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을 감시하라, 철저히
일제강점기, 식민지배에 저항하는 조선인은 철저히 감시당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감시카드’죠. 일제는 독립운동가, 사상범 등을 감시할 목적으로 사진을 찍고, 주요 정보를 기록했습니다. 위 사진은 1936년 경성형무소에서 촬영한 조선인 수형자의 얼굴입니다. 누구일까요?
감시카드만이 아니었습니다. 일제는 내규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요시찰제도를 시행했습니다. 요시찰제도란, ‘배일사상을 품고 식민지배에 저항하거나 저항할 가능성이 있는 조선인’을 주기적으로 감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위해 일제는 요시찰 인물들의 정보를 기록한 명부를 만들어 활용했습니다.
당시 특별고등경찰 ‘요시찰내규’에는 감시자들의 미행 방법이 남아 있습니다.”피 미행자가 출발한 후에, 예정된 행선지, 경로 혹은 여행방법 등을 변경하여 예정된 인계를 할 수 없을 경우, 완전히 인계를 마칠 때까지, 그대로 미행을 계속하고, 기회를 봐서 적당한 방법을 강구하여 가장 가까운 경찰서 또는 그 경찰서원에게 인계한다“
일제의 블랙리스트, 요시찰 명부
일본의 국립공문서관에는 이렇게 일제가 해방 직전까지 감시한 조선인 789명에 대한 사찰보고서,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가 남아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1945년 3월, 함경북도, 충청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에서 작성해 일본 경시청과 조선총독부 및 관계 기관에 제출한 것입니다.
– 생년월일 : 1913.3.28
– 주소 : 광주형무소
– 인상특징 : 키 5척 3촌, 보통 체격. 머리카락은 5푼 길이로 짧게 깎음. 얼굴은 둥글고 희며 이마가 넓다. 눈썹이 짙다. 수염은 조금 있다. 목소리가 형형하다. 오른쪽 눈 아래에서 윗입술까지 약 2촌 길이의 상흔이 있다.
– 시찰요점 : 무정부주의자. 1935년 상하이 조선인회 부회장 이용로 살해범인 엄순봉(이명 엄형순)의 공범. 치안유지법 및 살인죄, 징역 13년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에 남아 있는 한 사람의 기록입니다. 바로 위 사진 속 인물, 독립운동가 이규창(1913~2005)입니다. 이회영 선생의 아들이죠.
어떤 사람들이 감시 당했나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에 기록된 ‘시찰요점’ 부분을 보면 어떤 사람들이 감시당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 민족주의자로서 열렬한 기독교 신자인데 신의 뜻이 있을 때는 어떤 일도 감행할 것이라고 말하는 자(충남 송기면, 농업)
– 농후한 민족·공산주의자로서 김원봉 일파의 불령단에 투신하여 불령운동에 활약중인 자(충남 유해준)
– 총독정치를 저주하고 공산주의 선전을 위해 노동조합 등에 관계하며 노동자에게 사상을 주입할 우려가 있음(전북 조용관)
– 노동 소작쟁의에 관여하고 불온언동을 하여 타인을 선동할 우려가 있음, 1919년 문서위조 사기로 10월, 검속·구류 2회.(전남 조동승)
– 민족사상이 농후하며 포교를 구실로 신도를 사주·선동하고 정치의 변혁을 기도할 우려가 있다.(경남 최범술, 승려)
독립운동가를 발견하다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에 기록이 남아 있는 사찰 대상은 789명, 이 가운데 오늘날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서훈된 인물은 168명이었습니다. 나머지 621명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1930년 제주도에서 ‘우리계’ 사건으로 잡혀 복역한 강기찬, 김형수, 고병희, 고영희, 조대수. 이 가운데 고영희만 서훈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함경북도 이원에서 태어나 사회주의 계열에서 소년운동, 청년운동을 한 신승혁, “농후한 공산주의자로서 조선공산당 재건에 광분, 검거하여 취조 중 1945년 4월 1일 사망.” 오직 이 명부만이 그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꿈을 함께 하며 일제의 지배에 저항하던 동지들, 오늘날 대한민국은 독립운동가들이 꿈꾸던 좋은 세상을 맞이했을까요? 우리는 이들의 꿈을 기억하기 위해 충분히 애쓰고 있는 걸까요?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에는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 발간을 응원해주세요
일제가 조선인들을 감시하기 위해 작성한 이 자료는, 오늘날 역설적으로 대한민국 후손들이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 됩니다. 엄혹했던 일제 식민통치의 실상을 알려주는 증거이며, 해방 후 독재정권 군사정권 아래서 자행된 민간인사찰과 블랙리스트의 원형입니다. 이제 민주화된 우리 사회에는 더는 ‘요시찰’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경험했듯이 국가권력의 감시와 통제는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자료를 번역하고 분석하는 데 오랜 시간을 들였습니다. 이제 2023년 봄, 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를 통해 힘겨웠던 시절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들을 찾아내고 기억할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권력에 대한 견제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경종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의 발간을 응원해주세요.