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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사라지는 목소리들, 석탄과 철에 은폐된 역사 그리고 희생자의 이야기_특별전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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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월 1일부터 12월 16일까지,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사라지는 목소리들, 석탄과 철에 은페된 역사, 그리고 희생자의 이야기』 특별전이 ‘일제강제동원역사관(부산)’에서 열린다.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시설’에서 강제동원의 역사를 은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최근 등재를 시도하고 있는 사도광산에 대해서도 ‘가해의 역사’를 감추고 있다. 하지만 제국일본의 근대화는 당시 주변국에 대한 침략, 반인도적인 가해행위와 동시에 진행되었고, 그 피해가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일본정부가 선전하고 있는 ‘일본 근대산업유산의 성공스토리’ 뒤에 감춰진 가해와 피해의 역사를 드러내고, 인류가 기억하고 보존해야 할 ‘유산’이란 무엇인지 되돌아보기 위해 마련되었다.

2. 전시는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전시에서 피해자 21명의 증언이 소개된다. 군함도 등 태평양전쟁기 일제의 산업시설에 동원되어 노동한 한국인 피해자 / 중국인‧연합군 포로의 증언 / 사도광산 피해자의 증언을 볼 수 있다. 특히 처음으로 사도광산 강제노동의 실태를 뒷받침하는 사료와 피해자의 기록이 전시된다. 집단동원, 강제노동, 갱내노동으로 인한 심각한 후유증과 가족들에게 반복되어온 고통에 대한 피해자와 유족들의 증언이 공개된다.

3. 2부 전시는 일본정부의 ‘산업시설 유네스코 등재’ 시도와 쟁점을 설명하고, 실물 문서와 유물을 통해 일본정부가 은폐하고 있는 ‘진실’을 드러낸다.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각종 수첩, 통장, 영수장과 사진, 피해자가 스스로 작성한 ‘자서록’과 진술서를 통해 일본정부가 은폐하고 있는 식민지배와 전쟁의 참상을 이해할 수 있다.

4. 이번 전시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주최하고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하여 개최한다. 개막식은 11월 1일, 오후 4시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 진행된다. 개막식에는 피해자의 유족이 참석한다.

[첨부자료]

1. 증언영상 목록

○ 일본제철 야하타제철소 |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
김규수 : 1928년 전북 전주부 출생, 1943년 15세에 처벌이 두려워 강제동원에 응함
2007.6 증언,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제공
이천구 : 1927년 충남 서천군 출생, 1942년 15세에 경찰에 의해 강제동원
2005.10 증언, 국가기록원 제공
주석봉 : 1924년 전북 전주부 출생, 1943년 배급 중단 협박에 강제동원. 1944년 징병영장을 받고 다시 군인으로 동원
2009.6 증언,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제공

○ 미쓰비시 나가사키조선소 |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김한수 : 1918년 황해 연백군 출생, 1944년에 26세에 거짓말에 속아 강제동원
2006.2 증언, 국기기록원 제공
김성수 : 1925년 경남 산청군 출생, 일본 후쿠오카현 오무타시 거주 중 1943년 18세에 징용영장을 받고 강제동원. 1945년 8월 피폭
2007.3 증언, 국가기록원 제공
배한섭 : 1926년 경남 남해군 출생, 1944년 18세에 일본 후쿠오카현 야하타시에서 징용영장을 받고 강제동원. 1945년 8월 피폭
2007.5 증언, 국가기록원 제공

○ 미쓰비시 다카시마탄광 |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다카시마
손용암 : 1928년 강원 고성군 출생, 1943년 15세에 속초역에서 경찰에 납치되어 사할린 탄광으로 강제동원. 1944년 다카시마탄광으로 전환 배치됨
2021.3 증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제공 
정복수 : 1926년 전남 완도군 출생, 1943년 17세에 사할린 탄광에 강제동원, 1944년 다카시마탄광으로 전환 배치됨
2006.9 증언, 국가기록원 제공

○ 미쓰비시 하시마탄광 |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하시마
최장섭 : 1929년 전북 익산군 출생, 1944년 15세에 강제동원. 1945년 8월 원폭 투하 후 도시정비에 투입되어 피폭
2016.7 증언,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서정우 : 1928년 경남 의령군 출생, 1943년 15세에 논일을 하던 중 강제동원. 나가사키조선소로 전환 배치됨. 1945년 8월 피폭
1990년대 말 증언,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제공
이정옥 : 1926년 전남 광주군 출생. 1942년 16세에 경찰에 의해 끌려가 강제동원
리칭윈(중국인) : 1929년 출생, 1944년 15세에 일본군과 전투 중 체포, 연행되어 하시마탄광에서 강제노동
리즈창(중국인) : 1919년 출생, 1943년 중국 저항조직 소속. 1943년 24세에 일본군에 연행되어 강제노동
2013.10 증언, 일본 나가사키 중국인 강제연행의 진상을 조사하는 모임 제공

