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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의 강제동원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한 피해자 측 입장
2018년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피해자(원고) 측 지원단체와 대리인단(이하 ‘지원단 및 대리인단’)은 지난주 외교부 측으로부터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유력한 ‘안’(案)을 청취하였습니다(이하 ‘한국 정부 유력안’). 한국 정부 유력안은 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지원재단’)이 한국 기업들의 기부를 받아 재원을 마련하여, ②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하여 승소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변제를 하는 것입니다.
지원단 및 대리인단은 위 한국 정부 유력안을 강하게 반대합니다. 지원단 및 대리인단이 한국 정부 유력안을 반대하는 이유는 3가지입니다.
첫째, 한국 정부 유력안은 일본 정부가 2018년 대법원 판결부터 일관되게 주장해 온 ‘한국이 해결하라’는 요구가 그대로 관철된, 0대 100의 외교적 패배이자 참사입니다. 미쓰비시중공업이나 일본제철과 같은 일본 피고 기업의 사죄나 출연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일본 다른 기업들의 출연조차 없는, 말 그대로 일본을 면책시켜주는 방안이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국 외교부가 일본 측에 주장해온 ‘성의있는 호응’조차 전혀 확인되지 않습니다. 외교부 측은 지원재단이 한국 기업들의 재원으로 피해자에게 변제를 하기 시작하면, 그 이후에 (피고 기업을 제외한) 일본 기업의 자발적 참여나 일본 정부의 유감 표명을 기대할 수 있다는 입장이나, 배상 책임이 있는 피고 기업이 빠진 해법은 애초 논의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더군다나 배상 책임이 있는 기업은 제쳐 놓은 채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일본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기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구걸과 다름없습니다.
둘째, 한국 정부 유력안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위해 설립하고 운용되고 있는 지원재단을 그 설립 취지와 목적과는 전혀 다르게 운용하려는 방안으로서 부당합니다. 한국 정부 유력안은 공식발표되지 않았으나, 이미 유력안의 내용대로 절차가 시작되었습니다. 지원재단은 지난 21일 임시이사회를 통해 정관을 개정하여 목적사업에 ‘피해자 보상 및 변제를 추가하였고, 현재 행정안전부의 승인만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곧 지원재단은 한국 기업들을 접촉하여 지원재단에 기부를 요청할 것으로 보입니다. 애초 지원재단은 말 그대로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법률에 근거해 만들어진 재단입니다. 한국 정부 유력안에 따른다면, 지원재단은 피해자들의 의사에 반해 피해자들의 채권을 소멸시키고 강제집행 절차를 중지시키기 위해 법원에 공탁서 등을 제출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강제동원 판결을 끌어내기 위해 수십 년을 싸워온 피해자들은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지원재단과 싸우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맞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 유력안은 삼권분립에 반하는 안입니다. 사법부의 판결을 행정부가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조치이기 때문입니다. 민사판결로서 인정된 손해배상채권을 한국 정부가 공공기관을 동원하여 피해자(채권자)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소멸시키려 한다면, 판결의 무력화에 다름 아닙니다. 피해자들이 수십 년간 소송을 진행해오면서 한국 정부는 그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습니다. 한국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피해자들의 자존심을 뭉개고 정당한 권리에 덫을 놓을 것이 아니라, 한국 사법부 결정을 무시하며 적반하장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일본을 상대로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일본이 가장 원하는 방식, 피해자들의 의사 따위는 배제한 채 그들의 채권을 일방적으로 소멸시키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일제시기 인적수탈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강제동원 문제가 이렇게 정리된다면, “피해자들이 권리를 찾고자 일본 기업을 상대로 수십년이 넘는 소송 끝에 승소하였으나, 일본 정부의 강력한 반발에 굴복한 한국 정부가 결국 그들의 승소 채권을 모두 소멸시켰다.”라고 기록될 것입니다. 한국 정부가 위 유력안을 최종안으로 확정하여 발표하는 어리석은 일은 부디 없어야 할 것입니다.
2022. 12. 26.
2018년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피해자(원고) 지원단체[(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민족문제연구소] 및 대리인단(최봉태, 장완익, 김정희, 임재성, 김세은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