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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탑] ‘여순사건‧일제 잔재 아픈 역사’ 여수 다크 투어리즘 지속가능 위해 제도 마련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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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과 일제강점기 등 지역의 아픈 역사를 소재로 한 ‘다크 투어리즘’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조례 제정 등 제도적 지원과 일제 잔재에 대한 종합적인 관리와 활용 방안 고민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전남 여수시 만흥동 만성리에 있는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 (사진=마재일 기자)

현대사의 비극인 여수‧순천 10‧19사건(여순사건)과 식민 지배 피해를 상징하는 일제강점기 군사시설 등을 소재로 한 ‘다크투어리즘’을 지속적으로 유지‧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조례 제정 등 제도적 장치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역사교훈여행)은 일반적으로 전쟁·학살 등 비극적 역사 현장이나 재난 현장을 순례하면서 슬픔을 공유하고 추모와 성찰의 계기로 삼는 여행을 말한다. 이러한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는 취지이다.

전 세계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 400만 명이 학살당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약 200만 명의 양민이 학살된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유적지, 원자폭탄 피해 유적지인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미국 9·11 테러가 발생했던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부지인 그라운드제로 등이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 장소이다.

여순사건 발발지인 여수에도 여순 유적지와 일제 잔재 등 역사적인 장소들이 산재해 있다. 다크 투어를 통해 여수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며 여순사건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나아가 여순사건의 치유와 상생, 평화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올바른 역사 인식을 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 만성리 형제묘는 학살 후 시신을 찾을 길이 없던 유족들이 죽어서라도 형제처럼 함께 있으라며 형제묘라 이름 붙였다. 종산국민학교에 수용되었던 부역 혐의자들 중 125명이 1949년 1월 13일 이 자리에서 총살되고 불태워졌다. 당시 학살현장을 직접 지켜본 여수경찰서 사찰계 형사는 5명씩 총살 한 후에 다시 5명씩 장작더미에 눕혀 5층으로 쌓은 큰 더미가 5개라고 증언했다. 처형은 헌병들이 주도했으며 장작더미에 기름을 부어 태운 시신 위로 큰 바위를 굴러서 덮었다. 시신은 3일간 불에 탔으며 코를 찌르는 독한 냄새는 한달이 넘도록 계속됐다고 한다. (사진=마재일 기자. 2017)

여순사건 다크 투어 걸음마 수준

여수시의 다크 투어리즘 프로그램은 여순사건 시티투어 운행, 전문가 양성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사실상 걸음마 수준이다.

시는 지난해 12월 8일부터 여순사건의 아픔과 역사를 알리는 ‘여순사건 다크투어리즘’ 시티투어 운행을 하고 있다. 여순사건 다크투어리즘은 여수시가 직접 개발한 시티투어 상품으로, 대상지를 해설사와 함께 둘러보며 관광객들이 여순사건 당시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여수엑스포역에서 출발해 오동도에 있는 여순사건 기념관, 인민대회를 열었던 이순신광장, 손가락총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된 서초등학교, 14연대 주둔지, 손양원 목사 순교지, 만성리 위령비와 형제묘를 찾는다. 14연대 주둔지는 당시 무기고로 사용됐던 동굴도 체험할 수 있다.

격주 수요일과 일요일, 월 4회 오전 10시 30분부터 약 6시간 동안 운영한다. 탑승예약은 시 홈페이지 OK통합예약포털에서 가능하다. 요금은 성인 1만 원, 여수시민·경로‧장애인‧군인‧학생은 5000원이다.

하지만 이용객은 많지 않다. 시에 따르면 2021년 12월 22명, 2022년 2월 20명, 4월 6명, 5월 47명, 6월 17명, 7월 7일, 8월 24일, 10월 44명 등 총 187명이 이용하는데 그치고 있다. 1‧3‧9월에는 한 명도 이용하지 않았다. 시 관광과 관계자는 “SNS 홍보 등 활성화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는 올해 여수지역사회연구소와 공동으로 ‘여순사건 전문가 양성과정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 여수시 신월동 해군 202부대 벙커. (사진=마재일 기자. 2018)
▲ 여수시 신월동 해군 202부대 벙커. (사진=마재일 기자. 2018)

여수시, 일제 군사시설 조사…18곳 확인

여수시는 지난 9일 지역 내 일제강점기 군사시설 현황조사 용역 최종보고회 가졌다. 용역비는 5200만 원이며 이소건축사사무소가 맡았다.

