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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친일이냐 종북이냐…그 끝없는 역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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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50
철학과 전략 사라진 통일·외교 정책

정부·여당, 한반도 정책 큰 그림 부재
윤 대통령, 통일·외교 문외한인데다
정진석 등 선 넘는 대북 강경 발언
민주도 ‘친일 국방’ 비난 등 자제해야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0월12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컨벤션홀에서 열린 ‘2022 국민미래포럼’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친일 국방’, ‘욱일기’, ‘안보 자해’ 등 잇단 공격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아무래도 현 집권 세력의 무척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것 같습니다.

최근 정가에서 벌어지는 친일 논란은 단순한 정치 공방이 아닙니다. 그 배경에는 대한민국 정부의 정체성과 이념을 둘러싼 대논쟁이 깔려 있습니다. 이번 친일 논란의 역사적 배경을 짚어보고 이 논쟁을 어떻게 정리해 가는 것이 좋을지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친일 논란은 종북 논란과 분리하기 어려운 쌍생아입니다. 일제 강점기의 기득권 세력이었던 친일파는 해방 이후 반공을 기치로 내세워 부와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분단과 전쟁이 친일파의 기득권을 보장해준 것입니다. 친일 기득권 세력의 전위였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 정권은 정권 유지를 위해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서 죽이고 가뒀습니다. 무고한 재일동포 유학생과 어민들을 잡아다가 고문해서 간첩으로 조작했습니다. 심지어 김대중 대통령 같은 중도 보수 성향의 야당 정치인들을 ‘빨갱이’, ‘친북’, ‘용공’, ‘종북’으로 몰아 탄압했습니다.

정파 관계없는 과제였던 ‘남북관계’

오랫동안 계속된 기득권 세력의 종북몰이로 친일 논란은 비집고 나올 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독재 정권을 물리치고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기득권 세력의 친일 행적에 대한 조사와 공개가 시작됐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혈서를 써서 만주군관학교에 갔고 다카키 마사오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바꿨다는 사실이 폭로됐습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일보>의 친일 보도가 재조명됐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8년의 제작 기간을 거쳐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것은 2009년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긴 세월을 생각하면 대한민국에서 친일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인 셈입니다.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를 계기로 디지털 공간에서 ‘토착왜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이른바 보수 세력을 친일파로 공격하면서 가장 자극적인 표현을 동원한 것입니다. 보수 세력은 토착왜구라는 말에 진저리를 쳤습니다. 최근 한·미·일 연합 군사훈련에 대해 이재명 대표가 ‘친일 국방’이라는 자극적 언어로 공격하고 나서자 보수 세력 전체가 펄쩍 뛰는 배경에는 이러한 역사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보수 세력이 북한을 악의적으로, 일본을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한반도 정세를 읽는 국제정치 프레임과 관련이 있습니다. 한반도를 ‘한·미·일’과 ‘북·중·러’가 충돌하는 각축장으로 보는 것입니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체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는 미국·일본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냉전 시대에는 그런 주장에 타당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제 정세는 보수 세력의 희망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 미-중 화해의 흐름을 타고 남북대화가 시작됐습니다. 1972년 남북한 당국은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였습니다.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이 합의한 문서입니다.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이라는 평화통일 3대 원칙을 천명했습니다.

7·4 남북공동성명은 노태우 대통령 때인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로,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2000년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졌습니다.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정책과 남북 정상회담도 그 연장에 있는 것은 물론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 관계 정상화로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를 실현한다는 ‘큰 그림’을 갖고 있었습니다. 여러 차례 진전이 있었지만, 미국 선거에 의한 정세 변화, 미국 내 강경파의 방해, 북한의 소극적 태도 등 여러 요인이 겹쳐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2005년 미국 정부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 북한 자금 동결, 2019년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방해로 결렬된 ‘하노이 노딜’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김영삼 이명박 대통령 때도 남북관계 개선 노력이 있었습니다. 불운하게도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러운 사망,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등으로 남북관계가 오히려 악화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 의원 시절인 2002년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한 일이 있습니다.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설치, 금강산댐 공동조사, 남북한 철도 연결, 남북축구대회 등에 합의했습니다. 자서전에 이렇게 썼습니다.

