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의 히,스토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유발한 역사 쟁점들
지난 11일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국회 부의장은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을 정당화하고자 ‘조선의 멸망은 일본의 침략 때문이 아니라 조선의 무능과 무지 때문’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남겨 논란을 일으켰다.
이 논란은 또 다른 역사 논쟁을 연이어 유발하고 있다. 그는 다음 날 만해 한용운의 수필인 ‘반성’을 페이스북에 실어 전날과 비슷한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최고회의에서는 “친일파 조부를 둔 여당 비대위원장이 친일 인식을 감추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정진석 위원장으로 인한 논란 가운데 한용운의 ‘반성’과 정 위원장의 조부 정인각의 행적이 튀어나오게 된 것이다.
12일 정 위원장은 페이스북 글에 한용운이 1930년대에 쓴 ‘반성’의 일부를 가져왔다. 그는 “만고를 돌아보건대, 어느 국가가 자멸하지 아니하고 타국의 침략을 받았는가. 어느 개인이 자모(自侮)하지 아니하고 타인의 모멸을 받았는가”라는 대목을 인용했다. 조선은 내부의 문제점 때문에 멸망한 것이라는 전날 주장을 보강하고자 이 대목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인용한 부분 중 마지막 대목은 “자기 불행도, 자기 행복도 타(他)에 의하여 오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련하기도 하지만 가증스럽기가 더할 수 없다”는 문장이다. 조선의 멸망 원인을 일본이 아닌 조선에서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싶었던 듯하다.
조선이 멸망한 것은 일본이 침략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선이 약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을 비판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지 않고, 조선의 ‘무능과 ‘무지’를 탓하는 데 치중하는 것 역시 맞지 않다. ‘내 탓이오’라며 스스로를 지나치게 나무라는 사람은 폐인이 되기 쉽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반성’을 쓸 당시의 만해 한용운도 그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정진석 위원장이 ‘반성’의 전체 맥락을 소개하거나 다른 부분도 함께 인용했다면, 한용운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났을 것이다.
한용운의 글을 제대로 인용했다면, 독립운동가인 그가 “어느 국가가 자멸하지 아니하고 타국의 침략을 받았는가”라며 조선의 내부 책임을 지적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정 위원장이 일부 대목만 발췌하는 바람에 한용운의 참뜻이 감춰지게 됐다.
정진석이 왜곡한 한용운
한용운은 독립운동가 겸 시인이기 이전에 승려이자 철학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자기성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당연하다. 단재 신채호 같은 선비 출신 독립투사의 글에서는 유교 사상이 묻어나기 마련이고, 한용운 같은 승려 출신 투사의 글에서는 불교 사상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자기 성찰을 중시하는 승려 한용운이 조선의 책임을 강조한 것은 그리 이상할 게 없다.
한용운은 조선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독립운동에 나섰다. 이는 그가 조선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 일본의 지배에 순응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스스로를 정비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자신과 조선의 책임을 인정했던 것뿐이다. 한용운의 ‘반성’을 좀 더 주의 깊이 읽어보면 그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한용운은 “어느 국가가 자멸하지 아니하고 타국의 침략을 받았는가. 어느 개인이 자모(自侮)하지 아니하고 타인의 모멸을 받았는가. 그러한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한민족이 스스로 무너지거나 스스로를 모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 자멸하지 말고 자모(스스로 자신을 업신여김)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정진석 위원장은 조선은 자멸하고 자모했다는 쪽으로 이 대목을 인용했다. 하지만 한용운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의미로 이 대목을 썼다. 정 위원장이 ‘님의 침묵’ 저자의 의도를 왜곡했던 것이다.