○ 미쓰이 미이케탄광 | 후쿠오카현 오무타시
류기동 : 1918년 충남 공주군 출생, 1942년 24세에 경찰 압박에 강제동원
2021.3 증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제공
손중구 : 1923년 경기 개풍군 출생, 1943년 20세에 삼형제 중 1명은 가야 한다는 경찰 압박에 강제동원
2006.3 증언, 국가기록원 제공
레스터 테니
: 1920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출생. 1941년 필리핀에 배치, 1942년 일본 전쟁 포로, 미쓰이 미이케탄광 포로수용소에 수용, 3년간 강제노동
2013.12 증언. National Atomic Museum Foundation

○ 미쓰비시 사도광산 | 니가타현 사도섬
김주형 : 1927년 전북 익산군 출생, 1944년 17세에 형 대신 강제동원에 응함
1991.11 증언. 코리안강제연행등니가타현연구회 조사단 기록영상
박인혁 : 1929년 전남 진도군 출생, 1945년 16세에 4월 진도에서 집단 동원
2022.5 증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제공
유족-아들 정운진 : 피해자 정쌍동 1905년 전북 익산군 출생, 마을에 할당된 동원자 수를 채우기 위해 제비뽑기로 뽑혀 동원
2022.6 증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제공
유족-아내 김복년 : 피해자 유창수 1917년 충북 청주군 출생, 1943년 경 26세에 강제동원. 부상과 후유증 겪음
2022.6 증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제공
유족-아들 김광선 : 피해자 김종원 1920년 충남 논산군 출생, 1940년부터 1943년까지 사도광산에 강제동원. 진폐증으로 극심한 후유증 겪음
2022.3 증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제공

2. 중국인과 연합군 포로의 피해

○ 미쓰이 미이케탄광

중국인 천꾸이밍陳桂明 | 1944년 포로가 되어 미이케탄광에 연행
1944년 봄 자택에서 일본군에 붙잡힌 후 미쓰이 미이케탄광에 연행되었습니다. 1945년 3월 경 천장에서 낙석이 떨어져 오른손 검지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작업장은 쉬는 날도 없었고 배가 고팠습니다. 그는 절망감에 전기코드로 자살하려고 했지만 동료가 막았습니다. 귀향한 후에도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서 고생을 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보상하여 함께 가는 아시아의 역사를-중국인강제노동사건의 진실過ちを認め、償い、共に歩むアジアの歴史を-中国人強制労働事件の真実』, 中国人強制労働事件福岡訴訟原告弁護団, 2001

○ 야하타제철소

연합군 포로 도널드.L.버소 | 1944년 7월 후쿠오카 후타세탄광으로 연행
미국인 도널드.L.버소는 필리핀 코레히도르에서 포로가 된 후 가바나투안 수용소에 수용되어 시체를 매장하는 일을 했습니다. 1944년 7월, 일본제철 후타세탄광으로 연행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지원병(군인)처럼 훈련 받고 뺨을 맞거나 구타를 당하는 등 폭력에 시달리며 노동을 강요받았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던 사람들 중 탄광 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자기 팔을 부러뜨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후타세 탄광은 야하타제철소의 직할 탄광이었습니다.

「포로 일미의 대화捕虜 日米の対話」

○ 미쓰비시 나가사키조선소

연합군 포로 오토 판덴 베리히 | 1942년 포로가 되어 나가사키조선소에 연행
18살에 네덜란드 군에 징병되었다가 1942년 3월에 일본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나가사키 조선소에서의 중노동과 영양실조로 인해 반년 후 폐렴으로 쓰러졌습니다. 1945년 8월 9일 원자 폭탄이 폭발한 중심에서 1.7㎞ 떨어진 곳에서 피폭을 당해 몸 왼쪽 전체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전 네덜란드인 포로들, 재외 피폭자 지원 충실히 해야」, 『쥬고쿠신문中国新聞』 2009.2.2.

○ 미쓰비시 다카시마탄광·하시마탄광

중국인 왕바이단王白旦 | 1943년 일본군 포로가 되어 다카시마탄광에 연행
중국 팔로군 유격대에 참가해 1943년 8월에 일본군에 잡혀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는 중국에서 다카시마탄광으로 연행되어 트럭에 석탄을 싣는 일을 했습니다. 지쳐서 자고 있을 때 감독에게 심하게 맞아 등뼈가 변형되었고 귤껍질을 주워 먹어도 폭행을 당했습니다.

『나가사키의 중국인 강제연행長崎の中国人強制連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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