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네덜란드 정부를 대표해 과거 우리 정부의 행동을 사과합니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17~19세기 자국이 부를 쌓는 수단으로 사용했던 노예제도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뤼터 총리는 19일 헤이그에 있는 국가기록관에서 “네덜란드 정부는 노예가 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겪은 엄청난 고통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고 네덜란드 총리실이 밝혔다. 그는 이 자리에서 “네덜란드가 지난 수세기 동안 네덜란드란 국가 이름으로 노예제를 가능하게 하고, 장려하고, 이를 통해 이익을 얻어왔다. 사람들이 상품화되고 거래됐고 착취됐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을 사는 우리는 노예제도의 해악을 가장 명확한 표현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노예제)을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 그리고 셀 수 없는 사람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끼친 범죄 시스템으로 규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과의 의미에 대해 “그(역사) 페이지는 사과로 지울 수 없고 지워져서도 안 된다”며 “과거는 지울 수 없지만 직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사과로 마침표를 찍는 게 아니라 쉼표를 찍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연설에서 강조했다.
이날 연설은 방송을 통해 생중계됐으며 연설 현장에는 노예제 피해자 후손들이 자리했다. 암스테르담 등 네덜란드 주요 도시의 시장들이 과거 사과를 한 적 있지만, 중앙정부 차원의 사과는 이번이 처음이다.
역사학자들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아프리카 가나에서 1000여명을 납치해 브라질 농장으로 보낸 1634년을 네덜란드 노예제의 시작으로 본다. 뤼터 총리는 “1814년까지 노예 상인들이 60만 이상의 노예화된 아프리카 여성과 남성 아이들을 아메리카 대륙으로 보냈다”며 “그들은 소처럼 취급됐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노예로 납치한 이들을 대규모 상업 농장인 ‘플랜테이션’ 농장의 노동력 등으로 착취했고, 노예제는 17세기 네덜란드 식민제국 황금기 때 부의 원천이었다. 네덜란드는 1863년 7월1일에 식민지던 수리남을 포함한 모든 국내외 영토에서 노예제를 폐지한다고 했으나, 수리남에서 노예제 폐기가 완료된 것은 과도기 10년을 거친 1873년 7월이었다.
이번 조처는 2020년 설치된 국가자문위원회의 결론에 따른 것이다. 자문위는 네덜란드의 노예제는 공식적인 사과와 재정적 배상을 할 만한 반인륜적 범죄였다고 결론지었다. 네덜란드 정부는 노예제에 대한 역사 교육을 위해 교육 기금 2억유로(2740억원)를 마련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뤼터 총리는 이날 연설 뒤 기자들에게 피해자 후손에 대한 개별 “보상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뤼터 총리의 사과는 피해자 후손 단체들과 관련 국가들로부터 비판도 받고 있다. 이날 사과가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진 ‘식민지 시대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배상 없는 사과는 불충분하며, 총리가 아니라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네덜란드령으로 카리브해 있는 섬인 신트마르턴의 시민단체 활동가 로다 애린델은 영국 <가디언>에 “우리는 진정한 배상적 정의를 위해 수백 년을 기다려왔다. 조금만 더 기다려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남미 수리남의 노예제 명예회복 재단에서 일하는 로이 카이쿠시 그로엔버그는 “네덜란드 정부가 이 문제를 다루는 방법이 마치 새 식민지를 다루는 듯하다”면서 후손들과 충분한 협의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2022-12-22>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