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50년군사독재청산위원회, 12일 국회에서 ‘유신청산 실천대회’ 열어
헌정 사상 세 차례 쿠데타 및 내란 과정에서 해산당한 국회가 처음으로 그 무효를 선언했다. 또 국가보위입법회의 등의 유사입법에 대해 조사 검증하기 위한 ‘유신청산 실천대회’가 국회의원과 학계 및 법조계 인사들의 연대로 개최됐다.
유신50년군사독재청산위원회(아래 유신50년청산위)는 1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유신청산 실천대회를 열고 ▲1972년 10월 유신선포 ▲1980년 5월 신군부 내란 그리고 ▲1961년 5.16 군사쿠데타 후 그 주모집단이 감행한 국회 해산은 무효라고 선언했다.
유신50년청산위는 “유신선포 후 비상국무회의나 신군부 내란 당시 국가보위입법회의는 국민이 선출하지 않아 입법권을 가질 수 없는 유사입법기구로서 이 기구가 제정 또는 개정한 유사법률들을 전수 조사하여 개정 또는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5.16 쿠데타 기구인 국가재건최고회의도 동일한 유사입법기구로서 당시 제정한 법률들도 검토 대상”이라고 덧붙였다.
이 단체는 박정희 유신선포 50년을 맞아 올해 1월 국회의원 공동대표 5인(이학영, 인재근, 이용선, 강은미, 양정숙)과 민주화운동 단체 대표 2인(상임대표 김재홍, 공동대표 김준범)으로 대표단을 꾸려 출범한 국회의원-시민단체 연대기구다.
이들은 그동안 군사독재 시기 제‧개정된 유사법률들과 제도 및 기구의 불법성을 검증하는 연구 토론활동에 집중해 왔다.
“군사독재정권이 어떻게 국민 기본권 제한했는지 추적·분석해야”
이날 유신청산 실천대회에서 공동대표단의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는말을 통해 “군사정권은 대의제 민주주의에 위반하는 유사입법기구를 설치해 수많은 법을 통과시켰다”면서 “세 개의 유사입법기구 ‘국가재건최고회의’, ‘비상국무회의’,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만들어진 법률들의 위법성과 제‧개정의 필요성을 다양한 관점으로 살펴봤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난 예결위 대정부 질의를 통해 유사입법기구가 제정한 법률들을 전면조사하여 필요성이 있을 경우 정비를 추진하겠다는 법제처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 공동대표단의 인재근 의원은 “군사독재 시절 많은 사람들이 씻지 못할 상처를 받았다”며 “평범한 소시민이 간첩으로 둔갑해 법정에 세워졌고 정의와 민주주의를 외치던 목소리에는 구둣발과 몽둥이가 돌아왔다”고 비판했다.
‘국회 해산 무효와 유사입법 개정 및 폐지 촉구 결의안’을 대표발의한 인 의원은 “군사독재 정권이 어떻게 헌법을 유린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했는지 추적하고 분석해야 한다”면서 “반복되는 수많은 역사 속에서 독재와 탄압은 사람들이 등 돌리고 지켜보지 않을 때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인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회 결의안에는 의원 126명이 서명했으며 현재 국회내 심의 절차에 들어갔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인사말에서 “우리는 오늘 불법적인 국회 해산이 무효임을 선언하고 유사입법기구가 만든 법률을 바로잡고자 모였다”면서 “왜곡된 과거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시민단체와 국회가 함께 손을 맞잡았다”고 의미 부여했다.
박 대표는 “국회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다. 원내 제1당의 대표로서 국회가 흔들리지 않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불법적 유사입법기구가 제정한 법률들의 개정 및 폐지를 위해 당 차원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상임대표인 필자는 기조연설자로 나서 “유신군사독재 치하 피해자들이 각기 개인 차원에서 법적 절차를 거쳐야 명예회복과 배‧보상을 받는다는 것은 정의에 어긋난다”면서 “국가가 의무이행 차원에서 피해자 구제와 법제적 과거사 청산을 능동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대표 기구로서 민주주의의 전당이어야 할 국회가 국민의사와 대한민국 건국이념에 정면 배치되는 쿠데타 내란 집단의 세 차례에 걸친 국회해산에 대해 그동안 한번도 유감표명조차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면서 “국회는 쿠데타 집단에 의한 국회 해산은 무효며 향후 어떤 경우에도 국회 해산이란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을 천명하라”고 촉구했다.
또 “유신군사 독재 시기 불법적으로 만들어진 유사법률들의 개폐대상 1순위는 유신헌법 잔재가 남아있는 현행 대한민국 헌법”이라면서 “순수 민주헌법으로 완전 정상화하기 위해 세계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대통령 4년 중임제로 개헌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5.18 광주항쟁정신을 3.1운동 및 4.19 민주이념과 동일 선상으로 헌법 전문에 명기하자는 의견은 이미 여야 정당과 진보-보수 진영에서 일치된 바 있다”면서 “유신군사독재 청산을 더 희망찬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들로 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신독재 암 덩어리 제거 안 한 결과… 참담”
한편 이날 특별강연을 맡은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전 중앙대 교수)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체제 아래서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유신독재라는 암 덩어리를 50년간 제거수술을 안 한 결과가 바로 오늘날 우리 정치현실이 당면하고 있는 참담함”이라고 짚었다.
임 소장은 “1789년 프랑스 혁명 후 많은 사회 혼란 속에서 혁명과 반혁명의 반복, 그리고 왕정복고라는 역사 퇴보에 대항해 80년 이상 투쟁하며 제3공화국의 안정기로 들어갔다”며 “박정희도 4월혁명의 혼란을 구실삼아 쿠데타를 일으켜 그 이념을 받았다고 하면서 4월의 이념을 짓밟아 버리고 종신 집권을 위해 유신쿠데타의 길을 선택했다”고 비교 평가했다.
그는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에 대해 “모든 언론이 그의 대변지 역할을 자임하였고 많은 성직자들이 그에게 축복을 내려주었으며 상당수 지식인들이 어용화했던 시대”라며 “박정희가 죽은 뒤에도 전두환 일당이 원조 유신보다도 더 포악하게 국민을 핍박하면서 제2단계의 유신으로 강화시켰다”고 맹렬히 비판했다.
임 소장은 이어 “식민지 근대화론, 이승만 국부론, 박정희의 근대화 기여론, 전두환 쿠데타 긍정론, 한국에는 민주주의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민족적 허무주의론, 국민복지 보다 경제발전 우선론 등을 ‘자유민주주의(신자유주의)’와 ‘반공’이라는 깃발로 위장한 것이 유신의 핵심”이라며 “그 유신의 유전자가 변질하여 제3의 유신이라 할 만한 ‘검찰 독재’로 육갑하여 한국의 민주주의를 짓밟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1963년 10월과 1987년 12월의 대통령선거 등 독재정권을 교체할 기회가 수차례 있었으나 민주당 계열 야권의 분열로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유신청산 실천대회에서 오동석 교수(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유신군사독재정권 시기 유사입법 기구들이 제‧개정한 법률 중 개정 또는 폐지해야 할 대상을 정리 발표했다.
오 교수는 진보-보수 진영이나 여야 간에 쟁점이 적어 우선 1단계로 개폐할 법률로 향토예비군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모자보건법, 군형법 등 10개를 예시했다.
유신50년청산 실천대회는 이날 “국회는 정당성을 결여한 유신헌법, 유사입법기구 제정 법률이 원천적으로 무효임을 선언하라”는 등 5개항의 결의문을 발표하고 마무리됐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유신50년군사독재청산위원회 상임대표이자 전 국회의원입니다.
<2022-10-12>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