시가 문화재청과 전남도의 용역자료를 토대로 현장 실사를 진행한 결과 여수지역 내 일제강점기 군사시설은 신월동 해군 202부대와 벙커, 해안 수상비행기 활주로, 여천초교 인근 일본 해군 지하 임시사령부, 자산공원 고사포 진지, 돌산 대미산 관측소 등 총 18곳으로 조사됐다. 과거에 조사한 자료에는 있지만 현재는 없는 소재 불명은 5곳이다. 특히 월호동 방공호가 새롭게 발견됐다. 시는 활용 여부에 대해서는 향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 여천초교 인근에 있는 일제강점기 일본 해군 임시사령부 지하벙커 입구. 길이 100m의 이 벙커는 일제강점기 때 여수 신월동에 위치한 일본해군 202부대가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대비해서 만들었던 지하벙커로 알려졌다. (사진=마재일 기자. 2022)
▲ 여천초교 인근에 있는 일제강점기 일본 해군 임시사령부 지하벙커 입구. 길이 100m의 이 벙커는 일제강점기 때 여수 신월동에 위치한 일본해군 202부대가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대비해서 만들었던 지하벙커로 알려졌다. (사진=마재일 기자. 2022)

전수조사 전무‧관리 미흡 등 사실상 방치
‘일제 잔재’ 종합적인 조사‧활용 대책 필요

여수지역에는 군사시설뿐만 아니라 거문도 적산가옥(일본인이 살다가 해방이 되자 버리고 간 집), 비석, 조선인 노동자 강제 동원 현장 등 일제 잔재가 곳곳에 있다.

이번 군사시설 현황 조사와 함께 지역 내 일제 통치·수탈, 친일과 관련한 건축물, 비석, 기념물 등 종합적인 현황 조사와 체계적 보존 관리, 사유지에 따른 문제점 대응 방안 마련도 요구된다.

전남도교육청이 지난 2019년 전남지역 학교 현장에 남아있는 친일 잔재 전수조사를 벌인 결과 여수에는 미평초등학교 앞에 세워진 설립자 김영준 공덕비, 율촌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진 해방 기념탑, 교가 등이 확인됐다.

사업가였던 김영준이 일제강점기인 지난 1939년 이곳에 5만 원 상당의 부지를 기부해 학교를 설립한 것을 기념하고자 미평‧둔덕 등 7개 마을 주민과 학교 후원회 등이 주도해 1952년 세웠다. 하지만 김영준은 태평양 전쟁 당시 ‘여수 김영준호’라는 군용기를 헌납하고 전쟁 자금을 기부한 공로로 일본 정부로부터 포장을 받은 전남 지역의 대표적인 친일 인물이다. 김영준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있다.

▲ 미평초교 앞에 세워진 이 학교 설립자 김영준 공덕비. 사업가였던 김영준이 일제강점기인 지난 1939년 이곳에 5만 원 상당의 부지를 기부해 학교를 설립한 것을 기념하고자 미평‧둔덕 등 7개 마을 주민과 학교 후원회 등이 주도해 1952년 세웠다. 하지만 김영준은 태평양 전쟁 당시 ‘여수 김영준호’라는 군용기를 헌납하고 전쟁 자금을 기부한 공로로 일본 정부로부터 포장을 받은 전남 지역의 대표적인 친일 인물이다. 전남도교육청은 이를 알리는 안내문을 설치했다. (사진=마재일 기자. 2022)

율촌초교 해방 기념탑은 전형적인 일본 충혼비 양식으로 일본식 비석을 가져다 쓴 것으로 추정된다. 친일파 인사의 행적은 학교 교가에도 상당수 남아 있었다. 도교육청은 안내문 설치, 교가 제작 예산을 지원했다.

지역 내 일제 잔재에 대한 여수시 차원의 전수 조사는 이뤄진 적이 없다. 관리도 미흡하고 안내판도 찾아볼 수 없다.

시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일부에 대해 학술용역을 한 적이 있다. 이번 군사시설 용역비도 빠듯해 조사하는 데 굉장히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재청이 비지정 문화재를 포함해 전국의 근대문화유산 일제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내년에 전남 지역을 조사한다”며 “여수시도 협조해 시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 여천초교 인근에 있는 일제강점기 일본 해군 통신시설용 지하벙커. (사진=마재일 기자. 2022)
▲ 해군 지하 사령부 벙커의 왼쪽으로 50m 떨어진 곳의 콘크리트 구조물. 구조물의 위치와 쓰인 자재로 봤을 때 지하벙커와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두 곳에 사용된 자갈 모두 ‘강자갈’이다. 이 구조물의 용도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깊이가 깊지 않아 야외 목욕시설로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마재일 기자. 2022)

제주, 식민 잔재 청산활동 조례 제정
군산시, 잔재물 다크 투어 코스 개발

제주도는 지난 2020년 12월 ‘일제강점기 식민 잔재 청산활동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청산활동은 식민 잔재에 대한 연구‧조사‧교육‧홍보‧변경‧처분 등의 활동을 말한다.

