변호사

최근 저서 <한일관계 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한국판을 펴낸 도츠카 에츠로 변호사. 도츠카 변호사 제공

“극단적으로 보수화하는 일본 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생각하면, 절망적인 기분이 들어요. 그러나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본인들이 한국으로부터의 여러 요청에 진지하게 응답하는 것 즉, 철학자들이 말하는 ‘응답책임’을 다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요. 저의 연구도 그러한 시도의 하나이죠. 많은 일본인이 그러한 노력을 거듭함으로써 역사인식을 심화시켜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올해 만 여든인 도츠카 에츠로 변호사는 꼭 30년 전인 1992년에 유엔 인권위원회에 출석해 일본군 ‘위안부’ 용어를 ‘성노예’로 바꾸자고 처음 주장했다. 그 뒤로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성노예’는 ‘위안부’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가 됐다.

지난해 그가 일본어로 낸 소책자 <한일관계 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최근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번역으로 지식산업사에서 국내 출간됐다. 번역자 도움으로 지난 2일 저자를 전자우편으로 만났다.

1980년대 중반부터 유엔 무대에서 일본 정신장애인의 인권 침해 등을 제기하며 자국을 좋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도츠카 변호사는 30년 전 ‘위안부’ 문제와 만난 뒤 생에 적잖은 변화를 맞는다.

그는 1992년부터 유엔 활동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과 일본이 합의점을 찾도록 중재 노력을 하는 한편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찾기 위한 학문 탐구도 병행했다. 그는 ‘위안부’ 법제 연구를 하려면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한일병합 조약의 효력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1992년 객원연구원으로 런던대를 찾았는데 뜻밖에 이 대학 고등법학연구소 도서관에서 ‘1905년 한국보호조약(을사늑약)은 효력이 발생하지 않은 절대적 무효’라는 1963년 유엔 국제법위원회 보고서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는 이 문건을 이듬해 유엔 인권위원회에 보고했고 2006년에는 논문으로 발표했다. 그는 또 ‘위안부’ 연구를 위해선 젠더 공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1997년 유엔 활동을 아예 접고 연구자의 길로 들어서 2007년 리쓰메이칸대학원에서 ‘국제노동기구와 젠더’ 연구로 박사 칭호도 얻었다.

<한일관계 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표지.

2000년부터 10년 동안 류코쿠대학 법학과 등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학자의 길을 걸은 그는 4년 전에는 변호사로 재등록했고 이듬해인 2019년에 그간의 한일관계 연구 성과 등을 토대로 두 권의 책(<역사인식과 한일 ‘화해’의 길>, <‘징용공 문제’란 무엇인가?-한국 대법원 판결이 묻는 것>)을 냈다.

그는 먼저 이번에 한국어로 나온 책을 왜 썼는지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를 인용한 2018년 한국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불법이었다고 대법원이 판단한 점이다. 대법원은 또 일본의 불법적인 식민지배에 따른 피해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해결되지 않았다고 봤다. 하지만 아베 전 총리는 판결의 핵심을 외면하고 ‘논점 바꾸기’ 수법으로 청구권 협정 위반에 따른 일본 피해만을 앞세우고 한국을 조약을 위반한 가해자라고 비난했다.”

그는 책에서 자신의 지난 연구 성과를 토대로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왜 불법이었는지 논증하고, 이어 일본 지도자들이 이를 인정하는 게 한일관계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일본 식민지배가 불법이라고 보는 첫 번째 근거는 1910년 한일병합조약의 기초가 된 1905년 을사늑약의 일본어판 조약문 원본이 미완성 문서라는 점이다. “일본 정부가 보관 중인 조약 원본을 보면 첫 행이 공란이고 제목도 없어요. 조약문 기초 단계의 초안에 불과해요. 따라서 ‘일한협약’(을사늑약)이라는 ‘조약’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합리적입니다. 이 협약을 기초로 체결된 1910년 한국병합조약도 무효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저는 오랜 기간 이 협약의 효력 문제를 연구했어요. 1963년 유엔 총회에 제출된 ‘유엔 국제법위원회 보고서’는 일본(이토 히로부미 주도)이 대한제국 대표인 황제와 각료들을 협박해 체결을 강제했다는 것을 조약의 무효 원인으로 지적했어요. 이 조약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대한제국 독립과 국가 주권을 빼앗는 중요한 조약이기에 조약체결권자 (고종 )의 서명과 비준이 있어야 하는데 둘 다 없어요.”