한용운는 “망국자로서 정복국만을 원망하는 것”과 “불행자로서 행운의 인(人)을 원망하는 것”을 경계했다. 망국인 조선이 일본을 원망하는 것과 불행한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의 행운을 원망하는 데 빠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원망이 아니라 반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반성을 통해 스스로를 성찰할 것을 주문한 이유가 있다. “반성하는 자는 새로운 각오가 있는 것이요, 자책하는 자는 항상의 노력이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각오와 지속적인 노력을 하기 위해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각오와 노력을 강조한 이유는 정복국의 재등장과 불행의 연속을 막자는 데 있었다. “망국의 원이 제거되지 않는 이상 제이, 제삼의 정복국이 다시 나게 되는 것이요. 자기 불행의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 자기는 의연히 불행의 경애(境涯)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망국의 원인을 제거하고 불행의 경지를 벗어나기 위해 새롭게 각오하고 항상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한용운은 “반성·자책이 가장 현명한 것이요, 불휴의 노력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며 한민족이 자신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쉼 없는 노력을 계속할 것을 촉구했다. 그것이 제국주의 정복국가 일본을 물리치고 한민족이 자유를 찾는 길이기에 그렇게 주문했던 것이다.
오늘날 한민족이 일본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친일 청산을 하고자 하는 것은 제국주의 및 친일의 잔재가 우리 내부에 남아 있어 우리의 발전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내부의 문제점을 치유하는 작업이지 일본을 원망하거나 탓하기만 하는 작업이 아니다. 일제를 비판하고 친일 청산을 추진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한용운이 말하는 반성과 자책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한용운의 유지를 높이 평가한다면, 정진석 위원장 역시 일본의 군사대국화 및 친일 청산에 대해 원칙적 입장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을 옹호하는 과정에서 한용운의 ‘반성’을 인용하는 것은 한용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정진석 조부 정인각의 친일
정진석 위원장으로 인해 유발된 또 다른 쟁점인 조부 정인각의 친일 논란도 우리에게 생각거리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번 일은 정인각과 정진석 위원장의 관계, 정인각이 손자의 정신세계에 미친 영향 등과 관계없이, 정인각 같은 인물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친일청산 작업은 지위가 높지 않은 읍면장 급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뤄졌다고 보기 힘들다. 읍면장이나 이장들이 일선 민중과 접촉하면서 일제의 침략정책을 최일선에서 수행했는데도 이들에 대한 친일 규명 작업은 만족스러운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정인각은 일제강점기 때 충남 공주군 계룡면장을 지냈다. 그는 직급은 높지 않지만, 상당히 주목받는 면장이었다. 1937년 발발한 중일전쟁 공로자들을 선정해 일제가 1940년에 작성한 ‘지나사변 공로자 공적조서’에서 메이지 33년(1900년) 태생이자 계룡면장인 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 군국주의의 대륙침략에 공헌했다는 인증을 명확하게 받았던 것이다.
정인각은 1939년에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제7회 지방행정 공적자로 선정됐다. 그해 2월 1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네 명의 수상자 명단에 그의 이름이 들어 있다.
총독부 내무국장의 시상 소감을 그대로 옮긴 이 기사는 정인각을 비롯한 수상자들이 행정사무 쇄신, 교육·산업·토목·교통·위생 개선, 미풍양속 진흥, 민심 융화 등에 기여했다고 평가한 뒤 이들을 표창하는 실제 동기가 전쟁 수행과 관련돼 있음을 언급했다.
기사에서 내무국장은 지나사변으로 인해 후방 지원의 필요성이 더 커졌다면서 “따라서 지방행정의 제일선에서 직접 대중의 지도에 당(當)하고 잇는 사람의 책임은 금후 일층 중(重)하게 되었다”라며 “특히 조선에서는 여러 가지 의미로 제국의 대륙정책의 전진기지인 입장에 입(立)하엿으므로 그 임(任)에 재(在)한 사람들의 사명은 가장 중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총독부가 정인각 등을 표창한 것은 대륙침략 전진기지의 입장에 서 있는 조선에서 대중을 직접 지도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들의 사명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정인각이 대륙침략을 위한 읍민 동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는 총독부의 시각을 반영한 평가다.
이처럼 일제는 정인각을 유공자로 인정하지만,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보고서>나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는 정인각이란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인물을 대할 때는 친일파로 봐야 할지 아닐지를 고민하게 된다.
정진석 위원장이 일으킨 논란은 조선 멸망의 진짜 원인과 만해 한용운의 참뜻을 되돌아보도록 만드는 한편, 정인각 같은 중하급 관리에 대한 전면적인 친일 여부 평가 작업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김종성 기자
<2022-10-1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한용운 왜곡한 정진석, ‘반성’은 이렇게 읽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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