5년마다 식민 잔재 청산활동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매년 추진실적을 평가해야 한다. △식민잔재에 대한 실태조사 △식민잔재 청산활동 지원 △식민잔재 청산활동 홍보 및 교육 △식민잔재 청산활동에 대한 학술 연구 등의 사업을 할 수 있다.

조례에 따라 실태조사에 나선 제주도는 22일 식민잔재 청산 활동 추진계획 수립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했다.

제주에 잔존한 식민 잔재 군사시설은 125개소로 파악됐다. 식민잔재 군사시설 중 15개소는 국가등록문화재로 등재됐다. 60개소에만 안내판이 있고 나머지는 식민 잔재임을 알리는 별도 안내가 없었다.

용역을 맡은 제주역사문화진흥원은 식민잔재 청산활동 방안으로 지속적인 전수조사와 함께 분야별 안내판 및 표석 설치, 연구기반 조성 확립, 교육 장소 활용, 청산활동 대상 심의·선정 및 청산 등을 제시하면서 식민 잔재임을 알리고 올바른 역사 인식을 정립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제주도는 용역이 마무리되면 연도별 청산활동 계획을 구체화하기로 했다.

친일 관련 건축물 30여점이 남아있는 군산은 ‘시간여행’, ‘근대문화도시’ 등 일부 청산 대상을 다크 투어 코스로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 적산가옥. (사진=마재일 기자. 2017)
▲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 신사터. (사진=마재일 기자. 2017)

제주, 다크 투어리즘 조례 제정

제주도는 지난 2020년 5월 ‘제주특별자치도 다크 투어리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전국 최초로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이 조례는 제주4‧3, 일제 식민 잔재 등 어두운 역사적 사실 및 장소 등의 역사 자원을 올바르게 전달하고, 체계적으로 보존, 활용하기 위한 생명·평화·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울 수 있는 관광 상품으로 육성하기 위해 마련됐다.

주요 내용으로 다크 투어리즘 육성과 지원을 위해 5년마다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다크 투어리즘 관광지를 지정해 육성하도록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다크 투어리즘 기본방향 및 목표 △관광자원 및 활용 실태조사 △다크 투어리즘 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운영 △다크 투어리즘 전문 인력 양성 및 역량강화 △다크 투어리즘 인식 제고 및 주민 참여 활성화 방안 △ 다크 투어리즘 사업추진을 위한 재원 조달 방안 △다크 투어리즘 기반 조성 사업 △다크 투어리즘 관광 상품 개발 및 홍보 등이다.

▲ 제주 북촌마을의 너븐숭이 기념관. 북촌마을은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의 배경이 됐던 곳이다. (사진=마재일 기자. 2018)
▲ 제주 북촌마을의 너븐숭이 기념관. 북촌마을은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의 배경이 됐던 곳이다. (사진=마재일 기자. 2018)

소비 공간 넘어 경험적 공간 가치 공유의 장

지역의 어두운 과거, 장소라는 자산을 활용한 역사관광상품은 지역의 정체성 유지와 관광 상품 다양화 측면에서 중요하다. 특히 ‘평화와 인권’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단순 관광 상품 차원의 소비 공간을 넘어 경험적 공간에 대한 가치를 공유하는 장이 될 필요가 있다.

향후 여순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작업이 일정 궤도에 오르게 되면 전국화, 세계화를 통한 인지도와 인식을 개선하는 작업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다크 투어에 대해 여수시가 선제적으로 준비에 나설 필요가 있다. 사진, 문학, 영상, 출판,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산업과 연계한 활성화 방안 고민도 요구된다.

무엇보다 다크 투어리즘의 취지를 충실히 살린 다양한 프로그램 발굴이 요구된다. 이와 함께 다크 투어리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현장 보존은 물론 프로그램 연구‧개발, 사회경제적 효과 측정과 의미 강화, 국내외 네트워크 확대 등을 위한 시 차원의 제도적 지원 장치가 필요하다.

▲ 제주 4.3평화기념관 내부 모습. (사진=마재일 기자. 2018)

여수뿐만 아니라 국내의 제주4‧3, 전쟁과 일제 잔재 시설, 나아가 일본 오키나와, 중국 난징 대학살 다크 투어와 같이 동아시아 차원에서 연계해야 할 시점도 올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아픈 역사를 상품화하는 것에 대한 일부 거부감이 있고 관광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특히 여순사건이 74년 만에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첫걸음을 뗀 상황에서 아직까지는 초기 단계인 만큼 지나친 관광화 등 단순 사회경제적 효과로 접근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여순사건 같은 비극적인, 식민이라는 치욕스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적 교훈의 메시지를 어떻게 구체화해 의미를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절실한 시점이다.

마재일 기자 killout1339@naver.com

<2022-11-23> 뉴스탑

☞기사원문: ‘여순사건‧일제 잔재 아픈 역사’ 여수 다크 투어리즘 지속가능 위해 제도 마련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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