이런 그의 생각과 달리 일본의 역대 정부는 모두 한반도 식민지배는 합법이었다는 인식을 고수해왔다. 그는 “2010년 민주당 간 나오토 총리가 담화를 발표하며 병합조약에 대한 법적 입장을 변경하기 일보 직전까지 갔지만 2012년 아베 정권 등장 뒤 이런 흐름이 역전됐다”며 이런 역사 인식의 퇴행에는 “아베 정권이 우경화하는 여론과 혐한의 흐름에 올라타 ‘한국을 때리면 선거에 이긴다 ’라는 포퓰리즘 정치의 덫에 빠져버린 탓이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책에 “일본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면 좋은 일 천지”라고 썼다. 뭐가 가장 좋을까?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면 당연히 일본의 국제관계가 좋아집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 국민이 앞으로 허구를 믿으며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거죠. 일상적으로 스트레스가 줄고 , 어린이 교육에도 비할 데 없이 좋은 효과가 있을 겁니다. 아베 정권 등장 이후 교육에 대한 정권 간섭도 강해져 어린이들이 패전 전과 같이 허구를 믿도록 유도되고 있어요. 교과서를 학자가 자유롭게 집필한다는 원칙도 붕괴하고 있죠. 교과서가 그때그때의 정부 사고방식에 따라 좌우된다면 학문과 사상·표현의 자유도 잃어버릴 겁니다.”

‘한일관계 위기, 어떻게 극복…’ 펴내
“대법 판결 핵심은 ‘식민 지배는 불법’”
위안부·강제동원 피해자 ‘휴먼 라이츠’
“양국 ‘상설중재재판소 설치’ 합의를”
1992년 ‘위안부’ 대신 ‘성노예’ 첫 제기
‘을사늑약 무효’ 유엔 보고서도 찾아내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 문제까지 해결되었다는 게 일본 정부의 입장이지만 그는 이 협정이 일본군 ‘위안부’나 강제동원 피해자의 청구권까지 소멸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다. 왜? “노예제 금지와 같은 휴먼 라이츠(human rights·인권) 존중은 국제법상 절대로 어길 수 없는 강행규범입니다. 1 999년 유엔 인권 소위원회는 성노예와 같은 피해자 권리는 평화조약으로도, 2국간 조약으로도 소멸시킬 수 없다고 결의했어요. 휴먼 라이츠는 1945년 6월 26일 채택된 유엔헌장에서 확립한 새로운 법률용어이죠. 유엔헌장에서 휴먼 라이츠는 평화와 함께 국제법상 가장 근본적인 가치입니다.”

국제법과 인권 전문가인 저자는 한국과 일본의 인권 환경 차이도 두 나라 사이의 균열을 키운다고 봤다. “한일 대립은 휴먼 라이츠라는 새로운 국제법 질서를 거부하는 일본과 그것을 수용해온 한국이라는 구도를 응시할 때 이해가 쉬워요. 한국은 휴먼 라이츠를 침해당한 피해자 개인이 유엔기관에 불복 신청을 할 권리를 보장하는 국제절차를 수용하고 있어요. 하지만 일본은 이 절차를 거부하고 있어요. 일본 정부는 모든 휴먼 라이츠 침해 사안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었다고 주장하죠. 즉 국가 간 약속으로 휴먼 라이츠도 소멸시킬 수 있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이에 대해 한국은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휴먼 라이츠를 존중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어요. 일본은 낡은 국제법 관점인 국가 중심주의 사고방식에 기반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은 유엔헌장 아래서 확립해 온 휴먼 라이츠를 보장하는 새로운 국제법 관점을 취하고 있죠.”