“북한에 다녀온 이후 나는 남북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것은 바로 진심을 바탕으로 상호 신뢰를 쌓아야만 발전적인 협상과 약속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다짐은 뒷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대선 공약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재임 시에 별다른 성과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이처럼 대통령 개인의 이념이나 소속 정파와 관계없이 역대 대통령은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그 나름대로 많은 애를 썼습니다.

외교·안보분야 백지상태인 대통령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외교·안보 문외한입니다. 경제 분야는 그래도 검사 시절 수사를 하면서 기본 지식이 상당히 있다고 스스로 말했지만, 외교·안보는 안목과 식견이 거의 없는 백지상태로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봐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안보 분야 대선 공약집을 보면 ‘남북관계 정상화’라는 제목이 달려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관계가 비정상이었다는 전제가 깔린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굴종적인 자세로 남북관계를 비정상적으로 만들고 국민의 자존심을 훼손”했다고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군사합의서, 종전 선언 등을 국민적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국민 분열을 야기”했다고 했습니다. 한-미 관계는 “한-미 동맹을 재건”하겠다고 했습니다. ‘재건’이라는 단어가 자극적입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한-미 관계가 무너졌나요?

국방에서는 “한-미 연합훈련 축소 및 기동훈련 취소 등으로 한-미 간 신뢰가 저하되고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증대되어 국가 안보에 취약점이 발생”했다며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북핵·미사일 위협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가요? 현실에서는 지금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요?

어쨌든 좋습니다. 공약은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내놓은 것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심각한 문제는 철학과 전략의 부재입니다. 대선 이후 지금까지 발표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백서, 대통령 취임사, 외교·안보 분야 인사, 윤석열 대통령의 각종 연설 등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외교·안보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큰 그림’을 찾기 어렵습니다. 북한이 비핵화로 전환하면 경제적 지원을 하겠다는 ‘담대한 구상’을 밝혔지만 북핵 문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결하려는 것인지, 장기적으로 한반도 평화와 주변 정세를 어떻게 관리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지금은 한·미·일-북·중·러 대결의 시대가 아닙니다. 냉전시대 구도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야 외교·안보 문외한이니까 한계가 있겠지만, 우리나라 이른바 보수 세력의 실력이 겨우 이 정도였던가요? 저는 무척 실망했습니다. 철학의 부재는 무리하고 과격한 대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재명 대표의 ‘친일 국방’, ‘욱일기’ 공격을 반박하다가 “조선 왕조는 일본의 침략이 아니라 무능하고 무지해서 망했다”고 큰 실언을 했습니다.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자 이번에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파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진석 위원장의 발언은 윤석열 대통령이나 대통령실과 조율을 거친 의견도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다급해도 그렇지 집권 여당 대표가 친일 논란을 잠재우겠다고 아무 말이나 막 던지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참 걱정스럽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월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약식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정진석 위원장의 발언을 계기로 핵무장론, 전술핵 재배치론 등이 무분별하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정진석 위원장이 이 문제를 어떻게 정리해 나갈지 지켜보겠습니다.

지금 제1야당이 해야 할 일

민주당은 어떨까요? 한·미·일 연합훈련에 대한 이재명 대표의 문제 제기는 야당 대표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타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친일 국방’ 등 자극적인 언어로 윤석열 정부를 공격하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쳐 보입니다. 이른바 보수 세력의 종북몰이가 잘못된 것이듯, 국민의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친일몰이도 잘못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금도 ‘김일성주의자’라고 하고, ‘총살감이라고 생각한다’는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과 민주당이 같은 수준이어서야 되겠습니까?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정치인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국면에서 우리 정부와 국민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차분하게 토론하고 정책 대안을 마련하는 일 아닐까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서 한반도 정책을 담당했던 유능한 당국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불러서 의견을 모아보면 어떨까요? 국민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안목과 실력이 어떤지도 궁금합니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2022-10-16> 한겨레

☞기사원문: 친일이냐 종북이냐…그 끝없는 역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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