한·일의 ‘휴먼 라이츠’ 인식차에 대한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일본은 1966년 유엔이 채택한 사회권규약과 자유권규약이라는 두 개의 휴먼 라이츠 규약을 1979년에 비준했어요. 하지만 그때 피해자가 유엔에 불복 신청을 하도록 보장하는 권리 절차에 대한 조약 비준을 거부했어요. 아직도 비준하지 않고 있어요. 반면 한국은 1991년에 이 조약을 비준했어요.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은 한·일 사이에 휴먼 라이츠 인식의 차이를 넘어 세계관의 차이까지 낳게 된 것은 아닐까요. 그 결과 일본은 한국을 더 이해하기 힘들게 되지 않았을까, 우려합니다.”

저자에게 한일관계 개선에 의지를 보이는 윤석열 정부에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지도 물었다. “윤 대통령이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점은 높이 평가해요.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일본 요구를 통째로 받아들일 것을 한국에 요구하고 있어요. 저는 한국이 일본의 이런 요구를 받아들여도 두 나라의 항구적인 관계 개선은 어렵다고 봐요. 첫째는 아베 정권 이래 일본 정부는 역사인식을 조금씩 발전시켜 온 2012년 이전의 역대 정권과는 다른 정권이어서죠. 또 두 나라의 휴먼 라이츠 인식에서 거대한 차이가 생겨서죠. 이 때문에 관계 개선이 이뤄지더라도 오래 가지 못할 겁니다.” 그는 한·일 분쟁 해결의 실마리를 국제사법기관인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찾아볼 것을 제안했다. “현재 두 나라 분쟁은 국가 사이가 아니라 한국인 휴먼 라이츠 침해 피해자 개인과 국가(일본) 혹은 일본의 기업 사이 분쟁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휴먼 라이츠는 국가 간 교섭으로 소멸시킬 수 없기 때문에 정치적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휴먼 라이츠 문제에 한정해 피해자 개인에게 신청권을 인정하는 특별한 국제법정을 한일 정부 합의로 상설중재재판소에 설치하면 이 틀을 사용해 최종적인 분쟁해결을 꾀할 수 있을 겁니다.”

도츠카 에츠로 변호사. 도츠카 변호사 제공

마지막으로 저자가 1992년 이후 유엔의 틀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며 거둔 성과 중 가장 뜻 깊게 생각하는 게 뭔지 물었다. “1994년 유엔 인권 소위의 ‘현대노예제 작업부회’(이하 작업부회)에서 나온 ‘상설국제재판소를 활용하여 ‘위안부’ 피해자와 일본 사이 분쟁을 해결하는 게 어떤가’라는 권고이죠. 저는 당시 유엔 비정부단체인 국제우화회(IFOR)를 대표해 작업부회에 상설중재재판소 재판 절차 등에 대한 정보를 제출했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같은 국가와 피해자 개인 사이의 국제분쟁 해결을 위해 이 재판소를 이용할 수 있으며 일본 정부는 피해자가 요구할 경우 상설중재재판소에 의한 분쟁해결에 동의해야 한다’고 지적했죠. 이런 주장은 유엔 주도의 ‘위안부’ 문제 연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위안부’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 조기에 공정하고 최종적인 분쟁해결이 가능한가’라는 관점에서 나왔어요. 1994년 유엔의 이 권고를 정대협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8명이 곧바로 수락한다고 밝혀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에서는 변호사 59명이 참가하는 ‘‘위안부’ 문제의 국제중재를 추진하는 변호인단’도 결성되었어요. 일본 정부가 이 권고를 수락했다면, 진작에 ‘위안부’ 문제는 공정한 해결 절차에 의해 전면적으로 해결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일본 정부는 이 권고를 거부했어요. 그 때문에 지금까지 한일관계 위기가 이어지고 있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2022-09-12> 한겨레

☞기사원문: “일본이 ‘식민지배 불법성’ 인정하면 모든 게 좋아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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